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초지회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제가 이렇게 인터뷰할 순번이 되나요?” 하고 멋쩍게 웃는 모습이 겸손하게 느껴졌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 정토회를 만나 넘치는 아이디어로 매일 재미있게 소임을 하고 있는 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도곡모둠 장 김미라 님입니다. 소임을 하며 나오는 모든 아이디어는 어린 시절의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7남매의 다섯째, 병약한 아픈 손가락

저는 1963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교사 부부의 7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약하게 태어나 호흡이 불안정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낳아 실망감이 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임신 중인 날이 많았습니다. 임신 기간에는 아들일까 딸일까 하는 불안과 근심, 걱정으로 7남매를 낳았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에 원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 자식들을 다정하고 살갑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과 교육열이 매우 높았습니다.

2023년 초파일 노보살님들, 법사님과 함께 (오른쪽 김미라 님)
▲ 2023년 초파일 노보살님들, 법사님과 함께 (오른쪽 김미라 님)

아버지는 약하게 태어난 저를 자상하게 많이 챙겨주었습니다. 저녁마다 따뜻한 꿀물을 타 먹여 주고 손톱, 발톱까지도 직접 깎아주었습니다. 제 이름도 아들을 낳기 위한 말순이, 끝순이 같은 이름이 아닌 아명은 공주, 호적에 김미라로 지어 주었습니다. 병약한 저는 형제들 사이에서 늘 투쟁하듯 살아야 했지만, 아버지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피아노 개인지도, 미술 등 예체능을 많이 배웠습니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아버지는 딸들을 위해 수입 피아노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워낙 시골이라 피아노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 날 동네 구경꾼들이 모여들 정도였습니다. 큰 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중학교 1학년 때 언니들을 따라 서울로 유학 왔습니다. 서울로 오기 전에는 개인 과외도 받았습니다.

몸이 약한 제가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서 동생과 둘이 언니들을 기다리는 생활이 싫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참으며 생활했습니다. 학업에 집중이 안 돼 성적은 엉망이었습니다. 결국, 대학 진학이 불가할 정도로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게 아버지는 괜찮으니 한 번 더 공부해 보라 하여 재수해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어머니는 7남매 모두 서울로 대학을 보내기에 교사 수입으로는 부족하여 사업을 하여 자식들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은 약했지만, 대장부 같은 성격이고 열정이 많았습니다. 저도 어머니의 그런 면을 닮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한 것에 감사합니다. 어린 마음에 원망도 했었지만, 지금 많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23년 부처님오신날 점등식 온라인 퍼포먼스_서초지회 모둠장(가운데 김미라 님)
▲ 2023년 부처님오신날 점등식 온라인 퍼포먼스_서초지회 모둠장(가운데 김미라 님)

어머니를 따라다닌 절, 바라는 마음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습니다. 경전을 사경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저렇게 하면 복을 받는구나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불교 신앙심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남편과 여행을 갈 때도 절에 갈 정도로 절에 다니는 걸 좋아했습니다.

절에 가서 기도하면 원하는 게 이뤄진다고 생각하여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300배, 500배는 기본이고 아이들 입시 때는 3천 배도 할 만큼 기도를 많이 했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고 나오는데 ‘뭘 그렇게 많은 걸 원해?’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 불안함의 원인이 뭘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토회로 이끈 시련

2014년에 남편이 퇴임했습니다. 대기업 임원이던 남편 덕에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생각지도 않게 남편이 퇴임하니 너무 막막했습니다. 큰아이의 서울대 입학으로 부러울 게 없던 그때, 남편의 퇴직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모태신앙인 불교 신자로 기도에 매달려 남편이 다시 직장을 얻기만을 바랐습니다. 말로는 남편에게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언제 다시 출근하나 하는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2023년 4월, 도곡 모둠활동 도량 청정봉사 (아래 왼쪽 김미라 님)
▲ 2023년 4월, 도곡 모둠활동 도량 청정봉사 (아래 왼쪽 김미라 님)

어느 날 남편이 말과 행동이 다른 제 모습에 화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남편이 퇴근 후 함께 있는 것은 좋았지만 퇴직 후 종일 집안에 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숨이 막힌 듯 했고 잠도 잘 못 잤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돈 벌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남편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애들도 다 컸고 먹고 살 만했기에 남편이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이 제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돈 버는 사람으로만 보니 고마운 마음보다는 남편과 온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컸습니다.

제 마음대로 안 되니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힘들어서 신경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병원 약은 저와 맞지 않아 우울증이라는 괴로움보다 약을 먹는 괴로움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약은 저를 멍하고 몽롱한 상태로 만드는 것 같아 잘 챙겨 먹지 않고 들고만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동생이 재미있는 스님이 계신다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그때부터 남편과 유튜브의 스님 영상을 계속 찾아봤습니다. 밤마다 둘이 스님 영상을 보며 잠이 들었습니다.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기 힘들어 스님 법문을 들으며 잠을 청했습니다.

어느 날, 다니던 절에서 함께 봉사하던 도반이 절에 나오지 않아 수소문해 보니 정토회로 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안 다니는 데 없이 여러 절을 다녔고, 불교대학도 몇 개나 다녔지만 제 안의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던 터라 기대와 호기심으로 정토불교대학(이하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안심입명의 도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라는 수행문의 문구가 바로 저를 두고 한 소리였습니다. 그동안 저를 괴롭히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다 제 마음에서 왔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만큼, 그리고 더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고마움으로 시작한 소임

2015년도 가을 불교대학 입학 후 경전대학까지 졸업하고 바로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냥 해보라고 준 것이지만, 완벽하게 해야 하는 저의 습관이 있어 소임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처음엔 못 한다고 사양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이렇게 2년 동안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불교대학 진행자, 담당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일주일 동안 고민하고 소임을 맡았습니다.

2023년 7월 모둠장 회의 (오른쪽 세 번째 김미라 님)
▲ 2023년 7월 모둠장 회의 (오른쪽 세 번째 김미라 님)

첫 소임을 받고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업 시작 한 시간 전에 가서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컴퓨터를 잘 못 하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선배 도반을 쫓아다니며 물어보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잘 안되면 심장이 터질 듯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며 교사인 부모님의 재능을 물려받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소임이지만 재미있게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절에 다니며 보시, 봉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복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해진 규율대로 하지 않으면 혼이 나기도 했지만, 복을 받기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달랐습니다. 소임이 주어지면 제가 알아서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도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소임이 주어지면 제 머리에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것들을 가볍게 제안해 보고 좋다고 하면 그대로 실행합니다. 몸이 약해 몸살이 자주 나지만, 생각했거나 준비해 놓은 것들을 얼른 해보고 싶은 마음에 약을 먹고 회복되자마자 다음 일을 진행합니다.

새벽 정진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그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기도, 새벽 정진 덕분입니다. 진짜 일어나기 싫은 마음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 생활을 해 왔는데도 새벽에 일어나기 전에는 ‘5분만 더 자야지, 5분만 더 자야지’가 입에 붙어 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몸을 일으켜 기도하고 나면 싫었던 마음이 싹 바뀝니다. 새벽 정진이 저를 매일 바꿉니다.

2023년 초파일 거리 안내, 모둠원들과 함께 (왼쪽 김미라 님)
▲ 2023년 초파일 거리 안내, 모둠원들과 함께 (왼쪽 김미라 님)

어떤 일이든 완벽하지 못하면 걱정과 불안으로 심장이 마구 뛸 때도 있습니다. 제 몸이 먼저 긴장합니다. 몸살을 앓기도 해서 몸과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집안일을 철저히 해놓고, 법당으로 뛰어가 소임도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습니다. 수행이 아니라 일을 처리하는 식이어서 힘들었습니다. 누구도 완벽하게 하라는 사람이 없었는데 저 스스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서초법당 시절 총무국의 총무소임 때 정토사회문화회관 이사와 관련해서 유수스님이 미웠습니다. 이삿짐 쌓는 과정에서 스님의 일관성 없는 요청에 분별심이 생겼습니다. 콜센타 소임 때는 회관에 통신설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나 몰라라 외면하는 모습으로 보여 더욱 미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임을 내려놓고 보니 스님의 소임은 천 가지, 만 가지로 제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소임은 스스로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지 반드시 일을 완벽하게 이뤄내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유수스님께서 “정토회에 왜 왔니? 네가 행복해지자고 왔는데 소임으로 괴롭고 힘들면 내려놓아라.” 하셨습니다. 주어진 일은 완벽하게 해야만 안심이 되는 성격이라 내려놓지도 못하고 진행했습니다. 콜센터의 소속이 지원국으로 이전하기 전 까지 저는 모든 시스템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겠다며 고집부렸습니다.

수행의 의미를 알아가다

콜센터가 지원국 소속으로 이전되고 소임이 바뀌면서 법사님과의 면담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완벽주의를 지향하는지 알았습니다. 소임을 수행할 때도 칭찬받으려는 마음과 잘하려는 마음이 있어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소임은 수행의 연장선상이다‘라는 법륜스님 말씀이 귀에 맴돌며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좀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를 덜 괴롭히니 전보다는 가볍고 편안하게 합니다.

2023년 연등 만들기
▲ 2023년 연등 만들기

하지만 새로운 소임이 오면 아직도 긴장하고 ’완벽하게‘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법륜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한 박자 쉬고 움직이자‘ 합니다. 새벽 정진으로 나를 돌아보며 ’못해도 괜찮아, 처음 하는 일이니 안될 수도 있어.’ 하며 저를 토닥입니다. 소임을 통해 정토회가 추구하는 행복한 수행자의 의미 뿐 아니라 ‘“예”하고 합니다.’의 의미도 확실히 알았습니다.

남편이 부처였습니다

시댁에서 집을 사주어 내 집 마련의 부담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부모님과 남편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아들, 딸 잘 키워 명문대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가 이룬 결과라 생각하고 스스로 엄청나게 잘난 사람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결혼 생활 중 시댁과의 갈등도 없었습니다. 부족한 게 없으니 남편 귀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시부모님과 남편의 고마움을 모르고 계속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건 2017년 1월 <깨달음의 장1>에 다녀왔을 때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니 남편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가족을 위해 살아왔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성실히 일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남편 덕분에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돈 한 푼 벌어보지 못한 제가 남편을 돈 버는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부담이 많이 되었을 남편에게 미안했습니다. 제가 정말 이기적이었음을 알고 남편의 마음도 조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퇴직으로 모든 걸 다시 보게 되고 정토회도 만났으니, 남편이 사실 부처였습니다. 가끔 남편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내 마음대로 했구나, 순간 놓쳤구나’ 알아차리고 바로 사과합니다. 남편의 말에는 뭐든 “네~~당신이 최고입니다”라는 응답이 자연스레 나옵니다.

2023년7월 영양꾸러미 봉사(왼쪽 김미라 님)
▲ 2023년7월 영양꾸러미 봉사(왼쪽 김미라 님)

어릴 때는 거의 죽는다고 했는데 벌써 환갑이 되었습니다. 나이 육십이 넘으며 몸에 이런저런 증상이 나타나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에 가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큰 병 없이 잔병치레로 이만큼 살았으니 정말 오래 잘 살았습니다.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당신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야”라는 말을 할 때마다 그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래야지, 그렇게 살아야지”라고 웃으며 대답합니다.

이제는 든든한 지원자, 남편

다니던 절에서 남편과 같이 봉사하다 저 혼자 정토회로 왔을 때 남편이 굉장히 황당해 했습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함께 볼 때는 좋아했는데 제가 불교대학을 마치고 정토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니 약간 이상한 눈으로 봤습니다. 어느 날 같이 산책하다가 불교대학 진행자를 맡겠다고 했을 때는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그런 걸 하냐?”라고 불같이 화를 내며 혼자 가버렸습니다. 사회생활도 안 해본 사람이 불교대학 진행을 하겠다고 하니 남편으로서는 황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화를 내는 남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퇴직 후 곧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남편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정토회에 관한 이야기는 가능한 한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얼른 법당에 나가 불교대학 진행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별일 없었던 것처럼 밥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년 동안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두 번째 소임으로 JTS 거리모금을 할 때는 남편이 도와주었습니다. 홍보포스터나 진행안내서 등을 프린트하거나 책자로 만드는 일들을 함께 해줬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거리 모금을 할 때도 남편이 괜찮다고 말해준 덕분에 당당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모습을 동네 지인들이 볼 수 있는데도 남편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즐겁고 재미있게 활동하는 저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습니다. 제가 변하니 저를 보는 남편의 시각이 편안해지고 결과적으로 저도 편하게 활동했습니다. 3년 만에 정토회 활동하는 것이 편해졌습니다. 지금은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봉사 갈 때면 저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기도 하는 든든한 지원자입니다.

지원자가 되어준 것에는 ‘남편이 우선이다’는 제 철학이 한몫했습니다. 남편의 스케줄에 저를 맞춥니다. 아침마다 밥 잘 챙겨주고 이야기 많이 들어주며 잘 맞춘 것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토회 생활로 변해가는 저의 모습에 불만은 없는 듯합니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줍니다. 정토회 활동에 언제나 호응해 주고, 어떤 소임에도 잘 적응해 주고 있어 고맙습니다.

2022년 가을불교대학 JTS거리캠페인 (오른쪽 김미라 님)
▲ 2022년 가을불교대학 JTS거리캠페인 (오른쪽 김미라 님)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다

정토회 오기 전에는 가족밖에 몰랐습니다. 주부로서 제 가정만 잘 보살피면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 승진 잘 되게 해주세요, 우리 아이 좋은 학교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더 잘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가족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 특히 아이들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은 생각에 걱정만 가득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난 후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JTS에서 활동하면서 지구 반대편의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돕는 일, 세계 평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개인 수행과 전법활동가로 활동하며 꾸준히 시야를 넓히고 있습니다.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더 많이 알게 됐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시골에서 7남매를 뒷바라지하기가 쉽지 않으셨음에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부모님의 남다른 사랑에 가슴 뭉클하고 행복합니다. 제가 오늘 여기 있는 것은 부모님 덕분이고 또 부모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덕분입니다. 제가 정토회로 올 수 있게 불교라는 밑바탕을 깔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소임이 주어진 것은 결국 저를 깨우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소임이 복이다’란 말을 절로 하게 됩니다.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참 행복하고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병약하게 태어나 몸살을 자주 앓는다는 김미라 님의 인터뷰를 마치며 그 어디에서도 약한 모습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걸림 없이 일해나가는 모습에서 장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소임을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서 하니 이명이 생겨 힘들다 합니다. 그런데도 소임이 복임을 알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밝게 웃는 김미라 님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한 또 하나의 법문을 들은 것 같아 희망리포터로서의 소임이 큰 복임을 진하게 느껴봅니다.

글_배해정 희망리포터 (강원경기동부지부 화성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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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나윤

응원합니다. ^^

2023-12-13 22:51:11

보현

고맙습니다

2023-09-01 07:51:26

육윤희

김미라님의 인생스토리를 들으니 참 사랑스러운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스러운 분이실거라 믿어집니다

2023-09-01 07: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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