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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원 이야기]


불안함이
감사함으로 바뀌다

▶가운데가 글쓴이

황혜주 울산법당

백일출가 대신 수련 바라지
2017년 9월에 처음 바라지를 시작하고서야 내 감정 하나 다루지 못하고 무지하게 살고 있음을 알았다. 나의 무의식에 상처가 있음을 자각하고 ‘평생 이대로 살겠구나’ 싶어 백일출가를 결정하고 만배를 시작했지만, 머리와 몸의 저항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책의 3일을 보냈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만배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며 백일출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만배는 했다는 생각에 기뻤다. 하지만 금세 미진한 마음이 맴돌아 다시 찾아간 문경의 법사님에게서 백일수련 바라지를 권유받아 시작하였다. 문경에 와서 한동안 몸에 엄청 끄달렸는데 그 와중에 심한 감기까지 온 탓에 집에 가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 후 자잘한 고비를 넘기고 걱정없이 나에게 집중하며 지내다가도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걸까? 나는 여기 왜 있는가?’ 같은 생각으로 한동안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널뛰기를 하였다.

나도 그렇구나! 나도 똑같구나!
명상 바라지를 할 때 공양간을 같이 맡은 젊은 남자 법우가 일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내 눈에는 너무 잘 보이는 일들이 그 법우 눈에는 안 보이는지 멀뚱히 서 있기만 했던 것이다. 소임은 나누었지만 자잘한 것까지 분담하려니 시키는 입장 같아 눈치도 보이고 알아서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불만은 올라오는데 눈치보는 내 성격 탓에 속 시원하게 말도 못하고 나혼자 다 챙긴다는 생각에 분별심이 막 올라왔다.

그 순간,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던 때가 떠올랐다. 초보라서 일을 배우는 시기였는데, 상사가 하나를 알려주고 열을 알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지적할 때 ‘처음이라 못하는 게 당연한데 너무하는 거 아니야?’ 하며 속으로 시비를 했었다.

‘그래! 나도 그랬구나! 나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분별심이 스르르 사라졌다. 내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그 법우에게는 처음인 공양간 일이 낯선 게 당연한데, 내가 이전의 회사 상사와 같은 마음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의 사장님도 이해가 안 되는 분이었다. 나는 능력 있는 직원이 되고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일해서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 이후에도 더욱 나은 직원이 되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끝없이 밀려드는 업무로 야근의 연속이었는데, 잦은 음주로 일에 태만한 사장님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 후 사장님은 여러 제안으로 다시 연락해 왔지만 모두 거절하자 그런 나를 탓하는 바람에 한동안 괴로웠다. 그렇게 미워했던 회사의 상사와 사장님이었는데 알고 보니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못 보는 내 꼬라지를 보게 해주는 상대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법사님이 주신 “자책하며 살았던 내 마음에 참회합니다” 기도문으로 정진하는 동안 내 가치관을 기준으로 상대를 분별하고, 내가 만든 상에 상대가 안 맞을 때 화를 내며 괴로움을 자처했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의 문제로 고민만 한다면 그냥 그 사람에게 얽매여 살 뿐이었다. “내 가치관에 맞춰주길 바랐으니 당신도 저로 인하여 참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참회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참회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자책하는 마음이 아닌, 상대에 대한 참회 기도가 마음으로 와 닿으면서 기도는 나를 위한 일임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여름명상바라지 사무팀 도반들과 함께.제일 왼쪽 글쓴이

불안이 감사함으로 바뀌는 순간
집에 다녀온 어느 날, 요사채에 만배하러 온 백일출가자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꼭 ‘저 사람은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읽혔다.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와서인지 피곤하고 조금 가라앉은 상태였던 나는 익숙한 공간임에도 새로운 사람들을 보니 혼자만 다른 부류인 것 같아 어색함과 불편함이 밀려왔다. 저녁예불을 드리러 올라가 앉아 있는데도 마음이 불안했고 내 불안함을, 남에게 보이기 싫었다. 더 정확히는 내가 만든 ‘나’라는 상을 남에게 들키기 싫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 불안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할 뿐 불안할 일이 아닌데 왜 이런 상황이 불안할까?’ 싶었다. 나 스스로 별일 아닌 상황에 불안함이 올라오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지 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며칠 동안 ‘왜 불안할까?’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니 어릴 적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때의 마음이 지금의 불안과 같다는 게 느껴졌다. ‘그랬구나! 그때의 불안감이 지금의 일부분이 되었구나!’ 그 후 수행법회 때 스님께서 “부부 사이가 안 좋으면 헤어질 수도 있는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헤어지지 않고 자식을 보고 산다”는 법문을 해주셨다. 다음 날 정진하면서 스님의 법문이 떠올라 ‘아버지, 밖에서 힘들고 안에서 마음 알아주는 이 없이도 가정을 지키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머니, 한 여자로 태어나 사랑받으며 즐겁게 살고 싶으셨을 텐데 무뚝뚝하고 화가 많은 아버지를 만나 그 마음 받아내며 우리를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는 두 분에 대한 감사함에 눈물이 났다.

백일 동안 수련 바라지를 하면서 내가 느끼는 바라지의 기쁨은 정말 컸다. 네 일 내 일 구분 없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잘 쓰일 때 들었던 감사한 마음 덕분이었다.

처음 마음을 내었을 때 길게만 느껴졌던 백일이 너무나 짧았다. 이어서 명상 바라지를 신청했는데 큰 바람 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경계에 부딪히는지 더 보기 위해서다.

마음 내어 이끌어 주신 법사님과 살펴봐 주신 대중 분들께 감사드린다. 마음 편히 베풀며 살아야겠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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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2개
  •  이삼순 2019/06/01 15:50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나 바보 2019/05/20 16:43
    엄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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