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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 선배 언니가 지나가는 말로 “여기 한번 가봐.”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법륜스님도, 정토회도 몰랐습니다. 농담도 진솔했던 선배여서 무조건 믿고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음이 가볍고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해 가을 결혼하고 애 둘 낳고 살면서 그곳에 다녀온 기억은 완전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를 듣고 깊이 감동하여 바로 6-10차 천일결사에 입재하였습니다. 입재식 날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고, 입재법문을 들을 때는 인생의 방향을 찾은 것 같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첫 100일 기도도 거뜬하게 했습니다. 서초법당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수원지회에서 경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직장과 집안일에 쫓겨 건성건성 머리로만 알고, 수행의 관점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불법을 내 삶의 방편이 아니라 방향으로 삼아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그때뿐이고 수행은 늘 제자리였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집안 형편 탓에 온라인 입재식도 참여하지 못하다가 2022년 가을 경전대학을 다시 등록하고 10-10차에 입재하면서 정토회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첫째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 둘째가 채 6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뇌종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까지 15년간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거듭했습니다. 처음 몇 차례의 수술과 치료 중에는 살았다는 기쁨과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마지막 3년간 남편은 뇌전증 후유증으로 아무런 의사 표현도 하지 못한 채 숨 쉬고 눈만 뜰 뿐 누워지내는 형편이었습니다. 재활치료를 위해 입원도 했지만 제가 병원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몇 달 휴직해서 집에서 돌보기도 하고, 복직해서는 요양보호사와 물리치료사에게 오전 시간을 부탁하고 퇴근 후에 돌보았습니다. 그때까지도 남편이 다시 말하고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남편이 우리를 보고 웃어줄 때 같이 웃었고 고통도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병세는 차츰 혹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남편이 웃지도 못하고 물도, 밥도 잘 넘기지 못할 무렵 제 몸과 마음은 완전히 지쳤습니다. 남편이 어서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고 남편에게도 어서 가달라며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면 뱃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회한이 올라왔고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가고 나자 죄책감이 컸습니다.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내가 한 치 앞을 못 보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했구나.’ 자책하고 또 자책했습니다. 눈물이 마르질 않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들은 그럴 수 있다 위로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너무 절망스럽고 괴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무렵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여 경전대학도 등록하고 즉문즉설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며 바르게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객관적 실체가 아님을 알고 어리석어서 괴로움을 자초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편 문제는 늘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 즉문즉설에서 가족 간병을 하던 질문자에게 ‘살아있을 때 원망하고 죽었을 때 자책하는 것은 어리석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닌데 길을 걷다 순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핑 돌면서 아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돌보는데 남편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진다고 짜증 내고 화를 냈구나,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기준을 만들어놓고 하루하루 그걸 채우느라 쩔쩔맸구나, 내가 어리석었구나.’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에게 참회하는 기도가 절로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고 아프기만 했던 남편의 참담한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나 힘들다고 짜증만 냈음을 참회했습니다.
남편이 떠나고 괴로웠던 마음을 돌이키고 나니, 이렇게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수행임을 알았습니다. 지난 가을 온라인 경전대학에서 경험한 ‘일상에서 수행하기’는 수행의 관점을 바로잡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정토회에 들락날락하며 수행의 관점을 잡지 못했는데, 이제는 ‘착각하는구나.’라고 돌이킵니다. 또한 집안일도 직장 일도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니 늘 쫓기는 느낌이 들고 짜증이 나곤 했는데, 지금은 과정 중에 깨어있으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작은 일에 기뻐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립니다. 가족들의 투덜거림도, 직장동료의 불평도, 아이들의 불평도 잘 들리고 상황과 속내를 헤아려보게 됩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고, <나눔의 장>과 <명상수련>도 몇 차례 다녀왔고,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했지만, 수행의 관점을 바로잡고 나를 돌이켜 두터운 업장을 녹여내기 시작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겨울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제들과 아버지 물품을 정리할 때였습니다. 가뜩이나 마음 둘 곳 없는 엄마 마음은 생각지 않고, 아버지 책과 물건을 한꺼번에 버린 형제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상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가족끼리 싸우는 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그리고 홀로 남으신 엄마에게도 못 할 일이라 생각되어 형제들에게 별말 안 했지만, 마음은 내내 찜찜했습니다. 며칠 후 남은 정리를 위해 모두 모이는 날, 형제들과 다시 만나는 게 불편했습니다.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를 찾아보니,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분 나쁨에 매여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차츰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형제들의 태도가 ‘실은 자기 책임을 다하느라 저렇게 하는구나, 엄마 덜 힘들게 하려고 그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에 맺힌 고민 덩어리가 쑥 빠져나가 한결 가벼워졌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하마터면 불쾌한 마음을 오래 묵혀 두었을 텐데, ‘나의 어리석음, 이 마음과 이 느낌이 믿을 것이 못 된다.’라는 것을 돌이키는 덕에 가족 모두에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는 고집이 무지하게 셉니다. 남이 하는 말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듣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상대의 의견에 부딪히면 무시합니다. 심지어 칭찬을 들어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칭찬이 아니고, 욕을 먹어도 별 신경 안 씁니다. 겉으로는 온화하게 지내니 사람들과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늘 내 기준으로 나 자신과 사람들을 평가했고 무시하고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자 매일 돌이키는 연습을 합니다. 기분 나쁠 때 화가 날 때 걱정이 들 때, 돌이키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이 수행을 알게 되어 저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이제 일 년 반이 지났습니다. 담담한 마음이었다가 울컥하는 마음이 지금도 오락가락합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마치 정리가 다 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 ‘아! 그때 그런 마음이었구나.’라고 다시 돌이키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직업이 만화가였습니다. 남편도 비교적 건강했을 때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후 《월간정토》에 일 년 정도 만평을 그렸습니다. 제가 보기엔 단연 뛰어났습니다. 한 컷이라도 소개하고 싶지만, 이사한다고 짐을 정리했더니 금방 찾을 수가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저희 모둠에 신규 희망리포터로 온 박선희 님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011년 불교대학에서 만난 후 10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만났기 때문입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박선희 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을지... 그 슬픔에 깊이 애도합니다. 그리고 다시 수행의 관점을 바로 잡고 정진함에 무한한 격려와 응원을 보냅니다.
글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편집_김윤희(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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