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나'로 가득 차서 부러진 때
-향취법사님 첫 번째 이야기-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본 향취법사님은 참 조용조용한 분 같았습니다. 저 잔잔한 호수에 어떤 돌멩이를 던져야 기승전결과 감동까지 있는 이야기를 건져낼 수 있을까 인터뷰 내내 조급한 마음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법사님은 끝까지 잔잔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잔잔함이 에너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향취법사님의 잔잔하지만, 힘 있는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

저는 그 시절 다른 친구들처럼 현모양처가 꿈은 아니었습니다. 전업주부로 산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결혼 후에도 직장을 다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임신 후에 직장을 계속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직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환경오염이나 성차별과 같은 사회문제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적인 동네인 대구에서 태어난 저는 할머니와 엄마의 삶을 지켜보면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사회문제와 관련된 책을 많이 찾아보고 진보적인 신문 창간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향취법사님
▲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향취법사님

둘째 아이가 막 돌이 지난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이 터졌습니다. D기업 전자 회사의 페놀 원액 저장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연결된 파이프가 파열되었고, 약 30톤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으로 흘러들어 대구·부산·마산을 비롯한 전 영남지역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킨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저를 충격에 빠트렸고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아이를 들쳐 업고 제 발로 지역 여성단체를 찾아갔습니다. 그 단체에서는 여성환경운동과 환경교육, 친환경먹거리 사업 등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평생 일을 하면서 살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일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른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 제 인생 전부를 걸고 모든 것을 맞춰가고 싶은 일을 찾겠다는 막연한 목표가 있었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서른세 살까지 찾지 못해서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순간순간 모든 것이 경험이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조바심이 났습니다.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여럿이 함께해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저와 뜻이 같은 단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으로 받은 큰 충격과 저와 뜻이 같은 단체를 찾고 싶은 조바심이 만나 서른다섯 살에 드디어 생활협동조합을 찾았습니다. 협동조합운동은 굉장히 멋졌습니다. ‘이것이 내가 끊임없이 찾던 길이다! 앞으로 내 인생을 여기서 함께하면 되겠구나.’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이후 저는 13년간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굉장히 재미나게 했습니다.

종로법당 개원식에서 (첫째 줄 왼쪽 세 번째)
▲ 종로법당 개원식에서 (첫째 줄 왼쪽 세 번째)

재미있게 사회활동하던 시절

1994년은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도가 막 태동하던 해입니다. 앞으로 중앙단위 활동보다 지방, 지역 활동이 중요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역에 좋은 활동 사례를 만들어서 다른 지역에도 널리 퍼뜨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양천구에서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를 시작으로 활동을 본격화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를 활동의 근거지로 삼으니 이웃 주부들을 만나기가 수월했습니다. ‘친환경먹거리’라는 주제는 주부들과 만나기 쉬운 연결고리였습니다. ‘친환경’과 ‘직거래’라는 사업은 제 뜻과 잘 맞았기에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활동했습니다.

농산물 산지 견학을 많이 다녔습니다. 판로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산지를 찾아 양천구를 판로로 연결하는 일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결 사업은 충남 홍성 배추입니다. 판로가 없어서 밭을 갈아엎어야 할 상황에 있던 배추를 트럭에 실어 양천구로 날라 왔습니다. 양천 지역신문에 배추 판매 홍보를 하고 동네 공터에 실어 온 배추를 쌓아놓았습니다. 작은 트럭 몇 대에 옮겨 싣고 동네 곳곳을 돌며 집집마다 배달했고, 5,000포기의 배추산은 하루 만에 사라졌습니다.

지역에 단체 사무실을 내고 운영비를 벌기 위해서 수익사업을 했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에는 떡케이크를 만들어서 팔고, 제가 직접 배달을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갔습니다. 늦은 저녁에 귀가해도 식구들은 제게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식구들도 규모가 큰 협동조합 행사에는 일손을 보태주고 제 활동을 지지해 주었기에 갈등이 없었습니다. 다만, 환경에 유별났던 제가 아이들에게 먹지 말라는 음식이 좀 많았는데, 아이들은 이런 부분에서 싫은 내색을 조금 할 뿐이었습니다.

환경활동 워크샵 중
▲ 환경활동 워크샵 중

부러진 덕분에 정토회를 만나다

협동조합에서 환경 관련 사업을 10년 정도 하니 제 고집이 생겼습니다. 경영권으로 의견 충돌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협동조합이 독자적인 경영권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다른 회원들은 ‘우리가 혼자 하기는 어렵다, 다른 단체의 힘을 빌려야 한다’며 저와 의견을 달리했습니다. 결국 엎치락뒤치락 여러 번의 이사회를 거쳐 제 의견과 다른 방향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저는 그 방향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더욱이 제가 재미를 느끼며 활동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이사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저는 결국 자리를 내려놓고 협동조합 활동을 쉬었습니다. 제 고집에 제가 딱 걸려 넘어진 겁니다.

평소 불교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협동조합 일을 내려놓은 참에 해보자 싶었습니다. 어디로, 누구에게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 당시 불교환경연대에서 활동하며 정토회 법사로 활동하던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정토회를 환경교육을 하는 종교단체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특별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2002년 2월, 선생님을 만나서 불교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 전에 제 고민부터 쏟아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게 진행되는 조직의 의결 처리와 제가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이야기하며 모든 게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선생님은 “세게 맞아야 정신 차린다.”는 딱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법요집을 주면서 기도하라 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혼자 기도를 하다가 4-2차 천일결사에 입재해서 쭉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협동조합 경영에 대한 의견들이 모두 옳았습니다. 제 의견도 맞고 다른 의견도 맞았습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 먼저 해보고 고쳐 나가보자.’ 이런 유연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적용하기 어렵고 이상적인 의견을 고집하는 저를 보면서 다른 회원들은 굉장히 답답했겠구나 싶습니다. 그때는 ‘나 옳다’로 너무 꽉 차 있어서 그냥 부러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13년이나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저에게 의미 있고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환경운동으로 여성들의 의식이 높아지는 걸 체감할 때마다 뜻깊었습니다.

향취법사님 인터뷰 현장
▲ 향취법사님 인터뷰 현장

다만 활동하는 내내 제게는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남성과 여성을 대립적으로 바라보고, 활동하면 할수록 권리 의식이 생겨서 젠더 갈등이 더 심해지는 게 보였습니다. 해법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에 와서 법륜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저만의 해법을 찾았습니다. ‘남편에게 숙이라’는 그 말씀이 처음엔 거부하는 마음이 탁 일어나며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법문 속에서 그 진짜 의미를 잘 풀어주셔서 오히려 제 마음속 걸림이 해소되었습니다.

정토회에 깊은 신뢰가 생기다

제가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며 정토회가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지 아직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입니다. 불교대학 홍보활동으로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차를 나눠주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일회용품인 종이컵은 쓸 수 없으니 스테인레스 컵을 쓰고, 깨끗이 씻어서 다시 써야 하니 컵을 삶아서 소독하자.’ 이런 의견들이 오갔습니다. 컵을 삶는 번거로운 일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도반들의 삶을 보면서 정토회라는 단체에 깊은 신뢰가 생겼습니다.

활동 초기에 전라도에서 환경강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눈이 엄청 내린 날이라 고속버스는 위험할 것 같아 기차를 타려 했더니 정토회에는 택시, 기차 탑승과 관련된 규정도 있었습니다. KTX와 같은 고속열차는 탈 수 없었고,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타더라도 정산은 시외버스 요금을 기준으로 해주었습니다. 외부에서 받은 강사료는 전액 보시입니다. 결국 현지에서 시내버스 타고 끼니를 챙겨 먹느라 제 돈을 쓰고 온 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규정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절대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철저한 단체라는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지렁이 퇴비화 사업 일환으로 서초법당 옥상에 텃밭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양재동 꽃시장에 화분을 사러 갔습니다. 여러 개의 화분을 들고 가자니 너무 무거워서 택시를 타야 했는데, 정토회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택시를 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게가 얼마인지, 거리가 얼마인지, 왜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지 사유가 적힌 결재를 올려야 택시비를 정산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차라리 내 돈으로 타고 말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반대로 정토회가 정말 십 원 한 장에도 철저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저의 신뢰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향취법사님의 수행담은 총 3회로 발행 예정입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편집_서지영(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녹취&글_김난희(강원경기동부지부 원주지회)

전체댓글 29

0/200

박정순

회계처리 엄격하다는 정토회..읽는데 울컥합니다
다음 편이 기대되네요_()_

2022-11-30 14:11:11

안명순

삶에서 성질이 급한사람이 해버린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향취법사님 행자의 하루 읽어면서 감동입니다

2022-11-27 16:32:49

장하영

향취법사님을 처음 뵙고 문을 나설때 자랄때 깊은 산속에서만 피는 행운의 상징인 함박꽃이 떠올랐습니다 자랄때 어느 집에 경사가 생기면 어르신들은
"아하 그집에 함박꽃이 피었구나" 하시며 부러움과 감탄을 하시곤 했지요
2회차를 읽고 법사님의 세상에 대한 이타심과 열정과 추진력 ,역시 범상하신 분은 아니셨다는걸 더 알게되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

2022-11-25 12: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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