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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8일 출가열반 정진 기간 중 7일째 날입니다. 하루 종일 네 번의 생방송이 연달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8시부터 외국인을 위한 즉문즉설을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외국인 6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고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한 명씩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왜 속세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반문하며 성공과 행복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질문했습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면 돼요. 왜 부처님의 삶을 시비합니까? 세속에 사는 질문자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으면서도 먹는 문제로 괴로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질문자는 부처님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 속에 살고 있잖아요. 형편이 아무리 나빠져도 부처님보다는 잘 먹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먹는 문제로는 어떤 불평불만도 없어야 해요. 부처님은 길거리에 버려진 천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질문자가 입고 있는 옷은 그것보다 좋잖아요. 앞으로 아무리 가난해져도 부처님보다는 좋은 옷을 입을 거 아니에요? 부처님은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살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질문자가 가난해져서 텐트에서 살더라도 부처님보다는 좋은 잠자리가 아닐까요? 부처님은 혼자서 살았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떠났거나 죽는다고 해서 괴로울 일이 없잖아요. 부처님은 어떤 지위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가 가졌던 모든 지위가 사라져도 괴로울 일이 없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지금 이대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괴로울 일이 없어요. 무엇을 더 해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이 가르친 내용과 달라요. 이대로도 좋고, 변화가 생겨도 좋습니다. 집이 커져도 좋고 작아져도 좋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집이 더 커야 하고 지위도 더 높아져야 하고 입는 옷도 더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해탈의 길이 아니에요.
부처님은 왕위를 입에서 뱉은 가래침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다 누려봤어요. 맛있는 것도 먹어보고 좋은 옷도 입어봤지만, 꼭 좋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밥은 얻어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야 한다고 하신 게 아니에요. 먹고 입고 자는 것에 구애받지 말고 괴로움 없이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질문자가 왕궁을 갖고 싶으니까 ‘부처님이 왕궁으로 돌아가면 안 되나?’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갖고 싶으면 가지면 됩니다. 다른 사람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어요. 그것은 마치 저에게 ‘스님은 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삽니까?’하고 질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혼자 잘 살고 있는데 왜 시비를 합니까? 질문자가 결혼을 하고 싶으면 결혼해서 잘 살면 됩니다. 저는 질문자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하지 않잖아요.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자기 삶에 집중하고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I'm not really complaining about what Buddha did, and I'm nowhere near unhappy. I'm generally happy with where I am. But my question is more about achieving what I want to achieve. I'm grateful for what I have and everything I've received, but at the same time, it actually requires effort and resources to maintain my financial stability, happy marriage, and relationships with others. These are the things I continue to focus on and put my energy into. When I listen to Buddha's teachings, sometimes they feel like there's a lot of convergence stories. For example, from the Jungto Dharma School, I'm like, am I missing something? What am I missing that those people who abandon everything and follow Buddha got? It's just more of a question than complaining about his teachings or his lifestyle.”
(네, 제가 부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불평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현재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달성하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 점이 많은데요. 저는 제가 가진 것과 받은 모든 것에 감사하며, 동시에 재정적인 안정, 행복한 결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저는 계속해서 집중하고 에너지를 투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때, 불교대학에서도 그렇고 교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는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부처님을 따르며 모든 것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과는 무엇이 다른 건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생활 방식에 대한 불만이 아닌 질문입니다.)
“뭔가 놓치고 있어요.” (웃음)
“I've been trying to figure out for a long time what it is I'm missing, and that's what I'm asking you. It's really hard to figure out myself. One day, I feel like I've got it, and the next, I feel totally lost.”
(저는 오랫동안 무엇이 부족한지 찾아내려고 해 왔어요. 그게 바로 제가 여쭤보고 싶은 내용이에요. 제 자신을 파악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어느 날은 이해가 되는 것 같고, 다음 날은 완전히 헷갈리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교통사고가 나서 신체의 일부를 못 쓰게 되었다면 그래도 편안할까요?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편안할까요? 회사가 부도가 나서 재산이 다 없어져도 편안할까요? 늙어도 편안할까요? 얼굴에 화상을 입어도 편안할까요? 그래도 편안하다면 놓친 게 없어요. 그런 일이 없어야 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조건부 편안함’입니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같은 편안함이에요. 질문자는 깨지지 않은 상태니까 편안한 거예요. 지금은 ‘뭐, 이 정도면 됐지!’라고 하지만 저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과연 편안할까요? 부처님은 얻어먹어도 편안했고, 길거리에서 자도 편안했고, 다 떨어진 옷을 입어도 편안했습니다. 남이 나를 욕한다고 해도 편안했습니다. 편안하니까 남이 뭐라 말하든 상관하지 않았어요. 굳이 잘 먹으려고 애쓸 일도 없었습니다. 몸만 유지하면 되지 남에게 잘 보일 이유가 뭐가 있어요? 꾸밀 일이 없잖아요. 나만 완전하면 되지 남에게 잘 보여서 뭐 하려고요?
그래서 질문자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거예요. 조건이 조금만 변해도 언제든 깨지기 쉬운 행복은 지속 가능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아요. 수행이란 ‘언제 어떤 상황이 되어도 나는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를 탐구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젊었을 때 왕자로 사는데 생활에 뭐 특별한 문제가 있었겠어요? 그런데 ‘늙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내 나라가 외국이 침략해서 다 몰살당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끊임없이 탐구했습니다. 실제로 이후에 석가족은 대국의 침공을 받아서 다 몰살당했죠. 출가한 사람들만 살아남고 세속에 있던 사람들은 다 살해당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 없이 사는 경지를 해탈과 열반이라고 합니다. DNA 검사를 했더니 내 딸이 아니었다거나,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거나 하는 문제는 별문제가 아니에요. 세상에 수많은 남녀가 몰래 바람을 피우기도 하면서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 바람피운다고 알면 피운 게 되고 모르면 바람피우는 데도 아닌 게 됩니다. 또 바람피우지 않았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또 바람피운 게 됩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내 딸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혼란이 옵니다. 그런데 만약 딸이 ‘나는 아빠 딸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오, 그래, 잘됐네! 그럼 너와 내가 싸울 일이 없겠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냐는 거예요. 질문자는 조건부 편안함을 목표로 하니까 ‘이만하면 됐지, 뭐 특별히 문제 될 게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놓쳤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놓친 줄은 언제 알게 될까요? 지금은 알 수가 없어요. 잠꼬대하는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야 그것이 꿈인 줄 알듯이 유리그릇이 깨져야 자기가 놓친 줄 알게 되겠죠. 그렇다고 굳이 유리그릇을 깰 필요는 없어요.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겁니다.”
“Yeah, I think I've got it, so I think I can deal with it when it comes to me. I don't really have to worry about those hypothetical concerns, but I just need to try to be happy where I'm at. And, yeah, I may not welcome the suffering, but at the same time, I think I should be able to deal with it. Thank you.”
(네, 이해가 된 것 같습니다. 상상 속의 걱정을 멈추고 실제 상황으로 닥치면 그때 해결하면 되겠네요.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려고 노력하면 되고요. 고통을 반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괴로움이 어디서 오는 게 아니에요. 그런 일이 일어나도 괴로울 일이 없는 것입니다. 괴로운 일, 좋은 일, 이렇게 ‘일’을 부쳤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내 생각일 뿐입니다. 수행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괴로울 일이 없다는 관점을 가지는 거예요.
지구 전체를 생각하면 나이 든 사람들은 죽어야 합니까, 아니면 계속 살아야 합니까?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져야 합니까, 아니면 계속 붙어 있어야 합니까? 우리가 원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도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심성을 배워야 해요. 부처님은 가진 것 하나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면서 평생 고통받는 중생을 교화하며 사셨습니다. 부처님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훨씬 더 좋은 조건 속에 살고 있어요. 그러니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어쩌면 부처님은 우리에게 그 가르침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Sunim, you actually remind me that I should just wake up instead of asking you how to wake up. I probably didn't want to wake up, so thank you so much for the reminder. And I want to take this opportunity to really show gratitude for everything that you do for Korean society, as well as everyone here and for global society. Thank you.”
(스님, 깨어나는 법을 묻지 말고 그냥 깨어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마 깨어나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이 자리를 빌어 스님께서 하는 모든 일과 한국사회, 여기 모든 분들, 그리고 세계사회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바로 뒤이어 생방송이 예정되어 있어서 9시 30분에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을 하고 곧바로 10시부터는 8일 출가열반 정진 7일째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도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지난 6일 동안 부처님의 수행, 성도, 교화의 여정을 따라 법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성도 후 45년 동안 교화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부처님이 45년 동안 교화하신 여정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지혜를 갖고 어리석은 중생을 깨우쳤습니다. 둘째, 자비를 갖고 고통받는 중생을 끌어 앉았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지식인들을 비롯하여 지배계층이 가진 고정관념과 어리석음은 지혜의 칼로 깨트렸습니다. 동시에 불가촉천민, 가난한 사람, 여성, 범죄자 등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이 비난하면 같이 비난하고 세상이 우러러보면 같이 우러러보기가 쉽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세상에서 내쳐진 사람 앞에서는 교만하지 않고, 이렇게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는 것은 지금 시대에도 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종교인들조차도 대통령과 가까워지길 원하잖아요. 부자, 지식인, 유명 인사와 가까운 것을 자랑으로 삼고 그 권위를 자신의 권위로 삼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은 수행자로서 바람직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그런 세상의 길을 뛰어넘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존경할 만하고 찬탄할 만하고 공경할 만한 분입니다.
정토회에서도 사회에서 큰일을 하거나 큰돈을 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동시에 불법을 만나 자신의 열등의식을 극복하고 정토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 모두 정토회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앞으로 정토회를 발전시키려 하다 보면, 재능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사회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정토회 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이것이 정토회가 안은 과제입니다.
역사 속에서 선조들이 밟았던 과오를 밟지 않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도 좀 천천히 밟도록 해야 합니다. 정토회를 키우거나 유명해지려는 욕심으로 전법을 하고, 활동을 한다면 효과에만 중점을 두게 됩니다. 결국 돈 많은 사람, 지위 높은 사람 앞에서 비굴해지고, 그 우산을 쓰려는 욕구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어요. 반대로 정토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부담이 되는 사람들은 그저 불쌍히 보고 보호 대상으로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들도 깨우쳐 함께 붓다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놓치고, 그들의 재능도 수용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거예요.
주리반특 같은 분들은 부처님의 10대 제자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16나한(羅漢)에 들어 있습니다. 16나한은 대부분 신통력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그럼 왜 신통력이 있다고 표현했을까요? 그들이 가진 대중성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재능이나 능력보다는 신통력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정토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렵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 주리반특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포진해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토회 지도부가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이들의 역할은 법륜스님 당대에만 존재하고 앞으로는 없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삶과 교단, 부처님 열반 후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예측해야 해요.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미래를 위한 대책을 조금씩 세워나가야 합니다.
왜 우리는 부처님의 일생과 불교의 역사를 배웠을까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역사를 배우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토회는 아직 3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예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초기에 정토회가 세상에서 사이비 취급을 받을 때 정토회를 찾아온 사람들은 오히려 신심이 깊습니다. 그때는 오직 ‘법이 올바른가’ 하는 것만 봤지 외형을 보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법보다 체면과 인지도, 안정성을 보고 참가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토회의 회원 수가 많아지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면, 신심이 깊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장도 중요하지만, 내부 교육과 훈련으로 수행을 심화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빠른 속도로 확장을 했기 때문에 일찍 붕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세력을 키우거나 돈을 벌기 위해 정토회의 발전을 도모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정토회의 발전을 그런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세속적 관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부처님 법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이 점을 봐야 해요. 그 결과가 정토회로 수렴이 되든 되지 않든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면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을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하면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자로서 본분을 잊지 않고 수행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중의 한계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해요. 모든 것을 원칙대로 하면 많은 사람이 법 안으로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인다면 근본이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지난 역사를 살펴보는 거예요. 우리는 근본도 잃지 않으면서 대중의 현실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포용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정토회의 중심이 세속적 가치로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붓다의 그런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또 닮아가려고 하는 원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8일 동안 정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듣고,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며 수행적 관점을 다시 한번 오롯이 새기고 각자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제13차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신규통일의병으로 임명된 190여 명이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통일의병 입문 과정을 마친 예비 통일의병 190명은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고, 선배 통일의병들은 유튜브로 접속한 가운데 모두 손을 흔들어 인사 나눈 후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했습니다. 대중은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신규 통일의병을 환영하며 지난 100년 동안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와 현재의 시대적 과제, 통일의병이 탄생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통일의병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라가 남의 나라에 빼앗겨서 핍박을 받을 때는 독립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나라 전체가 빈곤할 때는 국가 발전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독재 치하일 때는 먹고살 만해도 인권과 자유가 없기 때문에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입니다.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을 돌아봅시다. 일제 침략기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독립투쟁을 했습니다. 독립한 후에는 나라가 너무 빈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온 국민이 산업화를 위해 힘썼어요. 그러나 조국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독재 정부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독재에 저항해서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100년 안에 독립도 했고 산업화를 해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고, 또 독재 정부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남은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남북분단과 남북갈등 문제입니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전쟁 위험이 있습니다. 전쟁을 잠시 휴전하고 70년을 유지해 왔지만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이런 시대에는 평화가 시대적 과제입니다. 또 우리는 원래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외세에 의해서 두 개의 정부로 나뉘었어요. 분단국가의 시대적 과제는 통일입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기후 위기가 더 심각해져서 기후위기를 막는 것이 최우선 시대적 과제가 될 수도 있어요.
현재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평화와 통일입니다. 평화와 통일은 특히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헌법에도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평화를 지켜내고 통일을 하는 거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자들은 이 과제를 곧잘 잊어버리죠. 또 마음이 있다 해도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정부는 옛날에 비유하면 관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의병은 ‘관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민간 차원에서 평화를 지켜내고 통일을 이루자.’라는 생각으로 발족한 거예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도 엄격하게는 관군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렇게 못했죠.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일어나 독립운동을 해냈습니다. 반면, 산업화하는 관군이 중심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는 완전히 의병이 해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환경의병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평화를 지켜내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당면한 과제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는 거예요. 미래를 위한 과제는 통일을 이루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통일을 해야 해요. 지난 100년 역사에서 독립운동, 산업화 운동, 민주화 운동을 계승해 평화운동, 통일운동을 하는 거예요. 이제 우리가 평화를 지켜내고 분단을 극복해 통일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3.1 운동 100주년 안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었으면 좋았겠죠. 그런데 104주년이 되도록 오히려 남북간 긴장은 더 고조되고 통일은 더 멀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앞을 내다보고 평화통일의 꿈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통일의병은 이런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무슨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높아진다면 의병은 언제든지 소집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늘 비상소집 훈련을 합니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원이 있어야 의병을 할 수 있지 그런 원이 없으면 의병을 하기도 어렵고 될 필요도 없습니다. 통일의병은 개인의 성향이 진보니 보수니, 기독교니 불교니, 여당을 지지하느니 야당을 지지하느니, 이런 문제를 따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부추기거나 전쟁을 합리화하는 건 안 돼요. ‘어떠한 경우라도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평화의병, 통일의병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 관점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통일의병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통일의병 교육을 받으며 궁금했던 점에 대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뜨거웠던 민족사 공부의 현장과 열공의 순간들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신규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했습니다. 스님이 직접 임명장을 낭독하고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큰 박수로 신규 통일의병이 된 분들을 환영했습니다. 다음은 스님이 신규 통일의병이 된 190명을 위해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합장을 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반도의 평화를 발원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거나 내 부모가 살았던 한반도에 지금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방어용이라고 하지만 핵을 개발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쓸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그에 대응한다고 확장억제 전략이라는 이름하에 대량 살상무기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강대강으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 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곧 한미 군사훈련을 하게 되고, 북한이 거기에 대응까지 하게 되면, 점점 화약고에 불이 붙을 위험이 높아져가고 있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어도 그 배후에 있는 미중이 협력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쟁이 일어날 위험은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미중의 갈등은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배후인 미국과 러시아는 나토를 중심으로 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반도는 지금 남북 간의 대치뿐만 아니라 주변국 간의 경쟁과 갈등까지 겹쳐서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제 민족사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이 땅에 사는 온 국민, 먼저 돌아가신 선조님들, 그리고 불보살님을 비롯한 천룡팔부 신중님들께서는 이 땅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저희를 옹호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는 미래의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를,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발전이 희망의 증거가 되기를, 평화롭게 손잡은 남과 북이 전 세계 인류의 희망이 되기를, 또 갈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자랑스러운 통일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저희의 이러한 간절한 원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저희들은 민간인이지만 통일의병이 되어 우리의 원을 성취하고자 합니다. 저희의 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제불 보살님은 옹호하여 주옵소서.”
다음은 이 자리에 모인 통일의병 모두의 의지를 모아 정토회 통일의병 서약문 낭독 시간을 가졌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오른손을 들어 선서 자세로 다 함께 서약문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교육 수료생을 대표하여 한 분이 발원문을 낭독한 후 마지막으로 통일에 대한 마음을 모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통일코리아, 파이팅!”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제13차 통일의병대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 30분에는 일요 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52회째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시간입니다.
지난주에 실시간 댓글창에 영어로 올라온 질문들에게 대해 답변을 한 후 스님의 명상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아무런 할 일이 없는 편안한 마음을 갖고 관심을 코끝에 둡니다. 그러면 내가 호흡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숨이 들어올 때 들어오는 줄 알고, 숨이 나갈 때 나가는 줄 알 뿐입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다만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하고,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마쳤습니다. 실시간 댓글창에 올라온 소감들을 스님이 직접 읽어준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을 기념하여 열반재일 기념법회를 생방송하고, 오후에는 공동체지부 공청회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평화재단 현안진단 발행 300회를 기념하여 필진들과 간담회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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