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의창법당
내가 잡고 있던 외로움

2008년 직장 동료가 수요일마다 어디론가 사라져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같이 가볼래요?”라고 해서 따라나선 길이 정토회와의 인연이 되었다는 진혜란님. 지금은 창원정토회 의창법당 소속 창원정토회 지역대의원 소임과 통일특위소임을 맡고 있는 진혜란님의 그냥 편안하게 하는 수행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법당에서 봉사중인 진혜란 님
▲ 법당에서 봉사중인 진혜란 님

암흑과 지옥

유년시절은 암흑,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엄마 얼굴을 모릅니다. 들은 바로는 제가 3~4살쯤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새엄마를 맞이하였는데, 새엄마는 저를 많이 불편해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새엄마가 심하게 다툰 다음날 아버지는 저를 외가댁에 데리고 갔습니다. 6~7살 때 일입니다.

제 기억에 생생한 한 장면이 있습니다. 차가운 큰 방에서 저는 혼자 모포 한 장으로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따뜻한 작은방에서는 새엄마와 아이가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배고픔에 말라 딱딱해진 가래떡과 쌀을 훔쳐 먹었습니다. 부엌에 몰래 들어가 반찬을 몰래 훔쳐 먹기가 일쑤였습니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막내 외삼촌이 저를 데리고 나가면 길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어서 창피했다고 합니다. 더부살이인 저는 눈치껏 집 안 허드렛일과 농사일을 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떤 불만도 투정도 부리지 않고 시키는 대로 순응하며 지냈습니다. 많은 군중 속에 있어도 나만 홀로 버려진 외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는 왜 먼저 죽었는지 원망스러웠고, 외갓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자주 볼 수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했습니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감사함

초등학교 3학년쯤 누군가 식모살이를 하면 돈도 벌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말에 친구와 옷가지 보따리를 싸 들고 새벽에 길을 나섰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동네 끝, 방공호로 파놓은 구덩이에 숨었습니다. 친구는 추워서 집에 가버리고 혼자 남았는데, 저는 외삼촌이 찾아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에게 외할머니는 처음으로 매를 들었습니다. 아프기 보다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내가 사랑받는 존재이구나 하고, 저의 존재감을 인정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어떤 일을 하든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몸이 건강한 것에 대해 감사함, 자연에 대한 고마움 등... 모든 것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힘들다고 느껴질 때 긍정의 마음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봉림사지에서 도반들과(왼쪽에서 두 번째 진혜란 님)
▲ 봉림사지에서 도반들과(왼쪽에서 두 번째 진혜란 님)

빚진 인생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여전했습니다. 1년에 한 번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 사주지 않고 어쩌다 한번 오면 술에 취해 와서는 다음 날 아침이면 가버리는 아버지가 그리우면서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의 무책임함에 ‘싫다’라는 생각이 마음에 항상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산업체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돈이 없다며 돈을 달라고 찾아온 아버지가 정말 어이없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새삼 키워주신 외할머니와 외삼촌, 외숙모가 고마웠습니다.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저를 돌봐주신 것이 감사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밭일을 할 때면 “너는 빚지고 있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던 기억에 ‘어떻게든 그 빚을 갚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벌어놓았던 300만원을 외삼촌께 드리고 나니, ‘빚졌다’라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고 감사했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며

20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로 입원하였습니다. 병간호를 맡아 하며 원망스러운 마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제가 필요 할 때는 외면 한 채 살았으면서, 당신이 필요 할 때 이렇게 찾는가 하는 마음에 억울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돌아가시고 나중에 후회 하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하자’라는 마음으로 간호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더 이상 안 된다는 말에 고모가 집에서 아버지를 돌보게 되었고, 저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임종하셨다는 소식에 장례를 지내러 갔는데 눈물도 나지 않고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사람의 인생이 참 허무하구나 싶었고, 한 인간으로 살아온 인생에 ‘수고 하셨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편히 쉬시라고 인사를 마쳤습니다.

인도성지순례중인 진혜란 님
▲ 인도성지순례중인 진혜란 님

마음이 따뜻한 사람, 그러나

30대 후반에 남편을 만났을 때 참 따뜻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이 사람이랑 살면 ‘마음이 따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남편이 가난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존경스럽기도 했습니다. 돈은 뭐 아무나 벌면 어때 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새벽까지 작업하고 술을 마시고 오는 것이 일상이었고, 만취가 되어 오는 날에는 고함과 거의 자해에 가까운 행동을 해서 안타까움과 연민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보다 더 마음이 힘든 사람이구나, 내가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남편도 저도 서로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언제부턴가 술을 마신 날은 저에게 "왜 안 가고 여기에 있느냐?" "시골 할망구가 죽고 나면 당신과 끝"이라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반복하였습니다. 같이 행복하려고 결혼했는데 저를 만나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내가 떠나는 것이 이 사람이 더 행복한가’ 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법당에서 봉사중인 진혜란 님(맨 왼쪽)
▲ 법당에서 봉사중인 진혜란 님(맨 왼쪽)

질긴 인연

이런 일 때문에 고민하던 중 법륜스님을 알게 되었고, 즉문즉설을 통해 스님께 질문 했고 그것을 계기로 결혼생활은 계속 이어 갈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여자를 만난다는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결혼 초에 도움을 많이 주었던 작업실 사람과 선을 넘은 사이가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새벽기도에 더 집중했습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답을 알 수 없어 정진을 하며 수행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서 ‘일어날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그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라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남편과 해결을 보면 헤어질 것 같아, 그 상대를 만나 풀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스님의 책을 선물하고 만나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의 오해로 두 사람 사이는 정리가 되었습니다.

도반들과 봉사 중인 진혜란 님(가운데)
▲ 도반들과 봉사 중인 진혜란 님(가운데)

돈의 노예를 거부하다

저는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법문을 듣던 중 깨달아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업식 때문에 남편에게도 돈을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모아놓았던 쌈지 돈을 생활비로 충당했습니다. 남편은 저의 정토회 활동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며, 조금씩 가져오던 생활비도 주지 않습니다. 남편과 저는 가족으로서 함께한다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없어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술을 마시고 ‘술집에 돈을 주더라도 너에게는 돈을 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내 수중에 돈이 없어야 남편에게 더 가볍게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직장을 구하지 않고 활동에 더 매진했습니다. 수행과제로 가볍게 말해보기 연습도 꾸준히 했습니다. 그럴수록 남편은 더 심하게 난동을 피우고 외도가 계속되었습니다. 주위 도반들은 아이도 없는데 헤어지리라는 말도 했지만 저는 혼자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착각과 핑계

저는 정일사1를 통해 법사님께 묻고 답하면서 제가 남편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남편과 헤어지면 세상 속에 버려져 또 다시 혼자된다.’는 생각에 제가 남편의 손을 못 놓고 있음을 깨치고 가벼워 졌습니다. ‘내가 이 사람의 마음의 병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핑계를 삼고 살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남편과 헤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법당에서 도반들과 즐거운 한때(맨 오른쪽 진혜란 님)
▲ 법당에서 도반들과 즐거운 한때(맨 오른쪽 진혜란 님)

어느 날 남편은 어김없이 술을 먹고 와, 저를 이해 할 수 없다고 소리치며 집의 가제들을 부수고 다음날에 헤어지자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자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서류를 해오라는 말에 준비도 당신이 하라고 했더니 다음부터는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정일사 회향을 하며 법사님께서 남편에게 감사기도를 해보라는 과제를 주셔서, 기도를 시작하니 남편이 이해가 되며 절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프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본인관리를 잘하는 것도 고마웠습니다. 엄마도 세 살까지 살아서 사랑으로 저를 키워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아버지도 참 고달프게 살아 오셨구나, 많이 힘들고 외로웠겠다는 마음에 미안하고 감사했습니다.

가족이 많아 행복합니다

생계를 위해 찾던 일자리가 없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한마음 바꾸어 어떤 일이든 ‘괜찮다, 생계만 해결되면 된다.’고 마음 먹으니 미래에 대한 걱정도 근심도 뚝 사라졌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안 돼요, 못해요”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업식이 거절을 잘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활동이 재미있고, 그 안에서 부처님의 법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향을 잡을 수 있었기에, 정토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복이고 가피라 느껴집니다.

도반들과 퍼포먼스 연습중인 진혜란 님(왼쪽에서 두 번째)
▲ 도반들과 퍼포먼스 연습중인 진혜란 님(왼쪽에서 두 번째)

저에게는 가족이 많습니다. 우리 도반들이 저의 가족입니다. 함께 걱정하고 살펴주고 마음 받아주는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도를 놓치지 않고, 활동을 멈추지 않는 것은 제가 입은 은혜에 회향하는 길이고, 이 길이 저와 남편이 살 수 있는 길임을 확신했습니다. 몸이 아파 활동이 가끔 힘들어도, 끈을 놓지 않아 이렇게 성장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남편은 물건을 부수지도 자해를 하지도 않습니다. 가끔 고함을 지르고 생활비도 주지 않지만, 가끔 애교로 용돈을 받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 여기 행복합니다. "나는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듣는 동안 ‘나눈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담을 나눠주신 진혜란 님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함께하는 가족으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글_ 정선혜 희망리포터(창원정토회 의창법당)
편집_ 이종명(전주정토회 전주법당)


  1.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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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덕

혜란님~
감동입니다.
그런 사연들이 있었네요.
가끔 만나면 잔잔하게 웃음띈 얼굴을 뵈면서 그런 아픔들을 딛고 행복해진 분이란걸 생각도 못했네요^^
혜란님 ~~화이팅!입니다.3

2021-02-02 11:31:40

덕승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ㅠ
진심어린 글 감사합니다!!

2021-01-31 22:53:47

박신영

혜란님의 솔직한 나누기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납니다 사람은 어떡하든 산다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을 대하는 모습이 천사의 모습같아요 같은 도반으로 혜란님을 응원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감사합니다~~

2021-01-19 0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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