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집착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디고 저는 듣고 이해했습니다.
불법을 제 삶에 적용하여 일어나는 마음을 잘 살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6-02-13 22:53:25
장우
스님
지금 똑같은 이법문을 여러번보고있습니다.
법문을 열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것은
아마도 내마음의 중심이 어디있냐에
따라서 다른것 같습니다.
어제는 새냄비를 수도없이 닦았습니다.
연마제를 제거하기위해
닦고 또 닦고 반복작업을
수도없이했습니다.
제. 마음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계속 닦겠습니다.
2026-02-13 20:42:44
지명화
고맙습니다
2026-02-13 10:45:34
CACTUS
카르마에 대해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네요. 자신의 생각에 따라 고 와 락이 바뀜을 잊어버리고 습관대로 사는 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26-02-11 23:15:03
Anagarika
그러므로 ”니르바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해져서는 안됩니다.
깨달은 분들은 ’갈애가 남아있지 않아 더 이상의 태어남이 없다고 분명하게 안다‘ 라는 특징이 있다고 붓다 자신께서도, 그 뒤를 이은 모든 제자들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불나무법나무승.
2026-02-11 19:17:47
Anagarika
4. 그렇다면 스님의 물음에 대신 대답해보겠습니다. 연기법이 진실이라면 지구의 인구가 모두 사라져도, 죽은 그들에게 갈애가 남아있다면 어딘가에서 무명과 갈애를 원인으로, 의식을 씨앗으로, 업이라는 밭에, 갈애라는 수분으로, 태어남이라는 고통이 ‘일어납니다‘. 이는 아트만적 영원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부수는 것을 붓다께선 가르치신 것입니다.
2026-02-11 18:49:07
Anagarika
3. 연기법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없지만 괴로움은 있다고. 무명이라는, 형성이라는, 의식이라는... 태어남이라는,늙음이라는,병듦이라는,죽음이라는 고통이 분명히 있고, 그 원인이 있고, 그 소멸이 있고, 그 소멸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2026-02-11 18:35:33
Anagarika
2. 연기법에 의하면 스님의 말씀대로 고락윤회역시 틀리지 않습니다만, 매우 좁은해석입니다.
연기법은 사성제에 의해 해석될 때 분명해집니다.
태어남을 괴로움이라고 아는 것, 태어남의 원인을 버리는 것, 태어남의 소멸을 실현하는것, 태어남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붓다는 늘 고통과 고통에 소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