스님의하루

2025.7.23. 백중 기도 입재
“거꾸로 된 삶을 바로 세우는 방법”

안녕하세요. 오늘은 백중 날을 49일 앞두고 백중 기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백중 기도 입재일을 맞아 정토사회문화회관 앞마당에는 영가등이 수를 놓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 백중 기도 입재 특별법회를 시작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 12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온라인에서는 정토회 회원들 4천 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을 한 후 주간 정토행자의 소식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한국에 초청하여 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종교 간 대화를 나눈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 영상 보기

영상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내전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종교의 벽을 넘어 화해와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어서 모두가 삼배의 예로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폭염과 폭우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2주 전에는 폭염으로 많은 이들이 고생했고, 지난주에는 폭우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했습니다. 농지와 주택이 침수되고 산사태까지 발생해 안타깝게도 많은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명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또한 피해를 입은 농경지와 주택이 하루빨리 복구되도록, 정부는 물론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 할 것입니다.

폭염·폭우 피해,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은 힘은 무엇일까요?

현재 JTS는 피해 지역을 답사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가평은 피해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아 기초 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물자 지원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현장 조사 결과, 주민들이 가재도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특히 식수가 가장 절실한 것으로 확인되어 일차적으로 식수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이어서 충청남도와 경상남도 산청 지역도 차례로 답사할 예정이며,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파악해 구체적인 도움을 전할 계획입니다. 물론 한국은 비교적 잘 사는 나라이고, 지방자치단체들도 주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어 국민 개개인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한 여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재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마음이 그들의 깊은 시름을 덜어주는 데 작지만 소중한 힘이 될 것입니다.

스리랑카 종교인들과 함께한 평화의 대화

지난주에는 평화재단에서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초청하여 국제화해학회에 참석하고, 서로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리랑카에서 벌어진 종족 간, 종교 간 갈등 속에서도 평화를 위해 종교인들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도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을 완화하고 북한 주민의 고통을 덜기 위해 종교계가 어떻게 협력해 왔는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후에는 분단의 현장인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언제 전쟁이 다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긴장이 감도는 지역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작년 이맘때만 해도 우리는 전쟁에 대한 우려를 크게 안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국민의 염원과 하늘의 도움으로 그 위기는 어느 정도 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지만, 적어도 전쟁이 임박한 위기 국면에서는 조금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 간 적대적 조치를 하나씩 철회하고 있고, 북한도 일정 부분 화답하고 있어 남북 관계의 긴장이 상당히 완화된 상황입니다. 이제부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백중 기도를 하는 의미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백중의 유래와 불교와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현충일이 나라의 발전과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호국선열을 국가적으로 기리는 날이라면, 백중은 불교에서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조상을 기리는 날입니다. 음력으로 7월 15일입니다. 이날 하루 조상을 기리는 행사를 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하루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49재(四十九齋)라고 하여 일곱 차례 기도를 올립니다. 오늘이 바로 백중기도의 입재일입니다. 오늘 시작해서 일곱 번 기도를 드리고 마지막 날 회향합니다.

백중의 유래와 불교와의 인연

우리가 음력 7월 15일을 조상을 기리는 날로 삼은 이유는, 이 풍속이 인도 문화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시기 이전부터, 인도에서는 인도 달력으로 다섯 번째 달 보름날인 '풀문 데이(Full Moon Day)'에 강가로 나가 음식을 흩뿌리며 조상을 기리는 민속 행사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전통문화나 민속행사에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장례는 어떻게 치를까요?’ 하고 여쭈었을 때, ‘사람들이 하던 대로 두어라. 매장을 하든, 화장을 하든 그들의 풍속대로 하게 두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상을 기리는 것도 하나의 풍속입니다. 부처님은 ‘하라’ 또는 ‘하지 마라’ 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하던 대로 두어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수행자가 아닌 인도 사람들이 자신들의 풍속에 따라 조상을 기리는 날이었습니다. 불교는 처음엔 소수 출가 수행자를 중심으로 퍼졌지만, 점차 재가 수행자가 늘고 일반 시민에게까지 전파되면서 사람들은 평소 해오던 민속행사를 그대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정초나 동지에 기도하듯이, 인도 사람들도 새해맞이 행사나 조상 기리는 행사를 해왔습니다. 원래는 민속행사였지만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대다수 국민이 불자가 되다 보니 민속행사가 동시에 불교 행사가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칠석(七夕)은 불교 행사가 아니라 민속행사입니다. 하지만 신라와 고려시대, 국민 대다수가 불자였다 보니 민속 행사가 곧 불교 행사로, 민속 행사가 곧 국민 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과 같습니다. 4월 초파일은 원래 불교 행사였지만 전 국민이 불교를 믿으면서 국민 행사가 되었고, 칠석은 원래 민속행사였지만 불교 행사처럼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초기에는 승단이 관여하지 않았고, 신자들이 민속행사로만 백중을 지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행사가 점차 불교 행사로 자리 잡게 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연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인도에서는 출가가 보편적 문화이지만, 조상을 섬기는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출가가 자칫 불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애지중지 낳고 길렀는데, 자식이 집을 나가버렸으니까요. 이렇게 되니까 불교에서는 ‘출가가 결코 불효는 아니다. 부모님께 공양을 지어드리는 것만이 효도가 아니라 부모가 지은 죄를 없애고 좋은 곳에 가도록 기도하는 것이 더 큰 효도다.’ 이런 해석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인도에는 다양한 뿌자(Puja), 즉 민속행사들이 많습니다. 그 많은 행사 가운데 불교를 통해 우리나라까지 들어와 민속행사이자 불교 행사로 뿌리내린 것은 오직 백중뿐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조상을 섬기는 문화가 매우 강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조상을 기리는 풍속이 불교와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백중절 또는 우란분절입니다.”

이어서 우란분절(백중)의 유래가 된 목련존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목련존자는 어머니를 지옥과 아귀도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안거가 끝나는 날, 수행자 500명에게 공양을 올렸고, 그 공덕으로 마침내 어머니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경전 속 이야기가 영화처럼 그려졌습니다. 스님은 이 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중(百中)은 민속행사이기도 하지만, 불교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지은 인연(因緣)의 과보(果報)는 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를 구제하려면 그가 지은 인연 과보를 살펴 빚을 갚는 공덕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둘째, 본인이 깨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공덕을 쌓아 지옥에서 아귀(餓鬼)로 다시 태어나게 도울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본인이 깨우쳐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도재를 지내는 의식 속에는 ‘공덕을 쌓는 것’과 ‘영가 스스로 깨우치는 것’, 이 두 가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거꾸로 된 삶을 바로 세우는 방법

이야기 속 목련 존자의 어머니는 눈앞의 이익만 좇았습니다. 장사를 통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더 중요하고 잘하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천상에 태어나고자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지옥에 간 것입니다. 이처럼 거꾸로 사는 인생을 전도몽상이라고 합니다. 우란분재(盂蘭盆齋)라는 말은 인도어 울란바나(ullambana)에서 유래했는데, ‘거꾸로 매달린’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란분재는 ‘거꾸로 된 것을 바로 세운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전도’된 사례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며 한 일이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합니다. 거꾸로 된 것을 바로 세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길은, 가난한 이에게 베풀어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란분재에서 ‘재(齋)’는 ‘베푼다.’라는 뜻입니다. 즉 공덕을 쌓는 것이 거꾸로 된 삶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백중기도는 인도 전통에서 시작되었지만, 불교 안에 들어오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접목되어 전해졌습니다. 단순히 죽은 영혼을 위한 제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베푸는 행위가 곧 영가의 죄를 덜어 주는 공덕이라는 의미로 발전한 것입니다. 백중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통 제사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고, 보시한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것은 불교 의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백중 의식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제사 의식은 간소하게 하고, 여러분의 보시는 생명을 살리는 인도적 지원에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북한의 굶주린 사람들이나 인도의 어린이들, 그리고 제3세계의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합니다. 또한 목마른 이들에게는 물을, 병든 이들에게는 약을, 헐벗은 이들에게는 옷을, 집이 없는 이들에게는 집을 지어주는 등의 인도적 지원활동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방생(放生)’의 개념입니다. 물고기를 놓아주는 것도 방생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방생의 공덕입니다. 이러한 나눔은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 청정하게 수행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백중, 조상과 중생 모두를 위한 감사의 날

현대적으로 백중을 해석해 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조상의 얼을 기리는 날입니다. 즉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둘째, 중생의 은혜에 보답하는 날입니다. 지금 내가 이만큼 잘살고 있는 것은 나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누군가 옷을 만들고, 누군가 농사를 짓고, 누군가 묵묵히 일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길 덕분에 오늘의 삶이 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이러한 노동을 도맡아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백중은 그들을 위한 날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백중이 ‘머슴의 날’, ‘하인의 날’이었습니다. 이날만큼은 머슴도 하루를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노동절과도 같은 날입니다. 물론 현대의 노동절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우리 고유의 노동절을 만든다면 백중날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면, 백중은 단순히 제사를 지내는 날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고용주는 직원들이 하루라도 쉴 수 있도록 배려하며, 심지어 일하는 소에게도 좋은 먹이를 주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날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 고통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날이라는 의미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빼빼로데이나 밸런타인데이처럼 상업적인 서구식 기념일보다는, 우리 고유의 정신과 가치를 되살리는 이런 전통을 기념일로 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정토회에서는 비록 백중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직접적 관련은 없더라도, 그 의미를 부처님의 법으로 살려낼 수 있고, 현대적인 의미로 되살릴 수 있다고 보고, 백중기도를 정초기도, 동지기도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에는 누군가 돌아가시면 흰옷을 입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중날에는 백등(白燈)을 답니다. 이날 하루는 마치 현충일처럼 돌아가신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보시하며, 그들이 하루쯤은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날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좋은 전통을 계승하여, 앞으로 수요일마다 법회 후 백중기도를 함께 하겠습니다.”

입재 법문이 끝나고 곧바로 백중 기도 1재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49일 동안 7재를 지낼 예정입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백중 기도를 하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전송되는 동시에 대중은 각자 자신의 방에서 생방송을 보며 차 한 잔씩 간단하게 올려놓고 다 함께 백중 기도를 했습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돌아가신 분을 떠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장엄염불을 하고 온라인 백중 기도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국회의원 이소영 님이 찾아와 함께 식사를 하며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한반도 평화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1시부터 연구위원들과 함께 하는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겨레의 삶과 우리말’을 주제로 최한실 선생님의 발표를 듣고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한실 선생님은 뒤죽박죽된 우리말에 눈을 떠 죽어가는 우리말을 살려내고, 어려운 한자말을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우리말을 우리말로 풀이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신 분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일하는 사람들이 나라의 임자가 되도록 하고 갈라진 겨레를 하나로 잇는 일에 매진해 오신 분입니다.

최한실 선생님은 우리말을 지키지 않으면 외래어에 따라 우리의 감각과 사고방식이 변질되고, 그로 인해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 정신(얼)까지도 바뀌고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두 시간 동안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것은 다시 찾으면 되지만, 말을 잊으면 찾기가 되게 어렵습니다. 멀쩡하게 잘 먹고 잘 살아도 말을 잊으면 얼을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통일이란 말뿐만 아니라 민족이란 말, 대한민국이란 말, 이런 말들은 다 일본 말에서 온 말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일본 말에서 온 말입니다. ‘문을 닫다’ 그러면 문이 닫히는 것이라고 쉽게 이해가 되는데, ‘문을 차단한다’ 그러면 무슨 느낌이 들어요? 탱크가 막 밀고 오는 것 같잖아요. 이렇게 말이 바뀌면 느낌도 달라집니다. 그런 식으로 역사가 바뀌고, 개념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얼이 바뀌는 거예요.

우리가 널리 쓰는 ‘두 한자를 붙여 쓰는 말’이라는 게 일본 사람들이 1800년대에 자기들이 알던 한문을 그들이 아는 높이에서 만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문을 아는 높이나 말을 짓는 높이에서 보면 대단히 낮은 높이에서 지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도로’, ‘환경’, ‘정치’, ‘경제’ 이런 말들이 길게 가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 겨레한테는 ‘정치’라는 말보다는 ‘다스림’이란 말이 훨씬 깊은 뜻을 품고 있고,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런 순우리말을 찾아서 써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저는 내다보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라는 말보다는 ‘살림’이라는 말이 훨씬 우리 겨레의 삶에 맞고, 바른 삶에 맞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겨레의 말을 살려 써야 합니다.

말은 얼(정신)의 그릇이기 때문에 우리말을 잊는 것은 우리 얼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외래어에 밀려 우리 고유의 말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잃어가는 일입니다.”

최한실 선생님의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다양한 질문을 통해 우리말 살리기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지금처럼 다국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말을 살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국어사전을 보면 외래어와 일본어 투성이인데, 그런 환경에서 우리말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나요?”
“왜 ‘말’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생각만 바르게 하면 되지 않나요?”
“이런 활동이 혹시 민족주의나 배타성으로 흐를 위험은 없나요?”

최 선생님은 세대 간의 언어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예를 들며 실천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어려워도 해야 할 일이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말을 자식 세대에 조금이라도 물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한 말 한 말 바꿔 써야 해요. ‘기대하다’ 대신 ‘바라다’, ‘발생하다’ 대신 ‘일어나다’처럼 말입니다. 말이 바뀌면 생각이 바뀝니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나라도 바뀌어요. 우리말을 지킨다는 건 다른 말을 배척하자는 게 아니라, 내 뿌리를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세 시간 동안 발표와 토론을 경청한 스님이 마지막으로 소감과 더불어 우리말 살리기 운동이 갖는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순우리말은 듣자마자 뜻이 쉽게 와닿지만, 일본식 한자어를 우리 발음대로 쓰는 말들은 어렵다는 점이 저에게 와닿았습니다. 예를 들면 ‘손님’이라는 말은 금방 알아듣지만, ‘고객’이라는 단어는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길’은 쉽게 알아듣지만 ‘도로’는 그렇지 않죠. 우리 세대에 적용했을 때 그렇다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어릴 적 저희 부모님은 학교를 안 다녔기 때문에 오롯이 순우리말만 쓰셨거든요. 마치 제주도 사람이 집에서 제주 사투리를 배우듯이, 저도 자라면서 순우리말을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손님’보다 ‘고객’이 익숙한 시대, 우리말 교육의 딜레마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면서 한문식 단어 위주의 교과서로 배우게 되었고, 조사나 동사를 빼면 대부분의 단어를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어릴 적 들었던 순우리말보다 학교에서 배운 한자어를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죠. 이렇게 세대가 바뀌면서 ‘길’, ‘손님’ 대신 ‘도로’, ‘고객’ 같은 단어가 일상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집에서도 ‘도로’, ‘고객’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기 때문에 오히려 ‘길’, ‘손님’이 뭔지 모른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순우리말이 더 쉽다.’라고 말하면 지금 세대에게는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순우리말이 쉽고 한자어는 어렵다.’라는 전제는 세대에 따라 다르게 작용해서, 이 부분은 조금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길’이 ‘도로’보다 쉽지만, ‘뫼’보다는 ‘산’이 훨씬 익숙하잖습니까? 우리도 어느새 순우리말보다 한자어에 더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지금의 학생들은 순우리말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세대입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이 순우리말을 안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말 대신 일본식 한자어를 쓰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을 저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말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한문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한자를 쓰는 사람들은 일부 관료나 유생, 스님 정도였고, 일반 생활 언어에서는 한문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특정 전문 분야의 글에서만 한자어가 쓰였을 뿐이죠. 그러니까 아무리 한문 사용의 역사가 길다고 하더라도, 일부 지식층에만 영향을 주었을 뿐이지 국민 전체의 언어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일본은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소학교, 즉 초등학교를 세우고, 자국어 교과서를 통해 일본어를 교육했습니다. 일본도 본래는 순 일본어가 있었지만,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바케스’처럼 외래어의 발음을 그대로 따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자를 조합해서 ‘평화’, ‘의자’, ‘책상’ 같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만든 단어들은 한자어이지만, 중국식 표현과는 달랐습니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한국, 일본, 중국이 모두 중국식 표현을 공통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서양 문물을 먼저 받아들이면서 새 단어를 만들었고, 우리나라는 이 단어들을 일본을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중국도 이 단어들을 받아들였고요. 이렇게 해서 ‘자유’, ‘평등’, ‘평화’, ‘자비’ 같은 일본식 한자어가 생겨났고,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초등학교에 다닌 사람은 인구의 20퍼센트도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는 일반 국민보다는 지식인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문이 양반 계층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일본어는 그보다는 폭이 넓긴 했지만, 여전히 국민 전체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말에 아예 없었던 개념이나 단어는 일본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공구’ 같은 도구들이 새롭게 들어오면서 마치 우리가 ‘컴퓨터’를 영어 그대로 쓰듯이, 일본어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외래어나 일본식 표현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겁니다.

해방 이후 우리는 일본어 교육을 중단하고 한국어 교육으로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교육의 경험이 없던 터라 일제 강점기 교과서를 그대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일본은 물러났지만, 교과서 속 내용은 거의 바뀌지 않았죠. 읽는 발음만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바뀌었고, 내용과 용어는 대부분 그대로였습니다. 이후 모든 아이들에게 의무교육이 시행되면서, 그 결과 교과서에 실린 언어로 모든 국민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손님’, ‘길’이라고 배우고, 학교에서는 ‘고객’, ‘도로’라고 배웠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집에서도 학교에서 쓰는 언어에 밀려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식 한자어가 오늘날 국민 다수가 사용하는 주류 언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모든 말을 순우리말로 바꾸자고 할 때 우려되는 점들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개선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보다는 ‘고맙습니다’, ‘고객’보다는 ‘손님’, ‘도로’보다는 ‘길’처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리말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래 쓰던 말을 우리말로 다시 돌려놓자는 운동은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단어를 다 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예컨대 ‘자유’라는 말은 우리가 과거에 거의 써본 적이 없는 새로운 용어입니다. 이런 말도 우리말로 표현하려면 방법은 있겠지만, 굳이 옛말을 찾아 새로 쓸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역사 속에서 그 개념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말까지 모두 바꾸겠다고 하면, 어디까지 바꾸는 작업을 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이 점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이미 일상에서 자주 쓰이던 우리말이 한자어나 외래어에 밀려 쓰이지 않게 된 경우라면, 그 말을 우리말로 복원하자는 데는 저도 찬성합니다. 그런데 모든 단어를 다 바꾸려면 말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5천만 국민이 전부 새로 배워야 하는 전면적인 재교육이 필요해집니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이런 변화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얻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저는 이 점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짚어보고 싶습니다.

‘AI(인공지능)’는 ‘번똑이’라고 고쳐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AI’와 ‘번똑이’는 무슨 차이가 있어서 꼭 바꿔야 할까요? ‘번똑이’는 원래 우리말에도 없던 단어입니다. 그런데도 새로 만든 말이면 순우리말이고, ‘AI’는 우리말이 아니라는 논리는 지나치게 국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외국어를 새롭게 한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국민들이 수용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됩니다.

오히려 지금 쓰는 용어의 내용을 잘 정리해서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요? 저도 우리가 쓰는 수많은 단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려는 시도 자체는 의미 있다고 봅니다. 비록 전 국민이 함께하는 일은 아닐지라도, 학문적 연구나 일부 실천의 차원에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을 순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이나, 정토회에서 순화된 우리말 표현을 시도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모든 단어를 순우리말로 바꾸겠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첫째, 효율성 측면에서 어떠한가 싶고, 둘째,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 싶고, 셋째,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싶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더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기 전에 일상적으로 사용했지만 학교 교육을 통해 도태된 말들이 지금 우리가 쓰는 용어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도로’, ‘고객’ 같은 한자어 대신, 어릴 적 자연스럽게 썼던 ‘길’, ‘손님’ 같은 말을 다시 쓰자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새로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학교 교육 이전에 쓰던 말을 되살리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노력이라고 봅니다. 무조건 우리말만 써야 한다며 원래 없던 말을 억지로 만드는 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쓰다가 학교교육을 통해 밀려난 말들은 되살려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해도 절반 이상의 효과는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말을 철저하게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토론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한실 선생님이 우리말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며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이어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좀 더 성의를 기울여 보기로 하고 큰 박수와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이어나갔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한 후 비서실과 하반기 일정에 대해 논의하고, 오후에는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해 모레부터 시작하는 명상수련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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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득

고맙습니다

2025-07-26 21:12:49

최상훈

고맙습니다 ^^

2025-07-26 15:40:57

최연주

최한실선생님 고맙습니다

2025-07-26 15: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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