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1.18 행복학교 특강, 결사행자 자자 수련
“말이 늦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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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눈이 내리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9시부터 결사행자 자자 수련에 참석했습니다. 이번 자자 수련은 지역별로 으뜸절에 모여서 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눈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사고 없이 지역별로 으뜸절에 모두가 도착한 가운데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정성껏 예불을 한 후 결사행자 모두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자자 수련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자자는 수행공동체의 청정성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수행 방법입니다. 그러나 온라인 정토회로 바뀌면서 자자의 내용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공동체의 청정성을 유지하는 데 어떤 장애나 흠결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오프라인에서 이미 서로 탁마가 된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큰 부작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정토회를 만난 세대는 앞으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많은 문제점이 생겨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들고 돈이 들더라도 오프라인에서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나가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수행공동체의 청정성을 유지하는 방법

보완하는 방법도 연령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달리 적용해야 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비중을 똑같이 적용할 게 아니라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특성에 맞게 달라져야 하고, 수도권과 지방도 지역적 특성에 맞게 비중이 달라져야 합니다. 크게 원칙적으로는 방향이 같지만, 지역적 특성, 세대적 특성, 문화적 특성을 살려서 수행, 전법, 사회 실천활동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첫째, 결사행자는 원칙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즉, 수행의 관점과 정토회의 창립취지를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너무 효율 중심으로 가거나 실리에 편성해서는 안 되고 정토회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을 했는지 그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그렇다고 원칙만 고수하는 입장을 가지면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거나 고립되기가 쉽습니다. 원칙을 지키되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이유로 원칙을 잃어버려도 안 됩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세대 차이, 지역 차이, 나라 차이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율해 나가야 합니다. 두 가지가 적절하게 조율이 잘 안 되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초심자일수록 원칙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원칙을 고수하면 최소한 미래에 허물어질 요인을 만들지 않을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칙을 놓치면 일시적으로는 확산이 돼서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붕괴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원칙만 고수해서도 안 됩니다. 부처님은 전법을 할 때 시대에, 상황에, 사람에 맞게 항상 유연하게 접근을 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이 행하신 전법의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큰 틀은 같이 가되 사람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 다르고, 세대에 따라 다르고, 나라에 따라 다르고, 문화에 따라 다른 특성을 고려해서 적용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효율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두 가지가 어느 정도 역할 분담이 되어 있습니다. 결사행자들과 법사들은 고집을 하지 않되 원칙을 지켜나가는 역할을 더 중요시해야 하고, 대중부는 원칙을 지키되 그때그때 대중의 상황에 맞게끔 적용해서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굳이 업무를 분담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공통의 DNA를 만드는 과정

자자는 공동체성의 원칙과 순수성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자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공통의 DNA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사람의 특성은 각각 다릅니다. 각자 자기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각각의 특성을 서로 이해해서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되, 법에 대해서는 자기를 고집하는 것을 내려놓고 공통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특성은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느냐는 각각의 특성에 해당한다면, 지나치게 맛에 집착해서 먹거나 호화롭게 먹는 것은 법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맛에 집착하지 마라’, ‘검소하게 살아라’ 하는 법은 지키되 어떤 종류를 먹느냐, 어떤 색깔의 옷을 어떻게 입느냐 하는 다양성은 존중해야 합니다. 성격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진치 삼독에 해당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극복해야 될 대상이지만, 나머지 소소한 개인의 취향들은 포용해야 할 대상입니다.

자자는 계율을 기준으로 해서 원칙과 순수성, 수행적 관점을 잡아서 공통의 DNA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말투가 다르고, 남녀가 다르고, 노소가 다르고, 생김새가 달라도 법에 대한 관점만큼은 통일적으로 갖는 것이 공동체의 순수성입니다. 자자는 법에 대한 관점을 바르게 갖고 있는지 서로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계율 밖의 소소한 부분은 포용을 하고, 계율에 해당하는 부분은 엄격하게 탁마를 해서 공통의 DNA를 만들어 가는 자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모둠별로 자자를 시작했습니다. 40 계본에 따라 참회를 한 후 각자 모둠원들에게 자자를 청했습니다.

“저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들으며 의혹이 있거나 저의 수행을 위하여 말씀해 주실 것이 있으면 저를 위하여 자자를 청합니다.”

결사행자들이 자자 수련을 하는 동안 스님은 곧이어 10시부터 행복학교 특강 생방송을 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과 행복 시민들 43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눈이 좀 이상해졌죠? 왜 스님이 색깔 있는 안경을 끼고 왔나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엊그제 양쪽 눈 수술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밝은 조명을 받으면 눈에 좋지 않다고 했는데, 그래도 방송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눈을 보호하는 색깔 안경을 끼고 하라고 했어요.”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막내 아이가 말이 늦는데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남편과 의견 충돌이 생겼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말이 늦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다섯 자녀가 있는데요, 첫째는 스물여덟 살이고, 막내가 네 살입니다. 지금 막내를 집에서 가정 양육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 양육을 하는 이유는 남편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계속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위에 네 아이는 정상적으로 발달해서 자연스럽게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막내는 말이 늦는 편이라서 남편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때 어린이집을 보내자고 합니다. 아이가 말을 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린이집에 가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굉장히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아이가 지금이라도 어린이집에 가면 말을 더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고, 또 제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것도 힘들어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습니다. 아이가 말이 늦다는 이유로 계속 가정 양육을 해야 하는 걸까요?”

“인구 절벽 시대에 아이를 다섯 명이나 낳았다니 좋은 일을 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다섯이나 키우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발육 이상이 있다면 바로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합니다. 신체적인 발육 이상인지, 정신적인 문제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의사의 검사 결과를 듣고 조언에 따라 조치를 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문제는 없는데 다만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늦는 것이라면 일 년 정도 기다리면 해결이 됩니다. 하지만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특수 교육 기관에 보내 훈련을 받아 적응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체적인 호르몬의 분비 문제라면 약물치료가 필요합니다. 이런 진료 결과에 따라서 처방을 달리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아무리 다섯 명을 키웠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는 처음 겪는 일이고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진찰을 해서 원인을 밝힌 후에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어린이집을 보낼 거냐, 가정 양육을 할 거냐, 이게 핵심이 아닙니다. 먼저 아이 상태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한 후 대처를 해야 합니다. 어떤 문제든 조기에 발견하면 거의 정상화시킬 수 있어요. 조기 발견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나중에 회복이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도 좀 늦은 것 같아요. 세 살 이전에 그런 문제를 발견해서 조기에 치료를 해야 하는데, 네 살이 되었다면 일단 치료할 수 있는 적기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빨리 검진을 받아서 그에 따라 대응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말이 늦는 아이를 집에서 보육하면 해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옛날 사람들이나 했던 생각입니다.”

“아이가 신체발달도 정상적이고, 듣고 이해하는 능력도 정상인데, 단지 말이 좀 느린 것이거든요. 아이가 어릴 때 영어에 노출을 많이 시켰더니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배우는 과정에서 혼란이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언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언어 발달이 굉장히 느리다고 진단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언어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병원에 갔다니까 다행입니다. 너무 조기에 이중으로 언어를 배우게 하면 모국어가 형성되지 않아서 나중에 정체성을 갖는 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과다한 욕심이 불러온 문제라고 보여요. 그래도 좀 더 정밀하게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말이 늦다고 해서 무조건 언어 치료를 할 게 아니라 의사의 검진에 따른 처방을 받아야 해요. 의사의 검진 없이 언어 치료부터 받는다면 순서가 바뀐 겁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검진을 해서 우선 원인을 밝힌 다음 대응을 해야지 자꾸 본인이 짐작해서 치료부터 먼저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다 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 달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눈 수술 후 안정을 취하기 위해 휴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법문을 하기 위해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결사행자들은 자자 수련을 마친 후 오후 4시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자자를 하는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생긴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활동을 하면서 과로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조심을 하게 되는데, 수행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몸에 무리가 될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죠?

“활동을 하다 보니 얼마만큼 무리할 때 아프게 되는지 알게 되어 미리 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몸에 집착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다’ 하는 계율을 어긴 것 같아 참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심하는 마음을 내는 것도 참회의 대상이 맞는지 헷갈려서 질문을 드립니다.”

“일에 집착해서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계율과 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계율은 얼핏 보면 상호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수행적 관점에서 보면 두 계율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욕망에 대한 계율입니다. 욕망을 따라갈 것이냐, 욕망을 참을 것이냐, 하는 것은 얼핏 보면 정반대인 것 같지만, 둘 다 욕망에 대한 반응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나서 성공했다 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정반대인 것 같지만, 수행적 관점에서 보면 성공은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 하는 걸 알려주고. 실패는 ‘이렇게 하니까 안 되더라’ 하는 걸 알려준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어떻게 하니까 되는지, 어떻게 하니까 안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측면에서는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없습니다. 수행이란 성공과 실패가 하나인 줄 알아서 성공과 실패에 좌우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들뜨지 않고,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지금 질문한 내용도 얼핏 보면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 도리에서 보면 하나입니다. 일을 하다가 ‘쉬었다가 하자’, ‘먹고 하자’, ‘한숨 자고 하자’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일을 하는가 안 하는가만 보면 쉬거나 먹거나 잠을 자는 것은 일을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을 잘하기 위해서 쉬는 것이기 때문에 일하는 것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합니다.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보다는 잠시 쉬었다가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쉬었다가 하자’ 하고 말하는 겁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보다는 먹고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먹고 하자’ 하고 말하는 거예요. 잠을 안 자고 계속 일하는 것보다는 한숨 자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한숨 자고 하자’ 하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쉴 때는 푹 쉬어야 하고, 먹을 때는 편안하게 먹어야 하고, 잘 때는 푹 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때 자는 건 그저 놀거나 쉬는 게 아니라 일을 더 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몸을 사려서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일에 집착해서 무리하다가 몸에 탈이 나는 것은 정반대가 아니라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것입니다. 몸을 무리하지 않는 것이 길게 볼 때는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일의 효율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몸을 무리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지, 몸을 사리기 때문에 몸을 무리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1톤의 짐을 실을 수 있는 짐차에 1톤만 싣는 것은 짐을 적게 싣기 위함이 아니라 1톤 이상 실으면 차가 고장이 나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1톤만 싣는 것입니다.

일을 할 때 자신의 몸을 잘 관찰해서 경험적으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일이 하기 싫거나 몸이 고단한데도 그냥 일을 해버리니까 크게 무리가 안 되었다는 경험을 자꾸 하게 되면 생각이 바뀝니다. 마음에서 자꾸 제한을 두기 때문에 꺼려지는 것이지 몸 자체는 그 정도를 능히 이겨낸다는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힘에 부치듯 느껴질 때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하고 추진하게 됩니다. 반면, 힘이 부치는 데도 무리해서 일을 마무리 지었더니 결국 몸에 병이 나서 두 배, 세 배 손해가 났다는 경험을 자꾸 하게 되면 무리하기 전에 멈추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몸을 가지고 테스트를 해보면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는 게 좋은지 경험치를 쌓아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일하는 것이 일에 집착해서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계율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선을 넘어서면 꼭 몸이 아파서 며칠 드러눕게 되는 일이 발생할 때는 ‘내가 일에 집착하고 있구나’ 하고 자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조율을 해나가야 해요.

때로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오늘 밤에 꼭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면 몸에 병이 나는 걸 알면서도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리하고 나서 몸이 아플 때 후회를 해서는 안 됩니다. 몸이 아플 것을 미리 각오하고 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만큼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과보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깨어있는 사람은 일을 하다가 멈출 줄도 알고,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몸이 아플 것을 감수할 줄도 압니다. 그로 인해 번뇌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때 쉬었으면 몸이 안 아팠을 텐데’ 하고 후회하거나, ‘그때 일을 마무리 지었으면 일이 더 효과적으로 진행되었을 텐데’ 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과 자기 몸을 알아차리고 그 속에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살피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몸에 집착을 해서 자꾸 자기 몸만 살피다 보면 일을 외면하게 되고, 중요한 일을 두고도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물러서게 됩니다. 그러면 제때 해야 할 일을 안 해서 다음 일에 지장을 주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게 됩니다. 그런 경우에는 몸에 지나치게 집착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는 일인데도 욕심을 부려서 오늘 안에 끝내려고 하다가 몸에 병이 나서 드러눕는 일이 생긴다면, 그런 경우에는 일에 집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몸에 집착하든, 일에 집착하든, 둘 다 중도의 길이 아닙니다.

일을 마무리하지 못해 손실이 생기더라도 몸에 너무 무리가 가기 때문에 후회 없이 그 손실을 감수한다면 몸에 집착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몸이 아플 걸 각오하고 일을 마무리 함으로 해서 손실을 막아냈을 때 후회 없이 몸의 아픔을 감수한다면 일에 집착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자기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몸을 챙길 때는 일의 손실보다 몸의 손실이 더 크기 때문에 일의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고, 일을 챙길 때는 일의 중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몸이 아플 것을 미리 알고 그 과보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몸에 집착했다고 평가하지 않고, 몸이 아팠다고 해서 일에 집착했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자 결사행자들은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결사행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해야 나가야 할 과제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회의 많은 활동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접근성이 쉬워진 반면 문제점도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참여하는 대중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그것을 운영하는 전문 활동가는 그만큼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문 활동가들이 점점 고령화되고 업무가 가중되어 건강 문제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전문 활동가의 수가 더 줄어들게 되고, 그 결과 소수에게 업무가 더욱 가중되는 악순환 구조에 진입한 게 아닌가 우려가 됩니다. 새로운 활동가들은 적게 충원되는데 전체 대중은 늘어나니까 업무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지 함께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정토회의 고령화 문제는 점점 심화될 것입니다. 단지 활동가들의 나이가 많아지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활동가의 비중이 높아지고 신규 활동가의 비중이 적어지는 문제점을 안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결사행자님들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살피고 대안을 마련해 보면 좋겠어요. 홍보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불교대학 진행자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전반적으로 점검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현안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활동가를 양성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특히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보다 보니까 법사님들이 대중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온라인상으로 널리 확산시켜 나가는 방법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런 한편으로 오프라인 활동도 너무 일 중심으로만 마련하지 말고 으뜸절에 모여 수련도 하고 휴식도 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보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참여할 수 있고, 법사님들도 대중과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결사행자들은 정토회의 가장 중심적인 멤버들이니까 전체 상황을 점검해서 내년 사업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사홍서원을 한 후 오후 5시에 자자 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보안경을 쓰고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외국인을 위해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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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대정진)

초심자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대중부도 원칙을 지키되 인연따라 상황에 맞게 유연성을 가지라는 말씀 새깁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않는 자세를 갖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3-11-23 12:58:01

성장우

스님 감사합니다.

2023-11-22 11:48:31

명덕(섭)

어릴적에 영어공부를 시켰다는데 왜 제가 화가 날까요?

2023-11-22 07: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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