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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영주시 초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JTS 박지나 대표님과 회의를 했습니다. 향후 로힝야 난민캠프와 미얀마 지원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시리아, 파키스탄 등 지금 진행 중인 해외 구호 사업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어젯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국회는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였습니다. 이후 계엄군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대통령이 계엄 해제 요구안을 수용하여 일단 사태가 수습되기는 했지만 밤새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면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조용할 날이 없네요. 간밤에 늦게까지 TV 뉴스 본다고 다들 잠을 못 잤지요? 저는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에 비누 1년 6개월치 636만 개를 지원하는 전달식을 하고 어제 오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밤을 꼬빡 새우면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전화가 와서 깨 보니까 계엄령이 선포되었다고 뉴스를 보라고 했습니다. 결국 190명의 의원이 국회로 모였고, 만장일치로 비상계엄헤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보통은 준비를 잘하는 게 좋은데, 준비를 잘하지 못하는 것도 좋을 때가 있네요. 잘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준비를 잘하지 못해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인도 첸나이에 갔는데,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눈 폭탄을 맞아서 비행기가 가니 못 가니 하면서 어렵게 갔는데, 현지에 도착하니까 사이클론으로 물 폭탄이 쏟아져서 행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비행기 일정에는 차질이 없어서 모든 일정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주에는 3일 동안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최제우 대신사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서 6개 종교의 지도자들과 사회 인사들이 함께 최제우 대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했습니다. 태어나신 곳, 도를 이루신 곳, 동학 경전을 집대성한 곳, 한국 근대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동학혁명이 일어난 곳을 모두 참배하고 대화마당을 가졌습니다. 그 영상을 본 후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후 11시 30분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영주까지 이동을 해야 해서 서둘러 방송실을 나와 차에 올라탔습니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 차를 타고 가며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영주시에서는 시민들을 위해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스승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영주인성아카데미를 해마다 열고 있는데요. 올해의 마지막 강연으로 스님을 초청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2시간 30분 동안 달려 오후 1시 50분에 영주문화예술회관 까치홀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영주시청 직원들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강연을 하기 전에 공연장 옆 접견실에서 박남서 영주시장님과 잠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주에서 강연한 지가 10년이 넘으신 것 같아요.”
“네, 10년 전에 강연을 한 번 했습니다. 원래 오늘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에 비누 636만 개를 전달하러 갔다 와야 해서 강연을 하루만 늦추면 안 되냐고 물어봤는데, 이미 홍보가 다 나가서 안 된다고 했어요. 원래는 전달식을 하고 난민촌을 하루 둘러보고 나와야 하는데, 강연 일정에 맞추려고 전달식만 하고 밤에 비행기를 타고 와서 어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아이고, 저희 때문에 고생을 하셨네요. 저희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이미 홍보가 나갔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잘하셨어요.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에 ‘대중에게 공지된 사항은 변경하지 말고 행한다’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웃음)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다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모습을 보이자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598석이 빈자리 없이 꽉 차고, 영주 시장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영주시가 선비의 고장인만큼 영주 시민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오늘은 시민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강연이어서 600석 강연장으로 시민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삶의 진리를 깨닫는 행복하고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다들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죠? 다행히 계엄 해제 요구안이 수용이 되어서 일단락은 되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오늘 강연도 못할 뻔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생깁니다. 저는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지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새벽에 뉴스를 보면서 ‘준비 부족이 좋을 때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준비를 너무 잘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갈 때 준비가 부족한 것도 때로는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웃음)
스님은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질문 신청을 받지 않고, 즉석에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한 분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물었잖아요? 이렇게 행복해도 됩니다.” (웃음)
“그런데 겁이 납니다. 드라마를 보면 너무 행복한데 갑자기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생길 때가 있잖아요?”
“그럼 제가 물어볼게요. 1년간 행복하다가 교통사고 나서 다치는 게 나아요? 일 년 내내 불행하다가 교통사고 나서 다치는 게 나아요?”
“별일 아니었네요,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질문자는 스님의 한마디만 듣고 곧바로 환한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스님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아는 게 최고로 좋은 깨달음이에요. 인생을 살다 보면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고, 몸이 아플 수도 있어요.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공부를 잘할 것 같았는데 막상 학교에 보내보니 공부를 못할 수도 있듯이 인생살이가 대부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기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행복한 가운데 그런 일이 생기는 게 나으냐, 불행한 가운데 그런 일이 생기는 게 나으냐는 겁니다.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해요?”
“행복한 가운데 그런 일이 생기는 게 낫죠.”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걱정을 안 하려고 해도 걱정이 된다면 정신과에 가봐야 합니다. 정신과에 가면 보통 그런 증상에 대해 ‘불안증’이라고 진단을 합니다.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 늘 있는 증상입니다. 집 밖에 나가면 ‘혹시 가스를 켜놓고 나왔나? 집에 불이 나지는 않을까’ 하면서 불안해하거나, 아이가 어디 가면 ‘혹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면, 이걸 불안증이라 합니다. 불안증은 신경이 약간 들떠서 생기는 증상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집니다. 정신과에 한번 가보라는 말이 ‘너 미쳤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감기에 걸리면 옛날에는 일주일 정도 쉬면 나았는데, 요즘은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으면 더 빨리 낫잖아요. 그것처럼 불안증도 그냥 놔둬도 되지만, 정신과에서 처방을 받아 안정제를 먹으면 훨씬 빨리 진정이 됩니다. 뭐든지 약만 먹으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경우에는 약을 먹으면 예민한 신경을 조금 완화해 주어서 근심, 걱정, 불안한 마음이 좀 줄어들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직 질문자는 병원에 갈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마음이 불안할 때는 ‘불안증이구나’ 하고 자각을 해야 합니다. 어차피 사건 사고는 살다 보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늘 좋다가 사고가 생기는 게 늘 나쁘다가 사고가 생기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별일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아들이 군대 제대 후 조현병을 앓고 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데, 제가 아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들이 성격이 급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데, 어릴 때 충분히 잘 돌봐주지 못한 게 원인인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요즘 사는 게 힘든데, 전생이 정말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좋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버지가 82살에 어머니와 이혼을 했습니다. 56살 된 남동생과 결혼한 올케는 혼자 사는 아버지를 소홀하게 대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의지했던 언니가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지인들이 언니의 자식들을 제가 돌봐주길 부탁하는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짜증과 화를 많이 냅니다. 어떻게 하면 화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질문자들이 스님의 말귀를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영주 시민들은 머리가 굉장히 좋네요. 알아듣기 쉬운 얘기가 아닌데 금방 알아듣네요.”
여러 질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제 밤새도록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린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안에서 보면 내일 망할지도 모를 만큼 문제가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서 보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굉장히 발달된 나라입니다. 지금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에 가보면 대한민국을 매우 부러워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 미국을 ‘아메리카 드림’이라고 하며 동경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한 번 가보는 게 꿈이고, 미국에 다녀온 사람들을 굉장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처럼 지금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는 옛날에 우리가 미국을 동경하듯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영어를 할 줄 몰라도 외국인을 만나면 ‘굿모닝’, ‘땡큐’ 이런 말은 할 줄 알았던 것처럼 지금 동남아나 서남아에 어느 시골을 가서 누구를 만나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합니다. 제가 부탄 산골 마을에 가봐도 주민들이 한국말로 인사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전쟁 통에 지진이 난 시리아에 학교를 짓는 일을 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는 정도는 다 할 줄 알았어요.
이렇게 대한민국은 괜찮은 나라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건 국제적으로 창피한 일입니다. 여당과 야당의 잘잘못을 떠나, 국가의 위상이 손상될 수 있는 행위입니다. 19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던 10.26 사건 때,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에도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계엄령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의 많은 희생과 인권 탄압이 발생하며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45년 동안 계엄령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안정된 국가로 평가받아 온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어뜨린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여러 가지 국정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계엄령을 선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에는 여러분도 동의하십니까?”
“예!”
“그래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너무 지나친 행위라고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계엄령을 선포한 당사자는 여러 가지 문제 제기를 많이 받으니까 계엄령을 선포할 때라고 생각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할 때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내전이 일어나서 난리잖아요. 미얀마도 2021년 2월에 군부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지금까지 내전 중이고, 태국도 군부 쿠데타로 난리가 난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해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얼마예요? 6시간 만에 끝났잖아요. 이런 모습은 대한민국이 굉장한 나라라는 방증입니다.”
시민들이 모두 크게 박수를 치며 공감했습니다. 다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무엇이든 한 측면만 보면 안 됩니다. 앞에서 말한 모습만 보고 대한민국이 문제라고 봐서도 안 되고, 뒤에서 말한 모습만 보고 대한민국이 굉장하다고 봐서도 안 됩니다. 이번에 일어난 비상계엄령 사태에도 대한민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섞여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질문자의 아이는 대한민국의 나쁜 점만 보고 걱정하는데, 좋은 점도 보고 나쁜 점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개선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세 드신 어른들은 대한민국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사는 20대와 30대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말합니다. 왜 지옥만큼 살기 어렵다고 말할까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심정도 이해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이 좋은 나라를 왜 지옥이라고 말하느냐 하겠지만, 이것은 인간의 의식 작용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 중 연세가 60대, 70대인 분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입이 조금씩이라도 늘었어요, 줄었어요? 집 평수가 늘어났나요, 줄어들었나요?”
“늘어났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시골에 방 한 칸에서 부모님 하고 애들이 6명이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커서 결혼하면 셋방을 얻더라도 단 둘이서만 살게 되니까 사는 게 좋아졌다고 느껴집니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계속 좋아지는 상태에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청년들의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내가 사는 부모님의 아파트가 30평이라고 하면, 부모님의 방이 따로 있고, 내 방이 따로 있고, 동생 방이 따로 있고, 거실과 주방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더 큰 평수의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내가 지금까지 살던 집보다 작아집니다. 결혼 전후를 비교해 보면 집안일이 많아집니다. 결혼 안 하고 부모님 하고 살 때는 엄마가 밥을 해주죠. 빨래와 청소도 내가 좀 거든다고 하더라도 엄마가 대부분 해줍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둘이 살면 밥도 빨래도 청소도 자기들이 해야 하니까 불편해집니다. 그러니 결혼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결혼하면 신혼집으로 15평 아파트조차 구하기가 어려워요. 지방에서는 구할 수 있는데 지방에 직장이 있는 청년들이 흔치 않습니다. 전부 서울이나 대도시에 집을 구해야 하는데, 대도시에 있는 아파트는 평생 벌어도 살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독립된 생활을 꾸리면 부모의 집에서 사는 것보다 생활 수준이 떨어집니다. 우리가 좋은 데 살다가 나쁜 데 가면 지옥에 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은 지옥인 거예요.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온 가족이 방 한 칸에서 살면서 중학교밖에 못 다녔는데도 결혼해서 집도 사고 아이들도 대학 보내고 부모 봉양도 다 했는데, 너는 대학 나와서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왜 네 생활도 제대로 못하냐?’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렇게 말하면 꼰대 같은 소리 한다며 다 싫어합니다. ‘좋다’, ‘나쁘다’ 하는 판단은 심리적인 것이지 객관적인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기 어렵다고 하는 아이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를 이해한다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는 없어요. 오히려 여러분들이 내 자식이라고 애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게 아이들에게는 지금 큰 어려움이 된 겁니다. 저처럼 어릴 때부터 청소도 하고, 일도 하고 살면,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극복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벽에 못을 칠 줄도 모르고, 전등도 갈 줄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상황이 이렇게 바뀌어 버린 겁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가 됐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에 사는 청년들의 기대 수준에서 보면 기대만큼 못 미치는 겁니다. 노인들은 옛날을 기준으로 생각해서 대한민국이 살기 좋아졌다고 얘기하지만, 청년들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못할 것 같으니까 대한민국을 지옥이라고 얘기합니다.
어제 대통령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일이 생긴 것은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에 안 맞는 일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계엄령 선포에 대해 이렇게 깔끔하게 빠른 시일 내에 종결을 시킨 경우가 대한민국 말고 있을까요?”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굉장한 나라예요. 이렇게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동시에 있기 때문에 질문자는 아이에게 한쪽만 보지 말고 양쪽을 다 보라고 얘기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 세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좋은 점은 계승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문제점은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부모 세대가 사회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눈 대화 내용은 그냥 세상의 얘기가 아닙니다. 굳이 불교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정함이 있음이 없는 법’이라고 해서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합니다. 여기 거울이 있다고 합시다. 이 거울 앞에 시계가 오면 거울은 시계를 비추고, 물컵이 오면 물컵을 비춥니다. 그렇다면 이 거울은 물건을 몇 개나 비출 수 있을까요?”
“헤아릴 수 없이 비출 수 있습니다.”
“이 거울이 한 그림이라도 그린 적이 있어요?”
“없습니다.”
“그것처럼 부처님께서 설한 법은 무수히 많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한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길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온갖 질문을 하면 제가 거기에 따라 모두 대답을 하니까 여러분들은 ‘스님이 아는 것도 많네!’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울은 아는 것이 많아서 수없이 많은 물건을 비출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울은 다만 비춰 줄 뿐이에요. 여러분들의 번뇌가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거울에 비치면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 비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스스로 자각할 때만 변화가 일어나지, 누구의 말을 들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하고 얘기하다가 ‘별일 아니네!’, ‘내가 고집이 세나 봐!’ 이런 자각이 일어났다면 변화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법륜스님이 좋은 말씀 많이 하시더라!’ 이러면 강연장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다 잊어버리고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를 살피는 힘이 있어야 해요. 자기를 살필 줄 알면 여러분 모두 괴로움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시민들이 몰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연을 준비해 준 시청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오후 4시에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영주를 출발하여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저녁식사도 할 시간이 없어 달리는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2시간 30분 동안 달려 저녁 6시 45분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미국 대선이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곧 취임식을 앞두고 있는데,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 한국, 북한, 미국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평화재단을 소개한 후 모임의 취지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저희 평화재단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기 때문에 활동비를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습니다. 미국을 갈 때 경비를 대 준다던지,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든지, 이런 사업에 필요한 경비는 제공하지만 개인에게 어떤 보상을 하지는 않습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개인이 선의를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해 보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보면 좋겠어요. 그러나 일에 필요한 것은 얼마든지 지원을 하겠습니다.
평화재단을 설립한 지 20년이 되다 보니까 초기에 왕성하게 연구하던 사람들이 이제 60대, 70대가 되어서 현직에서 전부 은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젊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오늘 처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물론 저는 북한과 미국 간의 대화가 시작되려면 먼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휴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도 긴밀성이 낮아지고, 미국도 북한 문제를 풀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내년 봄이 되어야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초기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서 대화 준비를 잘해놓아야 기회가 생길 때 북미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이 있어서 이런 자리가 마련이 되었습니다. 이런 취지를 아시고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의견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북미 관계의 해법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밤 9시가 넘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부탄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농업 전문가들과 미팅을 하고, 점심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시국 현안에 대해 차담을 나눈 후, 오후에도 사회 인사와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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