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7.22 성공회 박경조 주교님 팔순 기념 모임, 고 강원룡 목사님에 대한 인터뷰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고 강원룡 목사님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5시 5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이 가까워지자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4시간 달려 오전 10시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내리고 곧바로 세종로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성공회 박경조 주교님이 올해 팔순을 맞이하여 점심식사를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스님도 꼭 참석을 해주십사 요청해서 스님이 해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날에 맞추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낮 12시에 서울주교좌성당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모두가 모였습니다. 스님은 목사님, 신부님, 교령님, 주교님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한 달 동안 아시아 10개국을 다니고 어제 귀국했습니다.”

“늘 바쁘시네요.”

모두 자리에 앉자 주교님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바쁘신데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성공회에서 현 주교님과 차기 주교님도 오늘 함께 참석했습니다. 현 주교님이 식사 기도를 해주시죠?”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6대 교구장인 이경호 주교님이 식사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주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척박한 땅에 살고 있던 가난한 민중들을 온 마음과 정성으로 보듬고 먹이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일구셨던 그 놀라운 일들을 기억합니다. 오늘 특별히 지난 1998년부터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셨던 종단의 어른들과 함께 귀한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종단을 넘어서서 선한 일을 함께 도모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이 땅에 평화와 화해를 일궈가는 귀한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오늘 박경조 주교님 팔순 기념으로 귀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주의 은총과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좋은 친교와 나눔을 통해서 더욱더 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오늘도 스님이 가장 큰 목소리로 ‘아멘!’을 말했습니다.

먼저 종교인 모임 좌장인 박남수 교령님이 박경조 주교님의 팔순 기념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한 후 이어서 스님이 축하의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현 주교님과 차기 주교님에게 종교인 모임이 걸어온 길에 대해 간략히 소개도 해주었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만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 1998년에는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하면서 만났어요. 서로 종교는 다르지만 그동안 한 번도 종교를 이유로 갈등을 일으킨 적 없이 꾸준히 활동을 해왔습니다. 환경운동, 평화운동, 인도적 지원 등 사회정의를 위한 일에는 늘 공감대를 형성해서 함께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특히 김명혁 목사님께서 보수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복음주의협의회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포용력을 갖고 참여해 주신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분이 계셔서 다양성을 갖출 수 있었고, 외부 사람들에게도 종교인 모임이 중도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지금까지 오는 데에 있어서 박경조 주교님이 무엇보다 중심을 잘 잡아주셨습니다. 대체로 보면 젊을 때는 진보적이었어도 연세가 드시면 약간 보수적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데, 박경조 주교님은 그동안 발언해 온 모습을 지켜보면 관점이 늘 사회정의를 향해 있고, 진보성을 항상 유지하고 계세요. 돌아가신 강원룡 목사님을 떠올려보면 그분도 몸만 늙었지 돌아가실 때까지 생각은 늘 진보적인 원칙을 갖고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도 박경조 주교님을 항상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팔순을 축하드립니다.”

스님의 말을 받아서 박경조 주교님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저희가 평화재단에서 모임을 할 때마다 돌아가신 김명혁 목사님이 늘 식사 기도를 해주셨거든요. 기도가 끝나면 제일 크게 ‘아멘!’ 하는 분이 우리 법륜 스님이십니다. 저도 그 점이 참 인상 깊었어요. 그런데 김명혁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 법륜 스님이다. 몇십 년 동안 옆에서 지켜봤는데 삶 자체가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얘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진짜 그런가 싶어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스님은 언제나 바쁘게 가난한 지역을 찾아다니고, 전 세계를 다니며 법문을 하시고, 미국 의회와 정부를 찾아가서 한반도의 평화를 호소하시는 일을 하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배우고 있고, 저도 무척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어서 박종화 목사님, 김홍진 신부님, 김대선 교무님도 주교님을 위해 축하의 말을 한 말씀씩 해주었습니다.


특히 현 주교님과 차기 주교님이 자리해서 성공회교의 발전을 기원하는 덕담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저희 성당을 한 번 보고 가시죠. 현 주교님이 설명을 해주시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 함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성당 안을 둘러보고, 지하에 납골당을 살펴본 후, 예배당으로 향했습니다.

“이 성당은 한 번에 지은 게 아니고요. 1926년에 한 번, 1966년에 한 번, 1992년에 한 번, 이렇게 조금씩 증축을 했습니다.”


다 함께 예배당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예배당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주교님이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한옥 건물로 향했습니다.

“대한성공회는 1890년에 고요한 주교님이 현 위치에 교회용 한옥과 부지를 매입하여 처음 시작했습니다. 이 한옥을 ‘장림성당’으로 명칭하고 첫 성탄절 감사성찬례를 봉헌했습니다. 당시에 가장 필요한 일이 고아들과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아원과 병원을 짓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성당은 맨 마지막에 지었습니다.”

한옥 건물 안에는 역대 성공회 주교님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박경조 주교님은 4대 교구장을 역임했고, 차기 주교에 당선이 된 김장환 주교님은 7대 교구장이 된다고 합니다.

차기 주교님은 9월에 주교서품을 받게 되는데 승좌식에 종교인 모임 분들을 모두 초대한다며 초대장을 나눠주었습니다.


내일모레 평화재단에서 열리는 종교인 모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스님은 오후 2시 30분에 다시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재단법인 ‘여해와 함께’에서 스님을 인터뷰하러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아왔습니다. 여해와 함께는 1965년에 기독교의 사회 참여를 표방하며 ‘크리스챤 아카데미’로 출발하여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대화 모임을 이끌어 온 단체입니다. 단체의 창립자인 고 강원룡 목사님은 법륜 스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스님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촬영 장비 세팅이 끝나고 평화재단 10층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강원룡 목사님과 스님의 인연, 크리스 아카데미가 이후 사회운동에 준 영향, 한계, 이후 방향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편안하게 대답했습니다.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까요?

“스님께서도 그동안 종교 간의 협력 사업들을 꾸준히 해오셨는데 요즘은 종교 간의 교류가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진행되어 온 종교 간의 대화나 협력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사회운동이란 당시의 어떤 필요성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당시에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갈등, 또는 성평등을 향한 갈등, 종교 간의 갈등, 이런 갈등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 간의 대화, 노사 간의 대화, 여성과 남성 사이의 대화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강원룡 목사님과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우리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 평등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는 상태이고,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간의 갈등이 심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노동조직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고, 농민운동도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고요. 이런 상태에서 이제 대화 모임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계속되어 오지 않았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든지 실패했다든지 하는 평가는 옳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 꼭 필요한 일을 했다는 관점에서 평가해야 합니다.

그것을 계승했기 때문에 저도 1990년대 후반에 북한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강원룡 목사님, 김수환 추기경님, 송월주 큰스님을 모시고 그 밑에 목사님과 신부님들로 실무진을 꾸릴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도 27년째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사회 원로들을 모시는 젊은 실무진들이었는데, 이제 저희들 중에 제일 나이 많으신 분은 86세로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80대가 두 분이 계시고, 나머지도 70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것은 모두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지역별로 종교 간의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다 그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토회 창립 10주년 때 기념 연설자로 강원룡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정토회 회원들이 읽고 있는 수행문을 보시면서 '여기 부처님이란 글자를 하나님으로 바꾸면 우리하고 똑같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럴 만큼 정토회를 좋아하셨고, 저희들도 마음수행이라고 하는 불교의 고유한 수행법에 대해서는 따로 스승님을 모시고 있지만 적어도 사회운동이라는 측면에서는 강원룡 목사님이 저희 정토회의 스승이시고 고문이시고 안내자이셨습니다.

평화재단의 지난 20년을 평가해 보면

그래서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그 정신을 계승해서 평화재단을 만들었고, 올해가 20주년이 됐습니다. 지난 20년간 활동한 것을 평가해 보면, 처음에는 이렇게 전망을 하고 출발했습니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기 전에 남북문제를 풀어야 한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면 우리는 어차피 미국 쪽으로 끌려가고, 북한은 중국 쪽으로 끌려가기 때문에 통일이 굉장히 어려워진다. 그전에 남북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전망은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추구할 만한 현실적인 힘이 저희들에게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처럼 되고, 남북 간의 갈등은 더 심해지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정세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화재단은 꾸준히 남북 간의 대화, 남남 간의 대화,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 통합, 이런 방향으로 계속 활동해 왔습니다. 강원룡 목사님께서 추구하셨듯이 여야 중진 국회의원들을 만나서 대화의 마당도 만들고, 또 종교인들이 모여서 북한 인도적 지원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많은 성명서도 발표했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 기본적으로는 강원룡 목사님의 정신을 저희들이 계승해서 이 시대에 맞게 해 나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에 답하면서 스님은 기후 위기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지금 한국 사회는 거의 가속 사회라고 할 만큼 굉장히 빠른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한 가지를 말한다면, 저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기는 기후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와 너를 떠나서, 자본과 노동자를 떠나서, 한국과 일본을 떠나서, 사람과 다른 생명을 떠나서, 모든 존재들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 사회가 빠르게 변한다는 게 무엇을 향해서 변화하는 건가 되묻고 싶어요. 단기적으로 보면 지금 한류 열풍이 불고, 한국의 기술 발전이 좋아 보이지만, 이것은 모두 기후 위기 극복에 반하는 발전 방향이기 때문에 저는 바람직한 변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거대한 변화에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제국주의가 확대되는 게 발전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멸망한 것처럼, 한 세기 못 가서 평가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소비주의 문명은 인류가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CO2 제로(Zero)의 삶을 살면서도 인간이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돈을 많이 벌고, 누가 경쟁에서 승리하고, 이런 걸 뒤쫓는 가치관은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더 좋은 담배를 찾듯이, 술 먹는 사람들이 더 좋은 술을 찾듯이,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마약을 찾듯이, 이런 경쟁 대열에 참여하는 것은 결국 파멸로 가는 길입니다. 아무리 좋은 마약도 안 먹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좋은 담배도 안 피우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좋은 술도 안 먹는 것보다 못합니다. 지금은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가 가장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런 큰 틀 안에서 다시 작게 보자면, 단기적으로는 우리에게 최대의 위험은 기후 위기가 아닌 전쟁 위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일이라도 전쟁이 나면 모든 게 파괴가 되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어떤 일보다도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님은 여해와 함께 재단 관계자들에게 스님의 책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촬영하느라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한 후 스님은 유언 공증을 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스님의 명의로 되어있던 토지나 건물, 예금을 모두 정토회와 법사님들에게 기증한다는 공증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공증을 마치고 이비인후과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에는 다시 서울을 출발하여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2시간을 달려 9시가 넘어 연수원에 도착했습니다.

연수원에 상주하고 있는 법사님, 실무자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 한 달간 해외에 다녀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들 더운데 고생 많았어요.”

연수원에서는 여름명상수련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늦은 시간에도 담당 법사님과 각 팀장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올라가 원고 교정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법사단과 인도성지순례 회의를 하고 연수원을 한 바퀴 둘러보며 여름명상수련 준비를 점검한 후 병가를 받아 투병 생활 중인 활동가들을 만납니다. 오후에는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대중들과 대화를 나누고, 명상원에서 인도JTS 스테프들과 온라인 간담회를 한 후 저녁에는 봉화 수련원으로 가서 명상 및 안거 수련 준비를 점검한 후 다시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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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2024-09-07 08:20:42

무애안

존경스런 어르신의 모임... 감사합니다...

2024-08-12 06:15:57

CACTUS

종교의 다름을 떠나서 한 마음으로 뭉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평화가 한 걸음씩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08-08 23: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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