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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괴로울 때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점집을 찾아다니며 무속신앙에 의지해 기복으로 괴로움을 풀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이 좋은 복을 자기 혼자 다 받을 수 없다며 정토회를 소개해줬고 그 친구를 믿고 흔쾌히 따라나섰습니다. 법당에 들어섰을 때 첫인상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속 신앙에 의지하던 나의 눈에 법당은 너무나도 심플하고 정갈해 보였고 어색함에 낯설어하는 나를 도반들이 따뜻하게 대해줬습니다.
무엇보다도 법륜 스님의 법문은 너무나 파격이었습니다. 또 도반과의 나누기를 통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내 마음속 이야기를 내어놓는다는 것이 부끄럽고 남이 어떻게 평가할지도 두려웠습니다. 순수하게 속내를 말하고 나누기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나누기를 통해 ‘슬프구나, 아프구나, 기쁘구나’를 알아차렸습니다. 나중에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대단한 것임도 알았습니다. 고집쟁이, 아집쟁이, 화투성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수행이라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세 분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낳아준 친어머니, 키워준 큰어머니, 그리고 새어머니. 이렇게 세 분입니다. 돌이 지난 나를 두고 친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재혼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큰어머니가 나를 돌봐주었는데 다행이도 큰어머니가 정이 많고 따뜻한 분이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내 편이었습니다. 큰어머니를 지금도 가장 많이 의지하고 사랑하며 제 마음속에 진짜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가난과 차별 그리고 외로움과의 싸움이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잠시 주춤한 작년 가을, 계속 연기된 〈깨달음의 장1〉이 잠깐 재기되어 운 좋게 참가했습니다. 그때 원망과 미움 속 두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나를 두 번이나 버렸던 친어머니 그리고 그림자 취급했던 새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 40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낳아준 어머니와 연락을 했습니다. “그냥 다른 거 없이 한번 뵙고 싶다” 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안 보고 싶다”라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두 번 버려졌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서 털어내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그 말들이 떠올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정말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린 것처럼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울음 끝에 홀연히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려워 다 버리고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고만 생각했던 새어머니, 그분도 단지 인정하고 받아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컸습니다. 어머니를 내 마음속에서 놓아주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구나를 알았습니다. 그때 그분은 저보다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털어버렸습니다. 엄마 없이 크는 딸이 안쓰러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나를 걱정했던 아버지도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결국 가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혼 후 앞만 보고 살았습니다. 뒤도 옆도 볼 수 없었습니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무조건 달렸습니다. 통장 잔고가 내 행복의 크기라 여겼습니다. 죽어라 일하고 또 하고,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기를 썼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련하고 무지 했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나를 비방하거나 흉을 보면 조금도 못 참았습니다. 지금은 정토회 다니는 2년 동안 많이 다듬어져서 모든 행동에는 과보가 따른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화를 조금씩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면서 이런 나를 보면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무지한 나에게 불법은 단비처럼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고 때론 화를 꺼뜨려 주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초법당으로 공양간 봉사를 갑니다. 식당했을 때의 경험과 재주가 여기서 이렇게 잘 쓰일 수 있구나 라는 사실에 깜짝 놀랍니다. 맛있게 잘 먹는 도반들을 보며 감사한 마음만 올라옵니다.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한마음으로 일합니다. '봉사하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낍니다.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전념할 생각입니다.
정토회에 다니면서 기복신앙은 완전히 끓었습니다. 이제는 일체중생의 은혜로 살아감을 알게 되어 은혜를 잘 회향할수 있도록 수행하고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하루 아침에 변할 수는 없지만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또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습니다. 두 아이도 잘 커 주고 내 일을 많이 지지해 줍니다. IT회사를 다니는 작은 아들이 개인 법당을 꾸밀 수 있도록 노트북도 사주고 눈이 안 좋은 나를 위해 큰 모니터도 선물해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큰 선물입니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줍니다. 덕분에 조금 겁도 나고 어렵지만 온라인 세상을 편안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 인연에 감사하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잘못 살아온 내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며 새롭게 나아가겠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그리고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전화통화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인자 님은 너무나 우아하고 차분해서 이런 일들을 겪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깨달음의 장 이후 친어머니와 새어머니를 이해한 것이 마치 당연한 일처럼 가볍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저의 불만과 원망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박인자 님이 보낸 세월의 질곡이 박인자 님을 더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인자 님의 가벼운 발걸음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기원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글_박인자(강원경기동부/경기광주지회)
정리_신정아 희망리포터 (강원경기동부/경기광주지회)
편집_박문구 (서울제주지부/ 마포지회)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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