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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부모님은 모두 기독교인으로 교회 지인의 중매로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유년 시절, 아버지는 일정한 수입이나 직업이 없어 생계는 어머니가 우유 배달과 파래 짜는 일을 하면서 이어갔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부모님은 돈 문제로 갈등이 많았고 저는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싸움은 주로 아버지의 일방적인 폭언과 폭행이었습니다.
사춘기 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싫어서 얼른 돈을 벌어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취업이 잘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고3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 나와 봐야 뭐하나 돈이나 빨리 벌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병역특례로 중소기업에서 돈을 벌면서 군 복무를 마쳤고, 그 후 운 좋게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 또한 저처럼 고3 때 부산 집을 떠나 천안으로 취업 나와 생활했습니다. 홀로 타지에 와서 의지할 곳 없었던 우리 둘은 3년 정도 선후배 관계로 지내다 좋은 감정으로 발전해 2009년도에 결혼을 했습니다. 초보 엄마 아빠라 모든 게 서툴렀지만 좋아하던 술도 마시지 않고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직장동료, 친구, 지인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문제였습니다. 아내는 첫째 아이가 돌 무렵 둘째를 임신하면서 회사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아내는 둘째 임신과 첫째 아이 돌봄으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술자리는 점점 잦아졌고, 그런 술자리는 일주일에 6일 정도로 이어졌습니다.
돈을 벌기위해 사회생활을 잘 해야 한다는 핑계로 밖으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 때문인지 회사에서는 특진을 하고 승승장구 하게 되었습니다. 연봉이 오르면서 생활비를 많이 줄 수 있으니 ‘내 할 일은 다했다’고 자부했습니다. 육아가 힘든 아내는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지만 저는 사회생활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의 마음은 서서히 닫혔습니다.
셋째가 태어나자 아내는 세 명의 아들을 돌보는 전투적인 엄마가 되었습니다.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 서운함과 외로움으로 아내의 불만은 커져갔습니다. 저도 직장 일을 끝내고 집에서 편안히 쉬고 싶은데 뭔가 자꾸 요구하는 아내가 불편했습니다. 아들 셋 있는 집안이 대부분 그렇듯이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내의 혼내는 소리도 늘어갔습니다. 좋게 이야기해서는 컨트롤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교대 근무로 낮에 자야 하는데 혼내는 소리에 잠을 깨면 저도 모르게 화가 올라오고 방문을 열고 소리를 지릅니다. 하루는 아이가 학습지 문제를 푸는데 몇 번의 설명을 듣고도 풀지 못하니 아내는 화를 냈습니다. ‘왜 이것도 이해 못 해’라는 윽박에 아이는 급기야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울음에 아내는 더 화가 났습니다. 심하게 야단을 치는 모습에 저도 화가 났습니다. ‘아이가 모를 수도 있는데 왜 그러냐’고 아내를 비난하며 소리쳤고, 아내는 제 말에 더욱 더 화를 냈습니다.
아이와 아내의 문제가 저와 아내의 문제로 번졌습니다. 언성이 높아지고 서로 화를 내니 아이들도 불안해했습니다. 교육관이 서로 다르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어느 순간 집이 불편해졌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습니다. 아내와 마주치는 것이 싫어 점점 더 밖으로 돌았습니다. 마음이 힘들다 보니 술에 의지하며 몇 년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싸우고 나면 며칠 또는 몇 달을 말을 하지 않고, 문자로만 생활할 때도 있었습니다. 관계를 회복하고자 마음건강클리닉 상담도 해보았지만, 상담을 할 때만 잠시 좋아질 뿐 집안에 들어가면 역시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2018년 여름 어느 날, ‘가족 모두의 건강이나 행복을 위해서라도 10년의 결혼생활을 끝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혼에 필요한 절차나 서류, 그리고 관련 정보를 알아보려고 유튜브 동영상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연관 동영상이 검색되고 법륜스님의 영상이 보였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이 내 이야기네’라는 생각에 무심코 클릭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법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법문 하나를 들으니 비슷한 법문이 계속 올라오고, 그렇게 며칠을 법문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법문을 듣다 보면 잠이 오곤 했습니다. 법문 중에서 ‘깨달음의 장1’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그곳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청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이야기에, 접수가 있던 날 야간 근무를 끝내자마자 동네 PC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무슨 공덕인지 일반인 신분으로 2018년 7월 문경에서 열린 ‘깨달음의 장’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이 정토회와 첫 만남이었습니다. 저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누군가 가져가 버린 듯 가벼운 몸과 마음을 체험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 그곳에서 배운 수행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집 안에서 자라 108배가 낯설었지만, 그냥 했습니다. 숫자 개념이 없어서 쌀을 10톨 가져와 요가 매트 위에 놓고 10배 할 때마다 쌀을 한쪽으로 옮겼습니다. 10알이 모두 옮겨지면 한 톨을 오른쪽 저 먼 귀퉁이에 놓으며 절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절을 하면서 저를 되돌아보니 참회의 눈물이 났습니다. 이 한 줄기 빛이 다시 꺼지지 않기 위해 불교대 입학이 필요하다는 법사님 말씀에 가벼운 마음으로 천안 법당을 찾았습니다. 3교대로 일을 해서 불교대 오전반과 저녁반을 오갔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관계는 영화처럼 극적으로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불교대 수업을 하러 법당 다녀오는 날은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데, 집에 오면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아내와는 계속 불편한 관계였고 크게 진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9년 9월 ‘나눔의 장2’에 갔습니다. ‘나눔의 장’ 수련을 통해 아내의 마음이 조금씩 보였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떠한지 살피고 상대의 마음이 어떠한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겼습니다.
돌이켜보니 아내는 지난 12년간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한 번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주었습니다. 혼자 그 힘들다는 아들 셋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지금 그 자리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상처가 얼마나 깊을지 이해하니 참회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손을 내밀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해, ‘참 외로웠겠구나’ 이해되었습니다. ‘나눔의 장’을 마치고 돌아와 아내에게 삼배했습니다. 아내는 당황하며 하지 말라고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그 후 매일 기도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내에게 감사의 삼배를 합니다.
2020년 9월 정회원이 되고 소임도 맡으면서 잘 쓰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정일사3 기간에 했던 300배 정진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정진 기간 2주일이 지나자 아내를 바라보는 마음이 더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담당 법사님이 제안한 1년 300배정진을 “예”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300배를 꾸준히 하면서 조금씩 관점의 변화를 몸소 느꼈습니다. 머리로만 이해했을 때에는 경계에 부딪히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00배를 하면서 아내를 그대로 두고도 마음이 출렁이지 않았고 잔잔했습니다.
아내와 사이가 완전히 좋아지지 않았지만, 일상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세 아들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릅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가 예전처럼 분별심을 내며 그 상황에 뛰어들지 않는 것입니다. 조용히 감정의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큰 감정이 지나간 후, 아내에게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아내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고치고 싶어 하지만 잘 안된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자연스레 비심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하면 아내를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해봅니다.
얼마 전 전법 활동가가 되어 경전반 돕는이 소임을 맡았습니다. 1년 전 들었던 법문이 새롭게 들립니다. 학생일 때에는 늘 받기만 하는 존재에서 지금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매끄러운 수업 진행을 위해 큰맘 먹고 노트북도 새로 샀습니다. 경전반 학생 도반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불법을 만나게 해준 모든 인연에 감사합니다.
노트북 본전을 뽑으려면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돕는이 소임를 해야겠다고 웃음을 보이는 정철웅 님. 불법 만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갈까 봐 걱정되지만 꾸준한 수행 정진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고 합니다. 정토회 봉사로 다져가면서 이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는 정철웅 님을 응원합니다.
글_이애순 희망리포터(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편집_허란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지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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