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안양정토회
다시 태어나 덤으로 사는 인생, 나를 버리고!

4년간의 안산법당 부총무 소임을 마치고 회향한 원호성 님. 평소 ‘예하고 합니다.’를 실천하는 정토행자입니다. 안산법당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제 또 다른 소임을 ‘예'하고 받았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원호성 님의 감동적인 수행담, 전해드립니다.

안양 법륜스님 ‘희망강연’에서 공연후 도반들과 함께 (왼쪽에서 세 번째 원호성님)
▲ 안양 법륜스님 ‘희망강연’에서 공연후 도반들과 함께 (왼쪽에서 세 번째 원호성님)

미친 듯이 돈 벌며 살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불행

5남매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서른 여덟의 나이로 저희 5남매를 키웠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버지와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언제나 자상했던 분으로 저의 이상형이었습니다.

저는 27세에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늘 밖으로만 도는 남편은 제게 부족한 존재였습니다. 결국 남편과 2002년도에 이혼하고, 초등학교 5학년 딸과 6살 아들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이혼 당시 모든 것이 연체된 상태라 남편에게는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언니가 빌려준 천만 원으로 의정부에서 무작정 시흥시 정왕동으로 이사 왔습니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미친 듯이 일만 했습니다. 장사해서 한땐 돈을 벌어 언니 빚도 갚았지만 또 다른 장사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까먹었습니다.

막막한 상태에서 지인분 소개로 다마스 중고차를 구입해 퀵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2011년 겨울, 군부대 차와 부딪히는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 나자 다리 안 잘렸냐고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순간 혀가 마비되고 저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지만 주위 사람들이 걱정하는 다리는 다행히 멀쩡했습니다

지금 오른팔을 제대로 못 쓰긴 하지만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차는 폐차되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로 3개월 정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퇴원 후 얼마 안 돼서 또다시 허리가 삐끗하더니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누워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돈이 없어 병원도 가지 못했습니다.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밥해서 차려주면 그 밥도 누워서 먹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24시간 누워 지내다 보니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벌어 놓은 돈도 다 까먹고, 나이는 먹었고, 몸은 아프고, 아이들은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습니다. 딸아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니 딸에게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점점 삶에 의욕이 없어졌습니다. 캄캄한 암흑의 세계였습니다.

병상 속, 유튜브 ‘즉문즉설’을 보며 찾아온 변화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본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생각나 유튜브에 ‘법륜스님’을 찾아봤습니다. 스님 영상이 엄청나게 많아 반가웠습니다. 매일매일 유튜브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은 거의 다 보고, 다시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스님 영상을 보며 차츰 제 마음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었고 감사했습니다.

1년 6개월 정도 지나 걷게 되고, 몸이 점점 좋아져 자전거도 타게 되었습니다. 평소 감사함이라곤 모르고 살던 제가 어느 날 자전거를 타는 소소한 일상에서 벅찬 기쁨과 감사함이 올라왔습니다. 자전거 폐달을 밟을 수 있는 발이 있어 감사하고, 손잡이를 잡을 수 있는 손이 있어 감사하고, 이 멋진 하늘과 경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감사하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있어 감사하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모든 것이 소중하고 감사했습니다.

그저 ‘예’하고 하다 보니 부총무 소임까지

그러다가 ‘팟케스트’에서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듣는데 불교대학 신입생 모집한다고 해서 안산법당에 바로 입학했습니다.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천일결사 모둠장을 하라니 뭔지 모르지만 하고, 또 경전반 학생일 때는 부총무를 맡으라고 하니 잘 모르지만 그냥 했습니다. 이전 부총무를 맡으신 분이 수원법당으로 이사가 그분의 남은 임기를 대행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스님 법문 듣고 행복을 알았으니 스님께서 추진하시는 일은 뭐든지 ‘예’ 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활동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정토회에서 진행되는 교육도 재밌고, 회의도 재밌고, 뭐든 배우고 싶어 하는 저에게는 다 재미있었습니다.

도반은 나의 부처님이자 스승

2018년 안산법당 시무식때 도반들과 함께 (앞열 왼쪽에서 3번째가운데 원호성님)
▲ 2018년 안산법당 시무식때 도반들과 함께 (앞열 왼쪽에서 3번째가운데 원호성님)

정토행자로 봉사하면서 재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도반들과 부딪칠 때마다 ‘내 꼬라지’를 확연히 보게 됩니다. 제 안에 분별이 많을수록 제 업식을 보게 하는 맞춤형 도반을 만났습니다. 도반이 부처로서 저를 깨우쳐 주러 왔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임이 클수록 업이 빨리 소멸되고, 저의 깜냥이 점점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00배 정진으로 시작된 참회의 눈물

총무단 회향수련 나들이중 총무님들과 함께 (앞열 가운데 원호성님)
▲ 총무단 회향수련 나들이중 총무님들과 함께 (앞열 가운데 원호성님)

향왕법사님(당시 국장소임)과 총무단 수련할 때 300배 정진을 함께 했습니다. 그 후로 매일 300배 정진을 계속했습니다. 300배 정진을 하며 그동안 원망했던 남편에게 참회가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열 가지 백 가지 마음에 안 든다 했는데 남편 잘못이 아니라, 내가 남편을 열 가지 백 가지로 시비했었구나. 남편은 괜찮은 사람인데 내가 인정을 안 했구나. 내 인생 망쳤다고 원망했는데 내가 남편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구나.’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남편은 당신 아버지한테 혼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부인인 저까지 남편을 내쳤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난 사람이고 남편이 못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습니다. 남편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 인생 엉망으로 만들어서 너무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시부모님께도 남편은 귀한 아들일 텐데, '귀한 아들 미워해서 죄송합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300배 정진을 하며 눈물을 펑펑 매일매일 쏟았습니다.

소임은 복, 언제 어디서나 잘 쓰이는 삶

2019년 송년회 안산법당 도반들과 함께 (왼쪽에서 네번째 원호성님)
▲ 2019년 송년회 안산법당 도반들과 함께 (왼쪽에서 네번째 원호성님)

‘소임이 복이다.’는 말이 팍팍 와 닿습니다. 소임으로 이런 인연을 만나 남편한테 참회가 되니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가벼워지니 아이들, 부모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한 것을... 저 하나 못 되게 마음먹으니 주변 사람들 모두가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 입장을 헤아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어느덧 4년의 부총무 소임을 회향하고 지금은 통일 특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가 인생의 행복임을 잘 알겠습니다.

월광법사님은 저보고 다시 태어난 인생이라고 합니다. 덤으로 다시 태어난 인생, '나'를 버리고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저를 위한 것보다 '모두를 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시시때때로 분별이 일어나도 알아차리고 돌이킬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법륜스님을 통해 부처님 법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잘 쓰이겠습니다.

글_김용태 희망리포터(안양정토회)
편집_권영숙(홍보국 홈페이지 운영팀)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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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향

하루종일 작은일에 꽁해있던 마음이 부끄럽네요 깨닫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20-04-07 20:27:14

함미

저도 시흥시 정왕동 살았는데
안산법당 갔더라면
원호성님을 뵐수있었겠군요ㆍ
힘찬장하십니다
응원합니다 ‥

2020-04-04 21:55:34

박주영

감동입니다. 맞춤형 고난과 맞춤형 도반으로 받아드리신 공덕입니다.
읽으면서 저를 돌아보니 온통 방어적인 저를 반성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04-02 09: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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