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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유튜브를 통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정토회를 알았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 연년생 형제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특히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 아이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심신이 매우 지쳐있었습니다.
남편의 실직으로 마음이 더욱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맨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저는 술과 정신과 약에 의존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즉문즉설을 듣고 약에 의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님을 자각하였습니다. 기독교 환경에서 자라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으나, 기독교 신앙이 맘속 깊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법륜스님을 통해 알게 된 불법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여 정토회와 인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무서운 사람, 어머니는 언제나 참고 인내하는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경제 활동은 성실히 하였지만, 매우 예민하고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저에게 남자는 욕 안 하고 폭력만 안 쓰면 80점 이상입니다. 남편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저의 기준에서 80점은 넘습니다. 남편이 술을 매일 마셔도, 가족들에게 잔소리해도 모두 오케이!! 입니다. 술이 남편의 건강을 해칠까 걱정 되지만, 주사 없고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매일 안주와 술을 준비합니다.
제가 유복한 환경에서 사랑받고 자랐다면, 웬만한 남자는 눈에 차지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로 인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도 있고, 내재한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으니, 저절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고 잘 맞출 수 있습니다. 상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으면 마음이 편합니다. 그와 반대로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면 평생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께 감사한 점이 참 많습니다.
어머니는 밝고 긍정적이며 마음이 넓은 사람입니다. 상대를 세심하게 챙긴다거나 표현도 잘하진 않지만, 저에게 어머니는 든든한 울타리이자 바람막이였습니다. 저의 긍정적인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 같은 감사함입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 무척 힘든 생활이었습니다. 발달장애아를 보살피며 정말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경험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게 될까봐 항상 노심초사하고 불안했습니다. 어쩌다 화가 폭발하면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저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럴 때면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럴수록 술과 안정제에 의존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무엇보다 부부간의 화합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화합하면 아이들은 80점 이상은 된다.'라고 생각해 ‘100점짜리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80점짜리 엄마만 되자.’라고 다짐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잘하고 못하고는 어차피 20점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 아이들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부모가 싸우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신경을 좀 덜 쓰거나, 가끔 야단을 쳐도 아이들이 받는 상처가 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부부 중심으로 가정을 이끌고 있습니다.
사춘기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정토회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간섭하지 않되 지켜본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모범을 보인다.’ 이러한 스님의 법문 내용을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일 때 불법을 만난 도반들이 저를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저도 '더 늦기 전에 불법을 만난 것이 다행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오계를 가훈으로 정해 거실에 붙여놓았습니다. 오계가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모르겠지만 '무의식에 각인되리라'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에게 항상 오계를 읽도록 했습니다. 큰아이에게 “인생은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다. 꼭 남들이 가는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며,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정상적인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습니다.
80점짜리 엄마가 되기로 했기에 아이들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문제에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도 않았습니다. 큰아이에게 “인생은 다 그런 거야. 별거 없어.”라고 얘기하고 해결책도 스스로 찾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큰아이는 웬만한 일에는 “괜찮아요.”라며 무덤덤하게 넘기는 편입니다. 다툼 없는 부모의 편안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가 불안하지 않게 성장하는 것이 가정에서의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며 가정에 쏟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남편은 저의 활동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 ‘인생은 마라톤이다. 가늘고 길게 가자. 남편이 저의 활동에 뭐라고 하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처하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정의 평화를 지키면서 오랫동안 정토회 활동을 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입니다. 저는 가늘고 길게 젖은 낙엽처럼 정토회에 착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제 중심을 잡으니 남편에게 맞출 수 있고, 남편의 잔소리에도 “자기야~ 미안해. 내가 깜빡했어. 고마워.”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 잘해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수행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수행하면서 마음이 편할 때도 있고, 후퇴할 때도 있습니다. 때론 와장창 넘어지기도 합니다. 옛날로 다시 돌아간 것 같고, 맨날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 ‘수행해서 뭐 하나?’라는 마음도 듭니다. 그러나 매일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저는 그냥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의 급한 성격, 고지식한 사고방식, 상대방을 마음대로 하려는 제 성질을 알아차렸습니다. 알아차림을 통해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합니다.
저는 남들보다 습득이 빠른 편이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장점이 있지만 제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면 그만하려는 단점이 있습니다. 6개월에서 1년 걸리는 자격증도 몇 달 만에 취득하고 곧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립니다. 빨리 배우지만 포기도 빠릅니다. 그런 업식을 고치고자 꾸준히 할 것으로 선택한 것이 매일의 새벽 수행입니다. ‘나는 매일매일 넘어지는 인간이다.’라고 인정하고 ‘포기하지만 말자.’라며 매일 새벽 눈을 뜨고 정진합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배운 것 중에 제가 되뇌는 문구들이 있습니다.
‘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인연법을 배우면서 나와 내 가족만 챙기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게나마 수행, 보시, 봉사하며 저와 크고 작게 연결된 인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아직도 순간순간 올라오는 화나 짜증이 마음속에 많습니다. ‘수행자는 절대 화나 짜증을 내면 안 된다’라는 상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발달장애아인 둘째 아들에게 엄하고 단호하게 대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단호하게 훈육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정을 잘 살펴 조절해야 함을 저의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매일 수행하는 것은 제 중심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남편이 내년 초쯤 직장을 그만둔다고 합니다. 웃으며 가볍게 "그렇게 해라."라고 응대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고,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나?'라는 배짱도 생겼습니다.
특별히 하고 싶은 활동은 없지만 인연 따라 주어지는 대로 임하려 합니다. 제가 환경에 관심이 있어 환경 담당을 맡았던 것도 아니고 모둠장 소임도 적합하기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주어지는 대로 임했던 것입니다. 이번 인터뷰도 '내가 이런 자격이 되나?' 싶어 한사코 거절했지만, 담당자의 적극적인 권유에 가벼운 마음으로 응하였습니다. 가끔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양천지회 도반들의 힘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도반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그분들의 힘으로 저도 같이 묻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과정에서 짝꿍 리포터, 박미영 님과 저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세 명 모두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고, 정토회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수행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인터뷰 내내 긍정적인 응대와 환하게 웃으며 담담히 이야기한 박미영 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글_이지우 희망리포터 (서제지부 서초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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