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금요 즉문즉설

2026년 10월 2일(금) 오후 7시30분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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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천일결사

제3차 백일기도 입재식

2026년 10월 4일(일) 오전 9시 30분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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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을 여행하는 청년을 위한

2026 청년페스타

2026년 10월 10일 (토) ~ 11일 (일)
장소 :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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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법륜스님 즉문즉설

2026 보건의료인 특별법회

일시 : 2026년 10월 24일(토) 오후 5시 ~ 7시
대상 : 보건의료인(정토회 회원 및 지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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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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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K-장녀의 반전 인생

계절 불문 과일 사랑, 특히 수박을 가장 좋아한다는 박연아 님은 이름처럼 활짝 웃는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인터뷰 추천을 받고는 부담이 컸지만, 먼저 인터뷰를 마친 도반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다면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웃음 뒤에 담긴 박연아 님의 인생 드라마 속으로 함께 들어가 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남들 앞에 서는 것조차 수줍어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하는 아이. 하지만 집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아들만 우대받던 그 시절, 남동생 둘을 둔 장녀였지만 집안의 독보적인 금딸이었습니다. 권위 대신 친구처럼 다가와 준 아버지와 자식들의 장점만 찾아 칭찬해 주던 어머니 덕분에 언제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26년 8월 어느 카페에서.right 초등학교 시절, 늘 영어책을 들여다보던 큰아버지의 멋진 모습에 반해 영어 특별활동반에 들어갔습니다. 노래로 영어를 배우며 즐겁게 놀다 보니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본격적으로 영어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시 제 꿈은 외교관이었습니다. 영어만 잘하면 당연히 외교관이 되는 줄 알았던 순수한 시절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은 당연한 목표였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졸업 후 바로 돈을 버는 게 어떻겠냐고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 나 대학 갈 거야.라고 했습니다. 남들은 장녀의 무게 때문에 부모님 뜻을 따른다지만, 저는 일찌감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당당하게 제 길을 선택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딸을 타박하기는커녕 오히려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주었습니다. 부모님의 무한한 신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지금도 남동생들과 우애가 무척 깊습니다. 함께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면 우리 부모님 같은 분들은 세상에 없다라며 입을 모읍니다. 하루는 조숙하고 엉뚱했던 막냇동생이 중학생 때 제시간에 등교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난리가 난 학교에서 아이가 가출했냐라며 전화가 왔지만, 아버지는 걱정은커녕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전화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아들을 믿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식을 온전히 믿어주었던 부모님의 든든한 울타리가 지금의 단단한 저를 만든 원동력입니다. 25년 5월, 문경연수원. 지회 실천의 날 행복을 위해 내린 인생 최고의 결단 사랑과 믿음 속에서 따뜻하게 자란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결혼 생활은 가혹했습니다. 평온할 것만 같았던 일상은 남편의 반복된 외도로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가슴 깊이 파고든 상처는 하루도 쉬지 않고 저를 괴롭혔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원망은 결국 몸마저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찾아온 뇌경색, 이 모든 게 다 당신 때문이야라며 눈물 흘릴 때, 온 세상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진짜 아픔은 그 이후였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는 순간에도 남편은 일관되게 무성의했습니다. 반성이나 사과도 없는 그 차가운 태도를 마주할 때마다 제 마음은 더 깊은 절망으로 내몰렸습니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자책과 원망 속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24년 10월 베트남. 해수관음상을 배경으로.left 지칠 대로 지쳐있던 저를 구원한 것은 우연히 들은 스님의 법문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행복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는데, 듣는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타인 때문에 내 삶을 망가뜨리고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은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이혼이었지만, 내 행복을 위해 인생 최대의 결심을 했습니다. 홀로서기를 결심한 순간, 머리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습니다. 남의 기대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내린 용기 있는 선택. 저는 지금도 그 선택에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습니다. 생명의 은인 홀로서기 후 지인의 회사에서 일하던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다리가 뻣뻣해지며 심상치 않은 기운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예전에 겪었던 뇌경색의 불길한 감각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미 한 번 겪어본 병이었기에 병원에 가면 최소 일주일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회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급한 업무부터 처리하려 애썼습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지인이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저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치 깊은 잠에 취한 듯 의식이 몽롱해 정상적인 판단조차 내리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응급실로 들어서는 길조차 험난했고,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경련이 시작될 만큼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예후가 안 좋아 큰 후유증을 남겼을 것입니다. 26년 6월 지회 도반들과 모둠활동 저를 구해준 지인은 병문안을 와서 행복학교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정토회와의 인연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습니다. 그 지인은 죽을 고비에서 저를 구해준 것은 물론, 정토회와의 인연을 통해 제 삶을 참된 행복으로 이끌어준 진정한 생명의 은인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저를 건져준 고마운 인연은 이제 같은 지회에서 활동하는 소중한 도반이 되었습니다. 함께 마음을 나누며 수행과 봉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라도 그랬겠구나 직장 생활을 할 때, 함께 일하는 분들이 저를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큰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저 사람들은 왜 나에게 저럴까? 왜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릴까? 하며 늘 의문과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 불교대학 돕는이를 하며 들은 법문과 학생들의 나누기를 접하면서 문득 깨달음이 왔습니다. 26년 8월 북한이탈주민 초기 정착 지원 활동.left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제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혹시나 실수할까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일을 하는 반면, 저는 사장님이 지인이라는 이유로 편하게 대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 역시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럼 나도 당신들 상대 안 해’라며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만 돌렸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보는 다른 직원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그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상황을 바꿔 생각해 보니 ‘나라도 그랬겠구나’ 하고 그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좀 맞춰주면 어떠냐라는 스님의 말씀에, 그동안 제가 얼마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는지를 알았습니다. 지금은 일터에서 함께하는 분들과 잘 지냅니다. 서로 조심하고 맞춰가는 지혜를 소임 덕분에 배워갑니다. 한때 원망하고 미워했던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편안하게 상대를 대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돕는이 소임이 없었더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텐데, 참으로 소임이 복입니다. 26년 5월 선유동 계곡, 지회 실천의 날 소임이 준 소중한 인연들과 선물 불교대학 돕는이와 지회의 평화꼭지를 오랫동안 맡아오면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습니다. 일흔이 훌쩍 넘었는데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어느 북한이탈주민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 표정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배울 수 있는 환경에 늘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불평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26년 8월 고려인 일상 방문.right 방문할 때마다 진실된 마음으로 봉사자들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연신 고맙다고 하는 분에게서는 오히려 마음 가득 따뜻한 정을 얻습니다. 가족 혹은 본인이 장애가 있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얼굴에는 늘 밝은 미소가 가득한 고려인들. 우리는 작은 불편함에도 금세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곤 하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분들의 긍정적인 모습은 봉사자들을 겸허하게 합니다. 통일축전을 준비할 때, 다수인 아랫동네 사람들을 따뜻하게 아우르며 축제를 이끌어가는 윗동네 분 모습을 보며 깊은 존경심을 느낍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 생각했던 소임이 알고 보니 저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돌렸던 시선을 저에게 돌릴 수 있었습니다. 잘하려는 마음 부족한 마음으로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원망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이 따뜻하고 보람찬 소임의 기쁨을 더 많은 분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4년 11월 문경연수원, 보리수 일 수행 중 한 살 씩 나이가 들며 몸 아픈 곳이 조금만 생겨도 마음이 흔들리는 저와는 달리, 여러 차례 찾아온 건강의 고비 속에서도 담담하게 삶을 헤쳐 나가는 박연아 님의 모습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불교대학을 거쳐 경전대학을 지나오면서 대나무 숲에서 이야기하듯 가슴속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쏟아 낼 수 있었다는 박연아 님. ‘정토행자의 하루’ 같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 빛나는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제가 더 영광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한 걸음 씩 나아가는 박연아 님의 삶이 많은 분께 따뜻한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심학숙 희망리포터 편집윤정환

천안지회 2026.09.30. 108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통일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사람들_장수 죽림정사 평화 정진의 날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는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며 통일을 위한 특별 정진이 있었습니다. 정토회는 이날 임진각과 죽림정사, 미륵사, 아도모례원, 사천왕사지, 봉림사지 등 여섯 곳에서 동시에 평화통일 기도를 진행했습니다. 죽림정사에는 대전, 충청지부를 중심으로 회원 75명이 모여 통일 발원문을 봉독하고 천배 정진을 이어갔습니다. 이날 최고기온은 29도, 체감온도는 31도였습니다. 죽림정사 입구 호국 정신은 산문에서부터 죽림정사의 호국 정신은 절 입구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산문에는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가운데는 장안산 죽림정사, 왼쪽 범종 법고루는 범종, 목어, 법고, 운판 등 불교의 사물을 모신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쪽 충의원통문은 용성 스님의 호국·호법 정신을 상징하는 현판으로,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입니다. 죽림정사 산문, 3개의 현판 경내로 들어서면 석조 연당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통일된 대한민국의 모양입니다. 연못을 건너는 피안교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 즉 피안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하는 다리입니다. 그 아래 교각 아치에는 정통 삼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광복을, 오늘날에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호국 도량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 죽림정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용성 조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자, 광복을 발원하는 대전, 충청지부의 실천 활동 장소입니다. 연당 위에 피안교 멀고 먼 길이지만, 오고픈 마음 행사 시작 한 시간 전, 오전 7시가 되었습니다. 경내에는 하루 먼저 도착한 봉사자들이 아침 공양을 마치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제천에서 여섯 시간 운전해서 온 청주지회 황보미 님이 보였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하루 전날 죽림정사에 오셨어요?” “제천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새벽 4시에 길을 나서야 해요. 5시까지 청주로 가서 지회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또 두 시간 넘게 와야 하거든요. 너무 긴 시간이라 그렇게까지 해서 여기에 올 자신은 없어서 하루 전날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인데도 발심한 이유는요?” “절에서 느끼는 고즈넉함이 좋고 새벽 예불도 좋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아침 예불을 듣는데, 오늘따라 광복을 못 보고 가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뭉클하더라고요. 그분들이 맺힌 게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풀어드려야겠다 싶습니다.” 이미 세월 저 너머에 가 닿은 듯 말하는 도중 울먹거립니다. 용성 교육관에서 준비하는 아침 풍경 가지런히 줄 맞춰 방석을 놓은 교육관에서는 오늘 행사 총연습 중입니다. 입구에서는 첫 번째 봉사자가 출석을 확인하고, 맨 앞자리에서는 대전, 충청지부 집전 봉사자 다섯 명이 순서와 교대 요령을 점검했습니다. 이들은 30분씩 돌아가며 2시간 30분 동안 천배 정진을 집전할 예정입니다. 천안지회 정선영 님이 집전을 맡게 된 계기를 전합니다. 법사님이 문경 목탁 교육을 권했는데, 저는 장거리 운전을 못 하고 홍성에서 너무 멀어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권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그 일이 처음엔 책임 봉사자 회향 수련 때 같은 지회였던 김종호 님에게 넘어갔는데, 자신은 맡고 있는 소임과 겹쳐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그러면 ‘내가 목탁 교육을 받아야겠다’라는 마음을 냈습니다. 오늘의 목탁 집전은 다섯 명이 돌아가며 150분을 꽉 채울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절하는 도반들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관에서 집전 담당 봉사자들 오늘의 행사 진행 사회자, 김정성 님 같은 곳 그 옆에서는 사회자가 행사 전체 총연습을 진행하고, 음향 담당자가 마이크를 조정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를 맡은 천안지회 김정성 님도 역시 전날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그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아침 봉사도 있지만, 미리 와서 차분한 마음으로 순서를 숙지하고 사회 진행문을 제 언어와 속도에 맞게 조금 수정할 게 있어서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그대로 읽으면 건조해지고 실수가 나오는데, 그러면 더 떨리거든요. 제가 흐름을 가져야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내면의 평화 오전 8시가 지나자, 대웅전에서 삼배를 마친 회원들이 삼삼오오 교육관으로 모였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으로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죽림정사 원장 법정 법사님이 여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이 되었으면 하고 모두가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같이 우리가 기도하며 그 힘을 보태어가는 것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안에 평화는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게는 남편이나 아이, 주변 지인들과 갈등을 겪는 일도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렇게 마음의 평화까지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밖에서 바라본 교육관 천 배가 될 때까지 일어나고 또 일어납니다. 이어 통일 발원문을 함께 읽고 천배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미워했던 마음을 녹여 동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발원하며 한 배 한 배 절을 이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반들의 등과 얼굴은 땀에 젖었습니다. 법정 법사님께 해마다 통일 기도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기도한다고 우리나라의 통일이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평화통일이 되는 일에 마음을 보태는 건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서도 뭔가를 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사회가 평화로워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남북의 평화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도 함께 발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열무 냉면을 만들고, 법의 법사님 공양간 일은 또 하나의 정진 교육관에서 절이 이어지는 동안 공양간에서는 함께 정진하던 법사님들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지난해와 같은 모습에 그분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오늘 점심 메뉴가 뭔가요?” “오늘 점심은 열무 냉면입니다. 대전지회 공주 모둠 이은숙 님이 열무김치를 보시하셨어요. 거기에 다른 육수를 넣어서 열무 냉육수를 만들 겁니다. 이은숙 님의 공덕이죠.” “정진하다 멈추고 나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요?” “천 배하고 나오면 다들 배가 고프잖아요. 그 얼굴들 생각하면 힘든 줄 모릅니다. 이것도 정진의 한 부분이지요.” 냉장고 한 칸에는 정진을 마친 회원들이 나눠 먹을 수박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공양을 준비하던 그 시각, 백용성 조사 기념관에서도 봉사자들이 다른 행사를 위해 법당을 새 단장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용성 조사의 정신을 잇는 또 하나의 손길이었습니다. 천배의 기도 정진 소감, 웅성웅성, “수고 많으셨습니다.” 천 배에 도달하기까지, 소감 나누기 어느덧 사홍 서원을 끝으로 천배 정진이 끝났습니다. 각각의 소감 나누기가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요즘 백중 기간이기도 해서 어머니와 함께 왔습니다. 정진하면서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천 배를 하려면 너무 힘든데, 도반이 있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칠백 배까지는 엄청 힘들었는데, 그 뒤로는 마음이 탁 놓이면서 그냥 절이 되더라고요.”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여기에 왔는데, ‘소임이 복이다’라고 되새기다 보니 절을 할수록 오히려 평온해졌습니다.” 천안 지회장 박은숙 님은 정진의 의미를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정리했습니다. “법륜 스님과 법사님이 늘 개인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처럼 절을 하면서 개인이 평화를 얻으면 그 평화가 통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통일은 옳고 그름의 문제도, 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상생과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필요합니다.” 평화를 위한 천 번의 날갯짓처럼, 오늘은 우리가 해냈어요. 기도하는 어떤 한 사람을 기다리며 81년 전, 그 시대 우리 민족의 해방은 어쩌면 이루지 못할 꿈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도했고, 누군가는 또 독립운동했습니다. 35년의 식민 통치 끝에 맞은 광복은 그 씨앗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든 결과였습니다. 그처럼 통일의 씨앗은 이미 우리 마음에 심겨 있습니다. 남은 건 거름입니다. 그것은 매년 이어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일 것입니다. 하루 전날 여섯 시간을 운전해 온 봉사자, 30분씩 목탁을 나눠 잡은 다섯 명의 집전 봉사자, 열무김치를 가져온 사람, 그리고 체감온도 31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죽림정사 용성 교육관을 채운 75명, 이날 올린 절이 모두 7만 5천 배였습니다. 이것이 올해의 거름입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방석, 백용성 조사 기념관 내부 내년 8월 15일에도 죽림정사에는 오늘에 버금가는 방석이 깔릴 것입니다. 올해 깔린 75장의 방석이 내년엔 몇 장이 될지 아직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방석 한 장이 늘어날 때마다 평화통일의 씨앗은 천 배의 정성만큼 쑥쑥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장의 빈 방석은 늘, 언제나 어떤 이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종호 편집황재윤

통일 2026.09.18. 1,250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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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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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