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천안지회
오늘의 개봉작

김성혜 님은 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소속이며 청년지부의 경전대학 진행자입니다. 작년에도 청년지부의 불교대학을 진행했습니다. 그에게는 청년들이 도반이자, 불법을 배우는 기특한 학생들입니다. 십여 년간 마음공부를 하고 편안한 마음일 때 정토회를 만났다고 합니다. 마음공부를 예습한 후, 정토회 활동을 하는 셈입니다. 현재가 편안한 사람의 과거를 듣는 것은 잔잔한 영화를 보듯 편안했습니다. 김성혜 님의 지난날은 이미 한 편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관객처럼 그는 자신의 업식을 담담하게 전달했습니다. 지금부터 상영하겠습니다

“이러다 북극곰이 아니라 우리가 죽겠어.”

제 아이들의 볼멘소리입니다. 난방을 하지 않는 겨울, 우리 집 실내 온도는 17~18도, 높을 때는 19~20도입니다. 아파트에 살고 위아래, 옆집의 온기가 있어 옷을 껴입으면 지낼 만합니다. 이번 겨울 가스 요금이 12,000원 정도였습니다. 여름에는 선풍기보다 자연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고, 낮에는 암막 커튼으로 열을 차단합니다. 어둡지만 어두운 대로 지냅니다. 저녁에는 앞뒤 창문을 열면 맞바람이 시원합니다. 2008년 12월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을 본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여름에는 ‘따뜻한 집’ 그리고 겨울에는 ‘시원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큰 가방을 들고 다닙니다. 가방에는 남은 음식을 담을 통, 텀블러, 손수건, 뒷물 수건, 장을 볼 때 사용할 작은 비닐이 담겨 있습니다. 안 입는 옷은 조각내어 기름 묻은 그릇과 프라이팬을 닦습니다. 요즘 옷은 거의 플라스틱 소재가 섞여 있어 기름 먹는 면 소재의 옷을 골라 사용합니다.

정토회를 알기 전 저처럼 생활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0년 카카오스토리에서 정토회를 발견했습니다. 저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그 후 2015년 첫 수행 법회를 듣고 다음 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2018년 봄 깨달음의 장 바라지
▲ 2018년 봄 깨달음의 장 바라지

2018년 인도성지순례
▲ 2018년 인도성지순례

어린 시절 아래 오른쪽 김성혜 님
▲ 어린 시절 아래 오른쪽 김성혜 님

그들도 나처럼

‘왜 사라지는 북극곰의 발자국이 내 눈에는 뚜렷이 보였을까? 왜 사라지는 펭귄의 소리가 내 귀에는 크게 들렸을까?' 저는 어릴 때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아픔에 민감합니다. 소화가 잘되지 않아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죽이 주식이었고 많이 먹지도 못했습니다. 몸이 아프면 며칠을 물조차 삼키지 못한 채 누워있었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긴 시간을 보내야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는 등부터 어깨, 팔, 손가락 끝까지 심하게 아팠습니다. 앉아 있기 힘들어 아직도 정토회 회의나 수업 진행 중 힘든 순간이 많습니다. 왜 그렇게 아픈지 저도 궁금했습니다.

어린 시절 영상을 보겠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방에 들어와 갑자기 한 아이를 때립니다. 기에 눌린 동생들은 어머니에게 빗자루를 건네주고 아버지는 말리지 않습니다. 어머니 손에 빗자루 대신 호스나 전깃줄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잡을 것이 없으면 아이의 머리채를 잡습니다. 발로 몸을 밟기도 합니다. 아이는 이유도 모르면서 ‘내가 반항하면, 몸이 약한 어머니가 죽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야단과 구타를 견딥니다. 이번엔 어머니가 아이의 옷을 다 벗깁니다. 그리고 대문 밖으로 쫓아냅니다. 여섯 살 아이에게, 겨울 대문 밖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먼지 한 톨 느껴지지 않습니다. 회색 저녁이 아이의 마음에 드리워집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 날이면, 저는 어머니가 때리는 대로 맞고 퍼붓는 말에도 맞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방관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력한 그에게 연민을 느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야 할 자식이 부모를 걱정했습니다. 순서가 무너진 가정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자상한 어머니를 만나면 저는 삼사일을 꼬박 앓았습니다. 누워있는 동안 이불이 저를 덮어주고, 비로소 편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불 속은 저에게 최고의 안식처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어른들로부터 야무지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어머니는 그런 저에게 의지했습니다.

2022.12.19. 전법회원 송년법회 (윗줄 오른쪽 김성혜 님)
▲ 2022.12.19. 전법회원 송년법회 (윗줄 오른쪽 김성혜 님)

2023.9.4. 신규 전법활동가 환영 및 전법활동가 법회 (윗줄 오른쪽 김성혜 님)
▲ 2023.9.4. 신규 전법활동가 환영 및 전법활동가 법회 (윗줄 오른쪽 김성혜 님)

2023.12.16. 불교대학 진행자 정담회 (아래 가운데 김성혜 님)
▲ 2023.12.16. 불교대학 진행자 정담회 (아래 가운데 김성혜 님)

좋은 엄마! 프로젝트

어머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겠다'라는 각오로 살았습니다. 영어 교육을 전공한 저는, 교육학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식 교육은 정토회에서 배운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자식들에게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해 주고, 그다음은 알아서 살라"라고 했습니다. 딸은 수의과 대학 졸업 후 대학원 학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상심한 딸은 포기하는 심정으로 시험을 치렀는데, 합격했습니다.

딸의 합격 기쁨과는 상관없이 저는 차용증을 받고 학비와 용돈을 빌려주었습니다. 딸은 대학원을 2년간 전액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쳤습니다. 아들 역시 돈을 벌면서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때까지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아이들 모두 이른 나이에 독립했습니다. 지금은 독립에 성공했으나, 그 당시는 힘들어했습니다

배운 대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딸은 어릴 때부터 제 뜻을 따라 주었지만, 아들은 달랐습니다. 어느 날은 제게 반항하느라, 24시간 동안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았습니다. 피시방도 자주 갔습니다. 아들이 중국에 있을 때 게임으로 1위에 올랐습니다. 저는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웃었습니다. 좋은 엄마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대학 입학을 앞둔 즈음이었습니다. <즉문즉설>에서 군대 간 아들을 걱정하는 어느 어머니의 질문을 듣고, 자식을 향한 그 어머니의 집착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아들을 향한 저의 집착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아들을 향한 저의 부정적 마음을 탁 내려놓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피시방이 재미가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2017년 12월 한반도 평화시위, 남편과 함께
▲ 2017년 12월 한반도 평화시위, 남편과 함께

2021년 5월 아이들이 보내준 꽃
▲ 2021년 5월 아이들이 보내준 꽃

2021년 12월 남편 퇴직 기념 가족사진
▲ 2021년 12월 남편 퇴직 기념 가족사진

사실은 같았구나

그제야 '내가 어머니와 다름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습니다. ‘나는 옳다, 나는 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어머니처럼 독재자였습니다. 어머니의 그림자를 떼어내려 했지만, 그것은 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빨리 도망가도 재빨리 저를 쫓아왔습니다. 저는 도망 다니느라 숨이 찼고, 옆에 있는 아이들도 숨이 찼습니다. 일곱 살 아들은 엄마를 그리는 시간에 저를 '메두사'로 표현했습니다. 아들에게 저는 괴물이었습니다.

능력 많은 어머니는 무능한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어머니의 외로움이 되었고, 그 외로움은 화로 변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수행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하고, 환경을 지키려 노력하고, 아이들을 원칙대로 키웠습니다. 어머니가 가진 능력과 실행력을 물려받되, 세상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훌륭한 유산을 알아차리자, 몸이 반응했습니다. 제 고집을 내려놓으니 아프지 않았습니다. 납득해야 상대를 인정하는 제 업식이 사라질수록 마음이 괴롭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을 겁니다. 어릴 적 받은 아픈 매와 아픈 말을 어머니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제게 상처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상처를 되돌려 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은 서로 긴 시간을 떨어져 지냈습니다. 제가 결혼한 지 1년 후, 아버지가 작은아버지의 사업 보증을 선 일이 잘못된 것이 이유였습니다. 아버지의 노년은 쓸쓸했습니다. 5년 전 여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저는 아버지에게 "잘사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편안한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모른다는 것조차 몰랐구나

2022년 남편 직장 때문에 혼자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담담했는데 점차 불안했습니다. 당시 주택에 살았고 주변은 한적했습니다. 적막함에 예민해졌습니다. 깜깜한 밤에는 물론이고, 24시간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누구라도 곁에 있길 바랐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서 편안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저를 보는 것이 스스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영화 <식스센스>의 주인공이 된 듯 충격을 느꼈습니다. ‘나는 나를 모른다는 것조차 몰랐구나.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쫒겨난 후, 나는 여전히 대문 밖에 서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무지로 수십 년을 밖에서 떨고 있었을 그 아이를 비로소 보았습니다.

‘여섯 살 아이가 대문 밖에 서 있다. 그러니 나도 서 있을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정토회 수행과 봉사를 1순위로 삼았습니다. 집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걸으며 햇빛을 받았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절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불안하면 전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제 곁을 지켰습니다. 몇 번을 경험했던 정토회 수행 프로그램도, 새로운 기분으로 참여했습니다. 법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1년 반을 혼자 지냈습니다. 먼지 한 톨조차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제게는 이불이었습니다. 남편이 퇴직 후 집으로 왔을 때, 저는 혼자 있는 것도 편안한 사람이었습니다.

딸과 아들이 준 선물

정토회에 온 후, 부드러워진 저를 보고 가족 모두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습니다. 남편과 딸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아들은 1박2일 ‘경주 역사 기행’에서 스님께 질문하고 "궁금증을 해소했다"라고 말합니다. 이후 명상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아들이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겉은 다르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도반의 말보다 강하게 들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집에서 독재를 펼칠 때, 백성이 되는 남편이 비로소 보였습니다.

2022.7.23. JTS 영양꾸러미장보기
▲ 2022.7.23. JTS 영양꾸러미장보기

2022.6.1. 행복학교 홍보 (아래 맨 오른쪽 김성혜 님)
▲ 2022.6.1. 행복학교 홍보 (아래 맨 오른쪽 김성혜 님)

2022. 6.1. 행복학교 홍보 (오른쪽 김성혜 님)
▲ 2022. 6.1. 행복학교 홍보 (오른쪽 김성혜 님)

저의 교육 방침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딸과 아들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자식을 독립시키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이라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저의 사과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했습니다. 저에게 서운함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만나면 방 탈출 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하며 친밀하게 지냅니다. 아들은 이성 친구와 문제가 생기면 저에게 상담을 요청합니다.

작년에 딸의 권유로 가정폭력 상담을 받았습니다. 딸이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 컸지만, 우리를 사랑으로 키우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참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엄마가 걱정 안 되느냐?" 물으니 “부모님 걱정 안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불안할 때 아이들은 나와 함께 불안해하지 않고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며, 내게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저를 걱정하지 않는다'라는 대답은 저에게 아주 큰 선물입니다.

청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저의 기쁨입니다. 똘똘하고 솔직한 청년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습니다. 젊은 시절 삶과 마음에 물음표를 갖고 살았던 경험이 청년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른 나이에 불법 만나 편안해지는 그들이 보기 좋습니다. 매일 그들과 공동 정진하고 나누기도 합니다. 첫 새벽에 말로 나누는 고요함이 소중합니다. 저는 가족 복, 정토회 복이 많은 수행자입니다. 저는 이제 세상을 향해 대문을 박차고 나갑니다.


김성혜 님은 지금도 다른 사람의 어머니가 부러울까요? 오늘 그는 능숙한 솜씨로 영사기에 필름을 끼운 후, 스크린을 향해 빛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객석에 앉아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답변이 되었을까요? 그는 북극과 남극의 생명을 위해 본인 한 몸 따뜻하기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대신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 줍니다. 그의 이야기로 여러분이 행복했다면, 오늘의 영화는 ‘해피엔딩’입니다. 여러분의 영화도 개봉을 기다립니다.

글_남궁천진 희망리포터 (서울제주지부 노원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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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

메두사

2024-04-15 08:54:27

박은영

곱씹을수록 공감되고 멋진 수행담입니다. 어렸을적부터 심하게 똘똘했던 김성혜님이 그려집니다. 그 꼬맹이 성혜님을 상상하니 지금의 야무진 모습 그대로네요. 자기답게 너무너무 잘 컸고, 잘 사셨습니다.
한 무명의 여주인공이 아름답고 멋진 영화 잘 보았습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맛깔나게 다듬어준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2024-04-08 12:37:33

권유숙

성혜님~~~
수행담을 나누어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꽃눈을 달고 겨울을 지나 피어나는 봄꽃을 보는 듯 했어요.
환하게 피어 세상을 밝혀주시니 감동입니다.

2024-04-04 22: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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