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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 경전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온라인에 접속한 가운데 서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며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지난 한 달 동안 경전대학 학생들이 복지 실천활동을 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이어서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에 가서 학교 준공식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거리모금 캠페인을 열심히 한 것이 밑거름이 되어 JTS는 필리핀 민다나오 산간 오지 마을에 학교를 지었습니다.
이어서 모두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경전대학 학생들은 지금 반야심경과 금강경 수업을 마치고 육조단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경전대학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배워야 하는지 강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경전대학 학생 여러분, 공부 잘하고 있습니까? 아무래도 불교대학보다는 내용이 조금 어려울 거예요. 불교대학은 ‘불교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해서 불교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곳입니다. 경전대학은 그걸 바탕으로 해서 수행의 관점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입멸 후 2500년 동안 불교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다섯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육조단경에서 배운 내용을 인용하며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우선 여기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선(禪)이 나오기 전인 대승불교에서는 우리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걸 불성(佛性)이라고 했습니다. 흔히 부처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능력과 지혜를 갖춘 존재를 떠올리고, 부처가 우리의 마음 밖에 있는 줄 압니다. 이렇게 밖을 향해 있는 눈을 마음 안으로 돌리기 위해 나온 가르침이 바로 ‘불성이 곧 내 마음속에 있다’ 하는 말이었습니다. 불성이라는 게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내 본성이 곧 불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부처는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도나 중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부처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존재를 떠올리는데, 부처가 어디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성품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이니 정말 파격적인 가르침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내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데, 실제 내 마음은 질투도 하고, 욕심도 내고 하니까 ‘이런 마음이 어떻게 부처일 수 있느냐’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아주 질문을 잘하셨어요.
우리의 마음은 좋은 마음을 낼 때는 부처 같이 내고, 나쁜 마음을 낼 때는 악마 같이 냅니다. 아이를 막 낳아서 키울 때는 입 안에 음식도 먹여주고, 아이를 위해서는 내가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정말 부처님이나 낼 수 있는 마음을 내며 보살핍니다. 잠깐이긴 하지만 아이를 낳은 사람은 실제로 대부분 이런 마음을 냅니다. 반면,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해서 극에 달하면 칼로 찔러 죽이고, 손가락이 총이면 쏴 죽이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확 불질러 버리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의 마음은 완전 악마와 다름없습니다. 옛날부터 사람에게는 이 두 가지 마음이 있다고 봤습니다. 둘 중 어떤 마음을 본성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성선설과 성악설로 나뉘었습니다. 원래는 선한 마음이었는데 세상에 물들어서 악성이 생겨난 것이니 원래 자기의 선한 마음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주장이 성선설입니다. 반면, 인간의 마음은 본래 짐승 같고 악하지만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훈련을 하면 선하게 된다는 주장이 성악설입니다. 성악설을 꼭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악설은 사람을 악하게 본다기보다는 후천적인 교육을 강조하는 관점입니다. 사람에게는 그러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더 교육받고 수행하고 닦아야 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성선설은 세상에 물든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관점이죠.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둘 다 있다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걸 표현한 소설 작품이 낮에는 선한 마음이 나타나고 밤에는 악한 마음이 나타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입니다.
불교는 성선설도 아니고, 성악설도 아니고, 양면설도 아닙니다. 육조단경을 보면 육조대사가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수받는 과정이 나옵니다. 법을 받은 징표가 발우입니다. 임금으로 치면 옥새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죠. 역사를 보면 옥새를 뺏으려고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것처럼 당시 중국에서는 스승의 가사와 발우를 전수받은 사람이 다음 스승이 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원래 가사와 발우를 전해주는 의미는 부처님의 삶을 받들어 수행자답게 검소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가사와 발우 그 자체는 따지고 보면 그냥 밥그릇이고 천 조각에 불과한데 거기에 무슨 법이 있겠어요? 부처님의 발우와 가사를 물려받는 데에는 부처님처럼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권위주의로 흘러가게 되면 그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겉으로 드러나는 징표만 가지면 스승이 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육조대사가 스승으로부터 발우를 전수받은 걸 알게 된 다른 제자들이 그 징표를 빼앗기 위해 육조대사를 뒤쫓아 갔습니다. 군인 출신의 힘이 센 스님이 쫓아오니까 힘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죠. 그래서 발우를 바위 위에 두고 몸은 얼른 바위 뒤로 숨겼습니다. 발우를 빼앗으러 온 사람은 저 발우만 가지면 내가 스승이 된다는 생각에 웬 떡인가 싶었겠죠. 그래서 발우를 집어드는데 이상하게 발우가 바위에 붙어서 안 떨어졌어요. 육조대사를 쫓던 사람도 원래는 나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방앗간에서 방아를 찍던 사람이 발우를 훔쳐서 달아났다고 소문이 나서 자기가 발우를 되찾아야겠다며 뒤쫓아온 것이었습니다.
막상 발우가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행자여, 제가 법을 빼앗으러 온 게 아니라 법을 얻으러 왔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혜능대사가 출가한 스님이 아니었으니까 행자라고 불렀던 거죠. 그러자 혜능대사가 이 사람이 해칠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바위 뒤에서 나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조금 전 마음은 무엇이고, 조금 후의 마음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너의 본래 마음인가?’
발우에 손을 댈 때의 마음은 악심이었고, 발우에 손을 땐 후의 마음은 법을 구하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전심은 무엇이고, 후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악심은 무엇이고, 선심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너의 본심인가?’하는 뜻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선심도 일어나고 악심도 일어납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이 사랑스러워서 셔츠를 빨아주려고 셔츠의 호주머니를 뒤졌는데 극장표가 나오니 그 순간 눈이 뒤집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때는 전심이 선심이고 후심이 악심입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떤 것이 너의 본래 마음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 화두를 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순식간에 다른 마음이 일어나는 걸 보면 ‘본래 마음이 선심이다’, ‘본래 마음이 악심이다’ 하고 하나로 정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다르게 일어나는 걸 보면서 본래 마음이 무엇인지 탐구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스스로 탐구해야 해요. 선심도 일어나고 악심도 일어나는 가운데 ‘선심과 악심 이전에 나의 본심은 무엇인가’ 하고 탐구를 하는 것이 선(禪)입니다.
선(禪)은 ‘이것이다’, ‘저것이다’ 이렇게 정하지 않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단정하는 건 지식입니다. 선(禪)의 핵심은 탐구입니다. ‘나’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탐구하는 것을 선(禪)에서는 화두라고 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마음속에 악심이 많이 일어난다고 느끼는데, 꼭 그렇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선심도 많이 일어납니다. 마음을 한 번 관찰해 보세요. 마음은 정해진 모양이 없이 이렇게도 일어나고 저렇게도 일어납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에요. 이렇게 마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자각을 하게 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는 게 번뇌가 아니라, 그런 감정이 일어났다고 해서 괴로워했던 것이 번뇌였던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을 잘 탐구해 보고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학생들의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 달에 다시 즉문즉설 시간을 갖기로 하고 12시가 다 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쉴 새 없이 12시부터는 부탄 왕실의 비서실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주제로 온라인 회의를 했습니다. 작년 11월에 온라인으로 회의를 한 후 세 번째 온라인 회의입니다. 지난 회의에서는 스님이 지속가능한 개발 계획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오늘 회의는 2월에 스님이 직접 부탄을 답사하는 계획을 어떻게 짤지 논의했습니다.
우선 부탄 왕실에서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만한 지역으로 두 지역을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2월에 그곳 두 지역을 답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답사 일정을 짤 때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점에 대해 몇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2월에 부탄을 답사할 때 머물 숙소는 항상 중간 이하로 잡아주세요. 고급스러운 숙소를 절대 잡지 마세요. 팀푸에 있을 때는 비구니 재단 숙소를 이용하겠습니다. 부탄 정부에서 저를 초청해 주신 덕분에 비자 발급이 해결된 것만으로도 저희들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답사에 드는 경비 일체는 JTS가 부담하겠습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현지를 많이 돌아보고 지역 관리와 주민들의 의견을 많이 청취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많이 걸어도 상관없고, 숙소가 허름해도 괜찮습니다.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그저 필요한 답사를 할 수 있게만 일정과 숙소를 잡아주면 되겠습니다. 침낭도 저희가 다 준비해서 갈 것이고, 그 외 필요한 것들도 저희가 다 챙겨서 가겠습니다. 먹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마세요.
이번 답사의 목적은 현장을 둘러보고 문제가 되는 내용이 생기면 그것을 어떻게 풀 것인지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고 자는 것은 간단하고 소박하게 준비해 주세요. 아마도 여러분 입장에서는 손님을 맞으니까 소박하게 준비하기가 어렵겠지만 이것은 저의 간곡한 요청입니다. 가능하면 이번 답사를 통해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요청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필요하면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점검하겠습니다.”
답사 일정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더 묻고 답한 후 2월 답사 때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로 하고 오후 1시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제33차 인도 성지순례 입재식 및 오리엔테이션을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500명의 순례자들이 버스에 나눠 타고 성지순례를 하게 되는데요. 차량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여 입재식에 함께 했습니다.
원래 인도성지순례 입재식은 인도 현지에 가서 해야 하는데, 순례객이 500명이나 되어 한 장소에 모여서 입재식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성지순례를 가기 전에 온라인으로 입재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 참가자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성지순례를 하는 목적과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인도 현지에 도착하면 불교가 시작된 첫 출발지인 초전법륜 성지 바라나시에서 수계식을 하고 가사를 받아 수하면서 본격적인 성지순례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입재식이라기보다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도성지순례는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현장학습을 하는 시간입니다. 불교대학에서 배운 부처님의 일생을 그 일이 일어난 현장에서 다시 생생하게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순례를 다니다 보면 마음공부를 정말 많이 할 수 있어요. 기후도 안 맞고, 자는 것도 불편하고, 먹는 것도 불편하고, 생활도 불편하니까, 자기 성질머리가 다 나옵니다. 하루나 이틀은 소변을 누는 것이 부끄럽다고 참는데, 삼사일만 지나면 똥오줌 안 누고 배기는 사람 없으니까 버스 옆에서도 아무 데나 누게 됩니다. 본인의 성질도 삼사일 정도 지나면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순례를 하는 동안 자기를 봐야 합니다.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성질머리를 계속 내지도 말고, ‘내가 이렇구나’ 하고 자기를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순례를 출발하기 전에는 큰 기대를 품고 부처님의 성지를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그런데 밥 먹는 게 어렵고, 오줌 누는 게 어렵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금방 원수가 될 듯이 마음이 바뀝니다. ‘내가 여기 왜 왔나’ 하고 후회하거나, ‘돈 내고 고생만 하고 무슨 짓이냐’ 하고 불평을 하거나, ‘아무리 성지순례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할 수가 있느냐’ 하고 스님까지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스님은 참 훌륭하시다’ 하는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스님이 참 독한 구석이 있네’ 하면서 분별심이 생깁니다. 도반들에 대해서도 분별심을 냅니다. 그럴 때 자기를 봐야 합니다. ‘전심은 무엇이고, 후심은 무엇이냐’ 하고 화두를 들듯이 ‘출발할 때의 마음은 무엇이고, 지금 일어나는 마음은 무엇이냐’ 하고 화두를 들고 있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순례 중에 힘이 들면 하루하루가 지루하다고 하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난리를 피우지만, 순례를 마칠 때가 되면 ‘좀 더 있다 가면 안 되느냐’, ‘왜 이렇게 날을 짧게 잡았느냐’ 하면서 또 아쉬움을 말합니다. 출발할 때는 기간이 너무 길다고 난리를 피워놓고, 돌아올 때쯤 되면 ‘날짜를 넉넉하게 잡지 왜 짧게 잡았느냐’ 하면서 아쉬워합니다. 인도에 버려두고 와도 불평을 안 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바뀌어요. 그러니 마음이란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런 자신의 요동치는 마음을 구경하는 것도 순례입니다. 바깥을 구경하는 것도 순례이지만, 마음을 구경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순례입니다.”
이어서 인도의 지도를 화면에 보여주며 인도의 지형, 강, 기후, 인종, 언어, 종교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10대 성지를 어떤 루트를 따라가게 되는지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전체 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성지순례 참가자들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참가자들은 차량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한 후 오후 6시에 성지순례 입재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원고 교정과 인도 갈 짐을 챙기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제2차 만일결사, 1차 천일결사 중 4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하고, 오후에는 강원경기동부 지부 회원의 날 행사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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