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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세아니아 순회강연 중 여섯 번째 순서로 브리즈번(Brisbane)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5시 30분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퍼스 정토회 회원들이 찾아와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모두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들 하셨어요.”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숙소를 출발해 퍼스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20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한 후 퍼스 정토회 회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다음에 또 봅시다.”
탑승구 앞에서 대기하며 업무를 보다가 8시에 퍼스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4시간 20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각으로 오후 2시 20분에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입국 수속을 한 후 공항 밖으로 나오니 강연을 준비한 박가예 님과 브리즈번 정토회 회원들이 마중을 나와 스님을 환영해주었습니다.
“브리즈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숙소로 향했습니다.
공항에서 차로 50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한 후 한국과 연락하며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6시가 되어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차로 30분을 이동하여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퀸즐랜드에 위치한 브리즈번 기술 및 전시 센터(BTP Center)입니다. 브리즈번에서 다양한 세미나와 박람회,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인데, 오늘은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청중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강연장을 많이 찾아왔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준비한 250석이 빈자리 없이 꽉 찼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뜨거운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대화하고자 하는 주제는 인생살이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여러 현실에 부딪히면서 마음에 의문이 생기는데 마땅히 물어볼 데가 없습니다. 또한 살다 보면 괴로움과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스스로 그 방법을 못 찾을 때도 있어요. 옛날에는 이런 경우에 주로 종교적인 믿음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갈등 문제는 신앙으로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이념에 심취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풀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 작용은 늘 자기중심적이라는 특징이 있어요. 자기가 뭘 잘못했다고 인지해도 자꾸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서 변명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면 굉장히 얄밉게 보이겠죠. 그런데 나 자신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가 본능적으로 자기 육체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 작용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자기를 변명하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입으로는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을 해도 마음속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하는 자기변명거리를 찾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대화가 안 되는 문제들이 발생해요. 그래서 부부지간에 갈등이 생기면 남이 볼 때는 쉽게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의문들, 아픔, 괴로움, 불안, 두려움에 대해 대화하려고 합니다. 물론 소재에 제한은 없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과학 등 어떤 얘기든지 다 할 수가 있어요. 다만 그 정치 문제가 나를 괴롭힌다든지 인공지능 문제가 나를 불안하게 한다고 할 때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아홉 명부터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강연의 후반부에는 즉석에서 여덟 명이 추가로 질문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2시간 동안 1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윗분들은 일을 느리게 한다고 지적해서 힘들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질문자는 자기 혼자서 ‘나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나 보네요.”
“제가 처음에 일할 때는 일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조금 천천히 하긴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속도도 빨라지고 예전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윗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윗분이 질문자에게 뭐라고 합니까? 일하는 게 좀 느리다고 하나요? 그러면 ‘죄송합니다. 조금씩 빨라지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되죠. 그게 뭐 어려워요?”
“저도 그렇게 말하긴 해요.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그 순간을 넘기면 되지만, 윗분들이 계속 저를 안 좋게 봐서 불이익을 받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일자리에서 잘릴 수도 있고요.”
“일을 느리게 하면 불이익을 받아야죠. 일을 느리게 하면 남보다 일을 덜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불이익은 안 받겠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불이익을 주면 받으면 됩니다.”
“저 스스로 ‘나는 열심히 안 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인정이 되면 괜찮은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가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다른 분들이 뭐라고 지적해도 ‘그래, 더 열심히 하자’하고 저는 더욱 열심히 하거든요.”
“우리가 보통 걸음걸이가 늦고 동작이 느린 사람한테 굼벵이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굼벵이한테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요? 자기 나름대로 엄청나게 빨리하는 것이라고 할 거예요. ‘늦다.’, ‘빠르다.’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게 아니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저도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일 처리가 빠른 편이에요. 질문자는 저하고 같이 다녀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본인이 얼마나 느린지 확실하게 자각할 수 있을 테니까요.
며칠 전 강연을 할 때의 일입니다. 질문하려는 분들이 여기서 한 사람, 저기서 한 사람씩 손을 번쩍번쩍 드는 상황에서 마이크를 전달해야 하는 봉사자의 행동이 제가 보기에 느려 보였어요. 제가 생각할 때는 봉사자가 강연장 안을 항상 잘 지켜보고 있다가 누가 손을 번쩍 들면 빨리 그쪽으로 가서 마이크를 건네줘야 하는데, 손을 어디서 드는 줄도 모르고, 걸어갈 때도 천천히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왜 이리 굼벵이 같이 느려요?’ 하고 지적을 했어요. 나중에 강연이 끝나고 마음 나누기를 했는데 그분이 ‘그 많은 청중 앞에서 스님이 굼벵이 같다고 했지만 저는 엄청나게 빨리 움직인 거예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습니다. 스님도 웃으라고 한 얘기예요’라고 했죠.
그런데 질문자가 생각하기에 윗사람이라는 분은 그 일에 익숙한 사람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익숙한 사람이에요.”
“그럼 신입 사원은 일에 익숙한 사람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일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을 기준으로 볼 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일하는 속도가 빠르게 보일까요, 느리게 보일까요?”
“느리게 보일 겁니다.”
“신입 사원이 일 처리가 느린 건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윗분들은 제가 본인들처럼 일하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건 당연한 일이에요. 질문자는 안 그럴 것 같아요? 질문자도 사람을 데리고 일해 봐요. 자기 수준으로 일하기를 원하죠. 나처럼 일하는 것을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나처럼 일해야 한다고 단정을 해버리면 나처럼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납니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원인은 다른 사람이 일을 느리게 해서가 아니고, 나처럼 해야 한다는 데에 내가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화와 짜증이 나지 않으려면 나보다 느린 사람을 인정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만약에 상사인 사람이 스님한테 와서 ‘신입 사원이 들어왔는데 일을 느리게 해서 답답해 죽겠어요’ 하고 질문하면 제가 이렇게 대답을 해줄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에게 ‘일은 느리게 할 수도 있는 거예요’라고 말해주는 것은 질문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질문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요? ‘내가 일을 빨리한다고 해도 윗분들로서는 느리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말을 해주어야겠죠. 질문자는 윗분들과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첫째, 윗분들이 질문자의 일 처리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윗분들로서는 짜증을 낼 만하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윗분들이 뭐라고 해도 질문자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상사 입장에서는 짜증을 낼 만하다.’ 하고 받아들이고, ‘죄송합니다. 아직 일이 익숙하지 못해서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나는 빨리하는데 왜 나보고 느리다고 하는 거야’, ‘자기도 한 번 해보라지’ 하는 식으로 반발심을 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마음 한편으로는 일자리에서 잘릴까 봐 겁이 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발하는 겁니다. 굽실대지도 말고, 반발하지도 말고, 가볍게 이야기하세요.
‘알겠습니다. 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윗분들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지금은 거북이처럼 걷고 있어서 토끼가 보기엔 조금 답답한 것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도 언젠가 토끼가 될 날이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열심히 일하면 돼요. 그런데도 직장에서 잘리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사람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것은 윗분들의 권한이니까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걸 가지고 질문자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입에서 농담이 나옵니다.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넘길 수 있게 돼요. 술자리나 식사 자리에서 부장님에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생각을 못 하시나 봐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부장님은 처음부터 그렇게 잘하셨어요? 20년 경력이 있으니까 잘하시는 거잖아요. 저는 들어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어떻게 부장님처럼 하겠어요. 제가 못하는 건 아는데 너무 그렇게 기대를 높게 갖지 마시고 제가 익숙해질 때까지 기회를 주세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질문자의 말을 듣고도 기회를 안 주면 할 수 없어요. 상사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마세요. 비굴할 필요도 없습니다. 직장 생활에 조금 여유를 갖고 당당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질문자가 원래 동작이 느린 사람일 수도 있어요. 공동체에서 저와 같이 사는 대중 중에도 동작이 느린 사람이 있습니다. 가끔 그분과 얘기해 보면 ‘제가 요즘 굉장히 빠릅니다’ 하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말이 이해돼요. 우리가 그분을 느리다고 하는 것은 우리 기준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빨라졌다고 말하는 이유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예전보다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속도에 대한 관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다음 질문자도 직장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모두 호주 사람이라며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어떻게 하면 직장 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그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호주 사람인가요?”
“네.”
“질문자도 호주 사람이잖아요.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다 호주 사람 아닌가요?”
“네, 저도 제가 호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쓸 때는 너무 편하고,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데, 영어를 사용할 때는 그렇지 않아서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호주 사람인데 말이 좀 서툰 거죠. 대부분이 이민을 온 사람들이니까 원주민을 제외하고는 원래 호주 사람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호주 사람인데 나는 영어가 좀 서툴러서 좀 위축이 된다.’ 이렇게 접근해야 인종 문제나 민족 문제에 구애받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영어를 사용할 때 너무 위축이 되거나, 스스로 긴장이 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영어를 잘 못하는데 잘하려고 하니까 위축이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호주에서 나고 자랐거나, 또는 이민 온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툰 것이 당연한 겁니다. 누가 영어가 서툴다고 지적하면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게 아니라서 아직 좀 서툽니다’ 하고 인정을 해버리면 됩니다. 영어가 부족하니까 약간의 불이익이 있더라도 감수해야 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쉽게 욱하고 화내는 성격을 고치고 싶습니다. 특히 친구와 동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심하게 표출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관계를 맺고 살 때 이 말은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있는가요?
남자 친구와 싸우고 나서 화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저는 입을 닫고 생각하는 편인데, 남자 친구는 침묵의 시간을 너무 답답하게 여깁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친구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헤어진 후 외국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생활 11년이 되니 남편이 점점 민감해지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해서 고민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꿈을 꿉니다. 너무 피곤해서 명상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가까운 인연을 다음 생에 다시 안 만나고 싶으면 지금부터 인연을 끊어야 하나요? 아니면 업보를 풀어야 하나요?
108배를 하고 있는데 무릎이 너무 아픕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제가 매사에 좀 부정적인 편인데,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을 앞두고 책임감이 없는 누나의 남자 친구 때문에 어머님이 많이 속상해합니다.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까요?
어머니가 철없고 이기적으로 보여서 전화도 하기 싫을 정도로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남는 죄책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년 일한 직원이 퇴직하게 되는데 호주에는 퇴직금 제도가 없습니다. 직원에게 퇴직금을 챙겨주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친구와 길을 가다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습니다. 동창회에서는 ‘많이 늙었다’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이럴 때 상대에게 뭐라고 대응해야 할까요?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호주에 와서 살기가 어렵다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누가 호주에 오라고 했나요? (웃음)
스스로 결정해서 왔기 때문에 호주 사람들을 욕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만약 더 이상 살기 싫거나 문제가 생기면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또 호주에 와서 살면서 너무 욕심내지 마세요. 만약 죽기 살기로 살고 싶다면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죽기 살기로 사는 건 좀 문제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해서 호주에 왔다면 가족들과 함께 여유 있는 삶을 사세요. 이런 곳에서 욕심내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한다면 차라리 한국에서 사는 게 낫습니다. 설악산 꼭대기까지 아등바등 올라와서 옆구리에 라디오 차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 설악산까지 와서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음악을 틀어놓습니까? 제가 볼 때는 밉상입니다.
호주와 같은 나라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많은 세금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젊을 때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사회 보장 혜택으로 다 돌아오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젊을 때는 이곳에 살기가 심심하기도 하고 재미도 별로 없더라도 나이 들면 괜찮아집니다. 여유롭게 살려고 한다면 호주에 온 것은 잘한 겁니다.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습니다. 언제든지 자기가 처한 현실에 만족할 수 있어야 삶이 좀 더 편안해지고 행복해집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곧바로 무대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브리즈번!”
청중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봉사자들과 함께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사람씩 마이크를 잡고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자기소개가 끝날 때마다 서로 힘차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호주에 산 햇수도 다 달랐습니다. 모두 평소에 스님의 법문을 듣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데 오늘 봉사로 보답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인사를 했습니다.
“여러분이 은퇴 후에는 그 직업 기술을, 인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제가 미리 자리를 마련해 두겠습니다. 조기에 은퇴하고 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은퇴하고도 또 욕심부리지 말고 지구와 인류, 자연환경을 위해 여러분의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쏟아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지내시고, 필요한 곳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봉사자들은 현수막을 철거하고 강연장 뒷정리를 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오늘로써 오세아니아 6개 도시 순회강연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밤 11시부터는 1시간 동안 지난 6일 동안 스님과 전체 일정을 동행했던 스태프들과 마음 나누기를 한 후 오세아니아 순회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브리즈번 공항을 출발하여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동티모르로 이동한 후 저녁에는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만드는 퍼마쿨처 티모르-로로사이(PERMATIL)를 창립하여 2023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유제니오 레모스(Eugenio Lemos) 님을 만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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