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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워싱턴 D.C. 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나는 5일째 날이고, 또한 12일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스님은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5시에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6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한국 시각 기준으로 저녁 7시 30분에 맞춰서 법회를 해야 해서 이른 아침 시간에 생방송을 했습니다.
4,6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지난 일주일 동안의 근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난주에는 토론토에서 여러분과 대화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에 와 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미국 동부 도시들을 순회하며 여덟 번의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네 번은 미국 사람들을 위해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을 했고, 네 번은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에는 미국의 국무성, 국방성, 백악관, 의회, 그리고 여러 민간 연구기관들을 방문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전쟁의 위험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미 간의 대화를 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미국 조야의 사람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즉문즉설이 끝나면 한 곳을 더 방문하고 귀국할 예정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4년 동안 만난 애인과 궁합을 봤는데 힘든 미래가 펼쳐질까 두렵다며 궁합이 맞다는 게 정말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지 묻는다면, 정해져 있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고,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사람은 천 년을 살도록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백 년을 살도록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지구에서 살도록 정해져 있습니까? 그것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 범위를 잡는 기준에 따라 ‘정해져 있다’ 또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아침에는 뭘 먹고, 점심에는 뭘 먹고, 저녁에 뭘 먹는다는 것이 정해져 있을까요? 또 오늘은 몇 시간을 자며, 누구 누구를 만난다고 하는 것이 정해져 있을까요?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해져 있느냐 없느냐는 기준이 되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나 규모의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운명은 정해져 있다’ 또는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는 잣대로 우리의 삶을 봐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갑니다. 이런 삶 속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많은 경험을 하고 삽니다. 여러 경험 속에서 불안이나 초조, 미움이나 원망, 화와 짜증으로 괴롭게 살 것인가, 아니면 ‘이건 다 그냥 인생살이의 한 과정일 뿐이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등산을 하다 보면 가파른 길이 나오기도 하고, 완만한 길이 나오기도 합니다. 개울을 건너야 할 때도 있고, 그늘 없이 뙤약볕을 받으며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내 앞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 인생살이의 한 과정이라는 관점을 가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괴롭지 않고 웃으며 살 수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원망하면서 살 것인지, 웃으며 편안하게 살 것인지, 그것은 자신의 선택사항입니다. 괴롭지 않은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괴로운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괴롭게 사는 사람과 괴롭지 않게 사는 사람도 정해져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결혼을 하게 되면 점쟁이가 해 준 궁합 풀이대로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궁합이 좋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질문자에게 불안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즉, 정신 질환이라고 할 수 있는 불안증이 있어서 결혼 생활이 불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결혼하지 않으면 괜찮을까요? 아닙니다. 혼자 살아도 불행합니다. 결혼 상대를 바꾸면 괜찮을까요? 아닙니다. 결혼 상대를 바꾸어도 불행합니다. 왜냐하면 외부 조건이 원인이 아니라 질문자의 불안증이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불안증을 먼저 치료하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디서 나쁜 얘기를 듣더라도 당시에 기분이 좀 나쁠 수는 있겠지만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누군가에게 궁합이 나쁘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그걸 계속 두려워하며 불안해하고 죽고 싶다고까지 하잖아요. 이것은 일종의 정신 질환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무엇보다 심리 치료를 받는 게 필요합니다. 심리 치료를 받고 나면 결혼하든 안 하든, 누구와 살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 결혼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혼자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질문자처럼 부정적인 마음으로 살면 결혼해도 불행하고, 혼자 살아도 불행합니다. 아이를 낳아도 불행하고, 아이가 없어도 불행합니다.
불행한 삶을 살도록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두려움이나 불안, 미움이나 원망 속에 살면 어떻게 살더라도 괴롭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면 결혼해서 살아도 괜찮고, 혼자 살아도 괜찮습니다. 아이를 가져도 좋고, 아이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도 괜찮고, 부모님이 오래 사셔도 괜찮습니다. 직장에 다녀도 좋고, 사업을 해도 좋습니다. 공장에 다녀도 좋고, 농사를 지어도 좋습니다. 이런 외부 조건이 별로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우선 심리 치료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매일 아침마다 108배 절을 하면 좋습니다. 절을 할 때 부처님을 부르든 하느님을 부르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부를 대상이 없어도 좋습니다. 심리를 치료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요. 절을 하면서 이렇게 자신에게 암시를 주는 겁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저는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편안하다는 암시를 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또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듣더라도 잠시 흔들릴 뿐 사는데 별로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개울을 건널 때는 신발을 벗을 것인지 신을 것인지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 어떻고, 걸어서 가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돌아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울을 건너기 위해 신발을 벗으려면 귀찮을 수 있겠죠. 그 찰나 찰나에 집착하면 괴로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순간이 오든 문제를 삼지 않아야 합니다. ‘나중에 지금을 돌아보면 어떨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살면 어떤 삶을 살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궁합이 좋은지, 궁합이 나쁜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가는데 누군가가 ‘사주를 보니 당신은 곧 돌아가시겠습니다’ 하고 말하더라도 ‘그래요? 사람이야 언젠가는 죽죠. 제가 그렇게 보이십니까?’ 하면서 담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내가 왜 초조하고 불안해야 합니까? 그러면 내가 그 사람의 꼭두각시가 되는 거잖아요. 수행이란 이런 노예근성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결혼하든 안 하든, 누구와 결혼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배우자를 만난다면 질문자가 도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인격이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면 공경하고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아픈 사람을 만나면 보살필 수 있어서 좋고, 건강한 사람을 만나면 그 덕을 좀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수행적 관점을 갖게 되면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입니다. 결혼을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결혼을 안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제 궁합 얘기에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도 많이 힘듭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궁합 얘기를 듣고 힘들어하는 것이나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힘들어하는 것이나 다 같은 얘기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내가 괴로운 거잖아요. 궁합 얘기를 듣고 부모님은 슬퍼할 수도 있고 불안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부모님의 인생입니다. 부모님은 옛날 분이시니까 궁합을 믿기 때문에 당연히 불안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아, 부모님은 그 말을 믿으시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히려 부모님께 ‘걱정하지 마세요. 궁합이 다 맞는다면 왜 싸우고 이혼하는 부부들이 있겠어요?’ 하고 위로를 해드려야 합니다. 옛날에는 연애를 해서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대부분 배우자의 얼굴도 못 보고 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주라도 맞춰보고 안심했던 거예요. 서로 사주단자를 보내고 받았던 것은 당시 결혼의 한 절차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당시의 결혼 문화가 그랬구나’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면 ‘그건 부모님의 문제다’ 이렇게 보셔야 해요. 오히려 ‘부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잘 살 겁니다’ 하면서 안심을 시켜드리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어리석어서 불안해 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나는 괜찮다’ 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갖도록 하겠습니다.”
“병원에는 안 가실 거예요?”
“사실은 이미 심리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심리 상담만 갖고는 안 됩니다. 일단 병원에서 검진부터 받아보고, 예민한 마음을 완화시켜 주는 약이 필요하다고 진단이 나오면 기도와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게 좋습니다. 약물 치료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하면, 그냥 기도만 하시면 되고요.”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입니다. 제 주장도 하지 못하고 밥벌이도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소극적인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42세 아들이 어릴 적부터 뇌전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운동 신경 때문인지 오해를 많이 받아서 현재 직장이 없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7시 30분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10분에 워싱턴 D.C.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미국 국방부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위치한 펜타곤 건물로 향했습니다.
9시 10분에 펜타곤에 도착하여 보안 검사를 한 후 10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미국 국방부에서 핵과 대량 살상 무기 대응에 대한 업무를 관할하고 있는 책임자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입구에서 수속을 밟고 있으니 핵과 대량 살상 무기 책임자(Nuclear & Countering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olicy Principal Director)인 니나(Nina Sawyer Wagner) 님이 스님을 마중 나왔습니다. 이 분은 스님과 오랜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버지니아 애넌데일에 나갔다가 스님 사진이 크게 있는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버지니아에서 무엇을 하셨나요?”
“지난 일요일에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어요. 월요일에는 워싱턴 D.C. 에서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오늘 스님께서 국방부를 방문한 목적도 우리가 중요하게 해야 하는 일이지만, 다음에 워싱턴을 방문하실 때 저희 직원들을 위해서도 스님께서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시면 좋겠네요. 국방부 직원들이 일도 많아졌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 전문이에요. 당연히 해드릴 수 있습니다.” (웃음)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핵무기 비확산 및 제제 관련 부서, 핵무기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도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변화된 국제 정세로 인해 북한의 입지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어떤 군사 전략을 취해야 북한의 핵과 대량 살상 무기 확산을 중지시킬 수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특히 핵무기 비확산 및 제제와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분이 있어 스님은 북한의 경제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고, 제제의 목표에 따라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경제 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하는 것은 피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도 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마치고 오늘 처음 스님을 만난 두 분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과 대화를 통해 전반적인 지식을 넓히는 데 아주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방부를 찾아 이렇게 대화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방부 미팅을 끝으로 워싱턴 D.C. 에서 진행된 스님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정이 모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은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부터 시작해서 미국 의회, 미국 정부 각 부서 관계자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조금도 지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스님의 노력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고,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펜타곤을 나와 제이슨 님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미국 방문 기간 동안 영어 통역 봉사를 전담해 준 제이슨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활동가들 모두 한국으로 떠나는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한 후 제이슨 님의 집을 나왔습니다.
오후 1시부터 버지니아주 애데일(Annandale)에 있는 한인 식당에서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기자들도 반갑게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각 신문사에서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에 특파원을 파견해서 각종 소식을 취재하도록 하는데요. 특파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는 북미 관계와 미국의 대선이었습니다.
스님은 며칠 동안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전문가들을 만나서 했던 이야기들을 특파원들에게 간단히 공유해 주었습니다. 특히 북핵 동결을 위해 북미 관계 정상화를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설득을 많이 했는데요.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도 공유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정부 관료들이 작년보다는 제 이야기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전처럼 무조건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지 않고, 북한이 당장 비핵화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에 기반해서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정책을 변화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제안하는 내용에 대해 경청하거나 일부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다양한 제안을 해도 오히려 문제제기를 하거나 듣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대부분이 현실을 인정하는 분위기였어요. 예전에는 만나는 사람의 직급이 낮아서 만남의 실효성이 조금 부족했다면, 이번에는 미팅에 나오는 사람의 직급이 조금 높거나, 미팅 참가자들을 실속 있게 구성하거나, 일부 제안을 긍정하거나, 이런 진지한 태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상당히 위험한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주로 표명했는데, 당시에는 안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반응을 보였어요. 그런데 지난 8개월 동안 당시 제가 우려했던 부분들이 거의 다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이 태도의 변화를 가져온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그들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현재 북한과 미국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상황이라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설령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한다고 해도 북한과 협상을 타개할 만한 계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부탁하는 내용은 북한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적극 개입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나중에는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못하더라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미국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신속하게 추진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 당선이 되든 이 문제는 집권 초기에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을 끌면 다음 선거가 다가와서 또 흐지부지되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특파원들은 현재 남한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스님의 조언에 대해 미국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더 지켜봐야겠지만, 우선 현재 남한 정부는 스님의 조언을 받아들일까요? 아직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 남았는데, 앞으로 북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남한 정부의 정책이 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선 현재 상황에서는 남한 정부가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늘 최종 결정은 미국이 해왔고, 대신 어려운 상황을 뚫어내는 초기 역할은 한국, 일본, 미국이 시기에 따라 다르게 해 왔습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정책을 바꾸는 걸 기대하기도 어렵지만, 설령 바꾼다고 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남북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북한 쪽에서 남한과의 소통 채널을 다 없애 버렸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북한과의 대화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려면 아직 1년의 기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는 일본과 북한 사이에 현재 대화가 되는 부분을 잘 살리면서 전쟁의 위험을 관리해야 합니다. 현재는 북한과 일본 간의 대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내년에 미국 대선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파원들은 얼마 전 총선의 결과를 볼 때 남한 정부가 과연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습니다.
“지난 총선 결과를 보면 현재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북한과의 관계를 풀려는 노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정책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사전 작업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얼마 전 총선이 끝난 다음에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었죠.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국무총리를 야당에서 추천하도록 하여 거국 내각을 구성했다면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겁니다. 헌법 개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이원집정부제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해 나갈 수 있었어요. 야당도 내각에 참여하도록 하면 국민 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지요.
이렇게 인생에는 언제나 살 길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안 한다는 거예요. 그 결과 야당의 저항도 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야당을 선택한 국민의 저항도 점점 심해질 것입니다. 그만큼 국정 운영에도 어려움이 많이 따르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인생에는 언제나 살 길이 있어요. 숨이 넘어갈 때도 길은 있습니다. 그런 결정을 일찍 하면 역사 속에 박수를 받게 되는 것이고, 늦게 하면 할수록 대가를 많이 지불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북한과 일본 간의 대화는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는 답보 상태지만 앞으로는 조금씩 진척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기시다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지만, 최근에 가장 큰 변화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가족들의 강경한 입장이 일본 정치인들에게 아무런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메구미 씨의 부모님들도 돌아가셨고, 지난 10년 동안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계 개선을 할 필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일 관계를 조건 없는 대화로 풀어가면서 납치자 문제도 함께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납치자 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면 대화를 시작조차 하기 어렵다는 걸 양측이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북한과 일본 사이에 조건 없는 대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납치자 문제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우선 조건 없이 대화부터 시작하고, 그 바탕 위에 납치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도 지난 2월에 일본을 방문하여 원로 정치인들에게 많은 조언을 하고 왔습니다. 아직은 북한과 일본의 대화가 잘 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현재 한국, 미국, 일본 중 유일하게 북한과의 대화가 열려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남한과의 채널은 단절이 되었고, 미국과의 대화에도 북한이 전혀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북한과 일본의 대화를 통해 전쟁의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북한 경제가 많이 힘들다고 말하는 곳도 있고, 생각보다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곳도 있는데, 스님께서는 현재 북한의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가요?”
“괜찮다고 하든 안 괜찮다고 하든 모두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기준으로 보면 북한이 괜찮을 리가 없고, 북한의 작년과 비교하면 그래도 올해가 조금 괜찮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북한의 상황이 괜찮은지 물어보면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식량 사정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길거리에 굶어 죽는 시체가 널려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좀 과장된 표현 같아요. 북한이 배급 제도를 유지하고 있을 때는 배급이 끊어지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발생했지만, 지금은 각자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노력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대량 아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 경쟁에서 뒤처진 일부 사람들이 죽는 일은 생길 수가 있겠죠.”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특파원들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머리와 위를 꽉 채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예, 앞으로도 기사와 상관없이 계속 만납시다.”
곧바로 공항으로 출발하여 오후 4시에 댈러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이번 미국 방문 일정을 총괄하고 준비한 법해 법사님과 김지현 국제지부장, 의전을 담당한 묘덕 법사님과 악수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예, 스님께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국까지 조심히 가세요!”
오후 5시 50분에 워싱턴 D.C. 를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 20분을 비행하여 현지시간 8시 10분에 중간 경유지인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대기하며 잠시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밤 11시에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11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 동안 비행하여 한국 시간으로 내일 오전 4시 20분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로써 지난 4월 29일부터 시작한 북미 동부 순회강연과 워싱턴 D.C. 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을 모두 마쳤습니다. 세계 곳곳의 정토행자들, 강연을 홍보하고 준비해 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스님이 가는 곳마다 운전, 식사, 숙소를 제공해 준 활동가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 준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이번 세계 전법 여정이 가능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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