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5.21. 백일법문 94일째, 종교인 모임, 수행법회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혹시 자기 합리화는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94일째 날입니다. 어느덧 백일법문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종교인 모임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로 지하 1층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 밥상으로 식사를 한 후 평화재단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오는 7월에 개최될 국제화해학회에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초청하여 서로 교류하는 행사 일정을 공유하고 종교인 분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참가하여 ‘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종교 간 대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경동교회, 천도교 중앙대교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대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을 함께 방문하는 등 나흘 간의 방문 일정을 확정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북한의 상황을 간단하게 공유해 주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정상 회담을 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라는 이야기를 한 이후로 북한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조금씩 완화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 가격과 물가가 많이 올랐고,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강성 대국’을 주장하면서 군사적인 측면에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경제는 매우 곤궁한 상황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종교인 모임의 좌장인 박남수 교령께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종교인 모임에서 어떤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는지 종교인 분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란 세력을 종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헌법을 개정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구조적으로 없애야 한다.’ 이런 주장들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요. 또 한편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이기도록 해서 내란 세력을 종식하는 데에 힘을 보태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우리가 여기에 대해 한번 의논해 보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교인 분들은 각자의 의견을 편안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박경조 주교께서 의견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북 간의 평화를 도모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어내는 일인 것 같아요. 한국 사회를 정화하는 일에 당연히 나서야 하는 건 맞지만,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홍진 신부께서도 의견을 말했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우리가 지향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반대되는 정책을 행한다면, 그 정책에 대해서 우리는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종화 목사께서도 의견을 말했습니다.

“정치에 관심 있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목사를 표로 계산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순간 그 사람은 대중에게 종교인으로 비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책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표명할 수는 있지만,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스님이 의견을 말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진보적인 관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 모임은 중도적이고 국민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의견을 넘어서서 척결보다는 협치를, 배격보다는 포용을, 갈등보다는 화해를 이야기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종교인이 특정 정치인이나 집단을 지지하는 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지금, 종교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물론 정치인들이 종교인을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언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정당의 한반도 평화 정책은 지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이 아닌 특정 정당이나 개인을 지지하는 것은 종교인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가를 잘 운영하면 다행이지만, 독선적으로 나라를 운영할 경우 오히려 비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보수 세력이 집권해서 잘못하면 보수층에서 비판을 해 주어야 갈등이 적은데, 보수층에서는 아무도 비판을 하지 않고 진보층에서 비판하니 갈등이 더 깊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진보 세력이 집권해서 잘못하면 진보층에서 비판을 해주어야 갈등이 적은데, 아무도 비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누가 집권하든 독선적으로 나라를 운영할 수가 있고, 또 국민적 갈등도 심해집니다. 이 점에 대해 종교인들이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갖는 폐해가 크기 때문에 국민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까지는 동학 혁명도 그때는 실패했고, 3.1운동도 그때는 무참하게 탄압받고 실패했지만, 이런 수없는 실패를 통해 국가가 발전하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려하는 것은, 지금은 서로 싸우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포물선의 꼭짓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대학생들이 데모를 해도 감옥에서 나오면 대기업에 취직을 시켜 주었고, 국회 의원들이 낮에는 의사당에서 싸워도 저녁에는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싸우고 나서 아예 대화를 안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진보든 보수든 양쪽 다 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수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헌법재판소 판결도 부정하고, 대법원 판결도 부정하고, 이런 모습들을 보이니까 우리 사회가 내리막길로 접어든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국가가 성장할 때는 서로 싸우는 것이 활력이 되기도 하는데 지금은 그게 아닌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협치, 화해, 평화, 상생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우리 종교인들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국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국제화해학회 행사 준비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설법전에서는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사시예불을 한 후 잠시 자리 정돈을 하고 있었습니다.

14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도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하여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주간 정토행자 소식을 영상으로 본 후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막바지에 이른 백일법문을 이야기하며 남은 일정을 설명했습니다.

“어느덧 백일법문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00일이라 불리지만 실제 일정은 105일입니다. 오는 6월 1일 일요일에는 제8차 100일 기도 회향식과 백일법문 회향식이 있고, 이어서 제9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특별 정진은 100일이 아닌 300일 정진, 즉 ‘2025년 특별 정진’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200일이 더 남아 있습니다. 첫 100일의 여세를 몰아 연말까지 꾸준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100일 동안은 백일법문을 통해 대중이 큰 힘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함께 왔으니 그 바탕 위에서 앞으로 남은 200일 정진도 여러분 스스로 잘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백일법문이 막바지에 이른 만큼 다음 주부터는 곳곳에서 종강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먼저 온라인에서 두 명이 질문한 후, 이어서 현장에서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혹시 자기 합리화는 아닐까요?

“저는 아동 학대 생존자로, 법륜스님의 바른 가르침으로 부처님 법을 만나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목표로 공부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생각이 금세 바뀌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말을 안 듣거나 제 생각과 다르게 행동할 때도 ‘그래도 아이들이 살아 있으니까 됐어!’ 하고 바로 한 생각을 바꿉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제 편한 대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건 아닌지,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 수행을 잘 하고 있는지 스님께 중간 점검을 받고 싶어 질문 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이 별것 아니고, 사실 특별한 사람도 없어요. 누구나 ‘괜찮아, 원래 사람이 다 그래.’ 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있는 거예요.

인간에게는 본래 자기방어 본능이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고, 정신 작용인 까르마 역시 늘 자신을 보호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했을 때도 숨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숨기고, 들통날 것 같으면 차라리 드러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고백하는 겁니다. 진실해서 사실을 털어 놓는 경우는 드물어요. ‘숨길까?' '드러낼까?’ 이렇게 눈치를 보다가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야 상대가 받아줄 것 같고, 괜히 거짓말했다가 미움 받을까 싶어서 차라리 드러내는 거예요. 인간 심리가 본래 그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심지어 솔직함마저도 솔직한 게 유리한지, 약간 숨기는 게 유리한지 따져 보며 잔머리를 굴려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도 자신이 좋을 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그 결과에 따라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어요.

질문한 것처럼 ‘그래도 아이들이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듣는 걸 그대로 두다가 아이가 정말로 버릇이 나빠졌다면, 이제는 조금 힘들더라도 버릇을 고쳐야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대개 고칠 수 없는 걸 고치려다가 괴로움을 키웁니다. 고칠 수 없는 건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나아요. 괴로움은 괜히 고치려다가 생기는 거니까요.

산에 가서도 길을 낼 수 있으면 내고, 길을 낼 수 없으면 밧줄을 타든가 해야 하잖아요.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상황에서는 개척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늘 나한테 맞게 바꾸는 일과 그 상황에 내가 적응해 가는 일을 적절히 겸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모든 걸 다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고 하니까 세상일이 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힘든 겁니다. 모든 상황에 다 적응해 버리면 쉬울 것 같지만, 그렇게만 살면 사람이라고 하긴 좀 어렵겠죠.

그래서 중도를 지켜야 합니다. 바꿀 수 있으면 바꾸면 됩니다. 그런데 그건 힘이 들어요. 힘든 걸 감당할 수 있으면 바꾸면 되고, 감당이 안 되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안 받아들이니까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무위(無爲)로 돌아간다는 건 아예 의도를 내려놓고,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려면 자기에게 맞게 세상을 조금은 바꿔야 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됩니다. 뜻대로 안 될 때 괴로움이 생기거든요. 농사도 마찬가지예요. 비가 안 오면 댐을 막든지 지하수를 파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 같은 구황 작물을 심으면 됩니다. 이렇게 적응과 개척, 두 가지를 언제나 적절히 조화롭게 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어릴 적 상처가 있지만 수행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데,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아이를 낳아도 될까요?
  • 10차 천일결사 회향식 때 1만 명이 모여서 오프라인으로 회향식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를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회의실에서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2시간 동안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대통령 선거 이후 남북 관계와 국민 통합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평화재단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2시간 동안 토론을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0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 화상 회의 방에 접속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법회처럼 막바지에 이른 백일법문을 언급한 후 현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실험 중인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는 코로나 팬데믹을 맞으며, 전국과 해외에 있던 200여 개의 법당을 정리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해 운영해 온 지 6년이 되었습니다. 밥 먹고 똥 누는 내 생활 공간을 수행 처소로 삼고, 내 집을 개인 법당으로 만들어 정진한다는 정신으로 온라인 정토회를 이어 왔습니다. 편리한 점도 많았지만, 부족한 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사라지는 인격의 향기, 정토회 온라인 전환이 남긴 과제

수행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그 인격의 향기가 서로 전해지고 지속되어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만나다 보니 스위치를 끄면 화면에서 곧 사라져 버립니다. 마치 영화관에서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눈물까지 흘렸는데, 상영이 끝나고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그 감동이 꿈처럼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꿈속에서 감동했는데 눈을 뜨면 사라지듯이, 온라인 시스템이 주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격의 향기가 은은하게 지속되어야 하는데, 탁! 하고 스위치만 끄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니까요. 여러분은 나름대로 잘한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수행이 좀 부족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온라인 시스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법회와 교육은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절하고 명상하고 정진하고 사회 실천 활동을 하는 것은 으뜸절이나 실천 장소에서 회원들이 만나 함께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고 나서 항상 집에만 있다 보니 게을러져서, 으뜸절이나 실천 장소에서 모이자고 해도 잘 나오지 않게 됩니다. 엉덩이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엉덩이를 조금 가볍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 1년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오프라인 활동을 좀 해 보고, 오프라인 활동이 꼭 필요하고 효과적이라고 평가되면 대도시를 중심으로 법당을 일부 다시 여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라인 공간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면, 지구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히 섞어서 보다 효율적으로 일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온라인에서 두 명이 질문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교통사고를 당해 108배 절을 할 수 없게 되자 깊은 낙담이 밀려 왔다며 앞으로 어떻게 수행을 해 나가야 할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절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저는 2018년 천일결사 기도에 입재한 뒤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 정진을 이어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와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며, 절과 명상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운 채로 관음 정근을 하거나 주력과 명상으로 정진을 이어 갔습니다. 그런데 주치의 말이, 앞으로는 운동이 어렵고 가벼운 산책 정도만 가능하니 108배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고, 깊은 낙담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또 어떤 방식으로 정진을 이어 가야 할까요?”

“상심이 크시겠어요. 저는 유년기를 시골에서 살다 보니 소를 몰고 산길을 다람쥐처럼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백두산 기행을 가거나 민다나오에서 답사를 할 때면 사람들이, ‘스님은 축지법을 쓰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저 역시 무릎을 다쳐 조심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걷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특히 산을 오르는 일은 자제하라는 말이었어요. 나이도 일흔이 넘었고, 다리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심장 동맥 하나가 막혀서 숨이 차면 심근 경색이 올 수 있다고 합니다. 스텐트 시술을 권유받았지만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약만 복용하며 조심하고 있고, 갑자기 심장이 경색될 때를 대비해서 혀 밑에 넣는 비상약도 가지고 다닙니다.

아무리 산을 잘 다녔더라도 다리가 불편해져 산을 오를 수 없게 되면, 결국 못 다니는 겁니다. 저도 지금은 108배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백일법문에 동참하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1080배 정진을 함께해야 하지만, 의사가 무릎에 무리가 가면 안 된다고 해서 삼배나 몇십 배 정도만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처럼 절을 못 하는 사람은 수행을 못하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건강한데도 절을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못 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반대로 건강이 안 되는데도 억지로 하겠다는 것은 정진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수행의 원을 세운 사람이라기보다는 절하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을 못 해서 아쉽다는 건 집착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몸에 맞게, 상황에 맞게 하는 거예요.

절을 못 하는 것과 걷지 못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생활에 불편을 줄까요? 걷지 못하는 쪽이겠지요. 그런데 질문자는 산책 정도는 가능하다고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천천히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절을 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입니다. 절은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절을 할 수 있는데도 안 한다면, 그것은 싫은 마음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게으름’이라고 표현합니다.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억지로 하려는 것은 오히려 수행에 반하는 자세입니다. 정진이 아니라 집착이에요.

질문자는 교통사고 이전에는 절 수행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지금 같은 몸 상태에서 절을 고집하는 것은 절에 대한 집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거꾸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천천히 걷는 것 자체가 허리와 다리의 재활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빨리 걷거나 무리해서 움직이면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어요.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걷는 것부터 시작해 봐야 해요. 그리고 절을 하루에 열 번 정도 천천히 해 봤을 때, 허리나 무릎에 무리가 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수행이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반대로 천천히 열 번 정도 절을 해 봤는데 허리나 다리에 무리가 없고, 오히려 유연성을 높여 재활에 도움이 된다면, 그때는 절을 해도 괜찮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절을 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절은 다리 운동이 되기 때문이에요.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정신 건강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하체 운동이라고 합니다. 절이 바로 그런 운동이에요.

한마디로 말하면 별일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첫마디부터 그렇게 말하면, ‘스님은 건강하니까 남의 병은 병으로도 안 본다.’ 하고 질문자가 섭섭해할 것 같아서 제가 가진 병에 대해 이야기를 덧붙인 거예요. 절을 못 하면 안 하면 됩니다. 걷지 못하면 안 걸으면 됩니다, 가부좌를 틀 수 없으면 의자 놓고 앉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나 가부좌를 틀 수 있는데도 일부러 의자에 앉는다든지, 절을 할 수 있으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하지 않는다면 수행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지금 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 대신 무엇을 하면 되느냐고 물었는데, 수행에는 대신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절을 못 하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 수행의 방식은 다양합니다. 절 수행도 있고, 참선 수행도 있고, 염불 수행도 있고, 주력 수행도 있고, 경전을 독송하는 강경(講經) 수행도 있습니다. 그러니 ‘절을 못 하니 대신 뭘 해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그동안 절 수행을 해왔지만 이제는 주력 수행을 해보자!’ 이렇게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이것을 못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저것을 한다는 식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조건에 맞게 수행 방식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염불 수행을 해도 좋고, ‘옴 마니 반메 훔(oṃ maṇi padme hūṃ)’을 외우는 주력 수행을 해도 됩니다. 티베트에 가 보면 사람들이 염주를 돌리며 늘 ‘옴 마니 반메 훔’을 중얼거립니다. 수행은 결국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는 일이므로, 염불이든 주력이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절을 못 한다고 해서 수행을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은 수행의 한 가지 방법일 뿐이에요. 운동에 비유하자면 체력을 단련하는 여러 운동 중 하나에 해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축구를 못하니 운동을 못 하겠다.’ 이런 말은 적절하지 않아요. 축구를 못하면 농구를 하면 되고, 농구가 어렵다면 탁구를 해도 됩니다. 그것도 힘들다면 천천히 걷기만 해도 되는 거예요. 이렇게 자신에게 맞는 다른 방식을 찾아 가면 되는 일입니다. 별일 아닙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사고를 당했을 때, 스님께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해 주신 말씀 덕분에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절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질문해 주신 분들에게 청중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대중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하였고,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95일째 날입니다.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한 후,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경전 강의를 하고,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21강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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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웅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25-05-24 07:39:11

지나가다

우리몸의 근육의 70%가 하체근육으로서 매일 108배 등 하체운동으로 하체근육이 튼튼한 사람은 당뇨와 고지혈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매, 낙상 등을 당할 우려가 확연히 줄어듭니다. 내가 경험한 바 정신적으로 108배는 나를 낮추는 행위로서 우월감은 겸손함으로, 비굴함은 당당함으로 나를 순화시켜주는 역대조사님들이 개발한 인류 최고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2025-05-24 07:39:01

정태식

“농사도 마찬가지예요. 비가 안 오면 댐을 막든지 지하수를 파면 되고, 그것도 안 되면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 같은 구황 작물을 심으면 됩니다.
이렇게 적응과 개척, 두 가지를 언제나 적절히 조화롭게 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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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대로 산다고 내 힘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요.

2025-05-24 07: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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