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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정진
7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정진을 이어온 조춘숙 님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는 대결정심을 내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온 모습이 너무나도 멋집니다. 법당에 처음 왔을 때는 까칠했지만, 지금은 맡겨지는 소임 마다 “예 하고 합니다”를 실천하여 도반들을 놀라게 합니다. 어떤 마음을 내었기에 이렇게 달라지고, 7년을 하루같이 정진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야기 들어봅니다. 2026년 익산시 모현동 작은도서관에서 반나절 템플스테이 포도나무밭에서 귀가 번쩍 동생이 하는 포도 과수원에 일손이 부족해 도와주러 갔습니다. 반복되는 작업으로 지루했는데 동생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틀어주었습니다. 질문자들과 대화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귀가 번쩍 뜨였고,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감동했습니다. 스님과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길에서 정토불교대학 홍보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바로 2019년 불교대학에 신청하였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있어 저녁부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 일로 피곤한 탓에 저녁 시간 영상 법문을 들으면서 졸았습니다. 즉문즉설로 처음 스님의 법문을 들었을 때와 다르게 불교대학 수업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괴로움이 없어진다”라는 말씀 하나만은 마음에 새겼습니다. 7년, 하루도 빠지지 않은 정진 저는 오랜 세월 괴롭게 살았습니다. 괴로움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법문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법문대로 하면 정말 괴로움이 사라질까?’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천일결사 맛보기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정진을 꾸준히 하면 업식이 바뀌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비로소 법문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2021년 불교대학 봄학기 홍보 현수막 앞에서.left ‘정진이 나를 바꿀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진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일주일간 수행 맛보기를 한 뒤 스님의 책 《기도》에서 읽은 대로 대결정심을 내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백일 동안 정진했고, 2020년 3월 1차 만일결사 101차에 입재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진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나의 부처님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직업을 갖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장이라면 어떻게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다시 직업을 갖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제가 생계를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 둘째 딸이 겨우 백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책 대여점을 했고, 그다음에는 십자수 가게를 했습니다. 다행히 사업이 잘 됐습니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돈을 잘 벌수록 남편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가장이라면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저는 화가 날 때마다 남편을 가차 없이 몰아세웠습니다. 2017년 덕유산 향적봉.right 남편은 제가 쏟아내는 거친 말을 그저 묵묵히 들었습니다. 변명도 하지 않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답답했습니다. 남편이 밖으로 나가 일하기를 바랐습니다. 남편을 뒷바라지할 각오까지 했지만, 남편은 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남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답답했고,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25년 동안 제 마음은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저 자신과 남편을 괴롭히며 살았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하루도 빠짐없이 정진했습니다. 7년 동안 정진한 지금은 남편을 이해합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남편은 우울증을 앓았을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만 빠져 남편의 병을 몰랐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삶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제 방식만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저는 가난한 농부의 5자녀 중 둘째입니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빠 할머니가 우리 5남매를 돌봐주었습니다. 저는 비 오는 날이 싫었습니다. 방과 후 비가 오면 다른 아이들의 엄마는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저도 엄마와 우산을 나누어 쓰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오지 않았고, 저는 비를 맞으며 뚜벅뚜벅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때 느꼈던 서운함 때문인지 저는 아직도 비를 싫어합니다. 2025년 무안 미륵사 초파일 연등달기.right 중학교 시절에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난했던 부모님은 왕복 버스비만 주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간식을 사 먹으러 매점에 갔지만, 저는 갈 수 없었습니다. 간식을 사 먹으면 집까지 2시간을 걸어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작아지게 만드는 가난이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경험한 가난으로 저는 돈에 집착했습니다. 부자로 잘살고 싶었는데, 남편이 일을 하지 않아 돈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데는 돈에 대한 제 욕구도 한몫했습니다. 두 딸은 잘살고 있습니다 저의 두 딸은 부부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제가 남편을 미워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첫째 딸은 고등학교를 힘들게 졸업했습니다. 직장도 없고 돈 문제도 많이 일으켰습니다. 처음 몇 차례는 딸아이의 돈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제가 한두 번 도와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딸아이의 연락을 받지 않자 자연스럽게 연락도 끊겼습니다. 둘째 딸은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앓고있지만 직장 생활도 잘하고, 치료도 받고 있습니다. 자기 앞가림을 하는 모습이 참 대견합니다. 2026년 여름방학 영양꾸러미 지원사업 부모 사이가 좋아야 자녀에게 좋다는 스님의 말씀을 체감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직장을 다니거나, 우울증이 낫기를 바라는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니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잘 살아가겠지.‘ 하고 믿습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제가 다 받아들인다는 그런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정진, 그냥 합니다 경전대를 마치고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다른 도반들은 저마다 깨우쳐서 얼굴이 환해지는데 저만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중간에 집으로 오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천일결사 정진으로 오래 몸을 숙이고 나서, 제가 정말 고집이 세고,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도 그 고집 때문이었습니다. 그 고집과 아집 때문에 오랜 세월 괴롭게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025년 정토사회문화회관 옥상에서 정토회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수순하는 법, 상대에게 맞춰주는 법, 인연 따라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꾸준히 정진하면서 저 자신과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제가 행복해지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불법을 만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내일도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 정진을 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맞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괴롭게 살다가 꾸준한 정진으로 인연 따라 사는 법, 지금 이대로 만족하는 법을 체험하고 계신 조춘숙 님 천둥과 비바람이 지나고 말간 얼굴로 우리 앞에 서 계신 조춘숙 님을 응원합니다. 글김수경 희망리포터 편집최미영
통일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사람들_장수 죽림정사 평화 정진의 날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는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며 통일을 위한 특별 정진이 있었습니다. 정토회는 이날 임진각과 죽림정사, 미륵사, 아도모례원, 사천왕사지, 봉림사지 등 여섯 곳에서 동시에 평화통일 기도를 진행했습니다. 죽림정사에는 대전, 충청지부를 중심으로 회원 75명이 모여 통일 발원문을 봉독하고 천배 정진을 이어갔습니다. 이날 최고기온은 29도, 체감온도는 31도였습니다. 죽림정사 입구 호국 정신은 산문에서부터 죽림정사의 호국 정신은 절 입구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산문에는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가운데는 장안산 죽림정사, 왼쪽 범종 법고루는 범종, 목어, 법고, 운판 등 불교의 사물을 모신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쪽 충의원통문은 용성 스님의 호국·호법 정신을 상징하는 현판으로,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입니다. 죽림정사 산문, 3개의 현판 경내로 들어서면 석조 연당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통일된 대한민국의 모양입니다. 연못을 건너는 피안교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 즉 피안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하는 다리입니다. 그 아래 교각 아치에는 정통 삼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광복을, 오늘날에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호국 도량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 죽림정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용성 조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자, 광복을 발원하는 대전, 충청지부의 실천 활동 장소입니다. 연당 위에 피안교 멀고 먼 길이지만, 오고픈 마음 행사 시작 한 시간 전, 오전 7시가 되었습니다. 경내에는 하루 먼저 도착한 봉사자들이 아침 공양을 마치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제천에서 여섯 시간 운전해서 온 청주지회 황보미 님이 보였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하루 전날 죽림정사에 오셨어요?” “제천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새벽 4시에 길을 나서야 해요. 5시까지 청주로 가서 지회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또 두 시간 넘게 와야 하거든요. 너무 긴 시간이라 그렇게까지 해서 여기에 올 자신은 없어서 하루 전날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인데도 발심한 이유는요?” “절에서 느끼는 고즈넉함이 좋고 새벽 예불도 좋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아침 예불을 듣는데, 오늘따라 광복을 못 보고 가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뭉클하더라고요. 그분들이 맺힌 게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풀어드려야겠다 싶습니다.” 이미 세월 저 너머에 가 닿은 듯 말하는 도중 울먹거립니다. 용성 교육관에서 준비하는 아침 풍경 가지런히 줄 맞춰 방석을 놓은 교육관에서는 오늘 행사 총연습 중입니다. 입구에서는 첫 번째 봉사자가 출석을 확인하고, 맨 앞자리에서는 대전, 충청지부 집전 봉사자 다섯 명이 순서와 교대 요령을 점검했습니다. 이들은 30분씩 돌아가며 2시간 30분 동안 천배 정진을 집전할 예정입니다. 천안지회 정선영 님이 집전을 맡게 된 계기를 전합니다. 법사님이 문경 목탁 교육을 권했는데, 저는 장거리 운전을 못 하고 홍성에서 너무 멀어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권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그 일이 처음엔 책임 봉사자 회향 수련 때 같은 지회였던 김종호 님에게 넘어갔는데, 자신은 맡고 있는 소임과 겹쳐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그러면 ‘내가 목탁 교육을 받아야겠다’라는 마음을 냈습니다. 오늘의 목탁 집전은 다섯 명이 돌아가며 150분을 꽉 채울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절하는 도반들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관에서 집전 담당 봉사자들 오늘의 행사 진행 사회자, 김정성 님 같은 곳 그 옆에서는 사회자가 행사 전체 총연습을 진행하고, 음향 담당자가 마이크를 조정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를 맡은 천안지회 김정성 님도 역시 전날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그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아침 봉사도 있지만, 미리 와서 차분한 마음으로 순서를 숙지하고 사회 진행문을 제 언어와 속도에 맞게 조금 수정할 게 있어서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그대로 읽으면 건조해지고 실수가 나오는데, 그러면 더 떨리거든요. 제가 흐름을 가져야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내면의 평화 오전 8시가 지나자, 대웅전에서 삼배를 마친 회원들이 삼삼오오 교육관으로 모였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으로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죽림정사 원장 법정 법사님이 여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이 되었으면 하고 모두가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같이 우리가 기도하며 그 힘을 보태어가는 것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안에 평화는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게는 남편이나 아이, 주변 지인들과 갈등을 겪는 일도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렇게 마음의 평화까지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밖에서 바라본 교육관 천 배가 될 때까지 일어나고 또 일어납니다. 이어 통일 발원문을 함께 읽고 천배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미워했던 마음을 녹여 동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발원하며 한 배 한 배 절을 이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반들의 등과 얼굴은 땀에 젖었습니다. 법정 법사님께 해마다 통일 기도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기도한다고 우리나라의 통일이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평화통일이 되는 일에 마음을 보태는 건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서도 뭔가를 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사회가 평화로워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남북의 평화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도 함께 발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열무 냉면을 만들고, 법의 법사님 공양간 일은 또 하나의 정진 교육관에서 절이 이어지는 동안 공양간에서는 함께 정진하던 법사님들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지난해와 같은 모습에 그분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오늘 점심 메뉴가 뭔가요?” “오늘 점심은 열무 냉면입니다. 대전지회 공주 모둠 이은숙 님이 열무김치를 보시하셨어요. 거기에 다른 육수를 넣어서 열무 냉육수를 만들 겁니다. 이은숙 님의 공덕이죠.” “정진하다 멈추고 나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요?” “천 배하고 나오면 다들 배가 고프잖아요. 그 얼굴들 생각하면 힘든 줄 모릅니다. 이것도 정진의 한 부분이지요.” 냉장고 한 칸에는 정진을 마친 회원들이 나눠 먹을 수박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공양을 준비하던 그 시각, 백용성 조사 기념관에서도 봉사자들이 다른 행사를 위해 법당을 새 단장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용성 조사의 정신을 잇는 또 하나의 손길이었습니다. 천배의 기도 정진 소감, 웅성웅성, “수고 많으셨습니다.” 천 배에 도달하기까지, 소감 나누기 어느덧 사홍 서원을 끝으로 천배 정진이 끝났습니다. 각각의 소감 나누기가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요즘 백중 기간이기도 해서 어머니와 함께 왔습니다. 정진하면서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천 배를 하려면 너무 힘든데, 도반이 있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칠백 배까지는 엄청 힘들었는데, 그 뒤로는 마음이 탁 놓이면서 그냥 절이 되더라고요.”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여기에 왔는데, ‘소임이 복이다’라고 되새기다 보니 절을 할수록 오히려 평온해졌습니다.” 천안 지회장 박은숙 님은 정진의 의미를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정리했습니다. “법륜 스님과 법사님이 늘 개인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처럼 절을 하면서 개인이 평화를 얻으면 그 평화가 통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통일은 옳고 그름의 문제도, 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상생과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필요합니다.” 평화를 위한 천 번의 날갯짓처럼, 오늘은 우리가 해냈어요. 기도하는 어떤 한 사람을 기다리며 81년 전, 그 시대 우리 민족의 해방은 어쩌면 이루지 못할 꿈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도했고, 누군가는 또 독립운동했습니다. 35년의 식민 통치 끝에 맞은 광복은 그 씨앗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든 결과였습니다. 그처럼 통일의 씨앗은 이미 우리 마음에 심겨 있습니다. 남은 건 거름입니다. 그것은 매년 이어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일 것입니다. 하루 전날 여섯 시간을 운전해 온 봉사자, 30분씩 목탁을 나눠 잡은 다섯 명의 집전 봉사자, 열무김치를 가져온 사람, 그리고 체감온도 31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죽림정사 용성 교육관을 채운 75명, 이날 올린 절이 모두 7만 5천 배였습니다. 이것이 올해의 거름입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방석, 백용성 조사 기념관 내부 내년 8월 15일에도 죽림정사에는 오늘에 버금가는 방석이 깔릴 것입니다. 올해 깔린 75장의 방석이 내년엔 몇 장이 될지 아직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방석 한 장이 늘어날 때마다 평화통일의 씨앗은 천 배의 정성만큼 쑥쑥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장의 빈 방석은 늘, 언제나 어떤 이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종호 편집황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