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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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검색결과 73

“홀로 된 시아버지가 새 여자를 만났는데 재산을 탕진할까 걱정돼요.”

2016.9.26 해외 즉문즉설 강연(21) 밴쿠버(Vancouver)

2016.09.28. 231,993 읽음 댓글 56개

“일상생활 속에서 알아차림을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까요?”

2016.7.6~8.3 명상수련 및 하안거

2016.08.05. 158,851 읽음 댓글 88개

2016.5.19 정토회 서원행자 임원단 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정토회의 서원행자 중 대표, 총무, 상임위원 등의 소임을 맡고 있는 임원진들과 함께 정토회의 미래에 대해 회의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정토회에서는 법사단 회의, 실무자 안거 회의, 상임위 회의, 전국대의원대회, 집행위 회의, 총무단 회의, 국장단 회의 등 다양한 회의 기구가 있어서 각 부서별로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오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서를 넘어서서 임원들 전체가 모여서 정토회의 미래를 구상하는 공식 회의가 아직 없습니다. 물론 결사행자대회와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큰 방향이 논의가 되지만 실무적인 논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수련이 마련되었습니다.nbspnbsp새벽부터 전국에서 출발한 대중들은 화창한 봄날씨에 소풍가는 마음으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저 멀리 희양산의 암벽과 뇌정산의 짙은 녹음이 병풍처럼 멋진 풍경으로 대중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nbsp아침 10시가 되자 정토회 대표단과 총무단, 상임위원회 위원, 행정처 국장단과 부장단, 지역사무국 부장단, 저녁부 선임 팀장단, 청년국, 대중부 법사단 등 총 100여 명이 대수련장에 자리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의 인사말씀으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대표님은 “오늘은 정토회가 설립취지에 맞게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틀에서 논의가 될 것이다”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회의에 임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회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이 법상에 올라 정토회의 설립취지에 대해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토회는 무엇을 하고자 설립되었는지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습니다.nbspnbsp“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된 세상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토론을 한 끝에 정토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에 대안을 얘기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렴했고, 수많은 의견을 검토하고 토론을 거친 결과 저희는 네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nbspnbspnbsp첫째, 전지구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환경 문제’라고 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은 결국 환경 문제에 의해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해야 지속가능한 문명이 될 수 있지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문명은 유한한 문명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nbspnbsp둘째, 세계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인구의 20가 절대 빈곤 선상에 놓여 있는 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굶어서 죽는다든지, 간단한 질병으로 죽는다든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다든지, 이런 절대 빈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문제는 내 나라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야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다들 우리나라 문제에만 신경을 썼지 남의 나라의 고통에는 신경쓸 형편이 못 되었어요. ‘선진 강대국들이 우리를 착취해서 우리가 못 사는 것이다’ 이런 생각만 가졌는데, 이미 우리나라도 지구 전체로 보면 상위 20의 기득권층에 속하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나라도 하위 20에 대해서 나라와 민족을 떠나서 인류적 관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곤퇴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nbspnbsp셋째, 갈등을 해결하는 평화 문제가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밥 먹고 살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충돌, 종교적 충돌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한과 북한, 중국과 대만,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민다나오, 스리랑카의 타밀족, 북아일랜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전세계 40여 곳에서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1,2위를 다투는 가장 큰 갈등이 우리의 처지이기도 한 남북분단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평화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nbspnbspnbsp넷째, 그 당시에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또한 북유럽이었어요.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데 자살율은 제일 높은 겁니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아무리 환경이 좋더라도 인간이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회를 바꾸는 운동만 했지 인간의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앞으로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이 인류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수행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nbspnbsp수행에 대한 노하우는 불교가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기존의 불교는 용어만 수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실제로는 수행적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복을 비는 것에만 치우쳐져 있던 불교의 모습은 부처님이 왕위와 재물을 버리고 출가한 정신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복을 빈다는 것은 결국 ‘왕위를 달라’, ‘재물을 달라’, ‘인기를 달라’ 하는 얘기 아닙니까? 부처님은 그것을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름만 불교이지 불교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 불교인들이 대부분이 그렇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 중에 개인 몇 명은 수행적 관점을 가진 분들이 우리나라 안에도 다른 나라에도 존재할 수가 있겠죠. 그러나 불교를 믿는 대중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이 수행을 새로운 문명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대중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특정한 한 사람이 위대한 수행자가 되어서 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일상 속에서 그렇게 수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세상을 파악한 것이 정토회가 설립되기 전에 저희가 세상을 바라본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이 때도 ‘불교’란 이름을 쓸 거냐 안 쓸 거냐의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란 이름을 쓰는 순간 그 틀에 갇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불교가 경전, 교리, 복을 구하는 것, 사회에는 관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만 찾는 이런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교란 이름을 쓰게 되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불교가 아닌 것으로 출발한다면 그것은 또 도대체 무엇이냐는 문제도 제기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종교 단체냐?’, ‘시민단체냐?’ 하고 물을 텐데, 시민단체라고 하기에는 수행이 중심인 곳이고, 종교 단체라고 하기에는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 같은 사회실천활동들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만 일단 새로운 불교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이 길면 오해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교의 한 형태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nbsp nbspnbspnbspnbsp지금 우리는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예전에는 종교와 철학,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정치 등이 각기 다 구분되는 사회였다면, 지금은 종교 안에서도 불교니 기독교니 내가 잘났느니 네가 잘났느니 하고 따지는 것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한 두 부부가 갈등을 일으켜서 원수가 되고, 자기 몸으로 낳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와 아이가 원수가 되는 이런 문제들을 과연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면서 겪는 구체적인 고통들, 즉 개인적으로는 부부 간의 갈등,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직장 동료 사이의 갈등, 사회적으로는 남북의 충돌, 여야의 충돌, 진보와 보수의 충돌, 노동과 자본의 충돌 등 여러 갈등을 도대체 무엇으로 해결하느냐는 겁니다. 지금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과연 이런 개인적 고뇌와 사회적 고뇌들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효용성이 있느냐는 것이죠.nbspnbsp예전에는 사회적 리더십을 종교가 다 갖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와 천체에 대한 것은 과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와 사회과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육체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의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정신적인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정신분석학과 상담심리가 다 가져가버렸잖아요. 지금 종교가 갖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종교에 남은 것이라곤 네 가지 밖에 없어요. 첫째, 권위주의에요. 둘째, 조직이 갖고 있는 힘이에요. 셋째, 신비주의에요. 넷째, 그들이 갖고 있는 돈이에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배격하시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라고 하셨잖아요.nbspnbsp그런데서 우리는 만 명 중에 한 명 어쩌다가 나타나는 그런 수행자를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붓다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에 있어서 ‘대중주체’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스님이나 종교라는 형식과 이름을 갖고 사람을 줄세우는 문화는 없어져야 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역할이 나눠지는 것일 뿐인데, 스님, 법사, 처장, 국장 하는 역할이 지위가 되어 귄위주의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죠. 우리들의 오랜 습관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수행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할은 역할대로 하면서 평등성은 평등성대로 보장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이 부족하면 역할이 차별로 가고, 평등성이 무질서로 갈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먼 미래를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붓다의 길로 간다는 이런 대중주체의 길이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길을 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숫제 승려나 종교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확 이끌고 가는 것이 사람들을 더 많이 결집시킬 수 있고 파워도 있지 않느냐, 지금의 현실에서는 대중주체를 실현해내기가 굉장히 비효율이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부처님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서는 다시 종교화 되었고, 이것을 다시 극복하기 위해 ‘보디사트바’란 새로운 이름을 갖고 대승불교 운동을 일으켰지만 다시 또 종교로 돌아갔죠. 대승불교도 처음에는 재가자가 중심이 되어 출발했는데, 대중들로부터 권위가 안 서니까 다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실력을 갖고 지도자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실력만으로는 안 되니까 권위주의로 돌아간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도 종교지도자에 대한 권위의식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직분에 따른 역할분담을 할 뿐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겸손하되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계속 가져나가려면 우리가 같이 모여서 함께 수행해 나가야지, 함께 하지 않으면 이런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이런 꿈을 갖고 우리가 모인 겁니다. 이런 꿈이 없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모였겠습니까? 스님들은 사찰에서 스님 생활을 오래하면 종회 의원도 하고 본사 주지도 하는 그런 꿈이 있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과는 다른 이러한 꿈을 갖고 출발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남편이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겁니다. 주위에서도 자꾸 ‘네가 그런다고 돈이 벌어지냐, 출세를 하냐, 인기가 있어지냐?’ 라고 묻잖아요. 그래서 만약 여러분들이 우리의 행복과 미래 사회에 대한 이런 원을 잃어버리게 되면, 이렇게 주위에서 문제제기하는 것들을 이겨낼 수가 없게 돼요.nbspnbsp그런데서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 수행, 이 네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수행’입니다. 수행은 나머지 세 가지와 맞먹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것을 ‘상구보리’와 ‘하화중생’ 두 가지로만 나누었어요. 즉 ‘하화중생’ 속에는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이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수행을 기초로 한다’, ‘수행을 근본으로 한다’ 하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겁니다. 그러면 수행만 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러나 정토회는 불교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사회 실천을 할 때마다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아프면 치료를 해주고, 학교에 못가면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독재를 하면 독재에 저항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면 전쟁을 막고, 이런 실천들은 인연 따라 할 뿐인데, 이런 모습을 보고 대중들은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라고 시비할 수밖에 없거든요. 세상은 그런 시비를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마저 이런 시비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정토회의 설립취지를 모르는 겁니다. 우리의 사회 실천은 인연을 따라서 몸을 나투는 것에 불과한 겁니다. 그런데서 개개인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관점을 잘 잡아서 그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행과 전법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도록 환경을 잘 만들어주는 사회실천활동도 함께 중요한 겁니다.nbspnbsp1차 만일결사를 마무리짓고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 만일결사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우리가 당장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량이 안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 수행 문제에 초점을 두면서 환경운동과 구호활동, 평화운동을 해나가야 할 겁니다.nbspnbspnbsp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1차 만일결사에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1차 만일결사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장 국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체와 쇠락의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이 몰락을 조금 더 늦추든지, 상황을 개선해서 성장 국면으로 약간 방향을 전환하든지 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은 이런 정체 국면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은 지금까지 생각해 온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문제가 됐습니다.nbspnbsp통일은 첫째, 경제적인 성장과 직결된 문제이고, 둘째, 국제관계의 역학 변화 속에서 우리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점점 갈등 국면으로 나아가는 형국에서 지금과 같은 분단 상태로는 아무런 전망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이런 정세를 읽기가 힘듭니다. 어떤 이유로 전쟁이 안 일어난 것인지, 어떤 이유로 경제적인 붕괴가 안 일어난 것인지, 개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나 국민들이 알든 모르든 예견된 위기를 막아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보살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nbspnbsp우리가 장기적으로 보고 멀리 내다보면서 이뤄나가야 할 목표는 ‘문명 전환’이고,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교중흥’, ‘정토구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반면에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인연으로 단기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은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입니다. 이것은 통일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통일을 통해서 평화문제도 풀고, 경제성장도 도모하고, 정치 갈등도 풀어나가는 계기를 만들고, 이 기운을 통해서 지금까지 서양을 모방해오던 시스템에서 새로운 창조시스템으로 전환해나가는 기회도 만들어내자는 뜻입니다.nbspnbspnbsp이것이 1차 만일결사의 목표라면, 2차 만일결사가 되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문제에만 머물러서만 안 됩니다. 인류 전체를 보고 인류의 행복을 위한 구상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세대에서 빨리 대한민국의 문제를 해결해줘서 다음 세대들은 세계의 문제를 갖고 정토회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세대는 통일 문제의 해결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주위 상황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게 되었고, 기회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조금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해봤으면 합니다.”nbsp스님이 그려준 큰 그림에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고, 특히 통일 문제는 더 이상 놓칠 수 없는 기회이자 위기로 다가왔다는 얘기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입재식을 마치고 다함께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엊그제 스님과 법사님들이 경주 통일암에서 죽순을 가득 따왔는데, 부드러운 죽순이 맛있는 초고추장에 버무려져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스님이 “고생해서 따왔으니까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자 대중들은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점심식사 후에는 휴식 시간이 여유롭게 주어져서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을 산책하며 꽃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꽃들을 보며 감탄사를 자아내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nbspnbspnbspnbsp산책 시간을 뒤로 하고 오후 1시부터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회의 시작에 앞서 졸음도 쫓을 겸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정토회를 대표하는 대표님들, 법당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무님들, 행정처 국장단과 부장단, 법사단에 이르기까지 각 직급별로 앞으로 나와 한 명씩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한 명 한 명 모두 너무나 소중한 분들이기에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환영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 각 정토법당 총무님들nbsp참가자 소개 시간을 마치고 곧바로 스님의 기조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과제에 대해 진단한 후 정토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특히 남북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해 정토회가 어떤 활동들을 펼치면 좋을지 대중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은 현장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습니다. 오후 1시에 시작된 토론은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일단락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와 저녁 예불을 한 후 7시부터 다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저녁 회의에서도 많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저녁 회의에서는 불교의 사회적 실천 활동에 대해 일부 대중들의 거부감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이 전국을 순회하며 통일 강연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스님이 인생 상담만 하면 정말 좋겠는데, 왜 통일 이야기를 자꾸 하느냐?’ 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제기 되곤 합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단호하게 입장을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불교가 유행하는 것은 신비주의, 즉 불교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정도의 수준이지 사회적인 실천에 대한 관점이 없어요. 그리고 과거에는 훌륭한 스님들이 사회 의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 사회는 왕조 사회였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 아니라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조 사회에서는 왕이 부르면 ‘네’ 하고 가서 무조건 왕을 칭송하든지, 아니면 아프다고 핑계대고 안 가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밖에 없었잖아요. 그런 시대에 있었던 불교를 자꾸 생각하면서 ‘불교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얘기를 이제 더 이상 해서는 안 돼요. 우리는 지금 왕이 주인인 시대에 사는 게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시대에 살고 있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고 되어 있어요.nbspnbsp부처님은 왕이 주인인 시대에도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은 옳지 않다며 사회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전통을 계승한 우리들이 우리가 주인인 시대에 살면서도 사회 변화를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보다 못한 것이죠. 그런데도 왕조 시대에 왕에게 복종해서 국사의 칭호를 받거나, 여기에 저항해서 죽림칠현처럼 산속에 숨어서 안 나오거나 했던, 이런 전통을 갖고 ‘지금의 불교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불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생각도 확 바뀌어야 해요.nbspnbspnbsp사람이 주인된 세상, 사람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제도를 바꿔야 하면 제도를 바꾸고, 이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잘못 되었으면 마음가짐을 바꾸고, 관계가 잘못 되었으면 관계를 개선하고, 몸이 아프면 약을 먹어서 치료하고,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죠.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모든 지혜를 다 사용해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이겠느냐,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불교입니다.nbsp사회적 모순을 합리화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단박에 고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개선해야 할 목표를 향해서 점진적으로, 평화적으로, 꾸준히 나아가서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비교적 괜찮은 사회가 되면 그곳이 바로 ‘극락’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저 멀리 타방세계나 먼 미래의 이상세계를 그렸겠어요? 옛날에는 그 고통을 없앨 역량이 안 되니까 그리워만 하거나, 죽어서 가겠다고 꿈만 꾸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주인인 시대이니까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면 됩니다. 전쟁의 위협이 있다면 우리가 평화롭게 관계를 개선할 수가 있잖아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개념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nbsp스님의 단호한 말씀에 대중들도 모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진 토론에서는 각 법당의 현황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각 법당별로 앞으로 사회적인 실천활동을 더욱 늘려 나가기 위해서는 법당 운영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모든 토론을 마치고 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습니다. 해가 지고 가로등 불빛이 켜진 가운데, 마지막으로 오늘 회의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회향 법문을 통해 스님은 다시 각 법당으로 돌아가 왕성하게 활동을 해나갈 정토회 임원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3년 후인 2019년이 되면 3.1독립운동 100주년이 됩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용성조사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독립운동을 시작한 지가 올해로 100년이 넘은 셈입니다. 용성조사께서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산 속에서 나오셔서 전국을 다니면서 민심을 살피셨고, 78년을 준비해서 시절 인연이 도래하자 3.1운동을 주선하셨습니다. 그 이후 평생 독립운동을 하셨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열 가지 유훈만 남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이 남기신 미완성의 독립을 완성하는 길은 우리가 통일 국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에는 통일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통일로 갈 수 있는 남북 간의 징검다리라도 꼭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원을 오늘 다함께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이제는 수행자의 상이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 왕조 시대에 수행자들이 어쩔 수 없이 걸었던 그런 모습을 잣대로 해서 지금 이 시대의 수행자 상을 그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지위, 권력, 돈에 집착하는 기성 종교에 희망을 걸어서도 안 됩니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비해서 대안적인 사회 모델을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일입니다.nbspnbsp이것을 여러분들이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일을 한 번 해보다가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요? 그냥 밥만 먹다가 죽는 것은 좀 재미가 없지 않아요?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이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이라면 정말 의기투합할만 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개인으로 보면 조금씩 부족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정도의 헌신성을 갖고, 이 정도의 순수성을 갖고 의기투합할 만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정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첫째, 자신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고, 동시에 도반들에 대해서도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셨으면 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으면 해요. 그러나 현실에 머물지 말고 우리가 세운 원을 기필코 이루리라 하는 큰 원을 가지고 함께해 나갔으면 합니다. 넘어야 할 산이 조금 크기는 하지만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우리의 활동이 바깥으로 볼 때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러나 긴 역사에서 보면 성공입니다. 3.1운동 자체는 그 당시에 실패했지만, 우리 역사에서 3.1운동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뿌리가 없는 것과 다름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 없이 역사적으로는 성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nbsp세 명만 힘을 합해도 천하를 움직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오늘 100명이 힘을 합했는데 무엇을 못하겠어요? 다음에는 통일의병 1000명이 모여서 희망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1만명이 힘을 모아낸다면 우리들도 능히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 희망을 갖고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오늘 대중들은 스님으로부터 용기와 희망을 듬뿍 받아가는 것 같습니다.nbspnbspnbsp끝으로 사홍서원을 한 후 정토회 임원단 회의를 모두 마쳤습니다. 다함께 고행상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통일을 향한 염원을 가득 담아 “가자 통일로”를 크게 외쳤습니다.nbspnbsp대수련장을 걸어나오자 뇌정산 위로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 달이 휘영청 밝아 있었습니다. 모두들 “우와 보름달 좀 보세요” 하면서 하늘을 가리키며 기뻐했습니다. 원래 스님은 회의가 일찍 끝나면 문경 용추계곡으로 대중들을 데리고 달구경을 가려고 했는데, 회의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중들은 뇌정산 보름달로 아쉬움을 달래며 정토수련원을 즐겁게 내려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대중들을 모두 떠나보낸 후 울산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nbsp nbsp 오늘 5월 21일 저녁 7시, 서울시청광장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청춘콘서트amp청춘박람회가 열립니다. 법륜 스님, 김제동, 박원순 서울시장, 노희경 작가가 펼치는 행복 토크, 뮤지션들의 공연, 150여 개의 청년 단체가 참여하는 박람회 등 세상을 바꾸는 즐거운 축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nbspnbsp

2016.05.21. 66,727 읽음 댓글 26개

2016.5.17 정토회 법사단 회의 2일째

안녕하세요?nbsp오늘은 법사단 회의 이틀째입니다.nbsp법사님들과 함께 아침 공양을 하기 위해 스님이 직접 상추를 솎고,nbsp고소를 땄습니다. 법사님들은 부추로 전을 부쳤습니다.nbspnbspnbspnbsp아침 공양 후 일부는 설거지를 하고,nbsp일부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열무를 뽑고,nbsp배추도 뽑았습니다. 또nbsp일부는 뽑은 배추와 열무를 다듬고 씻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김치 담글 준비를 마친 후 스님과 법사님들은 가매들계곡을 따라 산책을 하였습니다.nbsp햇볕이 강렬하고 따가운 날씨였지만,nbsp계곡을 걷는 동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숲 그늘이어서 시원하게 산책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계곡 중간 중간nbsp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이름 모를 꽃을 알려주기도 하고 더덕을 캐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산책 후 점심을 먹고,nbsp오후에는 어제에 이어 회의를 계속하였습니다.nbsp그동안 논의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던 법사님들이 현안을 비롯해서 궁금했던 여러 질문을 자유롭게 쏟아내면서 스님은 저녁 늦게까지 법사님들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 nbsp스님은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야산을 개간해서 호박을 키워 돈벌어 보겠다는 이야기를 서두로,nbsp중학교 때 연탄배달업으로 돈 벌어 보겠다는 계획,nbsp중고등학교 불교학생회 활동할 때 불교중흥과nbsp민족중흥을 발원한 이야기,nbsp도문 큰스님과의 인연,nbsp그리고 재가법사로 불교를 개혁해보려 했던 대학생불교연합회 지도법사 시절과 그때 인연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현대 물질문명의 폐단과 고민,nbsp그 속에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어떻게 정토회가 사회 속에서 실천해 나갈 것인지,nbsp앞으로 현직을 은퇴한 고령의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일감은 무엇인지,nbsp붕괴되어 가는 농촌공동체를 재건할 방안,nbsp초심을 잃지 않고 정토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들은 무엇인지,nbsp1차 만일결사를 마치고nbsp2차 만일결사를 할 때 최적의 국제포교 장소는 어디일지,nbsp시대에 맞는 불교대학의 강의 방법과 그 내용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이제 형식적인 틀을 갖는 종교의 시대와 신비주의로 사람의 이목을 끄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부터 속박받지 않고 자유로워져야 해요. 그리고 자연과의 지속가능한 개발, 평등하고 민주화된 사회를 지향하며 사회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심리학이든 정신분석학이든 사회학이든 물리학이든 다 포용할 수 있는 그런 불교여야 합니다.nbsp열반은 지속가능한 행복입니다. 이 관점에서 세상을 재해석하고 추동해 나가야 해요. 이것은 세계인에게 다 해당되는 거예요. 그러나 배고픈 사람들은 이런 것에 현실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없겠지요. 불법은 배고픔이 어느 정도 해결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우선해서 배고픈 삶은 해결되어야 하고, 그런 삶은 우선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nbsp그밖에도 스님은 정토행자들의 수행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연수원 운영,nbsp해외포교의 현안들에 대해 법사님들과 밤 늦게까지 많은 논의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2016.05.19. 38,092 읽음 댓글 8개

2016.1.20 (인도 15일째) 성지순례단 C팀 쉬라바스티 순례

nbsp안녕하세요? 인도에 온 지 15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과 B팀에 이어 C팀을 이끌고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무신 곳 ‘쉬라바스티’를 순례했습니다.nbspnbsp새벽 5시에 천축선원 법당에서 예불과 기도를 한 후 6시 20분에 기원정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스님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를 이어 기러기떼처럼 한 줄로 서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천천히 걸었습니다.nbspnbsp어둑한 새벽 안개를 가르며 기나긴 행렬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간간히 차들이 지나가면서 헤드라이트를 비추자 순례단의 기나긴 행렬이 잠시 불빛에 비춰질 뿐 순례단은 조용히 한 발 한 발에 집중했습니다.nbspnbspnbsp한참을 걷자 어느덧 새벽 안개가 걷히고 기원정사가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스님의 뒤를 따라 순례객들은 부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곳을 참배하고 탑돌이를 하였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설법을 했다고 하는 곳nbsp▲ 부처님이 안 계실 때 부처님을 대신 상징했다고 하는 보리수 나무nbsp마지막으로 부처님이 머무신 처소로 알려진 간다 쿠티 앞에 서서 합장하고 삼배를 한 후 탑돌이를 마쳤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머문 처소 ‘간다 쿠티’nbspnbsp이어서 간다 쿠티를 바라보며 예참 불공을 올렸습니다. “지심정례공양...” 하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기원정사에 울려퍼졌습니다.nbspnbsp▲ 예참 불공nbsp예참 불공을 마치고 스님은 상카시아를 제외한 9대 성지를 무사히 마친 순례단이 성지순례를 마지막까지 무사히 마칠 것과 그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며,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회향할 것을 발원하는 기도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기원정사를 창건했으며 신심이 깊은 재가 수행자로 널리 알려진 수닷타 장자의 nbsp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사위성은 부처님이 성도 후 45년 중에서 무려 25안거를 보낸 곳이기 때문에 초기 경전의 절반 정도가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스님은 사위성에서 일어난 다양한 교화 사례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경전 독송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위성에서 일어난 다양한 교화 사례는 경전 속에도 아주 실감나게 묘사가 되어 있어 어느 때보다 경전 독송이 재미있었습니다. nbspnbspnbsp▲ 경전 독송nbsp경전 독송을 마치고 스님은 2600년 전 당시 사회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 불법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설법이 시작되자 간간히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지만, 순례객들은 전혀 동요 없이 모자를 쓰는 것을 제외하곤 오롯이 스님의 법문에 집중했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그 당시의 대중들에게 법문하신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들어도 때로는 깨닫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신비주의, 계급적인 사고, 성차별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졌다는 이런 사실이야말로 정말 기적이라고 할 만합니다.nbspnbsp불교 가르침의 근본 목적은 우리 삶의 행복과 자유를 향한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듯이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구나 욕망을 굉장히 절제하는 가르침이에요. 그런데 그 절제가 단순히 억제하고 억압하는 것도 아닙니다. 욕망대로 행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욕망과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욕망과 싸운다는 것 또한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망을 잘 이해하고 욕망을 알아차리되 그 욕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로 나아가라고 가르칩니다.nbsp그런 관점을 보여주는 몇 가지 교화 사례들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 계율 문제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었어요. 출가사문들은 대부분 먹는 것은 얻어서 먹고, 입는 것은 분소의를 주워서 입고, 자는 것은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자는 것이 기본적인 생활이었어요. 부처님이 출가사문의 길을 처음 제시한 게 아니라 그 출가사문의 길에 부처님도 참여하신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실 때도 절대 목욕을 하면 안 된다거나 자리를 살피면 안 된다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식의 금기나 엄격함 같은 게 좀 있었어요. 그러나 붓다는 중도를 깨달으면서 그것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해탈의 길에 들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6년 고행하실 때는 계율에 대해 굉장히 엄격했다면 중도를 발견하신 이후에는 유연해진 셈입니다. 친구들의 눈에는 그게 해이해진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 부처님은 해이해진 게 아니라 유연해지셨어요. 그래도 지금 우리가 보면 굉장히 엄격한 모습이지만 당시 고행주의의 기준에 비하면 유연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nbspnbsp그런데 교단 안에서 데바닷타라는 사람이 계율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데바닷타는 부처님과 같은 석가족 출신이고 재주가 뛰어나서 데바닷타를 따르는 재가신자들이 많았습니다. 데바닷타는 자기가 부처님의 뒤를 이어 교단을 이끌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해요. 그러나 그저 사람들이 부처님을 존경했을 뿐이지, 부처님은 당신이 교단의 지도자라든지 교단을 이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교단의 지도자는 누가 하거라’라는 이야기를 하실 분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그러나 데바닷타는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께 자기가 그런 역할을 좀 하겠다 말씀드렸지만 부처님께서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셨어요.nbspnbspnbsp‘데바닷타여, 상가에 특별히 지도자를 정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자기 수행을 자기가 주체가 되어 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럴 필요가 있다 해도 장로인 사리푸트라나 목갈리나가 있지 않느냐.’nbsp부처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가 후계자가 되기 어렵다는 걸 안 데바닷타는 이렇게 대중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의 지도력을 보이기 위해 어느 날 부처님께 ‘수행자라면 마땅히 이건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첫째, 먹는 음식은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하고, 걸식을 해야 하고, 물고기가 든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둘째, 입는 옷은 분소의만 입어야 한다는 거예요. 셋째, 자는 것은 동굴이나 나무 밑에서만 자야지 처마 밑 같은 장소에서 자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엄격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nbspnbsp부처님은 그게 틀렸다고도 맞다고도 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그 엄격주의에서 생겨나는 모순을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하셨습니다. 출가수행자가 분소의를 입는 것은 참 훌륭한 일이지만, 분소의만 입어야 한다고 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정해놓으면 예를 들어 500명이 갑자기 출가를 했는데 화장장에 가보니 시체를 싸서 버린 분소의가 300벌밖에 없을 때 200명은 벌거벗고 지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그렇다고 200명 분의 천을 마련해서 시체를 한번 쌌다가 다시 벗겨서 입는다면 인위적인 형식주의가 되는 거예요. nbspnbsp그러니 분소의를 주워 입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분소의가 없을 때는 그냥 새옷을 입어도 됩니다. 분소의를 놔두고 새 옷을 입자는 것도 아니고, 분소의만 입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에요. 분소의를 입는 것은 좋은 일이고 훌륭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지만 분소의만 입어야 된다고 단정하게 되면 이런 모순이 발생한다는 거예요.nbspnbsp수행자가 나무 밑이나 동굴에 자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부처님은 항상 자발성을 중시하셨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하는 건 훌륭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렇게만 해야 한다고 단정해버리면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데 동굴을 발견하지 못하면 비를 맞고 자야 하잖아요. 그럴 때는 빈집의 처마 밑 정도는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아무 집이나 좋다고 하진 않고 빈집이라는 제한을 두시기는 했습니다. 빈집의 처마 밑이라도 그건 인위적인 것이어서 원래 고행주의에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수행자가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데 해당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의 처마 밑이라면 나무 밑이나 동굴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겁니다.nbspnbsp마찬가지로, 걸식을 하는 건 좋은 일이고 훌륭한 일이지만 신심 있는 재가 수행자가 공양을 초대할 때 응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한 끼 먹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환자나 사미나 사미니는 두 끼 먹을 수도 있어요. 사미나 사미니는 미성년자가 출가한 경우라서 아직 더 성장해야 하니까요. 채식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고기가 들어 있는 음식을 주면 먹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안 받는다 하면 걸식 정신에 어긋나고, 고기만 건져낸다고 해도 분별이잖아요. 수행의 핵심은 분별하지 않는 데 있지, 거기에 고기가 섞여 있나 안 섞여 있나가 핵심은 아니라는 거예요.nbspnbsp이걸 자칫 잘못 들으면 계율을 어기는 쪽으로 가기 쉽지만, 부처님 말씀의 뜻은 계율을 어기자는 게 아니라 그런 경직된 자세가 중도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이건 누가 들어도 합당한 이야기에요.nbspnbspnbsp이처럼 불교는 신행, 즉 말하고 행동하는 게 굉장히 절제돼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윤리나 도덕이 그 사람을 옭아매거나 속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속박이 안 되려면 스스로 행해야 해요. 남의 눈치를 보면서 하면 그게 감옥이 되지만, 스스로 즐거이 한다면 그게 속박이 되지 않습니다. 나무 밑에 자는 것도 걸식하는 것도 분소의 입는 것도 마찬가지에요.nbspnbsp종교라는 것도 그래요. 이렇게 깨달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사유가 자꾸 자유로워져야 해요. 이 ‘자유롭다’는 건 자기 욕망대로 한다는 것과는 개념이 조금 달라요. 이게 참 어렵죠. 우리는 자유라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하려 들고, 절제하라고 하면 억압하려 듭니다. 그래서 중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중도는 자발적인 선상에서 연습을 해야 중도가 되지, 억지로 해서는 중도를 터득할 수 없어요.nbspnbsp아무튼 부처님의 가르침은 2,600년 전의 가르침인데도 참으로 자유롭고 합리적이에요. 전법선언 할 때도 ‘처음도 중간도 끝도 조리 있게 법을 설하라’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nbspnbsp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을 일부러 우상화시킬 필요가 없어요. 붓다의 인격 그 자체가 최상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상화시켜서 인격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더 많아요. 신격화시켜서 오히려 격하시키는 격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그대로가 ‘천인사’, 사람과 신들의 스승이라고 하죠. 우리의 관념은 항상 인간 위에 신을 두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런 신의 관념보다 더 위여서 거기로부터 벗어난 개념이에요. 지금 우리의 학교 교육이나 세상의 윤리나 모든 사상은 신을 사람의 위에 둡니다. ‘천부인권’이란 말도 ‘하늘이 부여한 인권’이란 뜻이잖아요. 거기 비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신들까지 포함한 세계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신 아래에 존엄한 게 아니라 신을 넘어 존엄한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도 인권은 해칠 수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불교를 자꾸 다른 종교와 비슷하게 만들면 안 돼요. 다른 종교와 경쟁하려 들거나 비교우위를 차지하려고도 하지 마세요. ‘그러냐? 아이고, 그거 좋구나’ 하고 다른 종교를 그냥 다 인정해 주세요. 다른 철학, 다른 과학, 다른 사상, 다른 종교를 모두 그대로 두고도 불법은 그 한 단계 위에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걸 갖고 경쟁하거나 시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불교가 더 나으니 어쩌니 비교해서 시비하는 것 자체가 불교의 격을 낮추는 일입니다.”nbsp스님의 깊이 있는 법문에 순례객들도 모두 큰 박수를 보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부처님이 많은 제자들과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설법을 하신 바로 이곳에서 스님으로부터 이렇게 깊이 있는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순례객들은 모두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아침 겸 점심 식사 시간을 순례객들에게 주었습니다. 기원정사 밖을 나가 넓은 공터에서 조별로 자리를 깔고 앉아 전기밥솥을 꺼내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식사 후에는 자유롭게 기원정사를 둘러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을 수 있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자유시간을 갖기 전에 스님은 일대일로 기념사진도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과 일대일 기념사진 촬영nbsp스님과의 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순례객들은 삼삼오오 흩어져서 부처님이 머무신 간다 쿠티, 아난다 존자가 머물렀던 곳, 라훌라 존자가 머물렀던 곳,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던 곳, 부처님이 안 계실 때 부처님을 생각하기 위해 심었다는 보리수 나무, 후세에 승려들이 머물기 위해 지어진 승방터 등 곳곳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다음은 1시간 동안의 개인 정진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나무 밑이나 한적한 곳을 찾아 108배를 하는 분, 명상을 하는 분 등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에서의 감흥을 느끼며 정진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이렇게 기원정사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후 다시 길게 한 줄을 이루어 사위성을 향해 들어갔습니다. 마치 부처님과 제자들이 탁발을 하러 사위성으로 들어가던 그 때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듯이 묵언을 한 채 천천히 사위성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었습니다.nbspnbsp▲ 기원정사를 나와 사위성을 향해 한 줄로 걸어가는 순례단nbspnbsp사위성 안에는 앙굴리말라 탑과 수닷타 장자의 탑이 높게 솟아 있었습니다. 묘하게도 악인으로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은 사람과 선인으로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은 사람의 탑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스님은 이것을 가르켜 “부처님의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을 말해준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앙굴리말라 탑을 한 바퀴 돌고 삼배를 한 후 스님으로부터 부처님이 어떻게 99명을 죽인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교화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nbspnbsp▲ 앙굴리말라의 탑nbsp그리고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수닷타 장자의 탑으로 이동해 탑을 한바퀴 돈 후 삼배를 하고, 5분 간 자유 시간을 가졌습니다. 순례객들은 탑 위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탑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스님의 설명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 수닷타 장자의 탑nbsp다시 스님은 순례객들을 이끌고 사위성을 가로질러 동문쪽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A팀과 B팀이 걸어갔던 길과는 달리 북문에서 남문 쪽으로 길게 뻗은 길을 향해 걸어보았습니다. 남문 쪽으로 난 길에는 한참 유적지 발굴이 이루어지다가 홍수가 나서 침수가 되어버린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nbspnbsp▲ 유적지 발굴이 이루어지다가 홍수로 침수가 된 흔적nbsp스님은 곧게 뻗어 있는 길이 지대가 낮은 것을 보고선 “이 길이 아마 사위성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주작대로인 것 같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에는 건물이 세워지지 않아서 후대에 건물이 무너져서 지대가 높아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 북문에서 남문으로 곧게 뻗은 주작대로로 추측되는 길nbsp곧게 뻗은 길을 한참 걸으니 남문 자리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고, 다른 곳과 달리 옹성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둔덕도 보였습니다. 조금더 고고학적인 고증이 필요해 보였습니다.nbspnbsp▲ 남문 자리로 통해 사위성을 나오고 있는 순례단nbsp이렇게 성문을 나오니 논길이 펼쳐졌습니다. 논길을 걸어 나오니 베사카 부인이 지었다고 하는 ‘동원정사’가 나왔습니다. 아쇼카석주로 추정되는 곳이 신령스럽게 모셔져 있었는데, 그곳을 순례객들은 세 바퀴 돌고 삼배를 했습니다.nbspnbsp▲ 베사카 부인이 지은 ‘동원정사’nbspnbsp자리에 앉은 순례객들을 향해 스님은 이곳에 절을 지은 베사카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먼저 이 절은 녹자모 강당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왜 그런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는지 설명을 한 후, 이어서 이곳에 절이 지어진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자리에 앉은 채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베사카 부인이 어느 날 기원정사에 설법 들으러 가면서 아주 값비싼 외투를 걸치고 갔어요. 아버지가 아주 부자였는데, 시집올 때 아버지가 딸을 귀하게 여겨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외투를 주었거든요. 더운 지역에서 외투라고 하니 실제로는 무슨 옷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즘으로 치면 수십 억, 수백 억 원쯤 되는 으리으리한 옷이었어요. 법문 듣는 동안 비싼 외투는 벗어서 하인더러 들고 있게 하고 법문을 들은 뒤 기뻐하며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하인더러 옷을 달라고 하니까 그만 정사에 놔두고 왔다는 거예요. 빨리 가서 찾아오라고 하인을 보내려다가, 부인이 하인을 다시 불러 이렇게 일렀어요. ‘네가 놓아둔 자리에 옷이 그대로 있으면 가져오고, 아난존자가 이미 보관을 했거들랑 그냥 보시하고 오너라.’nbspnbspnbsp법회가 끝나면 아난존자가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둘러보고 두고 간 물건이 있으면 보관했다가 나중에 찾아주잖아요. 베사카 부인은 불자니까 보시를 할 인연이면 인연을 따라 보시하고 오라고 한 거예요.nbsp하인이 가봤더니 이미 아난존자가 외투를 보관하고 있다가 내어줬어요. 그래서 하인이 ‘아이고, 우리 주인님이 보시하고 오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지만 아난존자가 보시를 허락하지 않았어요. 승단에는 값비싼 옷이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하인이 할 수 없이 옷을 다시 가져왔어요. 베사카 부인은 마음에서 이미 보시를 해버렸으니 승단에서 이 옷을 받지 않는다면 옷을 팔아서 그 돈으로 보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 사위성 부자들이 왕사성 부자들보다 좀 못했는지, 워낙 비싼 물건이어서 아무도 살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베사카 부인이 천만 금을 내고 자기 옷을 자기가 샀어요. 그렇게 낸 옷값으로 지은 것이 이 동원정사라고 합니다.nbspnbsp당시에는 건물을 안 짓는 게 풍습이었으니 아마 땅을 구입해서 숲을 마련한 게 아닐까 해요. 그래서 부처님을 이곳에 머물도록 청해서 부처님은 이곳에서 여섯 번의 안거를 나셨다고 합니다. 기원정사에서 보낸 19번의 안거와 여기 동원정사에서 보낸 안거를 합쳐서 25번의 안거를 사위성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동원정사가 지어진 유래예요.nbspnbsp4대 정사라고 하면 첫 번째가 죽림정사, 두 번째가 기원정사, 세 번째가 이 동원정사예요. 네 번째는 암라빨리가 부처님의 마지막 여로에 기증한 암라원입니다. 암라빨리가 나중에 출가해 비구니가 되어서 암라원은 후대에 비구니절이 되었어요. 이곳 동원정사도 부처님이 머무시던 당시에는 비구니절이 아니었지만 기록을 보면 나중에 비구니절이 됩니다. 4대 정사 중 뒤의 2개가 비구니절이 되었고 둘 다 여성이 지었는데 모두 장부 같은 여성들이었어요.nbspnbsp저쪽을 보면 동쪽 성문 벽 밖에 프라세나짓왕이 비구니들을 위해서 마련해준 절이 있습니다. 스님들은 숲에서 살잖아요. 비구니, 즉 여성수행자들이 숲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지내다 보니 성추행을 많이 당했어요. 성 안에는 수행자가 못 사니까 성벽에 붙여서 절을 마련해 주어 비구니들을 보호하려 했던 것 같아요. 왕이 지은 절이라고 해서 절 이름이 ‘왕사’입니다. 저기도 비구니절이에요. 나중에는 물론 건물이 들어섰지만 초기에는 건물이 아니라 숲이에요.nbspnbsp경전에 기록된 비구니들의 게송을 보면 낮에 숲에서 정진을 하고 있는데 마왕 마라가 나타나서 유혹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나다니던 남자들이 유혹을 했던 거예요. 게송을 보면 그 당시 비구니들이 얼마나 정진의 힘이 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숲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지나가다가 ‘당신 눈이 참으로 아름답다’며 유혹을 했어요. 그러자 손가락으로 자기 눈알을 빼서 가져가라고 내어줬대요. nbspnbspnbsp굉장하지요? 눈을 빼서 내미는데 무슨 다른 욕망이 일어나겠어요? 정진의 힘이 그런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회적 조건이 여성이 출가해 수행하기에는 그만큼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동원정사는 이런 유래가 있으니까 특히 여성 신자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곳입니다.nbsp그리고 동원정사가 여성이 지은 절이다 보니 여성 신자들이 많이 다녔나 봐요. 옛날 부처님 당시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신자들이 다 절에 와서 참회하고 포살을 합니다. 한 번은 베사카 부인이 포살에 참가한 약 500명의 여자들한테 각자 무슨 소원을 빌고 있는지 물어봤어요. 늙은 여성들은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어요. 중년 여성들은 남편이 하룻밤이라도 둘째 부인에게 안 가기를 원했어요. 결혼한 젊은 여자들은 아들 낳는 게 소원이라고 했어요. 처녀들은 인물 잘생기고 마음씨 너그럽고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게 소원이래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죠? nbspnbsp그래서 베사카 부인이 그 500명의 여성을 데리고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의 설법을 청하면서 ‘여기 500명의 대중이 이런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했더니 부처님께서 이렇게 법문하셨어요.nbspnbsp‘육신이라는 것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중생들은 윤회의 사슬로 올가미를 만드는 것을 자청하느냐? 그러니 그런 무익한 것에 마음을 쓰지 말고 윤회의 사슬을 끊는 해탈을 향해 나아가라.’nbsp여기 성지순례에 오신 분들 보니까 일본이며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에서 많이들 왔는데 그 정도면 이미 받은 복이 충분하지 않아요? 아직도 부족해요? nbspnbspnbsp요즘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만 해도 받은 복이 충분해요. 밥 먹지, 옷 입지, 비 안 새는 집에서 잠 자지, 차 있지, 그러면 됐지요. 그러니 이제 복은 그만 구하고, 마음이 자유롭고 행복한 해탈의 길을 좀 더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 인생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nbspnbsp처음에는 규모가 너무 볼품 없어서 그 중요성이 다가오지 않았는데, 스님이 동원정사가 지어진 유래를 실감나게 들려주니 그제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깊이 다가왔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왜 이렇게 규모가 작은지, 힌두교의 링가가 왜 놓여 있는지 대중들이 의아해하는 것을 헤아리며 아직 고고학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곳 지형지세를 꼼꼼히 답사한 후 스님이 추측해본 나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nbsp“원래의 동원정사가 이렇게 작았을 리는 없어요. 제 생각에는 이 앞에 있는 동네가 전부 동원정사 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유적지가 오래되어 허물어진 곳은 지대가 높으니까 사람들이 다 거기에 집을 짓고 살거든요. 평지에는 별도의 언덕이 없는 데다가 지대가 낮은 곳은 쉽게 물에 잠기니까요. 상카시아도 내일 가서 보면 동네가 있는 곳이 지대가 높습니다. 사위성도 보면 바깥보다 지대가 높아요. 지난번에 여기 비가 와서 이곳 랍띠 강 전체가 범람해서 죄다 물바다가 되었는데 안 잠긴 곳이 사위성과 기원정사와 저 큰 도로뿐이었다고 해요.nbsp여기 보면 링가가 있지요. 링가는 힌두교에서 다산을 상징합니다. 불교가 사라지고 이곳은 나중에 힌두교, 즉 브라만이 지키고 있는 동네 기도처가 되었는데 사실은 이게 링가가 아니라 아쇼카석주라고 합니다. 여기가 베사카 부인이 지은 동원정사라는 걸 알리는 석주였는데, 유적지가 파괴되면서 힌두교인들이 석주의 윗부분을 자르고 다듬어서 링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 계시는 스님은 브라만인데 머리 깎고 출가해서 여길 지키고 있어요.”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의문이 많이 풀어지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렇게 동원정사 참배를 마치고 순례단은 논두렁 길을 따라 걸으며 숙소로 향했습니다.nbspnbsp그런데 동네 아이들 100여 명이 구걸을 하러 모여 들어서 아수라장이 될 뻔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순례단을 먼저 보내고, 동네 아이들을 한 줄로 앉혀 모두가 안심하고 사탕 한 움큼씩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 후 사탕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아이들이 온순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오랜 시간 인도에서 구호활동을 해 온 스님의 연륜과 경험이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은 사탕을 받고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그럼에도 몇몇 아이들은 계속 순례객들 따라오며 구걸을 했습니다. 한 거사님은 땅바닥에 머리를 수 차례 조아리며 쫓아오는 아이들 때문에 무척 곤혼스러워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구걸을 하며 먼 길을 계속 따라오는 아이들nbsp그러나 한적한 논두렁길로 들어서니 시골 마을이 나타났고, 이 동네 아이들은 순례객을 봐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 뿐 아무도 구걸을 하지 않았습니다. 500미터 남짓한 거리의 두 마을이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 참 신기했습니다.nbspnbsp▲ 구걸하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웃기만 하는 시골 아이들nbsp스님은 이 모습을 보고 “관광객들이 자꾸 주기 때문에 아이들을 거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왜 스님이 수자타아카데미를 만들었는지와도 일맥 상통하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순례객들은 화사한 유채꽃밭과 망고나무 숲을 지나 서로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 망고나무 숲nbsp저녁식사 후 저녁 6시 30분부터는 스님이 이번 성지순례를 총정리하는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바라나시를 시작으로 보드가야, 라즈길, 바이샬리, 쿠시나가라, 룸비니, 카필라바스투 등 이번 성지순례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이 중요했고, 무엇을 가슴에 새겨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정리 말씀에 성지순례의 감흥이 다시 살아나는 듯 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자신을 가볍게 만들어나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옛날 이야기를 자꾸 할 필요도 없고, 미래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고, 지금이 중요해요. 어쩌고 저쩌고 토를 달거나 머리 굴리지 말고, 상대가 욕할 때 빙긋이 웃는 연습을 한번 해보세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진찰을 해보더니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암인 것 같습니다’ 하면 빙긋이 웃으면서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발견하셨군요’ 라고 하세요. nbspnbspnbsp암은 오늘 생긴 게 아니라 원래 있었던 것이잖아요. 어차피 돈 들여 검사했는데 한 번에 발견했으니 좋은 일이에요. 지금 발견 못했다면 나중에 또 돈 들여서 검사를 해야 하잖아요. 의사가 기막혀 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소?’라고 물으면 ‘저는 부디스트입니다’라고 대답하세요. nbspnbspnbsp이것이 바로 유마거사가 병든 몸을 갖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과 같아요.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재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앙인 거예요. 그냥 하나의 사건인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게 복이 되기도 하고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재앙이 복인 줄 알아버리면 인생 해탈하는 거예요.nbspnbsp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불편한 것들에 대해서 자유로워지면 그게 큰 복이에요. 불편한 것으로부터 자기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세상살이에 훨씬 더 자유로워진 겁니다. 그런 공부를 하려고 돈 들여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런데 얼굴이 대부분 밝아진 것 같긴 하지만 몇몇은 내내 인상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먹는 게 못마땅했는지, 자는 게 못마땅했는지, 화장실이 못마땅했는지, 스님이 너무 늦게까지 붙들어서 잠 안 재우고 법문해서 못마땅했는지, 뭐가 그리 못마땅했는지 모르겠어요. nbsp이렇게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거예요. 경험하면서 배워야 내 것이 되지, 지식으로 배우는 것은 지식으로 끝나요. 성지순례는 체험학습이에요. 어려움에 부닥쳐서 ‘아, 내가 사로잡혔구나’하고 알고, 넘어지면서 딱 깨치는 거예요. 넘어진 걸 보고 다른 사람이 걱정이 되어서 ‘아이고, 어째’ 하면서 일으켜 세워줄 때 빙긋이 웃어보세요. 그러면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겠죠. ‘당신은 뭔데 이럴 때 웃소?’ 하거들랑 ‘부디스트입니다’ 라고 하세요. nbspnbsp우리의 가장 큰 힘은 무슨 세력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지위도 아니고, 바로 이 행복입니다. 행복을 여러분들의 가장 큰 힘으로 삼으세요. ‘이 상황에서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다,’ 이게 가장 큰 힘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괴로워하겠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술 마시고 취해서 전봇대 붙들고 오줌누고, 지하철 계단에 쓰러져서 자는 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이에요. 내내 자기를 괴롭히면서 약 먹고 죽겠다고 하는 것도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어쨌고 어릴 때 가난했고 뭐가 어쨌고 하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갖고 자기를 괴롭히잖아요.nbspnbspnbsp더 이상 자기 에너지를 자기를 괴롭히는 데 쓰지 말고 이렇게 자기를 가볍게 만들어 나가야 해요. 우리는 워낙 무겁게 사는 습관이 많이 들어서 잘 안 되는데, 그래도 자꾸 노력을 해야 해요. 가볍게, 좋게 생각하세요. 긍정적 사고는 낙관적 사고와는 달라요. ‘뭐든지 잘 될 거다’ 이런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넘어지면 앉아서 울지 말고 일어나야 해요. 지금 일어나는 게 중요하지, 앉아서 우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차가 지나가버렸으면 지나간 걸로 자꾸 시비하지 마세요. 이미 지나간 차는 잊어버리고 다음 차나 잘 잡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nbsp이제 순례를 마치고 각자 사는 나라로 돌아가면 성지순례에서 배운 경험이 삶의 행복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해주려는 스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깨달음은 논리를 뛰어넘는다고 하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습니다. 부처님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다시 한 번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부처님 말씀 중에 재미있는 게 많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한번 보세요. 어느 동네를 갔더니 웬 아이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어요’라는 거예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할머니 무덤가에 가서 뗏집을 짓고 하루 세 번씩 거기에 공양물을 갖다 올리며 운다는 거예요. 인도는 무덤이 없는데 왜 이런 묘사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중국 사람이 번역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어쨌든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러고 있어서 집안에 아무것도 일이 안 된대요. 부처님이 가만히 듣더니 아이한테 뭐라고 뭐라고 말했어요. 부처님 말씀을 들은 아이는 씩 웃으며 돌아갔습니다.nbspnbspnbsp조금 있으니 온 동네에 아무개네 집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이 났어요. 인도는 소가 죽어도 소고기를 안 먹으니까 그냥 버려둡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죽은 소 앞에 가서 꼴을 한 움큼 들이밀면서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이러는 거예요. 사람들이 ‘야 인마, 죽은 소가 어떻게 먹냐?’라고 해도 신경 안 쓰고 계속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이래요. 그래서 결국 그 집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이 퍼져서 무덤가에 있던 아버지에게까지 들어갔어요. 아들이 미쳤다니까 아버지가 찾아왔겠죠. 아이가 그 짓을 하는 걸 본 아버지가 ‘이 놈의 자식아, 죽은 소가 꼴 먹으라고 한다고 어떻게 먹냐’하고 화를 벌컥 내니까 아이가 올려다보면서 ‘그럼 아버지는요?’ 이랬대요. 그래서 아버지가 탁 깨달았어요. nbspnbsp이렇게 깨달음은 지식하고 좀 달라요. 깨달음은 논리가 있긴 하지만 논리도 초월합니다. 단순한 지식과는 개념이 좀 달라요.”nbsp스님은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온갖 가지 이야기를 잘 알고 있어서 대중들의 상황을 살피며 그 때 그 때마다 적절한 부처님의 교화 사례들을 쑥쑥 꺼내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이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세세히 설명을 해준 덕분에 부처님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기분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오늘 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A팀, B팀, C팀의 쉬라바스티 순례 안내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스님은 내일부터 다시 C팀을 따라 상카시아로 함께 이동할 예정입니다. 상카시아를 마지막으로 정토회 성지순례단 C팀은 부처님의 10대 성지순례를 모두 마치게 됩니다. nbspnbsp※ 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nbsp쉽고 명쾌한 강의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시면 법륜 스님과 함께 떠나는 인도 성지순례에도 우선적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 nbsp

2016.01.21. 66,882 읽음 댓글 61개

2015.12.29 연말 명상수련 4일째, 즉문즉설 제1부 (수행편)

nbsp안녕하세요. 지난 12월 26일에 시작한 명상수련이 오늘로서 4일째를 맞이했습니다. 이번 명상수련은 매년 여름에 진행되는 일반인 명상수련과는 달리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일을 많이 하다보니 자칫하면 수행을 놓치기 쉬운데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함께 정진을 하게 되어 다시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nbsp첫째날 입재 법문을 시작으로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은 시작과 끝을 알리는 죽비 소리만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울릴 뿐 고요한 정적만 흐른 채 명상이 계속 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은 대부분 명상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번 명상수련에서는 스님도 법문을 거의 하지 않고 명상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늘 법문을 들으며 명상을 했는데 법문이 일절 없으니 몇몇 분들이 “너무 지루해요” 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건의를 해서 3일째 저녁에는 스님의 격려 법문이 한 차례 있었습니다. 스님은 명상을 꾸준히 하는 것은 수행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오늘 4일째 저녁에는 이번 명상수련을 마무리하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즉문즉설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서 진행이 되었는데, 전반부에서는 수행과 관계된 질문을 주로 받았고, 후반부에서는 활동하면서 겪는 의문이나 애로점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번 시간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4일간 정진 잘 했습니까? 이 시간만 묵언을 풀겠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자유롭게 질문하세요. 수행하면서 느낀 점, 교리 상의 의문점, 평소 정진하다가 생긴 문제, 활동하면서 겪는 의문이나 애로점이 있으면 질문하세요.nbspnbsp개인 질문은 하지 말라고는 않겠지만 이렇게 우리 활동가들끼리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제가 보고 한두 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일단 넘기겠습니다. 하는 것까진 좋지만 제가 듣기만 하고 넘길 테니 그리 이해하고 섭섭해 하지 마세요. 저만 보면 그저 개인사 묻고 싶죠?” nbsp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곧이어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약 네 시간 동안 10여 명이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명상수련의 끝무렵이여서 그런지 선정을 닦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많은 분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선정법과 다른 선정법의 차이점에 대해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머리로는 어느 정도 정리했지만 스님께 명확한 말씀을 듣고 싶어 여쭙니다. 오후 명상 중에 문득 부처님께서 선정주의자들로부터 선정을 배우신 뒤에 다시 나오신 게 생각났습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 해서 다 선정 아닌 게 없다고 말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고요히 앉아서 선정에 들면 괜찮아졌다가도 선정에서 깨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부처님께도 선정을 늘 할 수가 없고 선정에 들 때만 행복하다면 이건 참된 깨달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셨기에 선정주의를 부정하고 나오셨다고 배웠습니다. 당시 인도에도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선정법이 많은데, 부처님의 선정법은 다른 것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요? 부처님의 삶이나 계율, 전법 같은 여러 가지 활동과 결국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여쭙니다.”nbsp“수행을 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즉 계·정·혜 삼학을 듭니다. 첫째는 바깥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을 정갈하게 하는 것, 즉 계행을 청정히 지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즉 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아는 지혜를 증득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계율을 중시하지 않고 선정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들어맞지는 않지만 대표적으로 라즈니쉬 계열이 그런 편입니다. 선정을 이야기하기는 하나 계율이 그리 엄격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때문에 특히 북미·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nbsp다른 한편으로 선정은 있으되 지혜, 즉 깨달음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도 선정주의자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오직 고요함만을 추구했어요. 부처님께서 고요함을 추구하신 것은 인도에 이미 있던 선정의 방법을 배워서 그대로 행하신 거예요. 그런데 고요함만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고요함인 열반이 아닙니다. 깨달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어진 일정 조건에서만 고요함이 유지되지, 고요함이 일상에서 유지되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스승 곁을 나와서 더 깊은 선정을 닦았지만 여전히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어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가, 우리들 대부분이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욕망을 따라간다고 한다면 선정은 그 욕망을 주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욕망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고행주의라 하고, 고행주의가 아니더라도 선정주의 또한 어느 정도 욕망을 억제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모두 욕망에 대한 반응이라는 걸 깨닫고 그 고행마저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중도를 발견하셨습니다.nbsp이 중도는 붓다가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신 거예요. 당시 인도 사회의 주류였던 브라만교에서는 수행을 하더라도 욕망을 충족시키는 게 복이고 은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반대해서 일어난 사문류에서는 욕망에 대한 절제와 억제를 중시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비주류에서 출발했지만, 주류의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비주류에도 역시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셨어요. 그래서 주류를 무조건 반대하는 개념도 놓아버리고 오직 진실이 어떠냐는 관점에서 접근하신 결과 소위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는 중도를 발견하시고, 중도의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nbsp그런데 깨달음을 얻으신 뒤의 부처님의 행보를 살펴보면 계율도 또한 잘 지키셨습니다. 불교는 계율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이 계율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 욕망을 억압하고 억제하는 계율이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보여주기 위한 계율, 예컨대 밥을 안 먹거나 잠을 안 자는 것으로 대중의 신비주의를 자극하는 계율을 금하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데바닷타와의 토론을 보면 이런 뜻이 잘 드러납니다. 당시의 고행주의자들은 반드시 걸식을 해야 하고, 식사 초대를 받으면 안 되며,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하고, 고기도 먹으면 안 됐어요. 옷은 시신을 싸서 버린 분소의만 입어야 했어요. 잠은 나무 아래나 동굴처럼 자연적인 곳에서만 자야지, 인공적으로 만든 처소에서 자면 안 돼요. 이게 당시 수행자의 기본자세인데 이제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는 때로는 식사 초대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두 끼 먹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고기 든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새 옷을 입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집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nbspnbsp그래서 데바닷타가 계율을 좀 더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부처님은 걸식을 하는 건 수행자로서 참 모범적이고 훌륭한 일이지만 ‘걸식만 해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이게 차이점이에요. 계율을 지키는 건 좋지만 그 계율에 대해서 단정해버리거나 경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그걸 지키는 게 옳지만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걸식할 필요 없다. 밥을 사먹어도 되고 식사 초대를 받아도 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nbsp계율을 흩트리는 쪽으로 갔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걸식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참 훌륭한 일이라고 붓다도 권유하셨고, 붓다 자신도 평생 그렇게 하셨어요. 그러나 때로는 식사 초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해서 그걸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nbspnbsp마찬가지로, 하루 한 끼만 먹는 것은 수행자로서 참 잘하는 일이지만 그걸 딱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성년이 되기 전에 출가한 사미들처럼 아직 신체적으로 더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나 영양분이 필요한 환자는 하루 두 끼를 먹을 수도 있잖아요. 채식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걸식을 하는데 상대가 준 음식에 예컨대 생선이 들었다고 해서 먹지 않고 버릴 수는 없잖아요. 걸식은 주는 대로 먹는 게 핵심이지, 음식에 뭐가 들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불교는 채식을 주로 하지만 채식주의는 아닙니다. 채식주의는 채식 외에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니까요. 주로 걸식을 하니까 대부분 채식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채식만 해야 한다고 단정지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육식을 하지 말라’ 혹은 ‘채식만 하라’ 이런 계율은 없고, ‘맛에 집착하지 말라’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한 끼만 먹어라’ 이런 계율은 없고,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 이런 계율만 있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더라도 때가 아닌 때에 먹어서는 안 돼요. 몇 끼를 먹느냐는 형식보다는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서 음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nbsp옷과 잠자리도 그렇습니다. 분소의를 입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지만 분소의가 없다면 새 옷을 입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예컨대 분소의는 열 벌뿐인데 출가한 사람이 스무 명이라면 열 명은 옷이 없어서 수행자가 못 되거나, 벌거벗고 다녀야 하거나, 새 옷을 가져와 시신을 한번 덮었다가 벗겨서 입어야 하잖아요. nbspnbspnbsp그렇게 형식적으로 할 필요는 없으니 분소의가 없을 때는 새 옷을 입어도 좋다는 겁니다. 일부러 새 옷을 입으라는 게 아니에요. 나무 아래나 동굴에서 자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비가 오거나 할 때는 사람이 없는 빈 집의 처마 밑에서 자도 좋다고 했습니다. 수행자가 밖에서 잔다는 것은 안온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잠자리가 인공적인지 여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nbspnbsp부처님은 계율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계율을 잘 지키되, 이렇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고행주의나 율법주의와 달랐어요. 계행을 안 지켜도 안 되고, 계행을 경직시켜도 안 되는 가운데 중도를 지키는 것이 부처님의 위대함이에요. 이렇게 계율에도 다 중도가 적용되어 있습니다.nbsp선정을 닦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정을 닦을 때는 욕망을 따라가도 안 되고, 욕망을 억압해도 안 되고, 다만 욕망을 욕망인 줄 알아차리라는 거예요. 따라가지는 않지만 억압하면서 안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가지 않는다는 형식에서는 고행주의와 같고 계율을 지킨 것과 같지만, 억압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고 즉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선정도 집중하거나 호흡을 관찰하거나 시신을 보며 명상하는 부정관처럼 바깥에서 보이는 형식은 다른 선정주의와 같지만 그 관점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수행에서 관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게 할 때만 자기 상태는 물론 모든 사물에 대해 있는 그대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사물이 움직이는 법칙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다른 말로 ‘바르게 사물을 알아차리고 사유한다’라고 합니다. 법칙과 이치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에 따른 사유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와 당시 다른 종교의 차이라고 볼 수 있어요.nbspnbsp그러나 불교가 종교화되는 과정에서 이런 근본불교의 수행법과 계율에 담긴 원래 가르침은 대부분 없어지고 그냥 ‘불살생’이라는 계율이나 종교의식의 형식만 남아 전해지게 되었어요. 불교의 본질 중 아주 핵심에 해당하는 10퍼센트는 잃어버리고 90퍼센트의 형식만 남으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자이나교나 불교나 비슷해져 버렸어요. 인도에서는 힌두교나 불교도 별 차이가 없어요. 같은 인도식 건물이니까 사원 모양도 비슷해 보입니다. 외국인이 보면 우리 서원이나 절이나 다 똑같은 기와지붕 건물로 보이잖아요. 자세히 보면 물론 다르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단청이 있고 없고 정도밖에 구분 못 하는 수준이에요.nbsp그래서 그런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입니다. 이미 이렇게 혼용되어버렸기에 정체성을 상당부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nbspnbsp불교는 인도의 전통 브라만교를 반대해서 일어난 가르침이었지만, 후대의 인도 불교는 시간이 흘러 민중화되는 과정에서 인도 문화를 도로 흡수하게 됩니다. 중국 불교가 중국 문화를 흡수하고 한국 불교가 한국 문화를 흡수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문화권에 있는 형식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종교화되는 과정에서는 힌두교와 큰 차이가 없어져서 수행법도 계율도 유야무야 되고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습니다.nbspnbsp소승불교라고 해서 반드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소승불교 역시 대부분 인도 문화권이기 때문이에요. 경전이나 계율 같은 것은 소승불교가 불교 중에서 제일 원칙을 지키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신도들이 신앙 생활하는 형태는 힌두교와 거의 비슷해요.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 가 보면 복식 같은 건 힌두교와 완전히 달라보일지 몰라도 신자들이 지내는 제사 의식은 거의 힌두교 문화예요. 그게 곧 인도 문화니까요. 우리 한국 불교인들이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제사지내는 것처럼, 그런 문화적인 요소는 거의 비슷합니다.nbspnbspnbsp독자적인 문화를 따로 유지하지도 못했고, 인도 내에서는 이슬람교의 침입을 받으면서 원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 길을 막아버리니까 자연히 토속신앙인 힌두교로 흡수되어 버렸어요. 조선시대에 출가를 못하게 막은 결과 오늘날 우리 한국 불교도 산신이나 칠성 운운하는 민속신앙과 융합해 비슷해져 버렸잖아요. 또 우리나라에 유교와 불교만 있을 때는 차이가 크다고 해서 유교가 불교를 탄압했는데, 훗날 기독교가 들어오니까 유교와 불교가 비슷해졌어요. 유교는 자체적인 유지를 못하고 지금은 불교 안으로 들어오다시피 해버렸습니다. 인도에서도 출가를 막고 절을 파괴해버리니까 불교가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렸어요. 힌두교는 따로 출가를 하거나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나무 밑에 가서 빌 수 있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을 다 죽이지 않는 이상은 없애려야 없앨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서양 달력을 들여와서 음력설을 없앤다 해도 농민들이 계속 지키니까 어쩔 수 없이 음력설로 돌아간 것처럼, 현재 인도에서는 불교가 힌두교 안으로 흡수되어 버렸어요.nbspnbsp정리하자면 첫 번째로는 정체성을 상실했고, 두 번째로는 외적인 탄압에 의해 다른 신앙에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인도의 불교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궁금함이 모두 해소되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부처님이 알려준 명상법은 계율과 선정, 지혜를 함께 추구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역사를 들으면서 가슴 한 켠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nbsp이렇게 수행에 대해 질문한 전반부 시간이 다 지나가고 이어서 활동과 관련해 들었던 의문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법사님, 처장님, 각 부서 국장님, 각 법당 총무님 등 정토회의 주요 간부들이 모인 자리여서 그런지 일반 법회와는 달리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nbsp후반부에 이어진 정토회 활동과 관련된 즉문즉설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30. 53,339 읽음 댓글 30개

2015.11.21 전국 대의원 회의 (입재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전국 대의원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시작하기 전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7시에 외부 손님과 평화재단에서 조찬 모임을 가진 후 8시 20분에 서울을 출발해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문경 정토수련원에서는 아침 10시부터 전국 대의원 회의가 열렸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새벽부터 출발해 문경으로 모인 100여 명의 정토회 대의원들은 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해 듣고자 기다렸습니다.nbspnbspnbsp원래는 전국 대의원 회의가 대전 정토법당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같은 시간에 가을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진행되고 있어서 법륜 스님을 비롯해 법사단이 강의를 해야 해서 이동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문경에서 회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교통사고가 났는지 고속도로가 계속 막혀서 스님은 11시가 넘어서 겨우 문경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예정된 시간 보다 30분이 늦어진 채 곧바로 입재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전국 대의원 회의 입재식nbsp매년 11월에 열리는 전국 대의원 회의는 내년도 사업 계획과 예산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회원을 정회원으로 임명하고, 정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각 지역별로 대의원을 선출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국 대의원 회의는 국회와 비유하면 정기 국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nbspnbsp지금도 정기 국회가 지난 9월부터 열려서 12월 초까지 예산 심의를 하고 있는데 여야가 서로 갈등하는 바람에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어서 국민들의 걱정이 많은 상황이죠.nbsp스님은 이런 국회의 모습을 예로 들며 국가를 위해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곧 정토회의 대의원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대의원은 어떤 자세로 활동해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전국 대의원 회의nbsp먼저 대의원은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토회는 어떤 일을 하고자 설립된 단체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발전이라는 게 전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우리는 개중에서도 특히 고속으로 발전한 나라다 보니 발전을 하면서 나타나는 ‘환경 파괴’, ‘공동체 붕괴’, ‘자아 상실’ 등의 부작용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게 심한 상태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더없이 혼란스러운 나라에 살고 있고, 좋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문제를 풀면 세계인의 문제를 푼다고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제일 모순이 심한 편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풀면 세계의 문제가 풀립니다. 진흙탕 속에서 한 송이 연꽃을 피우듯이 가장 모순과 혼란이 극심한 이곳에서 우리가 세계의 문제를 풀 답을 찾아야 해요.nbspnbspnbsp더 이상은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아서 여기에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외형의 발전은 다른 곳에서 모방해 와서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거의 끝에 도달해서 성장이 정체됐어요. 우리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모순이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모순보다 훨씬 더 극심하기 때문에, 우리가 답을 가진다면 다른 곳에 도움이 되지만 다른 곳이 가진 답은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nbspnbsp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급속도로 붕괴될 것인가? 아니면 이 두 가지 모순을 극복할 창조적인 대안을 찾아서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전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양약으로 삼을 것인가? 이것은 위기이자 기회예요. 이 위기를 극복하면 우리는 세계 문명의 새로운 꽃을 피울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nbspnbsp정토회는 이런 진단과 가능성 위에 창립되었습니다. 출발 자체가 ‘단순한 불교 단체를 하나 만들자’, ‘불교계가 어려우니 좀 잘 해보자’, ‘좀 나은 시민 단체를 하나 만들자’, ‘우리나라를 좀 잘 만들어보자’, 이런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문제의식이에요.nbspnbsp그런데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런 설립취지를 꼼꼼히 읽지 않아요. 정토회가 어떤 포부와 문제의식, 가능성에 맞춰서 운영되고 있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 어떤 것을 계승해야 하고 어떤 것을 시정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부족해서 보충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려면 목표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토회 안에서 새로운 방향, 개선점, 보충하는 역할에 대해 지도법사인 제가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시도한 이유가 ‘스님의 역량이 탁월해서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신비주의에 빠져서 결국에는 ‘스님 없으면 못 한다, 정체된다’라는 결론밖에 안 나와요. 제가 가진 역량은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부처님이 저만 사랑해서 뒤에서 영감을 주는 것도 아니에요. nbspnbspnbsp다만 저는 목표의식과 문제의식이 뚜렷한 편이라면 여러분은 그 문제의식이 덜 뚜렷하다는 점이 차이입니다. 그냥 좋으니까 따라오는 수준을 넘어 이걸 꼼꼼히 살펴서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부족하고 작은 씨앗이지만 그런 목표를 추구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또한 수용해야 합니다. 현실을 수용한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되지만, 목표만을 앞세우느라 비현실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론이나 말로만 가지 말고 이 현실에서 실현해나가야 해요.”nbsp목표의식을 뚜렷이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뚜렷한 목표의식을 어쩌면 ‘원’이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런 일을 하는 정토회 회원들은 어떤 자세로 이 활동에 임해야 하는지 수행적 태도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즉, 이런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개인은 늘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nbspnbsp“늘 강조하지만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그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모인 우리만 행복하면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는 발전해야 하고 국민은 행복해야 한다는 목표처럼, 공동체인 정토회는 발전해야 하고 그 속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은 행복해야 합니다.nbspnbspnbsp첫째, 정토회 회원들이 행복하려면 개개인이 수행이 되어야 해요. 둘째, 정토회가 발전하려면 사회적인 모순들을 우리가 해결해내야 합니다. 대안을 내야 대중이 지지를 해줍니다. 지친 대중에게 어떤 수행법을 전달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참여하면 행복한 개인들은 늘어나지만, 그들이 사는 공동체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제도적 모순과 잘못된 관습은 개선하고 좋은 것은 계승·발전시켜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실천을 피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적 실천을 하는 개인은 수행자가 돼야 합니다.nbspnbsp우리가 세상을 좋게 바꾸고 정토회를 발전시키고 법당을 늘리고 회원을 확충시키고 통일운동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힘들고 지치기 쉬워요. 가정생활도 해야 하고 회사도 다녀야 하고 정토회 활동도 해야 하다 보니 몸도 지치고 가족들의 불만도 생깁니다. 이걸 극복하는 게 바로 수행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더 힘을 얻어가는 존재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수행이에요. 아침마다 매일 절은 하지만 활동하면서 지쳐 나가떨어진다면 그건 절만 했지 수행을 한 건 아니에요. 이런저런 과제가 닥치지만 수행적 관점을 딱 유지하고 해나간다면 내가 거기에 구애받지 않는 자가 되거나 그것들이 융합돼서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장애로 남아 있더라도 내가 거기에 쓰러지지 않고 넘어설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그것들이 융합되어서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토대가 되어줍니다. 반대하는 남편에게 내가 억눌리는 게 아니라 구애받지 않는 존재가 되고, 나아가서는 반대하던 남편이나 자식이 오히려 나의 협력자, 후원자, 동지가 되는 과정을 거쳐나가는데 그 핵심이 수행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관점을 확실히 잡아서 행복해야 합니다.nbspnbspnbsp내일 하다 그만두든, 내일 죽든,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이 일이 더 보람차고 의미가 있어야 해요. 붓다의 길을 따르다가 중간에 희생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목련존자도 이교도들에게 희생됐고, 앙굴리말라도 희생됐고, 병이 나서 중간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어요. 경전을 보면 그렇게 마지막을 맞는 제자들이 부처님의 손을 잡으면서 한결같이 한 이야기가 ‘부처님, 저는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였습니다.”nbsp불법을 전하면서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지만 죽는 순간까지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는 부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작은 일에도 대가를 바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많이 되돌아봐 졌습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은 이런 수행의 힘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 나라가 처한 분단의 모순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그 모델을 토대로 인류의 위기도 극복해 나가보자는 큰 비전을 그려주었습니다.nbspnbsp“우리는 이런 수행의 힘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 즉 우리나라가 처한 분단의 모순과 통일의 과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처한 절대빈곤의 문제, 온갖 차별의 문제, 인권 문제, 평화 문제, 환경 문제, 빈부격차의 문제 등을 해결할 모델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건 아니지만 모델을 만들자는 거예요. 좁게는 우리 정토회가 운영되는 이 방식이 작은 모델입니다. 이것이 실험실의 모델이라면 밖에 가서 실천가능한지를 봐야 해요. 정토회는 운전 교습소에서 하는 연습과 같다면 사회적 실천은 도로주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저는 그런 실천 모델이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는지 적용해보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만 잘 되면 된다’는 애국주의나 ‘우리는 민족과 나라를 초월했기 때문에 나라 일에는 관심을 안 갖는다’는 초월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인연되어 살고 있는 이 나라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는 겁니다. 과연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지, 평화를 유지해낼 수 있는지, 극단의 모순을 우리가 얼마나 해결해낼 수 있는지 조금 더 큰 실험을 해보는 거예요.nbspnbsp정토회는 우리끼리 하니까 조금 힘들어도 우리가 만들어 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온실에서 실험한 것은 밖의 노지에 나가서 실제로 농사를 지어보고 성공해야 농민들에게 널리 보급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좀 더 큰 실험을 해 봐야 인류에게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모델이 돼요. 그래서 우리가 대한민국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여기 났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저 제 나라만 사랑하는 애국심이 아니라 우리가 전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모델로 이 나라를 잘 만들어보자는 거예요.nbspnbsp정토회의 설립취지는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입니다. 불교중흥이라는 것은 정토회가 새로운 불교의 모델이 되자는 뜻이고, 민족중흥이라는 것은 단순히 국수주의적인 애국주의를 넘어서서 우리나라를 이런 모순을 극복할 모델로 만들어보자는 뜻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실험을 기반으로 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이것을 좀 더 보편화시켜서 인류애를 실현하는 쪽으로 확산시켜보자는 거예요. 이것이 제1차 만일결사의 목표이고, 인류애를 실현해보는 것이 제2차 만일결사의 목표입니다. 그런 큰 목표 속에서 지금 제8차 천일결사에 다다랐고, 그 8차 천일결사의 목표를 달성하고 마무리하는 내년도의 사업계획이 있습니다.”nbsp대한민국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 곧 인류 문명의 새로운 대안이 된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 스님은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이 일을 하고 해나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런 큰 목표를 실행해 나가기 위한 대의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첫째, 대의원 회의는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의사를 결정하는 기구입니다. 행정처가 결정된 의사를 집행하는 기능을 한다면 여러분은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능을 해야 해요.nbspnbspnbsp둘째, 대중의 의견을 수렴만 한다면 민주주의가 갖는 최대의 위기인 대중 추수주의, 즉 세상을 바꿔가는 게 아니라 세상에 따라가는 쪽으로 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다시 그 회원들이 정토회의 목표를 끊임없이 숙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물론 연수원에서 중점적으로 해야 하지만 여러분도 그런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해요. 회의할 때도 내 의견을 갖고 하기보다는 민주적으로 대중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줘야 합니다. 또한 대중이 정토회의 이상과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가도록 돕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행정부가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면 여러분은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이런 두 가지 역할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nbspnbsp셋째, 정토회 안에서는 앞에서 방향을 잡아가는 역할, 그래서 사업계획을 심의하고 결정해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또 한 해를 마치면 결산을 하고 일이 제대로 됐는지 평가를 해야 돼요. 아직 감사 기능이 제대로 없는데 앞으로 중간 과정에 감사 기능을 추가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획 수립을 승인해주고, 중간에 제대로 되는지 감사 기능을 해주고, 결과가 나오면 결산을 해주고요. 결산은 사업결산 뿐 아니라 예산결산도 해줘야 합니다.nbspnbsp이런 관점에서 지금 당장의 현안 처리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것 역시 연습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좋은 일이어야 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해야 합니다. 과정을 좀 잘 못하더라도 결과가 좋을 수도 있어요. 독재를 해서라도 세상에 좋은 일을 만들어낼 수도 있잖아요. 그럴려면 성인 군자가 정치를 해야 할 텐데, 우리는 그런 성인 군자가 아니고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모여서 일한 결과가 부처님이 하시는 일처럼 되는 거예요. 부족한 우리들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최종 의결기구가 바로 대의원회입니다. 그래서 정토회가 하는 일은 그 과정도 모범적이어야 하고, 또는 모델이 될 만해야 해요.nbspnbsp그런데 지역에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정에는 아직 일방통행이 많은 것 같아요. 사업을 추진해야 하다 보니 효율성이라는 문제와 과정의 민주성이라는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아요. 상층은 그래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 같아요. 법사단 회의는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대의원 대회도 어느 정도 그렇고, 집행위도 거의 민주적으로 진행되고요. 그런데 법당 수준으로 내려가면 거의 독재 수준입니다. 의견 수렴도 잘 안 되고, 집행도 상명하달식이이에요. 수행의 과제인 ‘예 하고 합니다’가 행정 집행의 명심문으로 쓰여서 뭔가 문제제기를 할라치면 ‘명심문이 뭐라고요?’ 이렇게 하면서 밀어붙인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어요. nbspnbspnbsp그렇다고 의견을 다 수렴해주는 쪽으로 하다보면 집행이 안 되죠. 목표가 있어서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하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데, 대의원들이 이제는 법당 단위에서도 어떻게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집행부가 문제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풀라는 게 아니에요. 민주적으로 하면서도 집행이 일사불란한 길을 찾아야죠. 이게 모순이에요. 민주적으로 하려면 집행이 어렵거든요. 집행을 잘 하려면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전제적인 방식이 효율적이에요. 중국은 전제적인 방식을 따라서 집행은 잘 되지만 민주주의가 잘 안 되고, 미국은 민주적인 건 잘 되지만 그러다보니 포퓰리즘에 빠져서 효율적이지 못하고 나눠먹기식이 됐어요. 그래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 만든 베르그루엔 거버넌스 연구소에서는 동양식 정치의 전통, 즉 유교적 정치의 전통인 전제 정치 혹은 왕도 정치와 서양에서 전통으로 내려온 민주 정치를 서로 어떻게 보완·융합해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마련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그 사람보다 이걸 먼저 고민한 거예요. nbspnbsp정토회가 창립되기 전에 ‘서원과 연대’라고 하는 잡지를 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서원’이라는 것은 개인이 철저하게 수행을 해서 우리가 먼저 행복한 사람이 되면서 이 땅을 정토화하는 실천을 하자는 것을 말합니다. ‘연대’라는 것은 그것을 상호 민주적으로 하자는 것을 말합니다. 민주적으로 운영하되 수행자이기 때문에 일사불란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제도적으로 밀어붙이거나 강압에 의한 일사불란함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합니다’ 하면 ‘네’ 하고 받아들여서 일사불란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나 회의를 할 때는 민주적으로 연대하고요. 이런 ‘서원과 연대’라는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에 대한 초보적인 문제의식이었어요. 정토회는 처음부터 그런 입장과 목표를 두고 창립되었습니다.”nbsp정토회를 창립하기 전부터 효율성과 민주성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졌었다는 이야기에 모두 감탄을 하면서 지금의 현실도 함께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가 창립된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 그 실험은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입재 법문을 마치면서 스님은 이 모순을 극복하는 길은 바로 개개인들이 수행자적 관점을 확실히 갖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런 토대 위에서 효율성과 민주성을 어떻게 융합해 내느냐가 우리의 과제입니다. 쉽지는 않겠지요. 쉬우면 다른 데서 이미 다 했을 테니까요.nbspnbsp제가 보기에 이 일은 수행자라는 관점만 확실히 가지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수행자적 관점을 갖지 않으면 어떤 질서를 만들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부담이 되고 억압이 됩니다. 그러면 괴로워지니까 수행의 본분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발생해요. 행복하려고 여기 왔는데 다시 괴로워지고,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 여기 왔는데 더 힘들어져버려요. 그래서 우리가 수행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대승보살의 수행적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명상하고 절하는 것만 수행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런 과제를 수행으로 돌려서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한다는 수행적 관점을 가질 때에만 우리의 이런 이상을 실현할 최소한의 모델이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의 꽃을 피우는 건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그럴려면 우리가 우리 시대에 그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워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nbspnbsp수행적 관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왜 스님이 항상 수행을 강조하는지 더 큰 시각에서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입재 법문을 듣고 있는 대의원들의 눈빛은 반짝 반짝 빛이 났습니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는 공감의 뜻과 실천에 대한 의지가 가득 묻어 났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그려주는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삼으며 마냥 설레여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목표, 대의원의 역할에 대해 자각하는 시간을 가진 후 대의원들은 내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습니다. 분과별로 흩어져서 꼼꼼히 검토를 해보고 같이 토론도 해보는 등 다양한 문제점과 가능성을 발견하며 함께 의견을 모아 나갔습니다. nbspnbspnbsp대의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사이에 스님은 집무실에 머물며 오후 내내 새책 원고 집필 작업을 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경전반 특강수련 참가자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오후에는 전국 대의원 회의를 마치며 회향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야단법석을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14만 킬로미터의 여정에서 만난 2만 2천여 명 세계인과의 행복한 대화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nbspnbsp지금 구매하기nbsp

2015.11.22. 34,766 읽음 댓글 32개

2015.9.26 해외 정토행자대회 3일째 (회향식)

nbsp오늘은 해외 정토행자대회 회향식 날입니다. 새벽 물안개가 피어나는 호숫가 대강당에서 스님은 새벽 예불을 하기 전에 아무도 없는 깜깜한 대강당에 먼저 와서 명상을 시작하였습니다.nbspnbspnbsp4시 20분이 되자 행자들이 수련장에 도착하자 스님은 행자들과 함께 새벽 30분 명상을 더 하고 천일결사 기도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새벽기도 후에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스님은 일정을 조정하여 전날 저녁 즉문즉설 활동편 시간에 해소되지 못한 의문들에 대해 1시간 30분 동안 법문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 그리고 모둠활동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점심식사 후에는 모둠별 소감나누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정토행자대회 기간 동안 행자들이 느꼈던 소감과 향후 비전에 대한 발표를 경청한 스님은 이어진 회향식에서 회향 법문을 하며 지난 주 토요일 명상수련부터 시작된 8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nbspnbsp활동과 관련한 법문에서는 해외 정토행자들이 한국 정토회에서 시행되는 갖가지 정책들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 대한 내용과 해외의 특수성이 반영된 건의에 대한 답변도 있었고, 2차 만일을 준비하는 전법자의 역할에 대한 당부 말씀도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그러면서 정토회의 의사 결정은 반드시 공식적 통로를 통해서 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해외를 방문하는 동안 스님과 논의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공식 논의절차를 거쳐야 최종 결정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건의가 있을 때는 담당자, 팀장, 총무, 지구장, 지부사무국장에서 행정처장에게로까지 이어지는 결재라인을 따르고, 그래도 반영이 되지 않을 때에는 대의원회에 건의하고, 필요할 때는 법사에게 수행적 관점에 대한 상담 형식으로도 문제제기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계통을 밟지 않아 생길 수 있는 혼선을 정리해주었습니다. nbsp nbspnbsp또한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설명도 하였습니다. 팀이 구성되면 반드시 회의를 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이때 ‘삼의제’ nbsp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삼의제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의사결정 방식으로 만장일치가 안 될 경우는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때 찬성하지 않은 3분의1 소수자들에게 설명의 기회를 주고 다시 전체 표결을 하는 과정을 3번 반복하며,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3번째에도 의결이 되지 않을 경우 소수는 반드시 자신의 의견을 철회해서 만장일치로 죄종 결정을 하는데 이는 nbsp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 대중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nbsp정토불교대학 운영과 관련해서는 현재 개강 정족수인 5명 충당이 쉽지 않은 해외 지역의 현실을 감안하여 3명으로 줄이자는 의견, 봄과 가을 정기 개강일 만이 아니라 정족수만 되면 개강하는 수시개강과 수시입학 제도의 도입, 유투브에 있는 스님의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관련 법문이 학생 모집에 장애가 되고 있으니 빨리 내려달라는 요구 등이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번 대회에 2명이 참석한 하와이 열린법회 회원들의 하와이 지역 스님 강연에 대한 건의, 해외 정토법당이나 수련장의 외부 대여 문제, 열린법회에서 보시금을 받는 문제, 정토회원 간 상거래 문제 등에 대해 사례를 들려주며 답변을 해주었고, 또 정토회에서 천도재를 지내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종교의 진리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을 언급하며 문화적 측면으로서의 천도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문화적 요소가 지나쳐 허례허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아도화상의 신라 최초의 전법과 원불교의 초기 전법을 사례로 들어 정토회원 개개인의 삶이 모범이 되는, 밑으로부터의 전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경상도 지역은 이차돈의 순교 등 처음 전법 과정에서 시련을 겪고 밑으로부터 전파되었기 때문에 불교의 뿌리가 깊은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역사의 인연과보를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또한 신비주의와 개인수행에 머물러 있는 미국 불교의 현수준에서 믿음, 교화, 수행,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전법의 발전단계를 언급하며 앞으로 미국과 유럽의 경우 실천불교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전법에 대한 희망을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준 듯 해서 안쓰러운 마음도 있지만 해외의 정토행자들은 교화의 선각자로써 눈은 항상 멀리 보고 발은 현실에 붙인 채 민들레 홀씨가 되어 불법을 전파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nbspnbsp공양팀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공양을 먹고 회향식에 참석한 스님은 오전에 진행된 전체 소감 나누기와 정토행자의 비전에 대한 모둠별 발표내용을 흐뭇하게 듣고 회향 법문을 시작하며 부처님의 전법선언을 먼저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너희들도 해탈을 얻었다. 자, 이제 전법의 길을 떠나거라. 사람들과 신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처음도 중간도 끝도 조리있게 법을 설하거라.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고 한사람씩 홀로 가거라.”nbspnbsp그리고 나서 이렇게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전통적으로 사람들은 늘 신과 인간에게 매여 있었습니다. 권위, 부, 명예 등 형이하학적 물질적 요소가 인간세계이고, 죽어서 극락이나 지옥에 간다는 형이상학적 요소가 신들의 세계인데, 부처님은 이런 신과 인간의 모든 집착과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탈과 열반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의식을 잊지않고 세상 사람과 신까지 포용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고 꾸준히 수행해 나간다면 시절 인연이 도래하여 저절로 전법의 꽃이 필 것입니다.nbspnbsp우리는 완전을 향해 나아가지만 개개인은 지금 불완전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정토행자들이 100명, 1000명 모여서 하는 정토회의 일은 세상에 유의미한 일을 하므로 비교적 완전에 가까와지고 있어 붓다의 인격을 닮은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갑니다. 그래서 환경, 평화, 통일 운동 등을 하는 정토회 공동체는 그 규모에 비해 세상의 높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nbspnbsp모자이크 붓다들이 이루어내는 좋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일을 하는 과정도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좋은 일은 독재자도 재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과정과 방식도 세상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대의원제를 도입한 것이고, 법사단은 행정 업무에서 손을 떼고 수행지도에 전념케 한 것입니다.nbspnbsp또한 과정이 모범적일지라도 그 과정에 서 있는 개개인이 행복해야 힘이 들어도 후회가 없게 됩니다. 즉, 모자이크 붓다의 길은 개인은 행복하고 과정은 민주적이며 결과는 세상에 이익이 되어서 개인, 과정, 결과가 다 좋아야 합니다.nbspnbspnbsp현재 정토행자들을 보면 결과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하지만 개인의 행복 부분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과정도 민주적 시스템은 갖추었으나 제대로 가동을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항상 수행을 기초로 하여 자신을 가다듬어 갈 때 자신이 행복하며 이것이 전법의 가장 탄탄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장점은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쪽으로 정토회의 활동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할 뿐이며 그 성과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의 공덕으로 인한 것입니다. 개인 정진을 꾸준히 하며 길게 보고 천천히 갑시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nbspnbsp스님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하며 전법을 해나가야 하는지를 강조하면서 1차 만일결사를 통해 지난 30여년간 한국에서 결실을 맺어오고 있는 것처럼 이제 2차 만일결사는 세계 전법을 해야 하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해외 정토행자들은 2차 만일결사의 주역으로써 필요한 일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꾸준히 ‘다만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이후 모든 일정을 마치고 스님은 법사님들과 함께 각 지부별로 참석한 정토행자들과 기념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 독일에서 온 정토행자들과 함께 기념촬영nbspnbsp스님은 해외 정토행자대회를 마치고 유럽과 미주 각 지역으로 돌아가는 정토행자들과 일일이 악수로 인사를 나누고 뉴저지법당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nbsp뉴저지법당에는 오랜만에 스님의 속가 형님이 찾아와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과 인생 수업 책을 선물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nbspnbsp뉴저지정토법당 불교대학 학생들이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를 한 후 법사단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주관한 뉴욕정토회 회원들과 함께 마음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며 발생한 모든 애로사항과 마음나누기, 행사에 대한 평가를 들으며 다음 명상수련의 개최 가능성도 검토했습니다.nbspnbspnbsp밤 10시경 행사를 주관한 뉴욕정토회의 활동가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는 무변심 법사님과 함께 해외지부 사무국의 팀장들과 밤늦게까지 다시 미진한 회의를 더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이번에 건의되었던 내용들을 취합해 안건으로 정리하여 행정처로 올리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해외지부 사무국 활동가들은 독일 베를린, 뒤셀도르프, 뉴욕, LA, 워싱턴DC, 오하이오, 데이톤 등 모두 따로따로 떨어져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회의하기도 힘들고 모이기도 어려운데, 열심히 해외 지역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하면서 그동안 고생많았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또 내일 일정이 있으니 거의 12시가 되어서 회의를 마무리하고 스님은 숙소로 가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2015.09.28. 31,177 읽음 댓글 33개

2014.10.1 세계 100회 강연(37) 프린스턴 대학 :: 외국인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후에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7번째 강연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열리고, 저녁에는 38번째 강연이 뉴욕 맨하튼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열리는 날입니다.nbsp먼저 외국인을 대상으로 동시통역을 통해 진행된 프린스턴 대학에서의 강연 소식을 전합니다.nbsp스님께서는 미국에서는 북한관련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워싱턴DC를 방문하기 시작하여 북한 난민의 상황, 북한의 식량난 사정을 알리며 국제 사회에 대대적인 북한의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였습니다. 이후 북한난민문제와 식량문제가 단순한 지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 와 관련한 정치적인 사안들과 얽혀 있음을 보시고, 우선 국제사회에 북한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2004년부터 북한 소식지인 ‘오늘의 북한소식’ 도 발행하셨습니다. 그런 배경으로 북한 전문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nbsp아울러 2012년에는 스님께서 지금까지 해오신 한반도 평화와 통일, 북한인도적지원, 난민지원사업 등에 대해서 뉴욕타임즈에 인터뷰 기사가 소개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는 2013년 9월 스님을 초청하여 북한 관련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올해 첫 외국인 강연의 테이프를 이곳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nbsplt프린스턴 대학교gt프린스턴 대학교는 미감리교재단에서 설립한 학교로서 뉴저지주 남부 프린스턴이라고 하는 전원 도시에 위치해 있으며,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이며 프린스턴시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또한 하버드 대학, 윌리엄 앤 메리 대학, 예일 대학 다음으로 미국에서 네번째 가는 고등교육기관입니다.nbsp오늘은 이동시간이 5시간 이상이 되고 12시부터 미팅과 강연이 있기 때문에 오전 4시에 기상하여 5시에 시라큐스에서 프린스턴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어제 행사전체를 맡고, 숙소를 제공한 이희승법우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음에 또 보자고 하며 저희는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프린스턴으로 가는 도중에 최말순 보살님께서 아침을 지어오신 것을 가지고 차안에서 간단히 아침공양을 하였습니다. 5시간을 예상하였으나 6시간 걸려서 11시경에 프린스턴에 도착하여 스님께서는 원고를 검토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니 뉴욕정토회의 차효순대표님과 이정인 총무님께서 스님께 올릴 점심식사를 준비해오셔서 스님께서는 간단히 강연전에 식사를 하였습니다.nbsp이어서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에서 오늘 프린스턴대학교 강연의 총책임을 맡은 김지현님과 민덕홍님이 오셔서 반갑게 스님께 인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차효순대표님, 이정인 총무님, 김지현님과 프린스턴 대학교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nbsplt김지현님, 차효순 대표님, 이정인 총무님gt조금 시간이 있어서 스님께서는 학교안으로 걸어가자고 하셔서 학교쪽으로 걸어가니 오늘 스님 통역을 맡은 제이슨 림이 워싱턴디시에서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nbsplt자원봉사로 동시 통역을 맡아준 Jason Limgt함께 오늘 미팅 장소로 걸어가니 스님을 초청한 Matt Weigner 박사가 반갑게 나와서 인사를 하였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프린스턴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하며 동료교수를 스님께 소개하였습니다.nbsp외국인 대상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Matt 박사가 소규모 미팅을 주선하였는데,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학생들과 함께 참여불교 국제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청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Matt 박사는 “스님께서 하시는 활동이 어떤 참여불교 학자보다도 많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님의 활동과 경험을 이들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스님께 부탁했습니다. 6명의 학생들과 약 25분 동안 짧은 미팅을 하였는데 스님께서 8월26일부터 매일 한 도시를 이동하면서 강연을 하고 유럽을 거쳐 북미에 와서 오늘이 38번째의 도시에서 nbsp강연하는 날이라고 하니 다들 매우 놀라워하였습니다. 비행기를 자주 타고 다닐텐데 비행기를 타면서 어떻게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시는지에 대해 가볍게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nbsp학생들은 어떤 사람들이 스님의 강연에 주로 참여하고 있는지, 고대 철학이 불교 사상과 비슷한 면이 많은데 고대철학을 강연할 때 인용하는지, 고통 속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자비를 베풀면서도 우리 자신도 상처를 입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승려로서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셨는데 어떤 믿음과 철학을 가지고 참여 하셨는지, 불교 수행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가족 관계를 어떻게 놓을 수 있는지, 자신에게 집중하다보면 주변에 소홀하게 되고 주변의 고통을 덜어주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소홀하게 되는데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지금 하시는 일이 평생 동안 결실을 못 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등 7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간단 명료하게 핵심만 짚어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Matt 박사와 학생들은 스님께서 이렇게 시간을 내어주심에 감사해 하면서 기념촬영을 하였고, 스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는 것으로 그들의 감사함을 표하였습니다. Matt 박사는 즉문즉설 보다는 이 미팅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짧은 미팅을 하고 그 옆 건물에 마련된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12시가 되어서 행사장에 도착하니 뉴저지 정토법당의 이영숙 총무님과 신도님들이 오늘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와 계셔서 반갑게 스님일행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영문으로 된 스님의 소개 영상이 나오고 12시 45분부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인사를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점심시간인데 식사는 하셨는지요? 우리 몸을 위해서는 매일 이렇게 세끼 밥을 먹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합니까? 오늘은 우리 마음의 행복을 위한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주제에 제한 없이 nbsp어떤 문제든지 개인 문제든 사회 문제든 종교 문제든 과학 문제든 인간 문제든 자연 문제든 그냥 자유롭게 대화를 합시다. 누구든지 나와서 먼저 주제를 던져주세요. 그 주제에 따라 얘기를 나누겠습니다.”nbsp작년에는 외국인들의 관심사가 북한 문제에 많이 쏠려 있어 북한 문제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오늘은 또 어떤 문제에 대해 외국인들이 궁금해 할지 기대가 되었습니다.nbsp작년에는 작은 공간에 7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장소가 좁았던 관계로 올해는 비교적 넓은 장소로 강연장을 정했는데 점심 시간이라 작년에 비해서 적은 숫자인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15분 동안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제이슨씨의 정확하고 빠른 통역 덕분에 아주 속도감 있게 영문판 즉문즉설이 이뤄졌습니다. nbspnbspnbspnbsp총 12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종교는 사람들을 화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종교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 같다며 스님의 생각을 묻는 분, 환경 위기를 겪고 있는 서구 사회에 불교는 소중한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스님의 환경 실천 활동에 대한 생각을 묻는 분,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회구조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여기에서 연기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궁금해 하는 분, 스님은 왜 스님이 되셨는지 묻는 분, nbsp세상에는 우리가 선택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묻는 분, 선문답을 인용하며 한 손으로 박수를 치면 무슨 소리가 나는지 묻는 분, 세월호 nbsp사건의 근본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기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시는지 묻는 분,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고 이것이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이야기하는 언론들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분, nbsp홍콩에서 일어나는 저항 운동에 대해 그들이 옳은지, 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는 분, 불교에서는 존재의 이유가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nbsp왜 깨달음이 우리 삶의 목표인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그 중에서 명상이 평화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던 내용과 지금 여기 깨어있음에 대해 물었던 내용,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모두 동시 통역으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평화 운동도 하고 있으시고 명상도 하고 있으신데, 명상이 스님께서 평화 운동을 하시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요? 스님께서는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통합이 된다고 보십니까? 우리 삶에서는 어떻게 명상을 통해 평화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nbsp“자신의 마음속에 화가 나 있다면 다른 것들에 대해서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면 행위가 파괴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화를 내서 평화 문제를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마음을 평화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 하에서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되면 이것은 개선하는 에너지가 됩니다.nbsp마음을 평화롭게 갖는 것이 명상의 핵심입니다. 명상에는 3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첫째, 어떤 긴장도 하지 않고 먼저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한다든지, 자신의 감각에 집중한다든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세 번째는 집중된 그 상태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즉 알아차림이 유지되어야 합니다.nbspnbsp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호흡을 갖고 명상을 한다고 할 때 먼저 몸과 마음의 모든 긴장을 풉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마음을 코끝에 집중해서 자기가 호흡하고 있는 줄을 먼저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매 순간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호흡을 하고 있는지도 잊고 지냅니다. 조금만 집중하면 ‘아, 내가 호흡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숨이 들어갈 때는 ‘들어가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나올 때는 ‘숨이 나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가쁘면 ‘숨이 가쁘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부드러우면 ‘숨이 부드럽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어떻게 호흡하느냐가 아니고 다만 자연 상태의 호흡을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뚜렷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꾸 머리속에서 지나간 과거의 생각이 떠오르고, 아니면 미래의 어떤 구상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래서 마음을 그리로 뺏겨 버리면 호흡을 놓쳐 버립니다.nbsp그래서 지나간 과거에도 연연하지 말고, 오지 않는 미래도 내려놓고, 오직 지금 여기, ‘호흡’에 집중해서 호흡의 상태를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 호흡이 더 부드러워집니다. 호흡이 부드러워지면 알아차림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게 되죠. 그러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더 안정이 되고, 그러면 다시 호흡을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호흡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상승작용으로 계속 나아가면 호흡이 아주 부드러운 상태가 되고, 그러면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올 때의 온도 차이도 느껴지고, 숨이 들어가고 나오면서 흔드는 코털의 감각까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모든 미세한 상태에 대해 뚜렷하게 깨어있음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일 때 평화운동은 평화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화를 내어서 평화운동을 하면 평화란 이름으로 싸우게 됩니다.”nbsp질문한 외국인 학생은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다는 듯 “Thank you” 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외국인은 “지금 여기 깨어있음”에 대해 질문했습니다.nbsp“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사람이 지금, 여기에 고통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지금, 여기”에 깨어있을 수 있나요?”“육체적 고통 말고는 현재의 고는 없습니다. 괴롭다 할 때는 이미 자신의 의식이 어떤 과거의 기억으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되고 불안할 때는 자신의 의식이 미래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상태에 깨어 있으면 고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적 통증은 그대로 있습니다. 육체적 통증은 생물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정신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육체적 통증이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줍니다. 통증이 곧 정신적 괴로움이 된다든지, 그것 때문에 분노한다든지, 후회한다든지, 이런 것은 다 정신적인 문제입니다.nbsp그러나 이 정신적인 문제는 현재에 집중하면 다 사라집니다. 육체적 통증까지 사라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에 집중하면 육체적 통증을 통증으로만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증을 싫어하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면 좋아하고 싫어하기 이전의 상태로, 다만 통증으로만 느낄 수 있습니다.” nbspnbsp점심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을 활용하여 통역으로 강연을 하다 보니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보다는 자기 고민에 대한 간절함 측면에서는 조금 비교가 되었지만, 1시간 25분동안 12명의 학생들이 자신의 궁금함을 해결하고 기쁨을 느끼고 갔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늘 질문자들 대부분이 주로 불교 교리나 불교 실천 등에 대해서 질문했다는 점과 한국계 2세처럼 보인 학생들은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는 점, 중국계로 보이는 학생은 홍콩에서 일어난 저항운동에 대해서도 질문한 점이었습니다. 이민계들은 그들의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결코 무관심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음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nbsp마지막 답변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주문하며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괜찮은 시간이었습니까? 아직은 불교에 대해서 그냥 하나의 동양 종교로만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약간 신비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깨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들이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챤이면서도 불교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다 깨닫는 게 아닙니다.nbsp예수님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유대 민족만이 믿었던 배타된 하나님을 인류의 보편적인 하나님으로 바꾸신 분입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징벌을 하는 하나님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거기에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사고로서는 그렇게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nbspnbsp우리도 이제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이냐? 전 인류가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면 지구의 종말은 멀지 않았습니다. 이 소비주의는 지속 가능한 문명이 아닙니다. 이제 변화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행복인가. 진지한 질문이 던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6시에 맨하튼에서 다음 강연이 있어서 서둘러 인사를 하고 다음 강연장으로 출발하려고 하니 질문한 학생들이 스님께 다가와 질문에 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초청한 매튜 박사는 스님과의 질의응답이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내년에 다시 스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교정에는 가을이 흠뻑 젖어 있는 가운데 10월말에 이 학교에 달라이 라마가 초청된다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매튜 박사가 달라이 라마 성하도 10월말에 초청하였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이번 스님 세계 100회 강연중 외국인 대상 즉문즉설 강연은 총 8회 진행되는데 외국인 즉문즉설 강연의 전체 총괄은 워싱턴의 김지현님이 하게 됩니다. 해당학교와 단체와 같이 지역총괄을 맡아서 지역별로 진행하는 담당자가 있지만 프린스턴 강연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Matt 박사가 스님을 초청하였고, 또한 워싱턴에서 3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김지현님과 민덕홍님이 직접 운전을 하고 프린스턴으로 와서 Matt 박사와 함께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강연을 끝내고 다시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으로 돌아가는 김지현님과 민덕홍님께 다음주 월요일에 워싱턴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서둘러 맨하튼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nbspnbsplt프린스턴 대학교 교정에 붙어있는 스님 강연 포스터를 보고 반가워하는 김지현님gt오늘 저녁에는 뉴욕 맨하튼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38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오늘 강연은 낮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저녁에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연속으로 진행되니 각각 나누어서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녁에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0.02. 37,041 읽음 댓글 3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