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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중 열아홉 번째 강연이 세계적인 대도시 뉴욕(New York)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뉴욕 북쪽에 사는 형님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형님은 얼마 전 뇌종양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겨우 생사 고비를 넘겼습니다. 일정에 지장이 없도록 새벽 4시에 출발해서 오전 중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뉴욕에서 4시간 걸리는 곳이라 오후 1시 20분에 숙소에 겨우 도착해 점심식사를 하고 2시부터 뉴욕과 뉴저지에서 활동하는 정토회 회원들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유럽에서 북미 서부를 거쳐 북미 동부에 이르기까지 해외순회강연을 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내외 순회강연을 모두 멈췄다가 4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순회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열린 오프라인 강연이라서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힘든 점이 있었겠지만 청중의 반응은 옛날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순회강연을 해보니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달라진 점이 몇 가지 보였습니다. 첫째, 청중의 대부분이 이미 유튜브에서 즉문즉설을 많이 보고 온 사람들인 것 같았어요. 둘째, 강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많이 젊어진 것 같아요. 셋째, 아는 얼굴보다 낯선 사람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즉문즉설이 알려져서 저변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반면에 온라인으로만 즉문즉설을 접하고 온 사람들이다 보니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은 적어진 것 같아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하지만 다음 봉사로 계속 이어지지 않고 대부분이 강연만 참석하는 것 같습니다. 저변이 확대된 것에 비해 책임지고 봉사하는 사람은 오히려 줄어들어서 기존 활동가들의 업무가 더 많아지는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저변은 확대가 되는데 그에 맞춰 활동가의 비율은 늘어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앞으로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업무를 여러 사람이 분산해서 맡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옛날에는 전업주부들이 정토회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는데 요즘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전업주부가 거의 없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이 많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겨나고 있어요. 이런 변화를 발 빠르게 감지해서 대책을 세워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순회강연 중에 만난 많은 활동가들이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서 법회를 하면 좋겠다고 요청했어요. 오프라인 모임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볼 때는 막상 오프라인 모임을 열면 참석률은 저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토회 활동을 오랫동안 해서 정으로 뭉쳐진 사람들은 오프라인 모임에 잘 참석할 거예요. 그러나 이미 온라인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은 한두 번은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정기적인 참석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할 수 있을지 연구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까지 이야기한 후 활동가들의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먼저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해외지부, 국제지부, 행복운동본부, 청년지부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 바뀌고 컴퓨터를 배우기가 힘들었는데 도반들이 이끌어줘서 여기까지 왔어요.”
“저는 초저녁에 잠이 많은데 저녁에 회의가 많아져서 힘들어요.”
“뉴욕 강연 장소를 구하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섭외하는 과정에서 담당 교수님이 휴가를 가고, 담당직원이 휴가를 가고, 장소 섭외가 어려웠는데 결국 구했어요.”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정토 이벤트 회사를 차려야겠다고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스님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보고 조금이라도 쉬게 해 드려야지 간담회를 잡아서 되겠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이렇게라도 스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스님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 부분별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파악했습니다. 다들 각자 처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역할도, 고충도, 우여곡절도 잘 들었습니다.”
이어서 질문과 제안을 받았습니다.
“해외지부와 국제지부 간 교류가 적어서 아쉬워요.”
“전법회원 법회는 국제지부와 해외지부라는 소속에 상관없이 지역적으로 묶어서 진행하면 어떨까요?”
“북미 지역에 거점이 될 만한 법당과 실무 담당자가 있으면 좋겠어요. 여러 곳에서 정토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곳으로 수렴이 안 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를 계속하다 보니 교육이나 수련 참가가 어려워요. 또 학생들의 시차가 다 다르다 보니 일이 더 많아졌어요. 주말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진행자들이 많은데 불교대학의 학사 기간을 9개월로 늘리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길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행복학교에 다니거나 행복시민이 된 분들은 배우자가 외국인이거나 외국계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세계전법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을 개발해 보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제안이라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다들 좋은 제안을 해주셨네요. 그런데 정토회의 결정권이 저에게 있다고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저는 여러분들의 얘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말해줄 수는 있지만,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웃음) 다음 주에 온라인으로 간담회를 하는 자리가 있으니 그때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쉽지만 강연장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뉴욕 강연을 총괄한 박미경 님의 소감을 대표로 듣고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10년 전 뉴욕에서 스님에게 사인받은 금강경책을 딱 열어보니까 2013년 9월 19일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오늘이 딱 10년째 되는 날이에요. 이것도 무슨 인연인가 싶네요. 그날은 강연에 가서 책에 사인만 받고 돌아왔는데, 오늘은 제가 강연 총괄을 맡아서 같이 나누기를 하니까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래요. 딱 10년이네요. 그것도 똑같은 뉴욕에서 다시 강연을 하네요.”(웃음)
기념사진을 찍고 활동가들은 곧바로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간단히 식사를 하고 저녁 5시 40분에 강연 장소인 퀸즈 칼리지(Queens College)로 출발했습니다. 밖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퀸즈 칼리지(Queens College)에 도착하니 강연 장소를 빌려주신 고성연 교수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먼 길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 전에 저희 가족이 위기를 겪을 때 스님 말씀을 접하고 마음을 다스린 후 저희 가족이 평화를 다시 찾았거든요. 감사의 말씀을 이번 기회에 드리고 싶습니다.”
“별말씀을요. 강연 장소를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후 6시에는 강연장 옆 강의실에서 롱아일랜드 호프스트라 대학교 제니스 신(신유정)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신 교수님은 10년 전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취학 전 발달장애아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대학생들과 함께 진행해 오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다며 이 사업을 JTS에서 진행해 보면 어떨지 제안했습니다.
스님은 교수님이 제안한 내용을 경청한 후 JTS 원칙에 맞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검토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어떤 개인에게 이익이 돌아가면 안 됩니다. JTS는 어떤 사람도 고용하지 않고 100퍼센트 자원봉사자들이 평등한 관계 속에서 사업을 진행합니다. JTS 운영 원칙에 맞게 진행할 수 있는지 세부적으로 검토해 봅시다.”
강연 5분 전까지 대화를 나누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스님은 150호 강의실로 입장했습니다. 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220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기후 위기 시대에 적게 소비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플라스틱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썩지 않는 물건이 나왔다며 좋아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도 많이 편리해졌죠. 그런데 앞으로는 썩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microplastic)이 기후 위기 다음으로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미세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으니까 아주 작은 가루의 상태로 눈에 보이지 않게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바다의 물고기가 그것을 먹어 물고기 체내에 쌓이게 되고, 그 물고기를 사람이 먹게 되면 사람의 체내에 미세 플라스틱이 쌓이게 됩니다. 나중에 사람에게 무슨 병이 어떻게 발병할지 알 수 없습니다.
자동차의 부속품 2만 개가 설계도에 따라서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자동차가 움직이듯이 천하 만물은 아주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나친 소비가 불러온 기후 위기는 많은 종들의 소멸을 가져오고 있고 곧 인류의 멸종까지도 경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 기술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과학 기술은 증상을 완화시켜 줄 뿐이지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치료법은 소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비 중독에 걸려있는 우리가 과연 소비를 줄일 수 있을까요?
소비를 줄이지 않는 이상 인간은 공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시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치를 좋아하고 과소비를 하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의 공적(公敵)입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여러분들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어야 합니다. 과소비를 하는 사람은 인류의 공적이지 결코 부러워할 대상은 아니라는 관점을 가지고 소비를 줄여 나가야 합니다.
검소한 삶을 살면서도 만족할 줄 알게 되면, 개인은 껄떡거리지 않게 되어 행복해지고, 빈부격차가 줄어들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행복도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을 가장 먼저 제시하고 솔선수범하며 걸어가신 분이 저는 ‘붓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왕이 될 수 있는 지위를 버리고 부유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포기했으며,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행복했고 다른 사람을 행복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복을 빌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식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붓다 담마를 ‘미래를 위한 옛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길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 많은 분들이 질문을 신청했는데 두 시간 동안 11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질문이 계속될수록 분위기가 점점 깊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언어적 한계 때문에 미국인들과 함께 일할 때 직장 동료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지금 자식이 있어요?”
“아니요. 아직 없습니다.”
“만약에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라면 얼굴이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 하더라도 언어의 문제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지요.”
“그런데 질문자는 한국에서 한국말을 쓰다가 미국에 왔기 때문에 언어에 일부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경상도 사람이 서울에 가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사투리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옵니다.”
“같은 나라에서도 이렇게 언어의 한계가 생기잖아요. 북한사람이 서울에 와서 살거나 연변사람이 서울에 와서 살면 20년 살았다고 해서 사투리나 억양이 없어지나요?”
“안 없어집니다.”
“그러나 어릴 때 이민을 오면 언어의 한계가 다 극복이 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이민을 오면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 성인이 된 뒤에 왔기 때문에 억양은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감수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제 욕심이 큰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살다가 20살이 넘어 미국에 온 사람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현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자꾸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민을 왔으면 그 정도의 불이익은 감수해야 하는 거예요.
물론 법에 보장된 권리에 대해 차별을 한다면 소송을 해야 되겠죠? 왜냐하면 미국 법에 차별하지 말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말을 유창하게 못 해서 조금 무시받는 정도는 법적 소송을 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기가 어렵습니다. 그 정도는 불이익을 조금 감수해야 하는 거예요.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게요. 제가 이곳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데 부서 안에 신입 사원이 필요하다고 합시다. 한국 이민자도 있고, 베트남 이민자도 있고 몽골 이민자도 있다고 한다면, 베트남 이민자나 몽골 이민자의 실력이 아주 특별하다면 그 사람을 추천하겠지만 만약 실력이 비슷비슷하다면 질문자는 누구를 추천하겠어요? 나와 같은 한국 사람을 추천하거나, 나와 같이 대학을 다닌 사람을 추천하거나,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배를 추천하거나, 나와 고향이 같은 사람을 추천하기가 쉽지 않나요? 이런 인간의 심리를 이해한다면 약간의 불이익은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에게도 텃새라는 것이 있어요. 법적으로 어긋난 행동일 때는 고소를 해서 시정을 해야 되지만, 이민을 왔으면 텃세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니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실력이 같을 때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둘째, 그것을 넘어서려면 내 실력을 높여야 합니다. 질문자가 언어 능력이 조금 부족하다면 그 대신에 굉장히 친절해지는 방법으로 점수를 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친절하지도 않고 실력도 없다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어요. 친절한 것이 성격적으로 잘 안 되면 본인의 실력을 키우든지, 실력을 키우는 것이 어려우면 친절하게 웃으면서 무엇이든지 ‘예’ 하면서 받아들이든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족하면 저것을 높이는 방식으로 지내면 됩니다. 그런 것조차 싫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돼요.”
“신랑을 두고 갈 수가 없어서요.”
“한국으로 데리고 가면 되지요. 신랑이 미국 사람이에요?”
“네.”
“그러면 신랑을 한국으로 데려가서 차별을 좀 경험하도록 하면 되죠. 그래야 미국에서 차별받는 내 심정을 신랑이 좀 알지 않겠어요? (웃음)
이주를 한 사람이 현지 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욕심입니다. 대신에 내 자식은 차별받지 않게 될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게 되니까요. 그러나 질문자는 이주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것만 다 취하고 싶어요? 불이익을 조금 감수한다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 스님은 마지막 질문자를 위해 한 번 더 수행의 관점을 이야기해 주면서 강의를 마쳤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마음과 말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과 마음이 달리 떠오를 때가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말을 통해서 상대를 파악할 수밖에 없어요. 말을 넘어서서 상대와 교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말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잖아요.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이 세상에 무엇이 무섭다 무섭다 해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이랬어요. 예를 들어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물건이 안 찾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그 물건이 말을 할 수 있으면 우리가 그 물건을 못 찾는 경우가 안 생기죠. 물건의 이름을 부를 때 '네' 하고 대답하면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상대가 말을 안 하면 상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요. 이처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말을 해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가 없는데, 말을 안 하면 더 알 수가 없어요. 항상 자기의 마음이나 생각을 같이 사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가볍게 내어놓아야 합니다. '너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이런 말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약간 섭섭하구나' 이렇게 가볍게 내어놓으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내가 한 말을 상대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중요한 이유는 ‘내가 말하면 네가 받아들여야 된다’ 이런 전제를 갖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안 받아들일까 봐 말을 못 하는 거예요. 내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상대의 자유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나의 자유예요. 나는 가볍게 말하되 상대가 못 받아들여도 '오케이. 그건 너의 자유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말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말을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여러분들의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교적 솔직하게 말을 하는 거예요. 즉문즉설 시간에 저한테 질문한 사람들이 실제로 제 말대로 할까요? 본인이 질문해 놓고 열에 아홉은 제가 말한 대로 안 합니다. 제가 말한 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나한테 물으나 마나 또 내가 말한 대로 안 할 텐데 대답해 주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나빠지고 대답도 해주기가 싫어질 거예요. 묻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대답하는 것은 나의 자유입니다. 그 대답을 따르느냐 안 따르느냐 하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남의 자유에 간섭을 합니다.
지나가다 옷이 필요하면 남편한테 '저 옷 필요한데 하나 사줘' 이렇게 말하면 되는데, 이 말을 못 하는 이유는 눈치를 보기 때문입니다. '안 해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눈치를 보면서 말하게 되는 겁니다. 부탁해 보고 '안 돼' 그러면 '알았다' 이러면 되는 거예요. 그래도 사고 싶으면 '사면 어떨까?' 이렇게 다시 말해보고, '안 된다 그랬잖아' 하면 '알았다' 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금방 기분이 나빠져서 '그래. 너한테 다시는 사달라고 하나 보자' 하고 말해 버립니다. 그럼 누가 손해예요? 나만 손해입니다. 부부 사이도 나빠지고, 물건도 못 사고, 앞으로 살 기회도 없어집니다.
항상 기회를 열어놓고 살아야 됩니다. 동생이 돈을 훔쳐갔다 해도 곧바로 동생과 관계를 끊지 말고 문을 열어놓고 사는 게 좋습니다. 감정적으로 싫은 사람과도 문을 열어놓고 살아야 여러분의 인간관계가 넓어집니다. 자꾸 문을 닫으면 나중에 고립이 되어서 인생이 감옥살이가 됩니다. 상대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살 때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집니다. 실제로 한번 해보세요. 모두 나에게 좋은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갖고 여러분 모두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참석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인생이 정말 행복해졌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책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은 정토회를 만나 행복해진 경험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2003년에 멋모르고 깨달음의장에 갔다가 뭔가 좀 깨달은 게 있어서 이렇게 정토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83세입니다. 미국에 온 지는 50년이 넘었어요. 제 삶에 모든 일을 스님 말씀대로 행하고 있는데요. 정토회를 만나서 너무 행복합니다.
제 남편은 지금 암 말기입니다. 세상을 떠날 날짜를 잡아놓은 상태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저에게 스님의 법문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남편도 저도 편안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자기소개를 마치자 스님이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연 준비해 줘서 모두 고마워요.”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스님은 강연장을 나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으로 갑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니애폴리스로 가서 미국인들을 위해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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