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무거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출발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자세라고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힘들고 외로운 상황 속에서 켜켜이 쌓인 마음의 응어리를 수행으로 녹여내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수행자가 된 김경자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잠시 하시던 일을 멈추고 김경자 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질타의 대상, 함부로 해도 되는 아이

엄마는 남편 될 사람 얼굴 한 번 못 보고 아버지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엄마를 쫓아다니던 남자는 일본 앞잡이였고,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알아보던 중 며칠 사이 부랴부랴 군청 공무원과 혼인을 시켰는데, 알고 보니 재취 자리였습니다. 상처했다는 말만 듣고 시집을 갔는데, 막상 가보니 젖먹이 남자아이가 셋이나 있었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성질이 고약하고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엄마는 내 아이를 낳고도 예쁜 줄도 모를 정도로 너무 힘들었고, 전처처럼 두 번이나 자살하려고 했답니다. 저를 임신했을 무렵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전처 자식들에게 엄마가 바람을 피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엄마는 외도한 여자가 되었고, 제 이복형제들은 엄마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두북에서 봉사중에(김경자 님)
▲ 두북에서 봉사중에(김경자 님)

저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질타의 대상이었고, 어릴 때부터 그냥 때려도 되는, 함부로 해도 상관없는 아이였습니다. 이복형제들의 발에 채고 밥 먹다가도 맞아야 하는 화풀이 대상이었습니다. 상처는 점점 깊어졌고, 저는 마음속으로 ‘스무 살까지만 참자. 그때는 너희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바람피워 낳은 아이라는 꼬리표는 내내 따라다녔습니다.

스무 살이 되자 구박은 좀 줄었지만, 마음속에 쌓아둔 악다구니는 유독 심하게 괴롭힌 작은오빠에게 시비를 거는 것으로 터뜨렸습니다. 폭력과 욕설이 오가는 싸움에서 죽기 살기로 덤벼든 저는, 그동안 당한 걸 엄마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갚아주니 그 순간만큼은 통쾌했습니다. 맞으면서도 손톱이 뒤집히도록 달려드는 저를 보고 부모님과 작은오빠는 적잖이 놀란 것 같았고, 늘 맞기만 하던 아이가 훌쩍 커버린 제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는지 작은오빠는 자괴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쏟아내기는 했지만, 부모님 앞에서 싸운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는 어떤 언쟁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살리고센터 옷정리 봉사 중
▲ 살리고센터 옷정리 봉사 중

통증은 나의 동반자

날씨 좋은 어느 날 부모님을 모시고 온천으로 나들이하러 갔습니다. 모처럼 나선 길에 모두 즐겁게 지냈지만,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편도 1차선 도로인데 어찌 된 일인지 차가 달려와서 우리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저는 갈비뼈 5대 골절, 대퇴부와 고관절 골절, 손목과 무릎뼈 골절 등 안 다친 데가 없었습니다. 침상에서 대소변을 처리하며 1년 2개월을 보냈고, 그사이 수술만 세 번을 했습니다.

스물여덟 살에, 한창 좋은 시기를 병실에서 보내면서, 조각조각 파손된 고관절을 겨우 설 수 있도록 이어놓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흔 살이 넘어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고 나니 고관절 상태가 악화해 보조 장치를 해야 설 수 있었습니다. 양쪽 다리 길이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차이가 나 절뚝거리며 걸었고, 왼쪽 다리 근육이 점점 줄면서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통증 또한 심해서 매일 진통제를 다량 먹어야 그나마 참을 수 있습니다. 통증 없는 날은 기대할 수 없기에 이제는 동반자로 받아들입니다.

긍정은 나의 힘

형제들과의 갈등과 방황 속에서 여기저기 크고 좋다는 절을 찾아다니며 스님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바른 법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5년 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유튜브로 법륜 스님 즉문즉설을 처음 접했습니다. 스님의 조리 있는 말씀과 그 말을 듣고 수긍하며 변화하는 질문자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터라 즉문즉설 자녀 편을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불교대학과 깨달음의 장에 궁금증이 생겼고, ‘나도 불교대학에 다니고 싶다’라는 마음이 크게 일었습니다. 정토회 콜센터에 물어물어 어렵게 불교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경주지회 도반들에게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법을 배워 불교대학, 경전반을 무사히 졸업하고, 모둠장의 권유로 두북수련원에 봉사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두북수련원 살리고센터에서 함께 옷 판매대를 담당하는 도반이 보리수 활동을 추천했습니다. 영혼의 단짝처럼 지내는 도반의 권유라서 단박에 보리수 9기 수련에 입재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리수 수련을 시작하면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은 불편했지만, 미련을 두지 않으니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미뤄온 깨달음의 장에 올해 1월 참여할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위독해서 가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건강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해서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무렵 이복형제들이 “엄마를 미워할 수 없어서 너를 미워했던 것 같다”라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사과를 받으니 지난 일이 먼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엄마는 지난 3월 초 98세로 소천하셨습니다. 엄마와 언니는 몇 년 전부터 저한테 DNA 검사를 한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바람피워 낳은 딸이라는 소리에 제가 상처받은 일을 걱정했지만,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내가 오히려 이복형제들과 같은 피가 아니어서 좋다고, 나는 최고 DNA만 물려받았기 때문에 이 모든 걸 감내하며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피가 다르다’는 말을 오히려 힘으로 삼고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덕분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넘어갔고, 지금은 지혜의 힘도 생겨 어떤 말에도 아주 편안합니다.

나비장터에서
▲ 나비장터에서

결핍을 봉사 소임으로 채우다

매주 보리수 수련을 하다 보니 정토회를 더 깊이 알게 되고 나도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습니다. 살리고센터 도반들과 봉사하고 나누기를 하며 법사님께 수행 점검까지 받으니 보살핌과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서로 챙겨주고 염려해 주는 진심 어린 관심과 동지애가 생기고 평소 수행과 동떨어져 있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수련 덕분에 수행자로서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도반들의 자극제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나처럼 몸이 아픈 사람도 이렇게 봉사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봉사를 게을리하는 사람을 볼 때면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감기에 걸렸다면 충분히 쉬고 오면 될 텐데, 무리해서 아픈 상태로 왔다가 더 나빠져 아주 못 오게 되었을 때 얄미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득 예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놀러 갔을 때 발가락이 부러졌지만 참고 남은 일정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다친 나로 인해서 다른 가족들이 불편해할까 봐 아픈 것을 참았습니다. 나 자신을 보살피는 것을 뒷전으로 하고 가족과 상대방을 우선으로 두었는데, 어릴 때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인지 지금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리고센터 도반이 도시락을 준비해서 전해주었을 때 나를 챙겨주는 마음이 고맙고 기뻤습니다. 어릴 적 결핍을 살리고센터 봉사 소임으로 채우고 도반들에게 보상받는 것 같아 행복한 마음입니다.

살리고센터 유통팀 연말 소풍 중(왼쪽 앞에서 두 번째가 김경자 님)
▲ 살리고센터 유통팀 연말 소풍 중(왼쪽 앞에서 두 번째가 김경자 님)

응어리를 녹이고 남편과 함께하는 봉사활동

법사님께 이복형제들과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형제들에게 받은 미움과 구박을 분노로 똘똘 뭉쳐놓았다가 엄마가 경찰서에 신고했을 정도로 작은오빠와 크게 싸운 일, 그리고 몇 년 뒤 오빠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자책감으로 불편한 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법사님은 “어릴 때 오빠가 나를 힘들게 했고, 나는 스무 살 넘어 오빠를 힘들게 했다. 피장파장이다. 그래서 제로다. 생을 마감한 것은 오빠의 선택이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법사님께 받은 명심문은 없었지만, 매번 “힘들어서 어떻게 살았어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조그만 아이의 힘겹고 힘들던 그 순간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니 켜켜이 쌓인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마음의 응어리가 녹으니 ‘나는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잘 견디며 지내올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 불법을 공부하면서 문득 ‘내가 왜 내 사람을 괴롭히지?’라는 생각을 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동안 온갖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풀고 있었는데, 이제야 남편이 눈에 들어오면서 참 고마웠습니다. 봉사를 다니면서 변화하는 저를 보고, 남편은 저의 정토회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부탄에 다녀오신 스님 영상을 보여주니 남편이 “나도 봉사해 볼까?”라고 합니다. 남편도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저와 같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스님과 같이 나무를 심기도 했습니다.

두북수련원은 엄마 품속처럼 아늑합니다. 오늘도 푸근한 그곳 살리고센터에서 봉사에 힘쓰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어느 것도 무거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가볍습니다.

보리수 9기 중간 수련 중(윗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김경자 님)
▲ 보리수 9기 중간 수련 중(윗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김경자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5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수행담입니다.

글_김경자(보리수 9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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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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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우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유전자를 받았다. 긍정적으로 한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달리 보이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2025-12-15 09:41:43

이수현

감동적입니다.힘든삶속에서도 참 잘하셨어요♡

2025-12-15 09:18:48

황석현

잘 들었습니다.감동입니다.

2025-12-15 08: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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