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6.20~21 농사일 및 발우공양 중 ‘계율’에 대한 법문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메르스로 인해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의 힐링 동문회 행사가 취소되어 두북에서 농사일을 했고, 서울로 올라와 공동체 대중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의미’에 대해 법문 했습니다. 

 

대전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부친 후 다시 일어나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이른 아침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날이 흐리고 오후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도 있었지만 스님은 가뭄으로 바짝 말라있는 작물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일찍 물을 적셔주고자 호수를 들었습니다. 물을 흠뻑 머금은 작물들을 보며 스님은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꽃밭 곳곳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열심히 뽑았습니다. 텃밭에는 토마토가 영글게 익어가는 모습이 무척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마당 한 구속에는 얼마 전 심어 놓은 고소가 막 새잎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화단에는 스님이 직접 심어놓은 여러가지 꽃이 피어 있었는데 특히 보라색의 청사초 꽃을 보고선 스님도 더욱 기뻐하는 모습이였습니다. 

 


 

스님은 “오후에는 비가 내릴 것 같다”면서 “비가 내리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다 중단했던 것을 마치고 오자”며 예초기와 낫을 들고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지난주에 메르스로 인해 통일의병대회가 취소되면서 산소 벌초를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생겼는데, 그 때 다하지 못한 구역이 있어서 한시간 정도 더 벌초를 했습니다. 

 


 

산소 벌초를 마무리 짓고 나서는 올라오는 길도 깨끗이 깎았습니다. 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했는데 스님이 예초기를 들고 한번 지나가고 나니 깨끗이 정돈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머리 깎아 놓은 것처럼 깔끔해졌다” 며 흐뭇해 했습니다.  

 


 

산소에서 내려오자 갑자기 비가 우두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행사를 못해도 좋으니 비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 며 연신 기뻐했습니다.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남한도 북한도 모두 농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했습니다. 

 

오후 내내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밤10시 무렵 두북에서 서울로 향했습니다. 새벽2시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원고 교정 등 업무를 더 보시다가 새벽 4시30분부터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기도 후 발우공양 시간에는 공동체 대중들을 위해 ‘계율을 지키는 의미’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발우공양 시간에 매일 40가지 계본을 갖고 자신이 어긴 계율에 대해 대중들에게 드러내어 참회하는 시간을 갖는데, 오늘 대중들이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선 어떤 마음으로 계율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의미를 자세히 알려 주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자유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권리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무가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가 있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자유와 권리’는 선택 사항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자유는 있는데 그렇게 할 건지 안 할 건지는 내가 선택해도 됩니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즉,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금기 사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율은 이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계율은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계율은 ‘책임과 의무’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요약하면 그 첫째가 ‘모든 악은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무 사항입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자유와 권리에 해당합니다. 하면 좋은 일이지만 안 해도 괜찮습니다.

 

악은 하면 안 되는 일이고, 선은 하면 좋은 일입니다. 악을 행하면 나쁜 행동이 되지만,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좋은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면 좋은 행동이 되지만, 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악을 멈추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에 해당하고, 선을 행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 사항에 해당합니다. 선을 행하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행동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건 아닙니다. 하면 좋은 일입니다. 

 

우리의 행동에 있어서 그 이하로 가서는 안 된다는 미니멈이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무엇을 하면 좋다는 것은 어디까지 해야 한다는 맥시멈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행하면 행하는 만큼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활할 때는 주로 좁은 의미의 계율을 중요시하죠. ‘나쁜 행동을 하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악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어서 이것을 계율에 적용해보면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습니다. 

 


 

“이것을 계율에 적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살고자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살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와 자유는 다른 생명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범위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생명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금기 사항이에요. 그러나 죽어가는 다른 생명을 살려주라는 것은 권장 사항이에요. 그렇게 하면 선행을 하는 것이 되고 복을 짓는 것이 됩니다. 

 

나의 권리는 살 권리입니다. 그러나 나의 책임은 다른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말로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나는 술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을 괴롭힐 정도로 취해서는 안 됩니다. 계율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에 해당합니다. 

 

악은 멈추고 선을 행한다고 할 때 악을 멈춘다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에요. 이것이 소승 계율의 기본이에요. 그런데 악을 멈추는 것으로 수행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수행자의 미니멈이기 때문입니다. 소승은 악을 멈추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대승은 ‘수행자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된다’ 고 하면서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즉,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되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어라.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은 나의 선택의 자유입니다. 그렇게 하면 복을 짓는 것이 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물에 빠트리거나 죽이는 것은 악행에 해당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것을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악행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행자라면 마땅히 살려주어야 하겠죠.” 

 

그러면서 계율을 단순히 소극적인 의미의 금기 사항로만 보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와 권리로서 바라볼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권리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릅니다. 그래서 계율을 단순히 금기로만 보지 마세요. 그것이 금기인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라면 몰라도 지혜로운 자라면 재앙을 초래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이라는 것은 나에게 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라면 마땅히 행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나는 결혼할 자유가 있고 아이를 낳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를 키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부모를 봉양할 책임과 의무는 없습니다. 같은 성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선이지만 봉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악은 아닙니다. 자식을 돌보는 것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악행에 들어가지만, 자식을 돌보는 것을 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부모로서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소극적인 의미의 계율인 금기 사항을 지킨다고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금기 사항, 즉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할 것은 마땅히 행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를 가집니다. 그것은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행자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수행하기 때문에 그것은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화내어 욕설하지 않는다’, ‘웃으며서 부드럽게 말한다’ 이 두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화내어 욕설하지 않는다’는 금기에 해당합니다. 어기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성질을 내면 잘못된 행동에 들어가지만 웃지 않는 것은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한다’는 좋은 행동입니다. 나쁜 행동인 화내어 욕설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좋은 행동인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는 것은 가능하면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고 참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참회는 금기 사항을 어겼을 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권장 사항을 행하지 않았을 때도 자기 스스로 ‘아, 내가 오늘 선행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참회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대중에게 내가 선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고 참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참회할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해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행자 집단이기 때문에 행하면 좋은 행동까지도 하지 않았을 때는 스스로 자각해서 ‘제가 오늘 좋은 행동을 하나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드러내 놓고 반성하는 모습을 갖게 되죠. 

 

계율을 지킨다고 할 때 좁은 의미의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입니다. 지키지 못할 때는 대중에게 공개해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또 부족하면 대중에게 요청해서 지적을 받아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좋은 인격을 닦고 복을 지어야 되기 때문에 최대한 할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서 정토회의 40가지 계본에는 ‘하지 마라’는 것과 ‘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 마라’는 것은 악을 짓지 마라는 의미이고, ‘하라’는 것은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대승이기 때문에 소대승을 함께 아울러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소승이라면 생명을 해치지 마라는 계율만 있겠죠. 소승의 소극적인 계율에서는 게으르지 마라는 계율만 있지 부지런하라는 계율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승이니까 게으리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지런하라, 죽이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살려주라, 남에게 손해끼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을 도와주라,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을 기쁘게 해주라, 이렇게 계율이 잡혀 있는 것입니다. 

 

계율은 단순히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악을 막아주고 선을 행하도록 해줍니다. 계율은 불행을 막아주고 복은 받도록 인도하는 것이니까 계율을 너무 속박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대승 계율을 의무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나는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그것이 자신을 가볍게 해줍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복을 짓기 위해서 내가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는다면 정진을 하는 것이 조금 더 가볍고 밝아지지 않겠느냐 싶어요. 

 

많은 수행자들이 금기 사항인 책임과 의무가 많다고 느끼기 때문에 남에게는 좋은 일을 하면서 본인은 조금 무겁거든요. 그러나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자유이며 권리라고 생각하면 훨씬 더 삶이 가벼워지고 적극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진을 잘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계율은 금기 사항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좋은 일을 행하도록 하는 자유와 권리의 의미도 담고 있다는 말씀에 공동체 대중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그동안 계율을 생각할 때 무거운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오늘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한층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나는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면서 인도와 런던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습니다. 6월22일에는 인류의 화합과 형제애를 이뤄나가며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공로로 인도 뱅갈불자협회에서 주는 ‘우수 사회 활동을 기리는 까르마요기 크리빠사란 상’을 스님이 수상하게 되었는데 그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 캘커타로 떠났습니다.

 


▲ 인도로 출국 (인천공항) 

 

또 6월24일부터 27일까지는 3박4일 동안 세계 한민족 포럼이 런던과 파리에서 열리는데 스님은 ‘한반도 통일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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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상주대중분들..힘들어보입니다 ㅠ힘드실거 같습니다..급여도 안받고 수행하시는 것만도 대단하시니,부디 그분들의 거주 환경을 보다 낫게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스님~ㅎ(너무 편하면 수행자가 아닌가요?ㅎ그래두요..ㅜ)<br />&lt;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요약하면 그 첫째가 ‘모든 악은 멈추는 것’입니다.&gt;<br />&lt;..그래서 계율을 단순히 금기로만 보지 마세요. 그것이 금기인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gt;&lt;계율은 단순히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악을 막아주고 선을 행하도록 해줍니다&gt;

2015-06-25 23:56:28

보각화심순덕

악을 멈추는것도
선을 행하는것도
다 나를 위함 이면 해야조 ㅎ

2015-06-24 00:57:21

베라

스님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다시금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다른 이들을 보면서 계속 손가락질을 했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고치려고 했는데...다른 이가 변하기를 바란다면 내가 올바라야 하지않나하고 생각하고는 다시금 나에게로 마음을 돌렸습니다....대답을 들으면 스님을 찾아뵙겠습니다.

2015-06-23 20: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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