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상대를 이해하는 청년활동가

정토회를 만나기 전 김경서 님은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급기야 심한 우울과 공황장애를 경험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대학생 때 다니던 힙합 댄스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정토회와 인연이 닿게 되었고, 행복학교를 시작으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전법활동가 교육을 마치고 정토회 여러 분야에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편집하면서 마주한 김경서 님의 얼굴은 모두 맑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감정을 억압하던 아이가 정토회를 만나기까지

어린 시절 저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사람들 앞에서 낯을 가리지 않는 천진난만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여서 선생님께 혼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일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서인지 집에서는 여전히 말 많고 장난기 넘치는 아이였지만, 밖에 나가면 표정이 굳어지고 말수 없는 아이로 변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이 “이 반에 절대로 웃지 않는 아이가 있다. 내가 걔를 웃기려고 온갖 농담을 하는데도 웃지 않더라”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억압된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면서 저는 점점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또 과거의 저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으면 끝까지 붙잡고 괴로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마치 결벽증 환자처럼 문제를 견디기 어려워했습니다. 원인을 파고들어 나름대로 해결책을 세우곤 했으나 실천은 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끊임없이 자책했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에
▲ 인도성지순례 중에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대학생 때는 힙합 댄스 학원에 등록했는데, 그때 만난 선생님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얘기하며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열렬히 권했습니다. 하지만 20대 초반이던 당시 저는 흘려듣고 단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20대 중반에 이른 저는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자신을 비하했고, 급기야 심한 우울과 공황장애가 찾아왔습니다. 무기력과 불안감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가 되자 댄스학원 선생님이 주야장천 말씀하던 법륜 스님 즉문즉설을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스님 법문은 마치 어두운 마음에 스며드는 한 줄기 빛 같았습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제 마음을 하나둘 정리해 주었고, 저는 곧 행복학교에 입학했고,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거쳐 전법활동 교육까지 마쳤습니다.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리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 마음속 깊은 곳의 고민은 부모님과의 관계였습니다. 아버지는 평소 좋은 분이지만 감정에 따라 기복이 있고 일관되지 않았습니다. 기분 좋은 날은 파티 분위기였고, 힘든 날은 폭언과 체벌이 따랐습니다. 가족 모두 아버지 기분을 살피며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양가 감정이 제 자존감을 떨어뜨렸습니다.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라면 당연히 나를 지지할 거라고 믿었는데 엄마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나를 도와주는 이가 아무도 없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가야 하는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홀로서기를 잘해야 하고, 남보다 잘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무의식에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게 기대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자 대상을 바꿔 연애 상대에게로 의지심이 옮겨갔습니다. 남자 친구에게 아빠도 되어달라, 연인도 되어달라, 친구도 되어달라, 상담사도 되어달라는 등 끝없이 요구했습니다. 마음에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을 만큼 바짝 신경을 곤두세워 몰아붙이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전법회원 수계식 중에(맨 오른쪽이 김경서 님)
▲ 전법회원 수계식 중에(맨 오른쪽이 김경서 님)

정토회에서 부모님에게 감사 기도를 해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매일 기도하면서 특별히 미운 마음이 올라오지 않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린 건 아닐까 싶어 답답했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그런 고민을 꺼내자. 법사님은 꼭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 억지로 용서해야 한다는 과제를 만들어 스스로 괴롭힐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졌고, 그 후로 부모님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는 것도 편안해졌습니다.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묵은 감정은 여전히 무거운 느낌이 있지만, 최근에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은 그때그때 알아차리고 쌓아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나는 단순히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단편적 인식에서 벗어나 저의 내면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분노라는 감정 아래 서운함이 있었구나, 서운함 아래 좌절이 있었구나, 왜 기대하지? 나한테 의지처가 필요했구나, 왜 의지하지? 나 홀로 이 세상에 서기가 두려웠구나…. 시작은 두려움이었는데 끝은 분노인 것을 알아차리자, 뭔가 이상하고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의 원인이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정토회를 다니며 가장 크게 바뀐 부분입니다. 고구마 줄기를 잡아당기듯 제 업식을 알아차리는 수행이 재미있습니다. 미움에서 이해로, 괴로움에서 평안으로 향하는 여정이 참 좋습니다.

경주역사기행 중에(왼쪽이 김경서 님)
▲ 경주역사기행 중에(왼쪽이 김경서 님)

청년활동가가 되어 자리이타를 체험하다

청년지부 소속으로 지부 행사에 참여하며 즐거움과 유익함을 모두 누리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특히 청춘톡톡에서는 포스터, 웹 배너, PPT 등의 디자인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잘 쓰인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회사에서 디자인 일을 할 때는 능력은 발휘해도 재미없었고, 혼자 진행한 디자인은 과정은 재미있었지만, 세상에 유용하게 쓰이는 건 아니어서 허무했습니다. 그런데 청춘톡톡에서 맡은 디자인 소임은 과정도 재미있고 결과물도 잘 쓰여서 ‘자리이타란 이런 것이구나’를 체험했습니다.

정토회 회원으로서 봉사하고 있지만 모든 활동이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받은 것을 회향한다는 관점이 부족했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도반들이 저를 질책하거나 능력 없다고 생각할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면 아예 하지 않으려 했고, 회의 참여에도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을 도반들과 나누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럼에도 꿋꿋이 소임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청춘톡톡 행사 중에(왼쪽이 김경서 님)
▲ 청춘톡톡 행사 중에(왼쪽이 김경서 님)

전법활동가 교육을 신청할 때는 경전대학 다음 과정으로 당연하게 생각해 가볍게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절반쯤 이수했을 때 불교대학이나 경전대학 진행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뭔가를 말한다는 것이 자신 없었습니다. 정토회 활동은 좋고 꾸준히 하고 싶지만, 진행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법사님께 이런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진행자가 부담스럽다면 돕는이 소임을 다시 해보라”고 권하여 이번 학기에는 경전대학 돕는이를 한 번 더 맡게 되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갔을 때 맡은 조장 소임 또한 큰 부담이었습니다. 준비물도 많고, 조원들에게 받을 것도 많고, 난생처음 가보는 곳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막막했습니다. 조원에게 일을 배분하고도 불안해서 계속 확인하고, 놓치면 자책했습니다. 돕는이가 1.5인분이라면 인도성지순례 조장 소임은 7~8인분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은 결국 ‘다 내가 혼자 하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고정 관념 때문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콘텐츠 봉사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지금은 법륜스님의 희망 편지 삽화 작업을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재밌어서 하는데, 그걸 봐주는 분들이 있고 전법까지 되니 일석삼조입니다. 서울 국제도서전 부스 디자인 소임도 맡아 진행했는데 도반들과 함께하는 회의마저 즐거웠습니다. 재밌고 유익하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해보려고 합니다.

‘집착을 멈추고 그러려니 합니다’

요즘 저의 기도문은 ‘집착을 멈추고 그러려니 합니다’입니다. ‘그러려니’라는 말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해가 안 되고 서운한 일이 생겨도 ‘그러려니’ 하면 웬만한 일은 그냥 넘어가집니다. 분별심이 일어나는 순간 즉시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려니, 그러려니’ 되풀이하다 보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들면서 곧 화도 가라앉고 자연스레 넘어가집니다. 아무리 상대가 잘못한 것처럼 보여도 지금이 괴로움은 사실 내 문제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살아가며 생기는 문제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가볍게 넘기려 합니다. 부모님을 과대 해석하고 의미 부여해서 스스로 괴롭힌 점들을 꾸준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성냥불을 붙일 때 성냥을 아무리 여러 번 그어도 살살 그으면 불이 붙지 않지만 한번 탁 세게 그으면 불이 붙는다”라는 스님 말씀처럼 저도 불이 환하게 밝혀질 때까지 열심히 정진하고자 합니다.

행복시민 줍깅 행사 중에(맨 왼쪽이 김경서 님)
▲ 행복시민 줍깅 행사 중에(맨 왼쪽이 김경서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8월 호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_김경서(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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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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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경서님~ 함께 봉사하며 나누던 이야기들에 경서님의 수행담이 더해지니 더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져요. ‘그러려니‘하는 마음, 너무 좋네요. 새 하루 시작에 편안함 가득 받아갑니다^^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6-03-23 07:39:21

이수영

잘 들었습니다.
공감이 되었고 이 글을 통해 저를 알아차리는 시간이 되어 고맙습니다_()_

2026-03-23 07: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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