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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상근자원활동한 김홍길 업장소멸 되었나?
김홍길 법우님은 지난 2004년 2월 출가·열반일 8일 용맹정진으로 기도가 무엇인지 알게되었습니다.그리고 수행자로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3년간 정토회에서 상근 자원활동을 하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3년간 봉사을 꼬박 한 것입니다.
2007년 2월, 3년을 마치고 회향을 하였습니다.
봄 햇살이 따뜻한 어느날 오후 김홍길 법우님을 만나 지난 3년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벌써,3년이 지났어요.우선 회향을 축하드립니다. 그러게요.세월 빠르죠.벌써 3년이 지났어요.ㅋㅋ
제가 김홍길법우님을 처음 본게 몇 년전 출가열반일 8일 용맹정진에서 돌을 씹었다고 대중공사시간에 이야기 했을때 입니다. 그때 정진이후 상근자원 활동을 시작하였나요?그때 8일간 절에 살면서 정진에 참여했는데,저한테만 돌이 들어왔는지 몇일간 공양때마다계속 돌을 씹어서 밥을 잘 지어달라고 이야기 한 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ㅎㅎㅎ
그때 바로 상근자원 활동을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시작 했어요? 참.정토회는 그때 처음 인연이 된 것인가요?
지난 3년을 돌아보니 나의 인생에는 아버지가 이어준 것이 많습니다.
누나가 홍제동 정토포교원 시절부터 열심히 다닌게 인연이 되어 가족이 모두 다녔습니다. 1999년 법륜스님이 백일법문을 하실 때 아버지의 권유로 법문을 몇 번 들었습니다.
그후 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었구요.누나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 들어왔는데,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내 소원이 네가 깨달음의 장을 가는 것이다”라고 해서 아버지 소원 풀어드릴려고 갔던 깨달음의 장이였는데,참 좋았습니다.
깨달음의장을 하고 나니 정토회에 대한 인상이 좋았죠.
그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원을 다녀야겠다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 준비 하고 있었는데,아버지가 정토회에서 정진프로그램이 있으니 그걸 참여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구요.그게 출가.열반8일 용맹정진이였습니다.
그때는 8일간 아예 절에 들어와서 정진하는 프로그램이였는데, 절에 들어와서 먹고,자고 하면서 정진했잖아요.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법문듣고 또 정진하고 삼시새끼 발우공양하고 그랬죠.기도하는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참회가 되었어요.법문에서 나를 돌아보라고 하는데 저는 살면서 열심히 하면 뭐든지 다 잘 될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장생활과 연애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내 맘대로 되질 않았어요.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었습니다.그런데 법문을 듣고 정진하니까 그게 다 내가 어리석어서 잘못 살아서 그렇더군요.울면서 참회를 많이 했어요.
제 정신이 번뜩 들었다고 할까요.제정신이 들었습니다.
봉사를 하게된 계기는 제가 정진할 때 같은 조였던 분이 양수지 법우님인데요. 직장에서 영상물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정토회도 영상물 만드는 분이 필요하다고 봉사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어요.그게 계기가 되어 정보통신국에서 조금씩 봉사를 시작했어요.그후 상근자원활동으로 전환했구요. 한 3년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봉사를 3년간 하겠다고 원을 세우고 했는데,3년이라고 정한 이유가 있나요?
스님이 법문에서 자주 말씀하시잖아요.3년은 해야 업이 바뀐다고 하시잖아요. 제 업을 바꾸고 싶어서 그랬죠.
지난 3년간 기억에 남는일이 뭐예요 그리고 업장 소멸은 했어요?
성지순례 갔던일,지율스님 단식할 때 정토회에서 모신일, 그리고 입원
그게 기억이 남는것은 딱 저를 말해주는 사건들입니다.
성지순례 가서 힘들었는데 돌아오자 마자 지율스님 일이 터진거예요. 그때 계속 밤샘작업하고 그랬어요. 지율스님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작업에 다들 몰두했었죠. 그땐 야근도 많이 했어요. 그렇게 무리하고 그만 간에 이상이 생겼어요. 급성간염으로 입원을 했죠.
수행자라면 자신을 돌아봐야 하잖아요. 전 좋으면 그냥 막 달려요. 정신없이 지냈다고 할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완전몰입 한다고 할까요. 그런데 난 수행자로 살고 싶었으니까 나에 대한 살핌이 부족하구나 알게된 계기입니다.
그일 이후로 보다 나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가 조직개편을 해서 서울정토회 교육부로 부서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난관이 찾아왔어요.
전 영상물 제작업무를 했었는데, 본부가 서울정토회와 분리되니까 제가 전에 정보통신국 근무했다고 또는 컴퓨터를 잘한다는 이유로 수시로 컴퓨터 봐달라는 요청을 하는데 뿌리칠 수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제 자신의 업무를 못했죠. 그래서 구조적으로 풀어야 겠다 싶어 요청도 했지만 어디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요. 컴퓨터 사용하다가 당장 안되면 저를 부르는데....
저는 그때 빈그릇 100만인 홍보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답답했죠. 일은 친적이 늦어지고 마음이 답답하고 불편했어요.
이렇게는 일을 못하게다 싶어 회향을 결심했는데, 사무처장님이 1,000배 정진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서 그냥 했어요.
정진을 하다보니 사람들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내가 너무 나 옳다는 생각만 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정진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획홍보실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했어요. 홍보업무가 딱 하고 싶어던것은 아니었습니다. 보다 활동적인 업무가 하고 싶었어요. 복지나 통일운동 등. 여전히 정신없이 살고 있었고,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남을 원망하구요. 그래도 내 스스로 나를 바라보고 알아차린다는게 스스로 대견합니다.
홍보일 하면서도 들어난 것은 다 들어났어요.
그러나 예전과 비교한다면 이젠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 안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속에서 올라와요. 다만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안올라오지는 않아요. 하하하
이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어요?
정토회 상근자원활동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회향이후 논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후의 삶은 논문 마치고 고민할레요. 지금은 논문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기도하는게 힘들어요. 그래도 정토행자로써 삶의 방향이 잡혔습니다. 3년간 상근자원활동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것이죠.
뭘 하든 늘 내면을 알아차리도록 수행자로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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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던지 수행자로 살겠다는 김홍길 법우님의 말에 믿음이 실립니다.
아마도 3년을 함께 하면서 그가 보여준 신뢰가 깊게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