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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8시부터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200여 명의 외국인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생방송을 시작하자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 안경 색깔이 이상하죠? 며칠 전에 백내장 수술을 했어요. 눈에 조명이 비치면 안 된다고 해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색깔 있는 안경을 꼈습니다.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스님의 일상을 공유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지금 하는 일이 짜증 나고 하기 싫어서 이직과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일을 다 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남의 불행을 예를 들어서 죄송합니다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24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그곳에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에요. 전쟁이 일어나서 고통스럽지만 살 수 있는 곳이 그곳밖에 없기 때문에 계속 그곳에 살고 있는 겁니다. 또, 여러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그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감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다수일 거예요.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지요. 아마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 거예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 가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정말 그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닐까요?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보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일을 가리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나는 이런 일이 좋다.’, ‘이런 일을 꼭 하고 싶다.’라는 조건이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면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은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얘기예요.
정리를 하면 첫째, 다수의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지 않습니다. 둘째, 원하는 일이 없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세상에는 질문자처럼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다수입니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주어진 일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면 비교적 괜찮은 상황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일이 있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저를 한번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때 스승을 만나 승려가 되었습니다. 출가하기 전에 저는 종교와 과학이 정 반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정말 추상적이고 허황하다고 생각했어요. 정확한 사실을 연구하는 과학과는 정 반대잖아요. 처음에는 저는 종교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럴 때는 일을 그만두는 길이 있고, 자기의 취향을 살리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종교 속에 신비적이고 허황한 요소를 걷어내고, 과학적 시각으로 합리적이고 교훈적인 가르침을 찾아보았습니다. 종교 속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결국은 제 나름대로 할 일을 찾아냈고 지금 그 일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재발견하는 길이 있습니다.
질문자에게 적용해 보면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이나 퇴근 후에 다른 일을 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렇게 나타나는 거예요. 그만두기로 정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겁니다. 그 두려움을 동료들에게 미안한 감정으로 포장해서 그만두기를 망설이는 거예요. 동료들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망설이고 있는 겁니다. 내면에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과 그만두고 싶지 않은 생각이 충돌하고 있는 거예요. 이럴 때는 그만두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먼저 그만두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원하는 일을 다 할 수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원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싫어하는 일은 아니니깐 그 정도면 다행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주어진 조건에서 다른 시도를 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봉사도 해보고 여러 경험을 해 봤지만 현재 직장보다 특별히 나은 것이 없다면, 지금 직장에 계속 다니면 됩니다. 아르바이트든 봉사든 해보니깐 지금 직장보다 수입은 낮아도 훨씬 더 만족스러워요. 그러면 그 일감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을 때 옮겨가면 됩니다.
지금 질문자가 그만두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아직 다른 일거리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 다른 일을 점검해 보고 이동하는 방법은 비교적 안전한 길입니다. 이 길은 꼭 옮겨가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여러 일을 확인해 보고 현재 직장이 낫다고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옮겨갈 직장을 새로 발견할 수도 있어요. 일단 1~2년 정도 점검을 해보면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두는 방법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불안전성이 큽니다. 직장을 그만뒀는데 막상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후회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질문자가 지금 직장에 적응하거나 옮겨갈 방법을 충분히 모색한 후에 그만두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그만둔 뒤에 후회가 적습니다. 즉,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수입이 적어지든 상황이 더 힘들어지든, 현재 직장보다 낫다는 판단이 분명해지면 미련이 없어져요. 그만두고 난 후에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한번 겪으면서 결정하면 좋겠습니다. 더 하실 얘기가 있으면 해 보세요.”
“I have always been curious why I get this kind of a guilty feeling whenever I tell them that I am going to quit, and I did not know why. But now I think I have a little hint. Maybe I was not very decisive inside to have another kind of choice. And most of the time I try to be prepared with the next options whenever I decide to quit the job, but sometimes it takes much longer than I thought to be prepared with the next options. So sometimes I just tried to quit without taking the next option.
But based on what you just mentioned, it might take a year or two. So from now on, I will not be too nervous about taking that much time.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advice and I think it's very good to know where these guilty feelings actually came from. Thank you very much.”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마다 왜 이런 죄책감이 드는지 항상 궁금했고 그 이유를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조금 힌트를 얻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결단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할 때마다 다음 선택지를 준비하려고 노력하는데 때로는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데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고는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다음 선택을 준비하지 않고 그냥 그만두려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금 말씀하셨듯이, 그 준비가 1~2년 정도 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고 잘 준비하겠습니다. 조언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이런 죄책감이 실제로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물론 동료들과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데 본인이 빠지면 동료들에게 업무가 더 과중되거나 새로운 사람이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퇴사를 고민하는데 그런 이유가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진짜 이유는 나의 망설임 때문이라는 겁니다. 동료들이 핑곗거리가 되는 거예요.
제가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즉문즉설에서 어떤 여성이 남편의 이런저런 점 때문에 결혼생활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그럼 이혼하지 왜 사느냐?’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러면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고 말합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이 다시 와서 또 불평을 합니다. 이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더니 지금은 왜 하려고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해요. ‘우리 부부 사이는 스님 말씀 대로 제가 참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아빠의 잘못된 모습을 닮을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혼을 해야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혼을 하고 싶지만 아이 때문에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혼을 안 하고 살 수 있는데 아이를 위해서 이혼을 해야 되겠다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이혼을 하고 싶은 요인이 있었지만 이혼했을 때 생길 여러 문제를 더 고려했습니다. 그래서 이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거예요. 두 번째는 여러 가지 이혼하지 않을 만한 요인이 있지만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겁니다. 그 핑계를 아이라고 할 뿐이에요. 정말 아이를 위한다면 처음부터 이혼할 생각을 안 해야죠. 그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이혼을 하면 이기주의자로 평가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방어를 하는 겁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아이라는 핑계를 대서 자기를 합리화하는 거예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반성을 하던지, 정당성을 주장하던지 내막을 살펴보면 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행동이에요. 겉으로 자기를 반성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오히려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심리는 항상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든 이스라엘 전쟁이든 전쟁을 밀어붙일 때는 그만한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또 전쟁을 멈출 때는 인도주의의 원칙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내세워서 멈춥니다. 그 결정의 핵심은 자신의 이익이에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하고 인도주의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한번 지켜보십시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멈추기도 하고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의 작용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해야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본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면 후회를 하거나 남을 탓하는 일이 생겨요.”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한 시간 반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Our next Live Dharma Talk with Ven Pomnyun Sunim will be held in two weeks."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다음 강연이 2주 후에 열립니다.)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이후 오전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평화재단 통일의병 주최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이를 막기 위한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 달 전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을 하면서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지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자 지구의 주민들이 무참히 학살되고 있는 이런 현실을 목격하고도 국제사회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슴 아픈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무력만이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하지만, 이번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압도적 무력만 갖고는 평화를 지켜낼 수가 없고 상대의 적개심을 완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다섯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요즘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뉴스를 보기가 싫어진다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뉴스를 자세히 봐야 합니다. 좋아할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세히 알아야 해요. 막연히 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가 여당을 지지하고 있다면 여당에서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철거한다고 분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선거에서 많은 표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질문자가 야당을 지지하고 있다면 비록 기분은 나쁘지만 ‘저런 행동이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야당 쪽으로 모아주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막연히 기분 나빠하고 있을 게 아니라 무엇이 단점이고 무엇이 장점인지 두루 살펴봐야 해요.
지난번 홍수 때 수색하다가 죽은 채상병 문제도 그 자체는 실수일 수도 있고,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후 사실을 은폐하는 과정은 누가 봐도 실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적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진 일이 어느 순간 뒤집히고 거꾸로 항명죄가 되었잖아요. 아무리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군인이라 하더라도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이런 뉴스들을 접할 때 단순히 ‘보기 싫다’ 이러지 말고, 그 일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변명이 어떻게 바뀌는지, 증거가 어떻게 나오는지, 이런 내막을 우선 파악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이민자라면 한국 정치가 어떻게 되는지 관심을 안 가져도 되고, ‘맨날 싸우는 얘기 아닌가?’ 하고 뉴스를 안 봐도 됩니다. 그러나 주권자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들의 권리를 위임시켜 준 사람들이 그 권리를 어떻게 대행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그래야 제대로 하고 있는지 평가해서 다음에 다시 투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가짜뉴스 몇 개에 국민 여론이 왔다 갔다 하거나, 정부의 언론 정책 때문에 국민 여론이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라면, 그 나라 국민들은 늘 이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뉴스를 너무 편중되게 보지 말고 중립적인 뉴스도 봐야 합니다. 내용이 좀 이상하다 싶으면, 약간 진보적인 뉴스도 살펴보고, 약간 보수적인 뉴스도 살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계속 내가 지지하는 세력의 뉴스만 보면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고 확정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입장일 뿐인데 본인은 진실이라고 확신을 해버려서 사고가 경직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뉴스들을 견주어 보면서 우선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 상대의 주장이 얼마나 편협되어 있는지 알아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상대의 주장을 외면해 버리면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말하지 않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안이 없잖아요. 대화를 안 해도 되지만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면 상대를 알아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과 제가 어떤 논쟁을 한다면 제가 승산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불경도 알고 성경도 알고, 불교의 역사도 알고 기독교의 역사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밖에 모릅니다.
논쟁을 할 때 자기주장만 할 줄 알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야 해요. 하루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몇 가지 사회적 논쟁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자세히 알아봐야 합니다. 워낙 가짜뉴스가 많으니 무엇이 팩트인지 헷갈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이 쪽 저 쪽 몇 가지를 체크해 보면 ‘대충 사실은 어떻겠구나. 그러나 양쪽에서는 이런 차이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판단을 법륜 스님에게 너무 의지하면 결국 법륜 스님의 말에 따라 내 생각이 좌지우지됩니다. 그래서 나부터 어느 정도의 팩트 체크는 하고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하루에 몇십 분은 뉴스 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중립적인 관점도 살펴보고, 제 사고의 오류는 무엇이 있는지 팩트를 잘 체크하면서 뉴스에 더욱 관심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한 중립은 중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내용은 이 쪽 사람이 주장하는 게 사실일 수도 있고, 어떤 내용은 저 쪽 사람이 주장하는 게 사실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양쪽 다 지나치게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가짜뉴스를 유튜브에 많이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나는 옳고 상대편은 틀렸다고 하는 생각은 사회를 점점 더 극단으로 몰아갑니다.
적어도 통일의병이라면 상대의 주장에 동조는 안 해도 상대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고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할아버지들이 왜 저렇게 태극기 깃발을 들고 나오실까?’,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원이 될까?’, ‘저 할아버지들의 사명감은 어떤 정보에 의해 생겼을까?’ 이렇게 의문을 갖고 정보를 더 수집해야 해요. 단순히 ‘돈을 받고 그럴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편중된 생각입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사명감이 있어요. 직접 대화를 하거나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서 그들의 사명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파악 해야 합니다. 옛날부터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항상 승리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너무 싫다고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7년 전에 어떤 마음으로 통일의병이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회, 정치, 경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팩트를 체크하는 태도를 갖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무슨 활동을 하는 게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 있을까요?
안보, 경제, 민주주의 등 모든 것이 하향 국면에 접어들고, 현 정부 말미에는 심각한 국가위기가 올 것 같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낮에는 직장일을 하고, 저녁에는 가정일과 통일의병 활동을 하다 보니 역량을 개발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하면 통일의병이 새로운 시민단체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도 실내에서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결사행자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오후에는 공동체 법사단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여한 후, 저녁에는 행복학교 진행자들과 함께 생방송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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