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6.21 중국 답사 1일째, 요녕성 박물관, 백암산성, 단둥
“욕구를 알아차린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스님은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동남아시아 지역을 돌며 강연을 하고 답사를 할 예정입니다. 먼저 5일 동안은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중국 현지를 답사합니다.

새벽 5시에 정토회관을 나와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출국수속을 밟고 오전 8시에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9시에 심양(瀋陽, 선양) 도선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1994년부터 매년 동북아 역사 기행을 안내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019년 여름 이후로는 가지 못했습니다. 5년 만에 다시 중국을 찾았습니다. 공항에는 역사 기행을 도와주었던 가이드 조신 님이 나와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조신 님의 아버지 조춘호 님이 역사기행을 도와주었었는데, 201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조신 님이 역사기행 가이드를 전담해 주었습니다. 조신 님은 2009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통역을 시작해 2019년까지 10년 동안 역사기행 안내를 도와주었습니다.

조신 님과 함께 온 진신 님은 운전을 해주었습니다. 진신 님도 여러 해 동안 동북아 역사 기행을 함께 도와준 분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스님 일행은 가장 먼저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동북아 역사 기행 첫 번째 코스로 배달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2층 전시관에서는 시기별로 제작된 불상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목불을 비롯하여 여러 승려들의 조각상도 있었고, 인도 신상과 유사점이 많은 불상들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경주 남산의 목 없는 불상에 표현되어 있는 가사의 매듭 부분을 표현한 승상도 있었습니다.


또 경주 남산 탑골의 부처바위처럼 불상 주변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천상을 표현한 불상도 있었습니다.

인도 신상을 닮은 불상 조각도 있었습니다.


청동거울을 모아서 전시한 곳도 있었습니다. 환웅 천왕이 천부인 세 개를 들고 내려왔다는 기록처럼 혹시나 요하 문명에서도 이와 유사점이 있을지 청동거울 전시관을 둘러보았습니다.

다음은 3층으로 올라가서 요하문명전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동안 역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의 시원이 중국의 천산 산맥 인근이거나 몽골의 바이칼 호수 인근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은 그동안 많은 답사를 해본 결과 요하 상류지역일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답사를 많이 해봤는데, 제 생각에는 배달문명의 발상지로 가장 유력한 곳은 중국의 요녕성 서쪽, 하북성 동쪽, 내몽골 남쪽, 요하 상류 일대의 초원 지역인 것 같아요.”

특히 우하량 유적에서는 이를 알 수 있는 근거들이 많았습니다. 멀리서 이주해 온 환웅과 토착 세력인 웅녀의 결합으로 우리 민족의 중심 세력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의 곰 숭배 사상이 우하량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하량 지역의 요하 문명에서 숭배해 온 여신 모습과 곰 모양의 발입니다. 이것은 웅녀를 상징합니다.


우하량 유적의 모형도 있었습니다. 둥글게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도 있고, 가로와 세로가 100m가 되는 정사각형(방단) 적석총 무덤도 터가 남아 있습니다.

요하 문명의 상징인 다양한 옥기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요녕성 전 지역은 비파형 동검도 많이 발견되어 고조선 문명과의 연관성도 알 수 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은 코로나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나머지 전시관은 급히 둘러보았습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음 목적지인 백암산성으로 향했습니다.

백암산성은 연주성으로 불리는데, 산성 아래에 공원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주차장에서 멀리 백암산성 성벽이 보였습니다.

주차장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5년 전에 봤던 연주성 안내석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벽 주변으로 풀이 많이 자라 있었고, 성벽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이 쳐져 있었습니다.

이전처럼 성벽 위를 걸어보거나, 성벽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기는 어려웠습니다.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곳곳에 CCTV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허물어진 성벽 사이로 개이빨식 축성법이 그대로 남아 고구려인들의 축성 기술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막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중턱까지 올라가 보았습니다.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백암산성의 전망은 역시 빼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성벽을 오르거나 성벽을 관통해서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스님은 성벽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앞으로 백암산성의 웅장한 모습을 보기는 어렵겠네요.”

아쉬운 마음으로 백암산성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스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제안했습니다.

“서문 입구에서 성 밖을 향해 오솔길이 나 있는데, 혹시 그곳이 전망이 괜찮을지 둘러봅시다.”

오솔길을 따라가 보니 이전에 성벽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던 곳까지 길이 나 있었습니다. 전체 구간 중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역사기행을 할 때는 이곳을 먼저 둘러보고 성 안으로 올라갑시다.”

오솔길의 끝은 원래 치성 4개가 동시에 보이는 아주 웅장한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치성을 보호하기 위해 큰 철근으로 지지대를 만들어 놓아 웅장함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성문 바깥에 겹성을 쌓은 모습은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웅장한 백암산성의 성벽을 걸어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스님 일행은 단동을 향해 달렸습니다. 차로 세 시간을 가야 하는 먼 거리였습니다. 단동에 도착하기 전에 봉성시를 경유했습니다. 현지에서는 봉황산성으로 불리고 있고, 줄여서 현재 지역명인 봉성시가 된 곳입니다.

봉성시가 가까워 오자 달리는 차량 전방으로 봉황산이 보였습니다.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봉황산에는 고구려 당시 오골성이라 불렸던 산성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다시 한 시간을 더 달려 압록강 하구까지 내려왔습니다. 신압록강 대교 앞 강변까지 가보았습니다.


북한의 개방을 기대하며 투자했던 신압록강 대교 주변은 여전히 빈 건물이 많고 황량했습니다. 차를 돌려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단동 시내 쪽으로 가보았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폭격으로 끊어졌던 압록강 단교 주변은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졌지만 압록강 단교까지 가봅시다.”

역사 기행단을 인솔해서 올 때는 늘 인원이 많아 한 번도 단교 위로 가보지 못했습니다.


압록강 단교는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 철교가 유엔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것을 최근에 관광지로 단장해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새로 만든 압록강 철교가 있습니다.

압록강 철교는 간혹 북한에서 중국까지 왕래하는 국제 열차가 지나가거나, 무역 거래하는 트럭이 오가기도 합니다. 마침 북한 쪽에서 대형 트럭이 번갈아 나오고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오전에는 트럭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고 오후 4시 이후부터는 트럭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대형 트럭이 여러 대 나오는 걸 보니 북중 간의 무역 거래가 나름대로 활발히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진 강 위로 북한 깃발을 단 배가 한 척 지나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강 주변으로 전기불이 켜졌습니다. 늘 전기가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던 강 건너 북한 쪽에도 불이 하나둘씩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25층 아파트도 불을 밝혔습니다. 아파트 꼭대기에 ‘일심단결’이라는 네 글자가 또렷이 보였습니다. 스님이 불빛을 밝힌 북한 땅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시작한 후 30여 년 동안 조중 국경을 많이 다녔지만, 북한 국경변에 저렇게 불이 많이 들어온 것은 처음 보네요.”

그럼에도 환하게 밝힌 중국 쪽 거리와 비교하면 아주 어두운 편이었습니다. 강을 가운데 두고 양쪽이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어느덧 저녁 8시 반이 넘었습니다. 압록강 단교를 뒤로 하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19일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욕구를 알아차린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님께서는 욕구를 따르지도 참지도 말고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내가 지금 뭔가 하고 싶구나’ 하고 알아차린 후 그 행동을 하고 싶어도 하지 않고 알아차리기만 하고 있으면 참는 것 아닌가요? 또 제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알아차리고 나서 음식을 안 먹는 것도 결국은 참는 것 아닌지요? 욕구를 알아차린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욕구를 알아차린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욕구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알아차린 후에 뭘 어떻게 한다는 건 의도가 있는 겁니다. ‘먹어야 한다’, ‘먹지 말아야 한다’, ‘뭘 해야 한다’ 하는 건 다 의도가 들어간 것입니다. 어떤 의도를 갖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힘이 듭니다. 그러나 알아차리는 것은 힘이 안 듭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바다를 보면서 ‘파도가 들어오는구나’, ‘파도가 나가는구나’, ‘햇빛이 났구나’, ‘구름이 흐르는구나’ 이렇게만 하지 ‘구름을 멈춰야 한다’, ‘햇빛이 나와야 한다’ 이러지는 않잖아요. 그것처럼 ‘지금 먹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먹어야지’ 이러면 욕구를 따라가게 되고, ‘참아야지’ 이러면 욕구에 저항하게 되는데, 둘 다 자신의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의도를 갖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먹고 싶다고 먹는 것과 먹고 싶어도 참는 것은 정 반대 같은데, 둘 다 공통점은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욕구를 따르고자 하는 의도가 있고, 다른 하나는 욕구에 저항하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욕구를 따르면 과보를 받게 되고, 욕구에 저항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 때문에 결국 이래도 문제이고 저래도 문제가 되는 거예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면 기분이 좋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즉, 고락(苦樂)을 계속 겪게 됩니다.

‘먹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린 후 그걸 따라서 ‘먹어야지’ 또는 ‘안 먹어야지’ 하는 의도를 일으키지 않으면, 먹지 않으니까 과보를 받지 않게 되고, 저항하지 않으니까 스트레스도 받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알아차림이 지속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먹고 싶어 하는구나’ 하다가 ‘먹어야지’ 하거나 ‘그래도 안 먹어야지’ 이렇게 되기 때문에 결국 참는 게 됩니다. 다만 ‘먹고 싶어 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먹고 싶어 할 때마다 질문자가 참는 쪽으로 가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것과 참는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을 구분하기 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먹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도 결국은 안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이 현실에서는 같기 때문에 구분이 좀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나 참는 것은 의도가 있어서 에너지가 들어가니까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알아차림은 그냥 ‘먹고 싶어 하는구나’, ‘저 사람이 길을 가는구나’, ‘저 사람은 빨간 옷을 입었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들지 않습니다. ‘나도 저 옷을 입어 봐야지’라든지 ‘왜 저런 옷을 입고 다니지?’ 이러면 에너지가 드는데, 그냥 ‘그렇구나’ 할 뿐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들지 않습니다.

질문자는 처음에 ‘그렇구나’ 하고 잘 알아차려 놓고는 그다음에 ‘안 먹어야지’ 하기 때문에 참는 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구나’ 하고는 ‘먹어야지’ 하면서 욕구를 따르게 되니까 알아차림을 유지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냥 다만 ‘먹고 싶어 하는구나’,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구나’ 이렇게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알아차림은 한 번만 하는 게 아니고, 찰나 찰나를 계속 알아차려야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알아차렸지만, 두 번째에 놓치면 바로 욕구를 따라가거나 저항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란 찰나를 말합니다. 그 찰나 찰나에 알아차림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지켜본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표정을 보니까 ‘그렇구나’ 하는 게 아니네요. ‘그런 것 같긴 한데’ 하면서 긴가민가하는 눈치네요. 쉽지 않은 일이니 자꾸 연습해야 합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중국 동항을 둘러보고, 무역하는 사람을 만나 조·중 무역의 현장을 알아봅니다. 오후에는 환인으로 가서 오녀산성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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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현

알아차림이 찰나이고 찰나찰나의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지켜본다. 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제 마음을 잘 살펴보겠습니다.

2024-07-04 15:48:14

드림하이

“답사를 많이 해봤는데, 제 생각에는 배달문명의 발상지로 가장 유력한 곳은 중국의 요녕성 서쪽, 하북성 동쪽, 내몽골 남쪽, 요하 상류 일대의 초원 지역인 것 같아요.”

2024-07-02 11:17:15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7-02 06: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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