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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92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경전 강의와 불교사회대학 강의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경전 강의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1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생방송으로 56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지난 시간에 반야심경 전체 경문에 대한 해설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배운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총정리하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경전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진리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진리가 시간이나 공간, 어떤 조건과도 상관없이 따로 존재한다고 여길 때 생깁니다. 그러나 불교는 어떤 절대적 진리가 따로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첫째,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통해, 내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둘째,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를 자문하며 현재 내 삶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셋째, ‘그 목표를 향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를 고민하며, 지금 이 자리에서 가야 할 길을 살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분명해졌을 때라야 비로소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표도 불분명하고, 현재 위치도 모르면서 방향이 맞다, 틀리다 말하는 건 허황된 소리입니다. 그러니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괴롭게 살고 싶은지, 행복하게 살고 싶은지, 삶의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점검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방향을 논할 수 있습니다. 목표도 현실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방향이 옳으니 그르니 말하는 것은 헛된 판단일 뿐이에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유정법’이라고 말합니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하는 모든 판단은 결국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이 없다면 그런 판단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삶을 두루 관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것을 원합니다. 결혼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런 욕망을 넘어서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학생에게 질문해 보면 이런 대화가 전개됩니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니?’
‘공부 잘하는 거요.’
‘공부 잘해서 뭐 하려고?’
‘좋은 대학에 가야죠.’
‘좋은 대학에 가서 뭐 하려고?’
‘그래야 좋은 데 취직을 하죠.’
‘좋은 데 취직을 해서 뭐 하려고?’
‘그래야 돈을 많이 벌죠.’
‘돈 벌어서 뭐 하려고?’
‘그래야 큰 집 사죠.’
‘큰 집 사서 뭐 하는데?’
‘그래야 편하죠.’
‘편하게 살아서 뭐 하려고?’
이렇게 계속 물어가다 보면 결국 ‘행복하게 살고 싶다.’, 혹은 ‘괴로움 없이 살고 싶다.’ 하는 데 도달합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나는 불행해도 괜찮다.’하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자유로우려면 지위가 높아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수단으로 출세하고 돈도 벌려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지위가 높으면 자유로워질까요?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까요?
다들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아직 내가 그만큼의 돈을 벌어본 적도, 높은 지위에 올라본 적도 없으니까요. 다만 주위를 보며 막연히 추측할 뿐입니다. 지위가 있는 사람은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 같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눈치를 보니까 ‘지위가 높으면 낫겠구나’, ‘돈이 있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 확인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을 직접 만나보면 됩니다.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한지, 자유로운지를 살펴보면 되겠죠. 그러나 막상 만나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실제로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자유롭고 싶고,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 긴 과정을 굳이 다 거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누군가가 ‘지구의 끝까지 가겠다.’하며 앞으로만 걷기 시작했다고 합시다. 온갖 고생 끝에 결국 끝까지 갔어요. 대부분은 중간에 포기하고 죽었는데, 운 좋게 그 사람은 끝까지 간 거예요. 그런데 거기가 어디였을까요? 바로 출발점이에요. 그렇다면 이렇게 한 바퀴 돌아서 오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애초에 뒤로 돌아서는 게 나을까요? 사실은 뒤로 돌아서면 그만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도 이와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바퀴 돌아서 그 자리에 도달해 보기 전까지는 ‘뒤로 돌아서면 된다.’ 하는 말을 쉽게 믿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말해줘도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거짓말처럼 느껴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그토록 애써 앞으로 나아가려 할까요? 정말 뒤로 돌아서면 되는 것이라면, 애초에 아무도 그렇게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인류는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뒤로 돌아서면 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게 오히려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끝까지 가보겠다.’라고 하면, ‘그래, 가봐라.’하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돌아서면 될 텐데.’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나아가 모든 불교의 가르침은 결국 목적지와 출발점을 먼저 확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같은 목적지를 향한다 해도 출발점이 다르면 가는 길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과 부처님 열반 후 500년이 지난 시기의 사람들은 분명 서로 다른 출발점에 서 있었습니다. 또한 불법을 전혀 모른 채 출발한 사람과 어느 정도 배웠지만 여전히 헤매는 사람 역시 서로 다른 출발점에 서 있는 거예요. 이렇게 출발점이 다르면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이나 반야심경과 같은 대승 경전을 배우면서도, 이런 출발점과 목적지를 먼저 점검하지 않고, 단지 경전의 언어나 문자에 매이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외우고, 많이 알고, 또 열심히 실천했음에도 정작 해탈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부처님 당시 사람들은 조금만 실천해도 목적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열 배, 백 배 더 노력해도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바로 법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강가 강에서 목욕하면 하늘에 태어난다.’ 하는 믿음처럼, 부처님의 법을 배우면 곧 해탈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불법을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부처님이 ‘동쪽으로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원에 사는 사람은 그렇게 기록된 경전을 읽고 아무리 동쪽으로 간다 한들 서울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강릉 사람이 동쪽으로 가라는 말만 믿고 그대로 갔다가는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 생깁니다. 부처님 말을 그대로 따랐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의문이 생기겠죠. 이것은 ‘동쪽’이라는 말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출발점이 인천이 아닌데도 무조건 동쪽으로만 가면 된다고 여긴 것이 문제입니다. 누군가 질문을 할 때는, 먼저 그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은 지금 여기 있고, 원하는 곳은 저기입니다. 그러니 이 방향으로 가면 됩니다.’라고 바르게 안내할 수 있습니다.
대승 경전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글자를 외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왜 금강경을 삼천 번이나 읽었는데도 해탈하지 못합니까?’라는 질문도 같은 맥락에서 나옵니다. 진리는 어디 특정한 책이나 장소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땅속에 묻힌 보물처럼 가서 캐내기만 하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분명해져야 방향이 정해지고, 그 방향에 따라 어떤 방식과 어떤 수단을 선택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다양한 질문들이 서면으로 작성되어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제출된 질문을 하나씩 읽은 후 답변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대승 불교의 보살 사상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이번에 반야심경 강의를 들으면서 중생에게 어둠이 있는 한 완전한 해탈을 얻을 수 없고, 완전한 열반에 이르려면 부처의 세계가 아닌 중생의 세계로 들어가 그 어둠을 걷어내야 한다는 대승 불교의 보살 사상이 가장 와닿습니다. 그런데 이 논리대로라면, 중생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과연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 방식으로 수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대승 불교의 관점입니다. 그렇다면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 사상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곧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중생을 도우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수행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곧 수행의 길입니다. 명상에만 몰두해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실천을 통해 수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난민이 생기면 그들을 돕는 것이 수행이고, 병자가 있으면 돌보는 것이 수행이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화하고 위로하는 것이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들을 돕는다.’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그들을 돕는 것을 나의 수행으로 삼는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내가 중생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뜻이 아니라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으로 내 수행을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체력 단련이 필요할 때 헬스장에 가서 아령을 드는 대신 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의 짐을 들어주거나, 리어카를 끄는 사람의 짐을 함께 끌어 주며 체력을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표는 체력 단련이고, 수단은 남을 돕는 일입니다. 해탈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중생을 돕는 것을 방편으로 삼는다는 겁니다. 즉, 수행은 중생을 떠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이나 아이, 혹은 아내를 떠나 절에 들어가 따로 수행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아내의 잔소리를 수행으로 삼는 겁니다. 남편의 고집을 수행으로 삼고, 아이의 짜증을 수행으로 삼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입니다. 이 방식은 자칫하면 세속의 삶에 휘말릴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만 하면 수행이 엄청나게 잘 됩니다. 왜냐하면 곁에 나를 연습시켜 주는 코치가 아주 많기 때문이에요. 남편이, 아내가, 아이가, 직장 동료가 끊임없이 나를 건드려 줍니다. 수행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주변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줍니다.
산속에 있으면 누구도 나를 자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하는 수행은 다릅니다. 조금 화를 내면 ‘왜 화내요?’ 하고 지적이 들어오고, 게으름을 피우면 ‘왜 게을러요?’ 하는 반응이 나오고, 자기주장을 하면 ‘왜 고집부려요?’하고 항의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끊임없이 나를 돌아봐야 하니까 오히려 빠르게 성불할 수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스승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약점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법륜스님이 아니라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수행의 관점을 놓쳐도 곧바로 ‘수행자가 왜 그래요?’하고 찌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극이 주어지는 환경에서 수행하는 것이 바로 대승 보살의 수행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이런 방식의 수행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이것을 ‘일과 수행의 통일’이라고 부릅니다. 수행을 마치고 난 다음에 따로 중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돕는 활동 자체를 수행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일과 수행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통해 성불하는 거예요. 법장 비구 또한 중생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을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극락정토를 이루고 아미타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극락정토라는 결과물만 바라보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짜로 거기 가서 살아야지.’하는 마음을 품습니다. ‘나도 아미타불이 되어야지.’, ‘나도 지장보살처럼 살아야지.’ 이런 생각은 잘 하지 않아요.
우리는 늘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그저 ‘관세음보살님,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도 관세음보살이 되어야겠다.’ 하는 마음을 낸다면, 가정 안에서도 관세음보살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이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도와주면서, 정작 남편이 요청하면 돕기 싫어지죠? 왜 그럴까요? 습관이 될까 봐 그런 겁니다. 남은 한 번 도와주면 그걸로 끝나지만, 가족은 한 번 도와주면 그게 당연한 일이 되어 계속 요구받게 되니까요. 그래서 계속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수행의 관점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바로 대승 불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당시 이런 관점을 갖고 수행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부처님의 출가 동기를 보면 개인적인 괴로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은 ‘중생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는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이 점은 대승 불교가 말하는 보살의 원(願)과 상통합니다.
여러분도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번뇌가 생기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자식이, 혹은 아내가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남편이 원하는 것, 아내가 원하는 것, 자식이 원하는 것을 내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삶이 전혀 다르게 펼쳐질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라도 한번 그렇게 해 보기 바랍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수행의 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상대의 요구를 무조건 이해하고 수용해 보기를 바랍니다. ‘소를 몰고 지붕 위에 올라가라.’라고 한다면, 최소한 지붕 밑까지만이라도 소를 끌고 가서 ‘여기까지는 왔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해보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누군가는 ‘남편이 집에 있는 돈을 몽땅 갖다 버리고, 다른 여자와 놀아나고, 자식은 공부도 안 하고 난리가 나면 어쩌죠?’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단 일주일 해 본다고 해서 얼마나 큰일이 나겠어요?
금강경에 수보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하고 질문하니까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라.’하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죠. 이게 바로 ‘지구 끝까지 가는 길은 돌아서는 것이다.’ 하는 말과 같은 원리입니다. 돌아서기만 하면 되는데, 이 돌아서는 일이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눈을 뜨기만 하면 되는데, 그 눈을 뜨는 일이 밤새 도망 다니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거예요. 이게 현실입니다.
중생이 존재하는 한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중생의 고통이 끝나지 않는 이상 보살의 원 또한 끝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살은 꾸준히 정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끝을 생각합니다. ‘이 기도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 ‘남편 얘기를 언제까지 들어줘야 하나?’,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하며 항상 끝을 염두에 둡니다. 고생은 감수할 수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지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중생이 끝이 없으니, 나의 원도 끝이 없다.’
이런 관점을 갖는 순간 사실은 이미 그 원이 완성된 것입니다. ‘언제까지 해야 하지?’ 하고 의문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수행이다.’하고 마음을 정하면 즉시 번뇌가 사라집니다. 바로 ‘언제까지’라는 생각이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들으면 또 다른 번뇌가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중생이 끝나지 않으면 나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말이잖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 중생을 구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부처가 되려는 욕망만 남아 있는 겁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생을 구제하려고 하니까 속으로 ‘이게 언제 끝나지?’, ‘이러다 부처가 못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드는 겁니다. 머리를 굴려 잔꾀를 부리다 보면 그런 질문이 나오는 거예요. 물론 그런 질문도 당연히 생길 수는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화두를 깨쳤더라도 화두를 참구하고, 깨치지 못했더라도 화두를 참구하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끝을 생각합니다. 모든 일이 탁 끝나면 이제부터는 안 해도 된다는 기대를 갖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나 대승 불교의 보살 사상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곧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질문을 읽고 답변을 이어 나갔습니다. 답변을 마치고, 다음 시간에는 현장에서 손을 들고 질문을 받기로 하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저녁에 있을 불교사회대학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저녁 5시 30분에는 평화재단, 정토회 사무처, 청년특별지부, 행복운동특별본부 등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청년 전법’을 주제로 회의를 했습니다. 백일법문이 거의 끝나 가기 때문에 백일법문 이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논의를 하다가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한번 확대해서 해 보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백일법문이 끝나면 스님이 3개월 동안 해외 일정을 가질 예정이어서 오늘 급하게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오늘 회의를 열게 된 취지를 이야기했습니다.
“12년 전에 청춘콘서트를 시작으로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운동을 활발하게 펼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현재는 청년 운동이 많이 축소가 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면서 청년특별지부도 신설하고, 청년 운동에 많은 힘을 실었습니다. 그 결과 정토불교대학 입학생 중에 청년들의 비율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조금 소극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청년 운동을 해 나가 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12년 전에는 정토회가 청년들에게 맞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청년들에게 맞는 콘텐츠를 정토회가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이것은 정토회가 잘못해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청년들의 성향이 많이 바뀐 이유가 큽니다. 청년들은 가벼운 주제를 원하는데, 정토회는 수행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니까 청년들이 접근해 오기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럴 때 정토회가 수행을 포기하고 가벼움을 추구한다면 ‘청년들을 많이 모아서 결국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반대로 수행이라는 본질적인 주제를 추구하게 되면 대중과 유리되어 전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문제가 제기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청년들만의 논의로는 풀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정토회 차원에서 지원을 하면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방법은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청년들을 위한 행사를 열어 보자는 것입니다. 주제는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화’라고 내걸 수 있을 것 같고요. 소강당과 중강당에서는 각 공간마다 명상 등 수행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지하 대강당에서는 토크콘서트나 즉문즉설, 심포지엄을 열고, 지하 식당에서는 먹거리를 제공하고, 쉼터에서는 음료를 제공하고, JTS에서는 필리핀관, 인도관, 부탄관, 긴급 구호관을 부스로 전시하고, 좋은벗들은 난민 인권 사업을 전시하고, 에코붓다는 환경 실천 체험 부스를 운영하고, 백일출가 소개 부스, 유기농 소개 부스 등 정토회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개만 해도 콘텐츠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요가 체험, 연등 만들기, 108배 체험, 깨달음의장 소개, 이런 것을 해 봐도 좋을 것 같고요. 정토회만큼 많은 경험과 활동 자산을 갖고 있는 곳도 드물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1층부터 15층까지 전체 공간을 활용해 보는 거죠. 그래서 청년들 1만 명 정도가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올 수 있게 해 보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발언을 듣고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장 우려되는 점은 현재 300명만 참석해도 엘리베이터가 마비됩니다. 수용 인원이 한계가 있어서 원활하게 진행이 될지 걱정입니다.”
“청년들은 유명한 강사를 보고 참가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강사를 시간대별로 섭외해서 강연을 계속 열어야 강연에 온 김에 부스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청년들과의 접점을 늘려서 정토회를 많이 알리는 것이 목적인지, 정토사회문화회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예비 봉사자들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인지, 목적을 분명히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시간 동안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하고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특별지부에서 다음 회의 시간까지 초안을 만들어 와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20강 강의를 했습니다. 현장에는 17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수업에는 19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불교의 사회 참여’를 이끈 국제적인 인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아시아의 종교 간 갈등과 대화’를 주제로 강의를 이어 갔습니다. 오늘 강의는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이론적 내용보다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현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불교사회대학 강의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분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중에는 종교 분쟁도 있고, 종교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분쟁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주제를 공부하는 이유는, 아시아 지역에서 종교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는 종교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래 종교의 역할은 갈등을 조정하고 평화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스리랑카, 미얀마,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필리핀, 중국, 대만, 한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 사례들을 원인과 현황 중심으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미얀마에서 일어난 분쟁은 종교 분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 민족과 다수 민족 간의 종족 분쟁에서 비롯됐습니다. 미얀마 전체 영토의 약 70퍼센트는 소수 민족이 차지하고 있고, 인구의 약 70퍼센트는 버마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구 비율과 영토 점유 비율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중국도 유사합니다. 중국의 경우, 인구의 약 94퍼센트 이상이 한족이지만, 전체 영토의 약 55퍼센트는 소수 민족 자치주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평야 지역에 주로 버마족이 거주하며, 산간 지역에는 다양한 소수 민족이 각각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소수 민족은 민족 단위로 주(州)를 형성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주 단위로 자치권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며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는 평화 협정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카렌족의 저항입니다. 카렌족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대부분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영어 사용이 가능하고 서방 국가들과의 교류도 활발하여 국제적으로 더 많이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미얀마의 분쟁은 기본적으로 소수 민족과 다수 민족 사이의 갈등이 중심인데, 로힝야족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미얀마 정부의 주장과 로힝야족의 주장을 들어보면 각자의 주장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로힝야족은 원래 방글라데시 영토에 살던 사람들인데, 영국 식민지 시절에 미얀마로 이주해 와서 중간 관리 역할을 하며 미얀마인을 탄압했던 집단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반해서 로힝야족은 자신들이 미얀마 서쪽 국경의 아라칸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살아왔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어요.
그러나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이 살던 아라칸 지역을 폭격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로힝야족이 무장 투쟁을 벌였고, 이를 빌미로 군부는 민족 말살에 가까운 탄압을 가했습니다. 그 결과 로힝야족은 국경을 넘어서 방글라데시 쪽으로 피신했습니다. 사실 이 분쟁은 최근에 시작된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현재 로힝야족은 약 200만 명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100만 명 이상이 한꺼번에 방글라데시로 넘어가면서 국제적인 분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세계 시민들은 미얀마 불교인들이 소수 민족, 소수 종교를 탄압해서는 안 되고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미얀마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일본 사람을 싫어하듯이, 미얀마인들도 영국 식민지 시절 로힝야족이 했던 일들에 대해 깊은 반감이 있어요.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합니다. 아웅산 수치 정부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습니다. 로힝야족을 탄압하면 UN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지지를 잃게 되고, 로힝야족을 옹호하면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딜레마에 빠진 아웅산 수치 정부는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대응했어요. 이후에 국제 사회에서는 아웅산 수치가 로힝야 난민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노벨 평화상을 취소하자는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이로 인해 군부는 정국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국제 사회는 미얀마 불교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 난민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미얀마 국민의 정서는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 JTS에서도 미얀마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 방글라데시에 나와 있는 난민 캠프에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외부 지원보다는 국외로 떠났던 난민들의 일부라도 고향에 돌아와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미얀마의 현지 여론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군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정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의 국경 지역은 아라칸산맥이 가로지르는 산악 지대입니다. 이 산악 지역에는 다양한 소수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해발 4000미터에 달하는 산맥이 자연스러운 경계 역할을 하면서 지리적으로 왕래가 드물고, 언어나 문자, 문화도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산악 지대에는 오랜 세월 소수 민족이 살아왔습니다. 그 수는 적게는 수만 명 단위부터 많게는 수백만 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인도 동부에는 미조람, 트리푸라 등 여러 개의 소수 민족 주가 있습니다. 미얀마 서쪽과 방글라데시 동쪽의 치타공 구릉 지대에도 불교계 소수 민족이 살고 있어요. 여기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은 인종으로는 몽골계이고, 종교는 대부분 불교입니다. 산악 지대이다 보니까 국경선을 정할 때 일부는 방글라데시로, 일부는 인도로, 일부는 미얀마로 편입되었어요. 예컨대 로힝야족은 무슬림인데 미얀마로 편입되었고, 차크마족은 불교도인데 방글라데시로 편입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인도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백만 명에 이르는 불교도인들이 인도나 방글라데시에서 소수 불교도로 살아가게 되었고, 로힝야족은 미얀마에서 소수의 무슬림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식민지의 유산으로 볼 수 있어요. 당시 식민 지배자들은 소수 민족이나 소수 종교의 문화적, 종교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적인 편의에 따라 선을 긋고 국경을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차크마족은 방글라데시 동쪽과 미얀마 서쪽 국경 지역에 약 1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150만 명에 달했으며, 독립적인 왕국을 이루었던 역사도 있습니다. 지금도 명맥을 잇는 왕족이 남아 있는데, 제가 만났던 사람 중 한 명은 자신을 공주라고 소개했어요. 물론 현재는 왕족의 지위를 누리는 건 아니고, 변호사로 일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뚜렷한 전통과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불교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정부는 무슬림으로 개종하라고 압박했고, 이를 거부하다 무슬림들의 침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차크마족이 인도로 도망쳤고, 지금은 약 30만 명 정도가 인도에, 나머지 100만 명이 방글라데시에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분쟁이 종식되었지만 여전히 긴장이 존재합니다. 제가 외국인 신분으로 이 지역을 방문하려 했을 때, 단순히 방글라데시 비자만으로는 입국할 수 없었고, 별도의 방문 목적과 사유를 자세히 알리고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인도로 넘어간 차크마족도 여전히 차별받고 있습니다. 이미 30년 이상 인도에 살아왔지만, 아직도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차크마족들은 인도 산간 지역에서 농토를 개간해 살고 있었는데, 시민권도 없고 토지지 소유권도 없다 보니 얼마 전에는 산림청으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았습니다. 갈 곳이 없어 버티고 있었지만, 결국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되었고, 30년간 일궈온 집과 논밭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래서 JTS에서는 그들에게 집을 짓고 식수를 마련하는 등의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 세계의 수많은 소수 민족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쫓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원래 샤머니즘을 중심으로 한 토착 종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원주민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가톨릭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스페인과 미국 간의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면서 필리핀은 다시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마침내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민 지배 이전부터 이미 독립된 국가 체계를 갖춘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필리핀은 ‘필리핀’이라는 단일한 국가 개념이 없었어요. 수많은 섬과 종족이 각자 추장이나 족장이 다스리는 작은 공동체 단위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스페인이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가톨릭이라는 공통의 종교가 전파되었고, 삼천 개가 넘는 섬들이 하나의 정체성 아래 묶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가까운 필리핀 남쪽 일부 섬들에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슬람 세력이 뿌리내렸습니다. 이 지역의 무슬림들은 독립을 원했지만 필리핀 정부의 억압으로 인해 무장 투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조직이 바로 무슬림 반군인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ILF)’입니다. 또 한편에서는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운동을 벌이던 반군 조직인 신인민군(NPA, New People's Army)도 있었는데, 현재는 대부분 세력이 약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슬림 반군이 관장하는 지역에는 약 50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오랫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평화 협정을 맺고 비교적 안정된 상태입니다. 완전한 독립은 아니지만 일정한 자치권이 부여되었습니다. 국방과 외교는 여전히 필리핀 정부가 맡고 있지만, 그 지역의 행정과 일상적인 생활은 주민들의 전통과 자율에 따라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분쟁으로 인해 많은 주민이 피난을 떠나야 했고, 아이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채 자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JTS에서는 지난 20년 간 민다나오섬의 분쟁 지역에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학교를 약 80개 정도 지었습니다. 그중에는 원주민 아이들을 위한 학교, 무슬림 반군 지역의 학교, 그리고 가톨릭 지역의 장애인을 위한 학교도 있습니다. 시내에 세운 학교는 대부분 장애인을 위한 학교이고, 산간이나 오지에 지은 학교는 주로 원주민이나 무슬림 지역 아이들을 위한 학교입니다. JTS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든, 어떤 조건에서 자랐든,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지에 태어났거나, 반군 지역에서 자랐거나, 장애가 있더라도 모두가 배움의 기회를 누려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 간 대화를 통해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불교의 승려, 힌두교의 사두, 이슬람교의 이맘, 가톨릭의 신부가 한자리에 모여 종교 간의 대화를 나누고, 민족 간의 화해를 모색하는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7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화해학회 행사에 이분들을 초청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불교 국가이지만,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가톨릭을 믿는 사람도 일부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스님과 신부가 만나 지역의 평화를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처럼 불교인이 소수인 나라에서도 불교와 이슬람 종교인들 간의 대화 모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만남이 지역 갈등을 해결하거나 큰 변화를 끌어낸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저 역시 평화재단을 중심으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 모임은 세 가지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첫째, 남북 간의 화해를 통한 한반도 평화의 실현, 둘째, 국민 통합의 기반 마련, 셋째, 종교 간의 화합입니다. 이러한 목표 아래 다양한 종교인이 함께 뜻을 모아 연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전 세계적으로 종교 갈등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지역은 중동입니다. 그다음이 아시아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평화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 가야 합니다. 사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룰 수만 있다면, 저는 세계 평화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신 있게 발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가서 평화에 대해 말하려고 해도 ‘너희 나라는?’ 하는 소리를 들을까 봐 주저하게 됩니다. (웃음) 그렇더라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제적 위상이나 국민의 의식 수준을 볼 때 아시아 사람들의 삶의 질 개선과 평화를 위해 충분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동남아시아의 NGO들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빈곤, 민주주의, 분쟁, 여성 인권 문제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지원할 경제력이나 역량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에요. 한때 우리도 이런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잖아요. 그런 경험이 있는 우리가 이제는 도움을 줄 차례인데, 아직도 한국 사회의 인식은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여성 운동을 해도 ‘우리 여성들’, 노동 운동을 해도 ‘우리 노동자들’, 환경 운동을 해도 ‘우리 환경 문제’에만 시선을 둡니다. 동남아의 여성들을 지원하거나, 동남아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동남아의 교육 문제를 돕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독교 선교사들은 선교를 목적으로 동남아에 가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 중심이다 보니 전통문화를 훼손하거나 지역 사회의 정서와 충돌하고, 심지어 종교 갈등을 유발하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불교가 사회 문제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때 불교의 확장도 가능해집니다. 단지 ‘불교 믿으세요.’라는 말만으로는 불법의 전파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어서 지난 수업 시간에 궁금했던 내용 중 서면으로 질문이 올라온 것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실천 불교의 수행론’을 주제로 강의하기로 하고 밤 9시가 넘어서 수업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93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3강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사회 원로 분들과 ‘전환 포럼’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3강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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