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소식

인도로 간 사나이 - 박명주 편

 

젊은 친구들이면 한 명쯤 가지고 있다는 인터넷사이트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로그인 하니 쪽지가 도착해 있었다. 인도에 간 명주였다.

 

‘누나 나 인도 잘 도착했다. 음악 좀 사줘. 김형중의 바보처럼’

 

짧은 메세지가 참 반가웠다.

짜식, 인도에서 여자친구가 보고 싶은가 보군.

도토리 다섯 개를 바꾸어 음악을 사서 보냈다.

노랫말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었다.ㅋ

명주는 인도에 가기 얼마 전에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다.

그래서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고 했다.

 


올해 나이 스물 셋,

용인대 태권도 학과를 졸업하고

1년간 인도로 태권도를 가르치러 간 사나이 박명주.

오늘은 명주 이야기를 나눠보아야겠다.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태권도 사범들과 함께



명주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출판국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때는 서초동 정토회관 2층 출판국 옆 공간이 명주의 방이었다.

출판국에 드나들면 으레 거치는 그 공간은 모두에게 열린 곳이었다.

스물한살 남자, 사생활이 많을 때였다.

그래서 그곳을 거칠 때면 명주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게다가 그때 내가 돈이 좀 있어보였는지 걸핏하면 먹을 것 사달라,

내가 신던 나이키 운동화 달라, 핸드폰 바꾸자 떼를 썼다.

툭툭 장난을 걸고, 짜증도 내고 그랬었다. 쬐그만 게 깡패같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관심의 표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친구가 사선을 넘어 북한에서 왔고,

명송이와 형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참 많은 힘듦을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한편,

명주를 통해서 북한에 대해, 통일에 대해 조금 가깝게 생각하게 되었다. 

명주는 춤추는 것, 음악듣는 것, 노래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대부분 새터민들도 그랬다. 다를 것 하나없는 한 민족이었다.


3년 넘게 얼굴을 보아온 까닭에 나는 그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지난 2월 인도에 가기 하루 전날 만나 밥을 사준다고 했는데,

명주에 하고 나눌 공통의 관심사가 거의 없었다.

우리가 사람을 안다고 할 때 얼마나 아는 것일까?

난 참 모르면서 아는척을 잘 해왔던 것 같다.

 

출국 하루 전날이라 만날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밥을 사주는 것을 영광인줄 알란다.

핸드폰을 1년간 장기 정지하려면 몇가지 서류를 대리점에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명주는 그런 절차가 어렵게 느껴지나보다, 함께 가자고 했다.

 

 

정묘향 : 정신없지?


명주 : 정신있는데.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 인도에서 1년간 있는데 준비물이 뭐야?


준비 다 끝났어. 도복, 니트하고 내 몸이지. 내 몸이 준비물인데 뭐.

태권도 가르쳐주려면 내 몸밖에 필요없어.


1년이나 가는데 뭐 계획 같은 거 없어? 간단하게 얘기해줘

 

계획? 내 머릿속에 다 있어. 근데 간단하게 얘기 못해.


그럼 복잡하게 이야기해봐


아씨, 왜 그런 걸 묻고 그래... (이게 명주의 화법이다. 그러곤 이야기한다.)

먼저 정신교육이 필요해. 애들 말 잘 듣게 하는 거지.

내가 사범이니까 내 말을 잘 듣게 해야지. 내 말을 안 들으면 걔들도 배우는 목적이 없어.


1년 다녀와서 뭐할거야?


그건 차차 생각할거니까 그렇게 어려운 것까지 물어보면 안 돼.


핸드폰 일을 처리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인도에 가면 못 먹을 것 같다며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해서 가는 길에 녹음기를 틀었다. 퉁명스런 대답들. 명주는 녹음하는 것 싫어한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올 때 너무 많은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지겹고 싫다고 했다. 난 그저 쑥스러워하는 것으로 지레 짐작했었다. 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졸업하고 어땠어? 취업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어?


당연히 그랬지. 나도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불안하지.


그래서 취업하려고 노력은 해봤어?


응, 했지. 난 믿음과 신뢰를 중요시해. 6개월 정도 지내보면 돼.

그런데 회사에서는 다른 것을 중요하게 여기더라.


그럼 넌 누나를 믿니?


안 믿어. ㅎㅎㅎㅎ. 삐졌어?


넌 사람을 믿는 기준이 뭐야?


지내보면 알아.

 


명주의 단골집 ‘솥뚜껑 삼겹살’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하자 대뜸 삼겹살과 피자라고 했다. 그리고 고기종류는 다 좋단다. 왜냐고 했더니 절에서 못먹어서 그렇단다. 자리에 앉자마자 요즘 좋아하는 여자라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곤 여자의 심리는 뭐냐며 연애상담도 슬쩍한다.


넌 누구랑 제일 친하니?


나하고 제일 가까운 사람은 쪼매다 쪼매. 근혜누나랑 친하지. 그리고 나 고총장님하고도 친해. 친구 중에는 민지혜도 친하지.


너 북한에서 언제 왔어?


그걸 알면서 왜 물어?


나 몰라. 너두 날 모르듯이 나도 너 몰라. 얼굴만 봤지뭐..

넌 왜 내가 알거라고 생각하냐?


그럼 여태 날 모르다가 이제 알려고 온거란 말이야? 그거 안 좋은 거야.


그래 그런 면에서 우린 샘샘이야. 나두 좋아하는 남자한테 관심가지지 너한테 관심가지겠냐?


그렇네. 99년도다.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바뀌었어?


나? 이기주의적으로 바뀌었어. 사회가 그렇게 가는데 나도 따라가야지.


예전엔 니가 이기적이지 않았어?


성질은 더러웠지만 옛날엔 착했어.


형제가 누나, 너, 동생 셋이지? 명송이는 말 잘 들어?


어. 옛날엔 내말 안 들었는데 요즘은 잘 들어.


나두 울 오빠 말 진짜 안들었는데


맞어 동생들이 말을 잘 안듣는다.


너 별로 겁나는 거 없지 않냐? 태권도 사범인데...


난 위가 안좋데, 그래서 병걸릴까봐 그런 거 겁나.

가서 갤포스 먹어야겠다.

 

 

낮부터 삼겹살 3인분에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주는 사람들이 고향을 물으면 '강원도'라고 한단다. 제 입에서 사투리 억양 나오는 것도 싫다고 했다. 

어색한 표준어로 '단꼴'이라는 말을  자주 쓰며, 고깃집 아줌마에게 "아줌마 단꼴인데 서비스 없어요?"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명주는 인도에 가서 거창한 계획이나 그런 거 없다. 그냥 가서 한 번 해보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우린 이제 개인적으로 밥 한 번 먹은 사이가 되었다. 

 

 

지난 2월 말 명주가 인도로 떠나고 한달의 시간이 흘렀다. 이런 저런 일로 글을 미루고 미루다가 명주가 가고 한달이 지나서야 그때의 만남을 정리하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명주야 미안하다 ㅋ

이제 난 명주를 조금 알 것 같다. 명주가 이렇게 정토회 사이트에 제 이름이 난 것을 알면 은근히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명주도 적응하느라 한 달이 금새 지나갔겠지.

명주야 건강한 모습으로 내년에 다시 만나길 바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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