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초법당
이산 저산 다녀봐도 행복은 지금 여기!

히말라야 원정대를 따라 아프리카의 킬로만자와 파키스탄의 히말라야 정상 등 전 세계의 유명한 산봉우리들을 다 정복한 분이 있습니다. 누구나 하기 힘든 그 숨 막힐 듯 장엄한 대자연을 경험하고서도 얻지 못한 행복과 자유를 문경의 희양산이 보이는 낮은 언덕〈깨달음의 장〉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현재 《월간 정토》의 행정 책임을 맡고 있는 이응노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러시아 엘브러즈 정상 5,642 m에 오른 이응노 님
▲ 러시아 엘브러즈 정상 5,642 m에 오른 이응노 님

행복과 자유를 찾아 이 산, 저 산으로

저는 무척이나 고집스럽고 과격하며 직설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던 2006년, 제게 그 괴로움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유일한 취미는 산을 오르는 거였습니다. 히말라야 원정대를 따라 해발 6,500 m 도보여행을 다녔습니다. 아프리카의 킬로만자로, 러시아의 엘브러즈, 파키스탄의 히말라야 정상 등 전 세계의 많은 산봉우리를 올랐습니다. 늘 높은 고지의 산을 오르거나 장거리 도보여행을 가면 ‘그냥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을 피해 떠난 대자연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얻기는커녕, 머릿속은 그저 지옥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산악 원정대 리더였던 선배가 <깨달음의 장1>을 가보라고 추천했습니다. 그 리더를 상당히 신뢰했던 저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신청했습니다. 등산 장비를 잔뜩 싣고 템플스테이 정도라 생각하며 가볍게 찾은 문경에서의 4박 5일! 그 경험은 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도반이, 질끈 묶은 머리에 눈을 가늘게 뜨고 못마땅함이 가득한 못된 사감 선생님 같은 얼굴로 주변을 싹 훑어보는 저의 첫인상을 기억합니다. 수련 전에 제 주위 사람들에게 비친 내 모습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면 지금도 부끄러워집니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우후르피크 키보봉 5,895 m)에서 (노란색 옷 이응노 님)
▲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우후르피크 키보봉 5,895 m)에서 (노란색 옷 이응노 님)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깨달음의 장>을 마친 첫 말이 “나는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 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날 과격하고 거칠었던 행동과 말로 괴롭혔던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그들에게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주말에는 문경으로 내려가 밤늦게까지 울력이며 바라지를 했습니다. 매주 문경에 내려갔던 건, 다시 옛날 그 모습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과 저는 공무원이었고, 극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법륜스님은 즉문즉설2로 많이 알려졌고 정토회의 활동도 투명하여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인터넷에는 가끔 스님이 반체제 인사로도 비쳐져, 주위 사람들이 많이 의심하곤 했었습니다. 성향이나 집안 분위기로 선뜻 정토회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제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하는 거로 보였을 것입니다. 문경에서 선주법사님의 안내로 2007년 3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샤모니 도보여행 중 이응노 님
▲ 샤모니 도보여행 중 이응노 님

괴로웠던 지난 시절

저는 6남매 중 셋째 딸이었지만 형제들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연로한 부모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당뇨로 인해서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고, 어머니는 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도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에 대한 미움,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에 분노가 고스란히 쌓여 갔습니다. 형제들의 존재는 제 노력으로 얻은 모든 재산을 고스란히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그렇게 사는 건,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슴 속 분노가 주변 지인들에게 고스란히 표출되었습니다. 신경이 곤두서서 저도 모르게 주변 지인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사건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음 생은 수행하는 도반으로 만나세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후 저의 변화를 알아챈 건 어머니였습니다.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삼배로 그간 오만무도한 저를 받아주었음에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불자였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새벽마다 천수경3과 금강경4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독경을 했습니다. 어릴 적 제게는 어머니의 독경 소리가 아침잠을 깨우는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리였습니다.

천일결사5에 처음 입재 하던 날, 유수스님의 독경을 무심코 따라 하던 저를 알아채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천수경이었는데 한 번도 배워보지도 못한 제가 따라 할 수 있었던 건 어릴 적 어머니가 새벽마다 했던 덕분입니다. 어머니에게 불교를 왜 믿냐고 물어보면 “아버지가 나를 여기로 보내셨지”하고 빙그레 웃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2년 동안 부모 자식의 인연이 아닌, 도반으로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2018년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머니가 제 손을 잡으면서 “다음 생에는 수행하는 도반으로 만나세” 했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 인도 성지 순례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무엇이 사람을 180도로 바뀌게 했지

지금은 부모님을 돌볼 수 있는 제 자신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만들어 준 부모 형제들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형제자매들도 어찌 아픈 어머니 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하고 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리고, 도움이 못 되는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입을 꾹 다물고, 험한 얼굴을 하는 제가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들이 오는 걸 막고 있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형제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을 때, 그 무거움을 내려놓으라고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큰언니, 오빠, 올케가 정토회원입니다. 그렇게도 힘들게 했던 제가 확 뒤바뀌어 버린 모습에 오히려 가족들은 "무엇이 사람을 180도로 바뀌게 했지?" 하며 자연스레 도반으로 함께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힘든 생활은 여전하지만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고, 만나면 도반처럼 나누기를 합니다.

저는 일 추진하는 걸 좋아하고, 성질이 급해서 다 해치워 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일을 많이 저질러 놓고, 제 식대로 서두르고, "나도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하면서 주변 도반들을 많이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나이가 좀 드니 느려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삶이 오히려 편안합니다. 주위의 30년 지기 지인들이 나이 드니 유해져서 좋아 보인다고들 합니다.

월간 정토 실무 회의 중인 이응노 님(가운데)
▲ 월간 정토 실무 회의 중인 이응노 님(가운데)

참회

한동안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계체조부터 테니스까지 모든 운동을 좋아하고 50~60년 산을 다녔던 제가 무릎 연골이 많이 닳아 절을 많이 하지 못하는 겁니다. 스님에게 "절을 많이 하고 싶은데 무릎이 아파요."라고 질문도 했습니다. 그렇게 절을 하고 싶었던 제가 “그럼 다리 아픈 장애인들은 성불 못 하겠네요. 왜 절에 집착하나요? 108배 해보고, 아쉬우면 명상하면 되지요.”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왜 그렇게 절이 하고 싶었는지도 알았습니다.

왼쪽 이응노 님
▲ 왼쪽 이응노 님

절을 하면 잊혔던 상처 준 사람이 떠오르고, 그 업식을 보고 참회하고 싶어서 무리하게 절을 고집하고 집착했습니다. 지금은 아주 천천히 108배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오를 때 그 무거운 짐을 들고 뛰어다니던 우직하고 미련스러웠던 제 자신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지난 인연들에 미안한 마음을 법륜스님의 책 선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직선적이고 까칠했던 저와의 인연을 왜 이어갔는지를 물어보면, "성격은 더러웠지만, 그래도 배울 점은 있어서 참을 수 있었다." 는 말에 함께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켜 놓은 채 양치를 하는 후배를 보면, 그냥 무작정 꺼버리고 눈치를 많이 줬습니다. 그래도 맘이 안 놓이면 '이 물은 미래에 당신 아이들이 먹는 물입니다.'라고 써 붙혀 놓고, 일회용 컵도 없애버렸습니다. 일회용 컵을 못 쓰게 하려고 동료들에게 커피를 많이 타줬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후배들을 만나면 "양치할 때마다 언니가 생각나서 수돗물을 저절로 끄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 깨어 있음

현재는 정토회 행정처에서 《월간 정토》 편집 이후의 모든 일과 회원 관리, 행정 관리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월간 정토》는 1988년 창간한 이후 2020년 코로나로 힘든 지금까지 신규 구독자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 그 일을 시작했던 전임 봉사자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봉사했는지가 느껴집니다. 스님의 하루에서 읽은 기억이 있던 '사하촌에 불심이 없다.' 라는 말과 '내가 행복하고 주변이 행복하려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게 전법이다.'라는 스님의 말에 제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늘 깨어있으려고 합니다.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모른채 총무님의 추천으로 이응노 님을 만났습니다. 숨어있는 보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자이크 붓다로서 지금, 여기서 빛나고 있는 이응노 님을 인터뷰하면서 '정토회와 오래도록 꼭 붙어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했습니다. 이응노 님과 함께 하여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글_박문구 희망리포터(서초정토회 서초법당)
편집_장순복(남양주정토회 남양주법당)


  1.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2. 즉문즉설(卽問卽說): 법륜스님이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한 프로그램.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에 대해 '즉시 묻고, 즉시 이야기 하는 대화 방식'을 말함. 

  3. 불교 경전의 하나. 관세음보살이 부처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고 설법한 경전이다. ‘한량 없는 손과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이 넓고 크고 걸림없는 대자비심을 간직한 큰 다라니에 관해 설법한 말씀’이라는 뜻이다.  

  4. 금강경 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5.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했습니다.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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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저도 '내가 행복하고 주변이 행복하려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게 전법이다.'라는 말씀에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좋은 얘기 감사합니다.

2020-07-25 16:29:46

전미리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0-07-16 14:07:37

우연

이응노님의 예전의 모습이 마치 저를
보는듯 합니다.
정토회를 만나 나를내려놓고
정진해가는 모습 참 보기좋습니다
저도 법륜스님의 강의를 보고 정토회
홈피를 들라거리지만 아직 선뜻 용기가 나질 않네요

2020-07-16 10: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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