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정토회 북구지역을 아우르는 태전법당은 2013년 12월에 개원했습니다. 첫 번째 부총무로, 지금까지 법당의 크고 작은 일을 묵묵히 하는 저녁 자원활동 담당 손익연 님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불교대학 홍보 전단지 나눠주는 주인공
▲ 불교대학 홍보 전단지 나눠주는 주인공

꼭 정토회에 다시 가리라

남편은 창원에서 직장과 학교생활을 병행했는데, 불교청년회에서 활동하며 대학 불교 동아리연합회 지도법사님의 소개로 정토회 <깨달음의 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총각 때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고 월간 ‘정토지’ 영구구독 회원이었습니다. 이런 남편과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정토법당에 나가게 되어 1996년 불교대학을 입학 1998년 2월에 졸업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불교대학 1년과 경전반 1년을 합친 2년이 불교대학 과정이었습니다. 세 아이를 낳아 키우며 정토회는 초파일에만 나가게 되었습니다. 매달 집으로 오는 정토지 속 정토회 활동과 수행담을 보며 시간이 되면 꼭 정토회에 다시 가서 봉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건이 되어 대구법당에 가게 되었고, 불교대학도 다시 다니고 봉사도 시작했습니다. 2012년 희망세상 만들기 캠페인 활동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법륜스님이 전국을 다니며 300강 강연을 하던 때라, 그 당시 대구 경북지역의 강연을 책임지던 장금옥 님과 이명숙 님을 도와 시간 나는 대로 강연 물품 챙기기, 홍보 활동을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도반들과 (앞줄 오른쪽)
▲ 새벽기도를 마치고 도반들과 (앞줄 오른쪽)

불사 담당자가 되어 불씨를 피우다

그렇게 하다 대구 다른 구에도 법당을 만들면 좋겠다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북구 지역에 회원이 꽤 되니 불사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여 2013년 태전법당 불사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대구 북구지역 도반들과 대구법당, 대경지부의 도움으로 법당을 개설하여 부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법당 불사를 위해 북구 지역 도반들이 한자리에 처음 모였는데 이십여 명이 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회원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구법당에 같이 다녀도 함께 하는 일이 없으니 모르고 지낸 것입니다. 박상희 님 집에서 가진 첫 모임에서 각자 불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의견을 모으고, 불사금을 모으기 위해 결의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법당이 이렇게 커지고 잘 유지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월세라도 제때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시골에서 남편과 막내와 함께
▲ 시골에서 남편과 막내와 함께

내 그릇보다 너무 큰 소임

새로 법당이 생겨 먼 대구법당까지 가지 않아 좋고, 집과 법당이 가까우니 언제든지 가서 기도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등 8대 행사를 우리 스스로 준비하고 진행하니 법당 행사마다 다 새롭고 재미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특히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활동가들도 많고 노도반님들이 법당의 중심을 잡고 기도도 해주어서 법당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활동가들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힘들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 그릇보다 너무 큰 소임을 맡다 보니, 그것이 다 부총무인 내 탓인 것 같았습니다. 2014년 하반기 문경수련원에 부총무 수련을 하러 갔을 때 무변심 법사님의 법문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란 부총무였는지 정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총무라 법당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히 집안일이 소홀해지고 가족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남편이 차열쇠를 뺏어 법당에 가지 못하게도 하고, 정토회 회의 중 남편의 전화를 받으면 곧장 나가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주말에 시골 시집에 볼일이 있어도 정토회 행사로 빠지면 남편이 많이 싫어했습니다. 남편의 불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내가 뭐 나쁜 일 하고 다니나?” 하며 내 입장만 고집했습니다. 남편의 불만이 쌓여서 사이가 급격히 안 좋아져 부총무 소임을 일 년 만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부총무 소임을 내려놓게 되니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서운하고 속상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편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어 갈등이 줄어드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나니 그때 부총무 소임을 내려놓은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월 통일 의병활동 중 도반들과 전통놀이 하는 모습(오른쪽 두 번째)
▲ 7월 통일 의병활동 중 도반들과 전통놀이 하는 모습(오른쪽 두 번째)

'일어난 일은 모두 좋은 일'

다시 직장을 구해서 어린이집에 보육교사로 3년간 근무하며 새벽기도 집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법당 재불사도 하고 여러 큰일들이 있었지만, 처음 들어간 직장 일이 힘들어 법당 봉사에 크게 마음을 못 냈습니다. 부총무 김옥자 님이 한번씩 불교대학 홍보나 행사를 안내해주면 가볍게 참여하며 끈을 놓지 않고 마음 편하게 법당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3년 정도 새벽기도 집전자로 기도하면서 내가 인정하지 않았고 몰랐던 내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당신 고집 참 세다.” 하면 이젠 “맞아요 나 고집 좀 세요.”라고 웃으며 인정하고 넘길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하고 좋습니다. 다니던 어린이집이 인원을 줄이는 바람에 올 3월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쉬게 되었습니다. 그 참에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고, 수행법회 나오고, 법당 자원활동 담당과 새벽기도 집전을 하며 재미있고 가볍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와서 변한 것은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또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가족과 사이도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치관이 조금씩 정립된다는 것, ‘일어난 일은 모두 좋은 일’이라는 법륜스님의 법문이 이젠 조금씩 이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글_도경화 희망리포터(대구정토회 태전법당)
편집_강현아(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