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양천지회
이번 정차역은 정토회입니다

아픈 엄마를 지켜보며 저는 요새 ‘나도 엄마처럼 나이 먹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이 먹는 건 두렵지 않지만, 노년의 삶은 어떨까? 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엄마와 동갑인 정인숙 보살님과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서.

‘결혼’이라는 기차를 타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아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했습니다. 남편이 군 생활하던 관사에 농작물을 내다 팔던 어머니는 남편이 마음에 들었는지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부모의 말은 당연히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좋다, 싫다’라는 마음도 없이 결혼한 남편은 경상도 사람 아니랄까 봐 무뚝뚝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jts 모금하는 정인숙 님
▲ 성탄절을 맞아 jts 모금하는 정인숙 님

7살 연상의 남편이 어려웠던 저는 애나 잘 키우라는 남편 말에 꼼짝 못 하고 살았습니다. 집에서도 순종하고, 남편에게도 순종하며, 고개 숙였습니다. 남편이 시댁에 돈 주는 게 싫어서 밤에 잠도 못 자고, 가슴을 바위가 누르는 것처럼 숨이 막혀도, 그저 참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다 ‘모든 게 상대방 잘못이 아니라 절반의 책임은 내게 있다’라는 구절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때부터 부부간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출근하는 남편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잘 다녀오라’라는 제 인사에 처음엔 왜 이러냐면서 어색해하던 남편도 일주일 지나자 ‘알았다’ 하며 인사를 받아줬습니다. 저도 남편도 어색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며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돈도 못 버는데 남편 말이라도 잘 듣자 생각했습니다.

공양간 봉사(맨 오른쪽 정인숙 님)
▲ 공양간 봉사(맨 오른쪽 정인숙 님)

‘형제한테 돈을 써도 자기 돈 주는 건데 나는 상관 말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제 마음이 편해지니 남편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생전 안 하던 연락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전에는 지금 들어간다고, 늦으면 늦는다고 말해줬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변해야 상대도 변하는 거구나’ 합니다.

남편을 보내고 정토행 기차를 타다

"무던히 참아줘서 고맙다. 잔소리했으면 더 엇나갔을 텐데 그렇게 안 해줘서 고맙다"

제 마음 편하려고 했던 일들을 고맙다고 말해주던 남편은 200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만나 30년 넘게 함께한 남편의 3년 상을 치르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전부터 법회에 나오라는 친구의 권유를 번번이 거절했는데 그때는 ‘가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을 태운 기차를 떠나보내고 저는 버스를 타고 정토회로 갔습니다.

왼쪽 사진,2009년 인도성지순례에서 영원한 도반 한혜자 님과 함께 (오른쪽 정인숙 님), 오른쪽 사진, 인도 아이들과 함께
▲ 왼쪽 사진,2009년 인도성지순례에서 영원한 도반 한혜자 님과 함께 (오른쪽 정인숙 님), 오른쪽 사진, 인도 아이들과 함께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법문 듣고 불교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가 잘못 산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정토회를 다니기 전에는 남편을 이기지 못하니 고개 숙이고 참고 살았다고 생각해 억울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를 다니고 법문을 듣고 수행하며 제가 잘못 산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왜 이렇게 살았나.’ 싶어 억울했던 마음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좋아졌습니다.

굽이굽이 살아온 인생이 나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니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다못해, 비가 내리면 이 세상이 깨끗해지니 감사하고 날이 뜨거울 때 나무 그늘이 있으니 감사했습니다.

‘봉사’ 행 기차는 오늘도 달린다

‘지옥에 안 가려면 봉사해야 한다’라는 말에 적십자 봉사를 시작한 게 1994년이었습니다. 적십자 봉사활동 때문에 늘 바쁜 저에게 딸들이 불만을 품었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했습니다. 그러다 정토회 다니면서 책과 테이프를 판매하고 법당 당직도 서고 생리대 주머니를 만드는 봉사를 했습니다. 가리지 않고 제게 주어지는 소임대로 캠페인도 나가고 jts 모금과 명상 바라지를 했습니다.

목동역에서 즉문즉설 홍보 중(왼쪽 정인숙 님)
▲ 목동역에서 즉문즉설 홍보 중(왼쪽 정인숙 님)

요즈음 저는 재활용 페트병과 캔을 수거해서 기계에 넣으면 적립금을 주는 ‘슈퍼빈’을 합니다. 하나에 10포인트씩 적립되어 2천 포인트가 되면 2천 원이 적립됩니다. 작년부터 시작해서 처음으로 20만 원을 에코붓다에 보시하고 올봄에는 30만 원을 jts에 보냈습니다. 딸들과 사위들 이름으로도 모으고 동네 지인들도 함께 재활용품을 모아 가져다주니 저는 다 같이 보시한다는 마음입니다.

이제 나이가 70이 넘으니 몸이 아프고 힘도 들지만, 아직은 제가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이렇게 쓰임과 소임이 있으니 몸이 좀 아파도 일어나서 나갑니다. 젊었을 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을 탓하기보다 욕심내지 않고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봉사를 합니다.

정차역은 달라도 종착역은 같은 도반들에게

정토사회문화회관(오른쪽 첫 번째 정인숙 님)
▲ 정토사회문화회관(오른쪽 첫 번째 정인숙 님)

2010년에 심장 판막 수술을 했습니다. 갈비뼈를 열고 하는 아주 큰 수술이라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는데 새벽이 되니 ‘기도해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들면서 기도문이 외워졌습니다. 요새는 어지러우면 절을 멈추고, 108배는 다 못해도 음원을 틀어놓고 앉아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 하기 싫어도 그냥 하자는 마음으로 합니다. 시간을 잘 못 지키고 108배는 다 못해도 일과인데 빼먹을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합니다. 내려야 할 역은 늘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이정표처럼 제게 정토회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입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무너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친구 말을 듣기 참 잘했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게 참 부럽고,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평생토록 만나지 못할 부처님 같은 스승을 만난 건데 그걸 모른 채로 그냥 지나가면 안 되지 않을까 합니다. 스님이 있는 동안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끈을 놓지 말고 발뒤꿈치 그림자라도 따라가 명심문처럼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이 되어야지 합니다. 저는 못 하더라도 젊은 도반들은 저보다 더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차역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고 정토회에 가셨다는 말에 문득, 우리의 삶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갔다, 또 어딘가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은 잘못 내린 역에서 당황하고 게으름 피워서 놓치기도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기차를 타고 때로는 혼자서 타기도 합니다. 파란 하늘 아래를 달리기도 하고, 어두운 굴 속을 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종착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감히 바라봅니다. 종착역에 내렸을 때 저 역시 정인숙 보살님처럼 쓰임과 소임을 놓지 않는 수행자이기를.

글_홍윤미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 부천지회)
편집_권영숙(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전체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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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주

정차역은 달라도 종착역은 같다~~너무 좋은 말씀이십니다 도반님을 응원합니다
짝짝짝!!!~~^^

2024-04-26 13:41:38

맑음

멋지십니다~~

2024-04-24 15:05:58

김윤정

잘들었습니다
정토회 버스를 탄 저도 게으름이오고 흔들릴때도..그냥하자 라는 맘으로 꾸준히 수행하겠습니다
흔들없는 버팀목 정토회를 만나 오늘도 가볍고 행복한마음 입니다

2024-04-21 13: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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