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보리수는 나의 재미난 놀이터

어떻게 하면 더 잘 쓰일 수 있을까하는 고민으로 영어학원 대신 정토회를 찾아오신 유경호 님의 수행담을 읽으면서 참 건실한 청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한 대가로 직장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지만, 보리수 정진을 하면서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직장 동료들에 대해 조금은 멀리, 그렇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는 부분이 참 공감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을 대신하여 정토사회문화회관의 전기와 건물관리를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북통일이 되면 불빛으로 남북을 잇고 싶으시다는 꿈을 응원합니다.

JTS 다문화센터와 인연

직장생활 4년 차쯤 영어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정토불교대학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삶이 힘들거나 간절함이 있어서 정토회를 찾아간 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과 더불어 회사생활이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생긴 무료함이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잘 쓰이는 삶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영어학원 맞은편에 있던 대전법당에서 수행법회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안 되어 한 도반이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 얘기를 꺼냈을 때,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끼리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궁금증을 느꼈고 아무것도 모른 상황에서 깨장에 참가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모두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깨장에서 완전히 잘못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인사발령으로 다섯 군데 법당을 돌아다니며 정토불교대학 공부하다가 안산법당에 자리를 잡았고, 자연스럽게 JTS 다문화센터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처음부터 봉사에 흔쾌히 마음을 낸 건 아니었지만, 2019년 북한 어린이를 돕는 옥수수 모금 운동 할 때 하루도 빠지지 않는 월광법사님을 보면서 퇴근하고 몸이 피곤해도 참여했습니다. 술에 취해 소리 지르는 사람, 왜 자신의 구역에서 돈을 걷냐고 따지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 시비하는 사람 등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오히려 안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호응해주었습니다. 추운 날, 북한 아이들을 위해 1,000원, 2,000원씩 기부하던 외국 청년들은 기부를 통해 자신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보면 월광법사님 덕분에 정토회 봉사와 인연을 맺었고 여기까지 잘 왔습니다.

보리수 봉사 중(유경호 님)
▲ 보리수 봉사 중(유경호 님)

'팀장님 감사합니다’

그 이후, 불교대학 진행자를 비롯하여 일주일이 자연스레 정토회 봉사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면서 예상치 못한 인사고과를 받아 과장 진급에 실패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휴가도 없이 열심히 일했는데 내 업무 성과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은 건지 억울했고, 특히 팀장님에 대한 불만이 컸습니다.

전기 엔지니어로서 나를 증명할 자격증을 취득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다문화센터에서 만난 노기선 님이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며 보리수 정진을 추천하였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은 별도의 고용 없이 자원봉사자들의 릴레이 근무만으로 24시간 상주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을 목표로 건물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봉사자들의 교육과 법사님의 수행지도가 병행되고 있습니다.

보리수 정진에서 묘덕법사님은 나에게 ‘팀장님 감사합니다.’라는 명심문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황당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법사님이 주신 명심문은 그 팀장님만을 지칭한 게 아니라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주제였습니다. 나는 팀장님이 내가 원하는 사람이라는 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법사님 수준의 높은 인격을 기대했고 적어도 상사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고, 그게 깨지자 그분에 대해 실망하였습니다.

일주일 전 퇴직하고 자기 사업을 하고 계시는 팀장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좋은 처자가 있는데 만나보겠냐는 소개팅 주선이었습니다. 그때 내 걸림을 한 번 더 보았습니다. ‘정말로 감사했다면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을 텐데, 아직은 꿍한 구석이 남아 있었구나! 남 얘기할 게 아니구나!’ 지금은 직급이 수평으로 통일되어 부장도 과장도 모두 다 매니저로 불립니다. 나는 참 부질없는 호칭을 좇고 있었습니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이것은 정년퇴직까지 가져갈 귀한 명심문입니다.

내가 옳다는 업식이 강하다 보니,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라며 소통하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직종의 봉사자들과 일수행과 회의, 나누기하면서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분은 저런 걸림이 있구나! 저렇게 걸릴 수 있구나! 저분도 나름 자기 수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그렇게 ‘누구나 그럴 수 있지!’란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보리수 정진을 통해 조금 멀리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니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도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일 수행 여는 모임 중(왼쪽에서 두 번째가 유경호 님)
▲ 일 수행 여는 모임 중(왼쪽에서 두 번째가 유경호 님)

수행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최근에 읽은 책 <실리콘밸리에선 어떻게 일하나요?>에서 본 내용입니다. 애플사는 디자이너 의견이 무게감이 크다면, 구글사는 엔지니어의 역할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합니다. 애플사에서는 디자이너의 컨셉에 엔지니어가 맞춰야 한다면, 구글사에서는 엔지니어의 관점에 맞춰 디자인을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는 식으로 엔지니어 의견을 반영하려는 경향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보리수는 애플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링이 우선이 아니라 수행이 중심이고, 엔지니어링이 수행의 관점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기술적으로 많이 아는 거사님들이 정진을 지속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기술이라는 명분으로 아집을 세우면 회사에서는 엔지니어의 인격보다 능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는 쉽게 대체 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며, 기술자들은 관련된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아닌 꼭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체적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필요하면 다 알아야 하며 누구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자이크 붓다 관점을 통해, 회의에서 의견을 교환하며 지혜를 모으는 과정에서 많이 배웁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토목과 관련된 소임을 하기 위해 북한으로 달려가겠다는 어떤 도반의 포부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전기 엔지니어로서, 전선으로 남북을 잇는 불빛을 밝히는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정토사회문화회관의 전기와 건물관리 소임을 소신 있게 꾸준히 하겠습니다.
‘다만, 잘 쓰일 뿐입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9월 호에 수록된 유경호 님의 보리수 수행담입니다.

글_유경호(보리수 2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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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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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수행이 중심이고 수행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토회 원칙이 나를 만들어 나갑니다.
도반님 글에서 한 수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2024-04-16 17:52:02

사공엽

저도 회사에서 비슷한 고민이 있어서 반갑네요. 도반님 응원합니다. 🙏

2024-04-16 13:21:34

김은주

힘든 직장생활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회관을 채워주시는 법우님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화이팅~!

2024-04-16 10: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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