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법당 자활팀장 소임을 맡고 있는 권유정 님은 언제나 솔직하게 마음 나누기를 합니다. 환희심 가득한 수행담도 감동이지만 리포터는 그녀의 꾸밈없는 번뇌의 수행담이 듣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좌충우돌 수행사(史)가 전혀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마지막 불대 등록자에서 불사까지

좋은 남편 만나 결혼 생활은 편안했고, 크게 바라는 게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의지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로 사는 게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2012년 가을에 법륜스님이 양평에 즉문즉설을 하러 오셨습니다. <깨달음의 장>과 불교대학을 수료한 김영주 님과의 인맥으로 아는 언니들과 봉사자로 강연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언니 중 한 명이 가정 수요법회를 열었고, 김영주 님은 가정 불교대학을 개설했습니다. 즉문즉설 봉사 때 적극적이었던 언니들은 불교대학에도 흔쾌히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학 등록 마지막 날 김영주님의 설득으로 간신히 등록했습니다. ‘일주일에 언니들과 밥 한 번 더 먹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양평법당 제 1기 불교대학에서 다섯 명의 졸업생이 나오자 불사를 시작하자는 권유가 들어왔습니다. 봉사와 법회에 그렇게 적극적이던 언니들은 모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모두 떠나고 저와 김영주 님만 남았습니다. 불사에 동참했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일은 부총무였던 김영주 님이 다했습니다. 저는 불사의 주인이 아니라 시간 날 때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도왔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소극적이었던 제 모습이 부끄럽고, 힘들었을 김영주 님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꼴찌로 등 떠밀려 불교대학에 입학한 제가 적극적이었던 언니들을 뒤로하고 아직도 정토회 활동을 하는 건 아침기도 덕분 인 것 같습니다. 불교대학 동기 중 저만 아침기도를 했고, 결국 저만 남아 있습니다. “낙수효과를 언제쯤 볼 수 있는 거야? 당신은 법 바가지를 거꾸로 쓰고 있는 것 같아”라며 농담 반 진담으로 말하곤 했던 남편도 어느덧 정토행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너희들이 좋은 아빠를 갖게 된 건 순전히 엄마 덕이야”라고 딸들에게 으쓱 대기도 합니다.

양평불사를 함께 했던 김영주 님과 권유정 님(오른쪽)
▲ 양평불사를 함께 했던 김영주 님과 권유정 님(오른쪽)

한 걸음 앞으로 두걸음 뒤로

<깨달음의 장>에서 무아를 몸소 느꼈다면 인도성지순례에서는 삶의 철학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14박 15일을 살면서 ‘내가 나의 위생과 청결을 위해 지구를 더럽히고 있었구나.’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순례 후 아침 기도는 물론 저녁에 명상도 했습니다. 이 기세라면 공중부양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맹장염 수술을 받으면서 그 풀이 한층 꺾이고 말았습니다. 병원에 바로 갔더라면 간단했을 수술을 7, 8일 참다 가는 바람에 일이 커졌습니다. 그냥 배가 아픈 건 줄 알고 무조건 참았습니다. ‘이 정도 아픈 것도 이겨내지 못하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겠어?’라고 자책하면서 참고 참았습니다. 수술을 받고 몸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제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플 때 불안감과 쫓기는 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알았습니다. ‘내팽개쳐뒀던 몸을 이제라도 추슬러야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니 법당도 그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당에서 권유정 님
▲ 법당에서 권유정 님

정토회로 다시 발길을 돌리다

그때까지 정일사 입재 기도를 이리저리 핑계 대며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역시나 정일사 입재 기도할 시기가 다가왔고, 동참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안내를 또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불교대학을 함께 졸업한 언니가 기공 호흡을 배워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기공 호흡을 하면 몸 안의 나쁜 성분을 뱉어낼 수 있다고 하자 귀가 솔깃했습니다. 목탁 들 자신도 없어 목탁교육도 거절한 상태라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마음이었습니다. 정토회를 그만두고 기공호흡을 배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일사 입재 기도를 선심 쓰듯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정일사 회향에서 <깨달음의 장> 법사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잘 됐다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고 깔끔하게 정리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이제 정토회 그만 다니려고요. 생명을 연장하는 기도를 하고 싶어요. 거기 가서 기도하면 건강해진다고 해서 가보려고요.” 법사님은 그냥 정토회에서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여기서 하면 효력이 없을 것 같아요.” 했습니다. 정토회를 그만둘 마당에 솔직하게 다 말했습니다.

하지만 법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정토회는 기도 약발로 사람을 현혹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열심히 해도 건강은 좋아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우 쳤습니다. 제가 건강에 너무나도 집착한 나머지 과대광고에 현혹되어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 작별 인사로 선택한 정일사 기도를 통해 저는 다시 정토회에서 수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한 권유정 님
▲ 가족과 함께 한 권유정 님

락(樂)은 고(苦)가 되고 고가 다시 락이 되는 윤회의 삶

이제는 몸도 많이 좋아졌고, 아이들도 꽤 자랐습니다. 슬슬 걱정거리가 없어지니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제 귀에는 ‘경제적으로 독립하라’는 말로 들리면서, 일하고 싶어졌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이력서와 입사지원서를 써봤습니다. 일을 시작하니 마음이 날아갈 듯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일이 익숙해지자 다른 사람들의 단점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적을 당하니 어떤 법문을 들어도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옳은데, 내가 일을 더 잘하는데, 왜 나한테 지적을 해?’라는 억울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관계는 틀어졌고, 감정조절은 안 되고, 제가 옳다는 마음은 강했습니다. 그저 과보를 달게 받겠다는 기도를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업장 변경을 한다며 기존사원을 모두 퇴사시키겠다는 점장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드디어 과보를 받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크게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일하면서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환경실천과 법당 봉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런데, 점장이 저에게만 일을 다시 해달라고 부탁 했을 때 많이 혼란 스러웠습니다. “밥은 먹고 살겠니?”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습니다. 밤 새워 고민한 끝에 일해야겠다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릴 적 저와 언니를 항상 비교하던 엄마에게 “넌 잘하는 게 뭐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그래서 밥이나 얻어먹고 살겠니?”라는 말을 들으며 자존감이 많이 낮았습니다. 그런데 엄마에게 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을 때 엄마의 표정에서 ‘이제야 사람구실 제대로 하는구나.’가 읽혔습니다. 그런 친정엄마에게 일을 그만둔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일을 계속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딸이자 딸의 엄마인 나

골목대장과 같은 엄마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저를 바꾸고 싶어 하셨고, 밖에서는 찍소리 못하면서 동생한텐 못되게 군다고 저를 많이 혼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핸드볼 학교 대표 선수가 됐는데, 운동도 하기 싫고 잘하지도 못해서인지 코치는 저를 엄하게 대했습니다. 심할 땐 발로 차기도 했습니다. 억울한 마음을 엄마에게 하소연하면 “넌 왜 그렇게 맞고만 있니? 네가 잘하면 안 맞을 거 아냐. 키도 크니 열심히 해서 이걸로 성공을 한 번 해야지.”라며 저를 보호해주시기는 커녕 오히려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선수로 생활한 1년 반 동안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습니다.

유독 심한 사춘기를 보냈던 저는 “엄마는 필요 없어. 돈만 주면 돼.”라며 엄마와 많이도 싸웠습니다. 저는 선한 큰딸과 유독 저를 많이 닮은 까칠한 둘째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라는 엄마의 푸념과는 달리 저는 둘째 딸의 마음과 행동이 너무나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큰딸과의 관계는 많이 삐걱 거립니다. 잘 되라고 하는 조언과 충고가 큰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릴 적 저의 모습을 통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렴풋이 짐작해봅니다만 엄마에 대해 감사함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뒷걸음 칠지언정 정토회 수행자로

요즘에는 새물정진에 입재 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일과 가사로 몸은 이미 피곤한데 새물정진 하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하고, 왕복 4시간을 길거리에서 낭비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새물정진을 갑니다.

아직도 온갖 상에 사로잡혀 마음속이 시끌시끌하고, 봉사를 뒤로하고 일을 선택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법사님의 삶이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제가 하고 싶지는 않고, 염색안한 흰머리가 혹여나 초라하게 보이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여도 저는 수행을 그만두지는 않을 겁니다.

제 고집이 바위처럼 단단하고 융통성 없다 생각이 들지만, 그 덕에 아침기도를 고집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들끓어도 저는 아침기도를 합니다. 새물정진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지만, 그래도 끝까지 할 겁니다. 일도 하고 봉사활동도 더욱 열심히 할 겁니다. 저는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합니다. 이 결심을 정토회와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바위틈 사이로 태어난 나무에서 권유정 님의 근기가 느껴집니다
▲ 바위틈 사이로 태어난 나무에서 권유정 님의 근기가 느껴집니다

인터뷰를 마치고나서...

불편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수락했지만, 오히려 복잡했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인터뷰한 뒤 새물정진 북 세미나에서 움켜쥐고 있던 마음을 드디어 내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저를 탓하지 않고 이미 선택한 일은 선택한 데로 한 번 해보겠습니다. 흔들리는 이 마음 또한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본래 있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말씀이 무한한 자비의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권유정 님은 저에게 많은 용기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억지로 잘하려고 고군분투하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흔쾌히 “예”하는 그녀는 양평법당 원조회원이자 든든한 선배도반입니다.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성공한 그녀의 수행사(史) 2편이 기대됩니다. 그녀가 언제나 ‘유쾌한 유정씨’로 우리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글_이현주 희망리포터 ( 남양주 법당)
편집_임도영 ( 광주전라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