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양평법당
호랑이 눈에서 꿀 떨어지기까지

긍정적. 밝음. 낭랑한 목소리. 솔직함. 솔선수범. 7대 행사 백과사전. 배려심. 감사. 그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양평법당의 큰 재산 공시연 자활팀장을 소개합니다.

피아노강사에서 빵집아줌마로

나는 강원도 영월에서 아빠의 믿음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피아노 강사였습니다. 제빵사인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제과점을 오픈하고 싶어 했습니다. 목돈이 없던 차라 경비목록을 작성해 아빠를 찾아갔습니다. 아빠의 도움으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에서 빵집을 개업했지만,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남편은 그냥 자리에 누워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IMF가 터지면서 피아노 레슨을 접고 빵집을 직접 운영해야 했습니다. 여기저기 돈을 끌어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면 아이들 분유 값이 없던 달도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가게를 접었으나 건물주인은 계약 파기라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고, 소송과 긴 재판을 거쳐야 했습니다.

어느 날, 영흥도로 놀러 갔다 온 남편이 그곳에 빵집을 열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 딸은 섬에서 못산다는 친정 아빠의 반대가 있었지만, 제빵기계를 배에 싣고 생면부지의 섬에서 빵집을 오픈했습니다. 장사는 생각보다 꽤 잘 되었고, 5차 공판 후 전 건물주로부터 보증금도 돌려받았습니다.

자정이 넘어 빵집 마감을 끝내고, 두 아이 키우면서 짬짬이 피아노 레슨도 했습니다. 빚도 얼추 다 갚고 나니 남편은 더 큰 곳으로 빵집을 이전 개업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남편은 허리를 다쳤고 고향인 양평에 내려가 부동산을 하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양평법당 도반들(두 번째 줄 맨 왼쪽)
▲ 꽃보다 아름다운 양평법당 도반들(두 번째 줄 맨 왼쪽)

원망의 마음이 싹트다

결혼하기 일주일 전 나는 시어머니가 두 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분은 남편을 낳아준 분, 다른 한 분은 아이를 못 낳아 남편을 입양한 집안 장손 며느리인 큰어머님입니다. 친어머님은 “얘는 나한테 아픈 손가락이다.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 잘 부탁한다.” 했습니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려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남편에게 짜증 내지 않았습니다. 친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무 호칭 없이 말 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빵만 만들었던 남편에게 휴가를 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해 봐. 돈은 벌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거 한번 해 봐.” 그렇게 일 년 반을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빵집도 운영하고 레슨도 하고, 아이들도 혼자 키우며 힘든지 모르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몸이 아파 병원엘 갔더니 난소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한쪽 난소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고 몸은 급속도로 약해졌습니다. 평소 믿고 의지했던 지인에게 빵집을 맡기고 나도 양평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윗동네 아랫동네 가까운 곳에 사는 두 시어머님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부딪혀 보기로 했습니다. “여보, 내가 두 어머님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한 번 살아볼게. 다만 내가 정 못하겠다고 하면 그땐 내 편을 꼭 들어줘.” 했고 남편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 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양쪽 집 장을 따로 봐서 하나는 숨겨두고 큰어머님댁에 먼저 갔습니다. 애들이랑 큰집에서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해 먹으며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숨겨뒀던 물건을 챙겨 일요일 점심 한 끼는 친부모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몇 년간 지속했습니다. 친어머님은 그런 나에게 늘 고마워하고 미안해했지만, 큰어머님은 나를 너무나 못마땅해했습니다. 명절에 장을 다 봐가서 음식을 해도 항상 뭘 못한다고 야단을 쳤습니다. 어머님의 눈이 호랑이 눈처럼 무섭고 사나워 보였습니다.

왼쪽이 큰어머님, 오른쪽이 남편을 낳아주신 어머니
▲ 왼쪽이 큰어머님, 오른쪽이 남편을 낳아주신 어머니

뚜벅이 강사에서 국밥집 아르바이트까지

처음 양평에 왔을 땐 큰어머니와 목욕탕도 같이 가서 등도 밀어주는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큰어머님은 그런 나의 제안에 군더더기 없이 “됐다.”고 했습니다. 수술 직후라 몸은 약해졌고, 큰어머님의 구박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독서 토론 모임에 나갔습니다. 독서 토론을 통해 힘이 생겨 피아노 레슨을 다시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뚜벅이 강사였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양평에서의 생활이 안정되어갈 즈음 남편은 몰래 주식을 해서 돈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나는 레슨을 더 많이 해야 했고, 12시가 넘어서 레슨이 끝나기도 했습니다. 매달 드리던 큰어머님 용돈을 못 드리게 되자 국밥집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어버이날이 다가왔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큰어머님께 드렸지만 칭찬은 커녕 역정만 들어야 했습니다.

독서 모임 친구에서 양평법당 도반이 된 손형경, 오정민, 공시연 님
▲ 독서 모임 친구에서 양평법당 도반이 된 손형경, 오정민, 공시연 님

진심은 통한다

명절 일주일을 앞두고 물김치, 수정과, 김치를 하러 큰어머님 집에 갔는데, “네가 지난주에 장 받아 논거, 그거 내가 먹는 줄 아냐? 그거 퇴비장에 다 가져다 버리고 개밥 다 준다. 내가 그걸 먹는지 아냐?” 하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하지 않던 욕도 했습니다. “내가 너 때문에 잠도 못 잔다.” 그러는데 나는 어머님이 왜 화를 내는지 이유도 몰랐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노랗게 질린 얼굴로 물김치를 담고 있는데, 남편이 시어머니의 역정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쟤는 내가 별말도 안 했는데 저렇게 울고 있다.” 그 말을 듣고 난생 처음 인사도 없이 큰어머님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군민회관 계단에 숨어 앉아 울면서 친정 언니에게 전화해 더 이상 못 살겠으니 나를 데리러 오라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언니는 내 얘기를 다 들어줬지만 데리러 오지는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집에 들어갔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큰어머님께 자초지정을 물어본 남편은 오히려 며느리 편든다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고 명절을 쇠러 갔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생전처음 명절날 아침 친정에 간다는 핑계로 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를 강원도 바닷가로 데려 갔습니다. 그 날 남편은 처음으로 속 얘기를 꺼내놓았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부인한테 사춘기를 부렸다고. 그 사춘기를 다 받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해 보고 싶었다고. 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무슨 일을 저질러도 부모님 눈치 보지 않아도 됐고, 부인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줘서 정말 미안했다고. 그동안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못 했는데 정말 고마웠다고. 큰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대하는지 정말 몰랐다고. 그 순간 남편에 대한 원망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정진이 삶의 기준이 된 공시연 님(왼쪽에서 두 번째)
▲ 정진이 삶의 기준이 된 공시연 님(왼쪽에서 두 번째)

불법을 만난 건 기적이다

그러다 정토회 불교대학 모집 플래카드를 보고 바로 등록했습니다. <깨달음의 장1>에서 큰어머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큰어머님의 말투에 상처 입어 그분의 진심을 바로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알았습니다. 큰 어머님의 눈이 호랑이 눈이 아니라, 내가 그분의 눈을 호랑이 눈으로 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제야 큰어머님의 말과 행동의 숨은 뜻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며느리를 친부모에게 빼앗길까 전전긍긍했을 그분이 안쓰러워졌습니다.

법회 담당과 정진을 통해 마음이 안정되자 몸에 손 데는 것도 싫어하던 큰어머님을 안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사십 대에 남편 잃고, 홀로 치매 걸린 시아버지를 보필한 강인한 그분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큰어머님에 대한 두려움은 기적 같이 사라졌습니다.

큰어머님의 마지막 병간호를 하며 남편과 나는 어머님과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아직도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너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다.” 하시던 그분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미움과 원망이 아닌 사랑과 존경심을 담아 큰어머님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밤새워 정진해도 항상 밝은 얼굴의 공시연 님(두 번째 줄 맨 왼쪽)
▲ 밤새워 정진해도 항상 밝은 얼굴의 공시연 님(두 번째 줄 맨 왼쪽)

장애를 뛰어넘다

새물정진2과 정일사3 정진을 통해 장애의 문턱을 하나씩 뛰어넘으면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모든 장애를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 내가 참 대견합니다.

거리모금 담당자 소임을 하면서 큰어머님 욕을 하며 지은 구업의 죄를 배고픈 아이, 아픈 아이,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갚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수행법회 담당, 거리모금 담당, 7대행사 담당 소임을 하면서 나는 베푼 것 보다 받은 복이 더 많습니다.

아직도 고집을 부리지만 남편을 정말 잘 만났다 생각합니다. 남편 덕에 두 어머님을 만났고,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태산 같은 고비가 온다 해도 이미 많은 산을 넘어본 경험이 있어 두렵지 않습니다. 가끔은 나의 옛날 모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을 때가 있습니다. 함께 이 길을 가고 있는 양평법당 도반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길에 동참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글_이현주 희망리포터(남양주정토회 양평법당)
편집_서병훈(강원경기동부)


  1. 깨달음의 장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2. 새물정진 정일사 프로그램을 마친 정토회 신규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수련프로그램입니다. 

  3. 정일사 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입니다.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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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애

요즘은 잘 안우는데
눈물이 났어요
가까이에서 뵐 수 있어서 제 마음도 따스해져요
인연에 감사해요

2020-02-13 22:29:41

보승화

감동적인 수행담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2-13 22:26:26

감로향

가슴뭉클하고 아름다운 수행담에 여러번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2-13 21: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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