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명지법당
가시 돋친 밤송이가 맛있는 알밤 된 이야기

부산 명지법당의 1기 불교대학 졸업생으로 법당 일이라면 무엇이든 “네” 하고 하는 도반이 있습니다. 가시 돋친 밤송이처럼 상처 주던 사람에서 맛있는 알밤처럼 사람들이 찾는 사람이 되었다는 정은정 님의 밤송이가 알밤 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가시 돋친 밤송이에서 맛있는 알밤으로
▲ 가시 돋친 밤송이에서 맛있는 알밤으로

이러다 남편과 아이들을 잡아먹겠구나

예전의 저는 가족을 굉장히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성질내고 짜증 내고, 표정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타인을 원망하고 비난하면서 매우 힘들게 했습니다. 저도 그런 저를 알았지만 단지 살짝 불안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불안은 저의 그림자로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심리학 서적, 스님의 희망편지, 마음공부에 관한 동영상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순간, 제 모습을 보니 아버지처럼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남편과 아이들을 잡아먹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변화를 위한 그 무언가가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듣기만 하고 보기만 했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인연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 중인 정은정 님(가운데)
▲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 중인 정은정 님(가운데)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상처받은 아이

저는 1남 3녀 중 차녀입니다. 분명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고 여동생도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제 기억 속의 우리 집 풍경은 아버지가 가족을 매우 괴롭혔던 기억뿐입니다. 아버지는 폭력과 바람으로 어머니를 눈물짓게 하셨고 가족을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어렸지만,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었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입을 다문 채 버틴 어머니는 나약하고 힘없게 보였습니다. 자식들을 돌볼 여력도 없고, 애정 어린 눈빛, 사랑스러운 말투, 소통하는 대화는 우리 집 풍경에는 없었습니다. 집안 분위기 자체가 저에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힘들고 상처받은 아이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덩어리는 마음에 어두운 가시가 되었고, 저는 가족을 다치게 하는 가시 돋친 밤송이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본인이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셨지만, 당뇨와 풍으로 인해 거동을 할 수 없는 병원 생활로 1년의 세월을 보내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제 나이 22살이었습니다.

명지법당 정초 순회 법회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은정 님(둘째 줄 맨 왼쪽)
▲ 명지법당 정초 순회 법회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은정 님(둘째 줄 맨 왼쪽)

남을 찌르는 가시 돋친 밤송이가 되어버린 나

불우했던 성장 과정은 저를 화목한 가정에 목마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집에 있기 싫어하는 저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모임에서 만난 남편은 연애할 때 저를 차에 태워서 어디든 드라이브를 해주었습니다. 이 남자라면 저를 잘 챙겨주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으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친밀해지기는커녕 주말부부에다가 남편은 집안일보다 바깥일을 더 중요시해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저는 몸과 마음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표정으로, 마음으로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가만히 있는 남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니 부부 사이는 힘들어져 갔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사람들과 지낼 때 저도 모르게 뾰족할 때가 있었지만 그게 내 마음의 가시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열심히, 묵묵히 일하면서 제가 나름대로 친절한 사람이고 카리스마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제 착각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밤송이 안에 있는 밤처럼 웅크리고 있고, 성장하면서는 꽉 막힌 내 틀 안에서 가시만 키워나갔으니, 대인관계에서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옳다. 내가 맞다. 나는 바르게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라고 여겼습니다. 남이 내 뜻대로 해 주지 않으면 ‘왜 그래. 왜 안 해. 왜 그렇게 해.’라는 생각과 언어로 상대를 비난하는 생활 태도가 저에게는 자연스러웠습니다.

반면 ‘나는 허전하다’는 마음의 결핍으로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뭐든 배우러 다녔고 운동과 약속으로 밖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멍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바르게 살고 싶었고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바르지 못했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넘어 잡아먹을 듯 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꼭 아버지 같아 너무 괴로웠습니다. 괴로운 만큼 꼭 저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가을 불교대학 갈무리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은정 님(오른쪽에서 세 번째)
▲ 가을 불교대학 갈무리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은정 님(오른쪽에서 세 번째)

강철같은 밤송이 껍질에 금강정토로 금을 내다

처음에 정토회에 왔을 때 ‘괜히 온 건 아닌가’하는 마음을 가지고 법당에 다녔습니다. 변하고 싶고 바꾸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저항하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불교대학 수업에서 ‘수행 맛보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선배 도반이 눈물을 흘리며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놓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여기 분위기에서는 도망치지 않고 선배 도반 따라서 내 마음을 내어놓으니, 나누기가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저절로 꾸준히 불교대학 수업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수행하다가 하기 싫어지면 선배 도반에게서 ‘때마침 그때’ 차 한잔하자고 전화가 옵니다. 여러 얘기를 듣다 보면 다시 해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기고 수업 봉사도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3년 정도 하면 변화가 있을 거라는 선배 도반의 말은 저에게 희망으로 느껴졌습니다.

바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집착했을 뿐, 정작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르게 살아가는 인생길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살아온 시간을 돌이키기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억하지 말자. 나의 변화를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인생길을 가로막는 상대가 남편이든 아이든 직장 동료든,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비난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의 큰 깨달음을 통해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나를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인생길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1년 동안 꼼짝도 못 했던 병원 침대 생활이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하고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밤송이 안에 갇혀 가시만 삐쭉거리면서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살아온 저도 많이 아프고 슬픕니다. 아버지의 인생도 어머니의 인생도 40대 중반이 되고 보니 그분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보다는 가엽고 애처로움이 느껴집니다.

천일결사자 만남의 날 정은정 님(앞줄 제일 오른쪽)
▲ 천일결사자 만남의 날 정은정 님(앞줄 제일 오른쪽)

“엄마가 좋아, 엄마 안아줘요”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볼 때면 서로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은 부분에서 ‘왜 저 순간 깔깔거리며 웃지?’ 이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살다 보니 아무런 표정 없이 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면서 슬픔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 이후로 굳게 닫혀 있던 밤송이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숨구멍이 열리면서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목한 가정을 꿈꾸었던 저는 지금에서야 집에서 살맛이 납니다. 아옹다옹하며 감칠난 대화는 아직 하지 못하지만, 제가 말을 하면 남편은 그 이상으로 그때그때 움직여 줍니다. 저에게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인데, 그동안 남편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놓고, 안 해준다고 분노했던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좋아. 엄마 안아줘요. 엄마랑 자고 싶어요.”라는 표현을 자유롭게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저와 함께하기를 좋아합니다.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며 키웠는데,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구나’를 느끼며 동시에 ‘내가 잘 키웠구나, 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지는 않구나’하는 생각에 흐뭇합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지인들도 예전의 저보다 부드러워졌다고 하고, 친언니는 저와 대화를 나누면 위로가 되고, 든든하다고까지 합니다. 정토회를 만나 정말 감사하고 보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도반과 함께 JTS 거리모금 중인 정은정 님(왼쪽)
▲ 도반과 함께 JTS 거리모금 중인 정은정 님(왼쪽)

인연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저는 명지법당의 불교대학 1기 졸업생이며 불교대학 졸업 후, 경전반에 입학했습니다. 저희 법당은 신설 법당이라 봉사자가 많이 부족합니다. 너무 귀한 법 만나서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가고 있어서 정토회는 저의 생활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불교대학 담당자가 없어서 불교대학이 열릴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경전반 학생을 하면서 불교대학 담당자 소임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제가 분별심 없이 덥석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되짚어 보니, 불교대학 수업이 끊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힘든 분들이 정토회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바랐고 소통의 장을 이어나가고 싶었습니다.

소임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발동되어,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은 강요 아닌 강요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업식들이 순간순간 발동은 하지만, 금세 알아차립니다. 어느 날 나누기를 할 때, 사람들 시선을 보지 않고 말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건 완벽주의 성향인 제가 맡은 소임에 대한 일 처리에 자신이 없고 잘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저 자신에 대한 저평가로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었음을 알아차리고 나누기 때 그런 마음을 꺼내었습니다.

저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제가 일을 다 해 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일을 나누어서 하는 것조차도 수행임을 이젠 압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의견이 제 귀에 들립니다.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 가시 박힌 밤송이가 껍질이 열려 누구에게나 나눌 수 있는 사람, 소통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은정 님(맨 왼쪽)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정은정 님(맨 왼쪽)

사람들이 ‘피하던 밤송이’에서 ‘찾는 알밤’으로

남을 잡아먹을 듯이 괴롭혔던 제가 소임을 통해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 역전의 기회가 소임으로 왔습니다. 가을 불교대학 담당자, 자활 담당, 토요일 새벽예불 집전을 하면서 상상도 못 했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식 때의 얼굴 표정에서 서서히 좋아지는 학생들의 표정들을 바라보면 저의 소임에 의해 변화되는 그 모습들이 정말 뿌듯했습니다. 자활 담당으로 예비결사자 만남의 날을 준비해 나갈 때 몸은 힘들었지만, 도반들의 “잘 왔다 갑니다.”라는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쓰일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필요한 존재구나’를 느낍니다.

이런 마음으로 보람도 느끼는 한편 서글프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꾸준한 정진과 집전을 통해 그런 제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네가 살고자 했구나. 살아남기 위해서 네가 그렇게 발버둥 쳤구나’하고 말입니다. 아직은 아버지가 속 시원하게 온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토회를 만났고, 귀한 법을 만나 도반과 소통하는 새로운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에게 제일 귀한 인연은 나 자신을 만난 것입니다. 밝게 웃는 나, 즐거운 나,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는 나, 숨 쉬며 소통하는 나 그리고 쓰일 수 있어서 감사할 줄 아는 나를 만나 살맛 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인연에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제가 받은 가피로 저절로 베푸는 삶이 되고 제 인생이 편안해 지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 수련에서 소임 중인 행복한 정은정 님(가운데)
▲ 불교대학 졸업 수련에서 소임 중인 행복한 정은정 님(가운데)


정은정 님과의 시간 속에서 제일 크게 느낀 점은 ‘간절히 원하면 되는구나’였습니다. 정은정 님은 이미 만들어 놓은 인생길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인생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만나고, 서서히 자신을 돌보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행자의 삶이 녹녹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인터뷰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을 꼭 닮은 정은정 님의 인생길을 글로 담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글_허승화 희망리포터(사하정토회 사하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

전체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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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저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2019-11-01 19:11:48

이채인

누구나 비슷하게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살아왔군요. 수행을 통해 그 과거들이 꿈이 되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걸 느끼니 수행이 참 좋습니다

2019-10-25 18:07:53

이선경

정은정보살님의 긍정의 힘을 잊지않고 있습니다

2019-10-24 17: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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