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29. 인도성지순례 1일째, 사르나트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 처음으로 열린 날”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처음 설법한 장소인 사르나트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수자타아카데미로 가져갈 짐을 버스에 실었습니다. 대중이 탄 버스에는 공간이 부족해서 스님이 탄 버스로 공용짐을 모두 옮겼습니다.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마친 후 곧바로 수자타아카데미로 이동하기 위해 A팀 참가자들도 모두 버스에 짐을 실어 놓은 후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는 1250명이 A팀과 B팀으로 나뉘어서 이동을 합니다. A팀이 한나절 정도 코스를 앞서가고, B팀이 뒤에 도착하고, 10대 성지에서 1250명이 함께 모여 스님을 모시고 법회를 진행하는 일정입니다.

태국 절을 나와 걸어서 사르나트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대중이 도착하기 전에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며 탑돌이를 어떤 경로로 할지 답사를 했습니다.


9시 30분부터 강가강과 박물관, 신물간다꾸띠를 둘러보고 온 대중들이 물밀 듯이 사르나트 안으로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모두 도착했습니까?”

“네, 모두 입장했습니다.”

대중이 1250명이나 되다 보니 전체가 집결해서 자리 정리를 하는 것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송수신기 상태를 점검한 후 10시 30분에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곳 사르나트가 왜 성지가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하신 사르나트입니다. 당시 이곳이 속했던 나라의 이름도 바라나시(Varanasi)였고, 도시의 이름도 바라나시였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힌디어로 카시(Kashi)라고 불렸습니다. 지금은 바라나시라고 불리는 이곳은 3천 년 된 도시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많은 도시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폐허가 되거나 없어졌는데, 이 바라나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번창하고 있고, 강가 강변에 위치하여 힌두교의 제1성지이기도 합니다.

양민 이상의 카스트가 죽으면 강가에서 화장을 하지만 하층민과 불가촉천민은 화장을 하지 않고 시체를 숲에 내다 버립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도 계급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묘를 쓰지 않았는데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약 6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갖다 버리는 숲이었습니다. 시신을 갖다 버리는 곳은 부정 탄다고 해서 도시 근처에 두지 못하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했던 거죠. 시체 더미들이 있으니까 인적이 드물었고 수행자들이 마치 깊은 산속처럼 조용히 수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체를 버리는 곳을 시타바나(Sitavana) 또는 시타림(屍陀林)이라고 합니다.

가장 부정한 곳이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이곳은 바라나시 시민들의 시타림이었는데, 부처님은 이곳에 오셔서 첫 설법을 하셨습니다. 당시 이곳은 시체를 버리는 가장 부정한 곳이었는데,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첫 설법을 하심으로 해서 지금은 가장 성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사르나트로 들어오자마자 왼쪽 바닥을 보면 동그란 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법이 처음으로 설해진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입니다. ‘다르마라지크 스투파(Dharmarajika Stupa)’라고 해요. 다르마(Dharma)는 법(法)이라는 뜻이고, 라지크(rajika)는 바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법륜’이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첫 설법을 하신 것을 기념해서 탑을 쌓았는데, 몇 백 년 전에 이 지역의 어느 힌두 왕이 탑을 허물어서 나온 벽돌을 자기 집을 짓는 데 써버렸어요. 그 안에서 사리 용기가 나왔는데, 자기들 방식대로 강가강에 뿌렸다고 해요. 아마도 부처님의 진신사리였겠죠. 그래서 탑이 없어졌지만 이곳은 여전히 초전법륜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누가 이 법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함께 수행을 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다섯 명의 친구들은 이곳 사르나트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첫 설법에서 콘단야가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머지 4명은 아직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일주일 동안 설법이 이어졌습니다. 첫날에 콘단야가 깨달음을 얻고, 그다음 3일이 지나 2명이 깨달음을 얻고, 또 3일 만에 2명이 깨달아서 일주일 만에 5명이 모두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불법승 삼보가 성립된 곳

보드가야에서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사르나트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은 이가 처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상가(Saṅgha)를 뜻하는 승(僧)은 지금처럼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신 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말합니다. 스스로 깨달은 사람은 ‘붓다’라고 하고, 깨닫지 못한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한 붓다의 가르침을 ‘담마’라고 하고, 그 법을 듣고 깨달은 이를 ‘상가’라고 합니다. 상가는 ‘깨달은 이들’을 뜻하는 복수형 표현입니다. 이렇게 불법승 삼보가 성립되었습니다.

제 뒤에 보이는 탑은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라고 합니다. 콘단야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나머지 네 명을 위한 설법을 하실 때 자리를 옮겨서 설법을 하셨는데, 여기가 그 두 번째 설법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렇게 초전법륜 설법을 한 후 많은 수행자들이 여기에 머물면서 수행을 했는데, 처음에는 절이 없었지만 나중에 초전법륜정사, 즉 ‘녹야정사’를 짓게 됩니다. 녹야정사는 여기 말로 물간다꾸띠(Mulagandhakuti)라고 합니다. 물간다꾸띠에 아쇼카 석주가 세워져 있어서 이곳이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법하신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 석주 머리에는 네 마리 사자상이 있는데 그게 인도의 국장입니다. 인도 나라를 대표하는 국장이 사르나트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어서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첫 설법 모습과 사르나트에 대해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지 함께 독송을 했습니다.

이어서 부처님 당시에 첫 설법이 이루어진 모습을 떠올리며 명상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숨결이 코끝에 와닿는 듯합니다.

눈을 뜨자 다메크 스투파가 뚜렷이 보였습니다.

이어서 첫 설법이 이루어진 곳에서 수계식을 진행했습니다.

“남자들은 구리가 장자처럼, 여자들은 야사의 부인 또는 야사의 어머니처럼 재가에 있으면서도 수행정진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수계식을 하겠습니다. 오늘 가사와 발우를 받고 상카시아에서 가사와 발우를 반납할 때까지는 수행자로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1250명의 참가자들은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오계를 지킬 것을 약속하는 연비를 했습니다.

연비를 마친 대중들에게 스님이 가사와 발우를 주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은 여행을 온 게 아니라 순례를 왔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모든 마음가짐이 수행자의 마음가짐이어야 합니다. 발우를 받는 것은 앞으로 15일 동안 먹는 음식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의미입니다. 걸식을 해서 먹는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사를 입는 것은 잠자리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의미입니다. 분소의를 걸치고 나무 밑에서 잔다는 마음으로 순례를 하셔야 합니다. 선불교에서는 법을 받은 증표로 가사와 발우를 전합니다. 의발을 전해서 항상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 것을 다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스님이 1250명에게 가사와 발우를 전했습니다.

“가사와 발우를 드립니다.”

“잘 받았습니다.”


1250명의 수행자가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모두 가사와 발우를 수하고 여법하게 예불을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사르나트에서 인도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의미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언제부터 부처님이 되었을까요?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처님이라고 하지만 엄격하게 태어날 때는 부처님이 아닙니다. ‘부처’라는 말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이를 뜻하기 때문에 우선 깨달아야 부처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에서 부처님이 출현하셨다고 봐야 되겠죠.

중생의 입장에서 처음 부처님이 출현한 곳

중생의 입장에서는 누군가 깨달아서 부처가 되었다고 해도 설법을 해주지 않으면 부처가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중생의 입장에서는 부처님이 처음 설법을 하신 사르나트에서부터 부처가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생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신 분은 이곳 사르나트에 처음 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성지순례를 사르나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르나트가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서 부처님이 첫 설법을 하셨다는 점도 있지만, 머리를 기르고 집에서 지내면서도 수행을 하는 재가수행자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생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첫 재가수행자가 바로 야사 비구의 아버지와 어머니였습니다.

불법승 삼보가 성립되고, 재가수행자가 처음으로 나온 곳이 사르나트입니다. 남자 재가수행자인 우바새는 야사 비구의 아버지인 구리가 장자가 처음이었고, 여자 재가수행자인 우바이는 야사 비구의 어머니와 아내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이곳 사르나트는 깊은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이곳에서 야사 비구의 친구 55명을 교화했습니다. 야사를 포함해서 바라나시 출신의 친구들 네 명이 야사를 찾으러 왔다가 부처님께 귀의해서 출가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인도에는 300여 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여러 나라에 있던 친구들 50명이 야사와 다른 친구들이 잘못된 줄 알고 찾아왔다가 그들도 출가해서 총 55명이 출가를 하게 됩니다. 부처님이 처음 교화한 다섯 비구와 함께 55명이 출가를 했으니 부처님까지 합하면 전부 61명의 깨달은 사람이 나온 겁니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교화하시면서 이렇게 전법 선언을 하셨죠.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너희들도 해탈을 얻었다. 이제 전법을 길을 떠나라’

야사 비구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처럼 여러분도 재가수행자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처음 삼귀의 오계가 나온 의미를 잘 새겨야 합니다. 삼귀의 오계는 출가수행자를 위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하는 재가수행자들을 위해 나온 것이 삼귀의 오계입니다.

열반(涅槃)이라는 말은 괴로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번뇌도 없고, 슬픔도 없고, 미움도 없고, 원망도 없고, 걱정도 없고, 초조도 없고, 아무런 괴로울 것이 없는 경지가 열반입니다. 그렇다고 뭔가 기분이 들뜬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경지를 부처님 당시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러한 상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이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거나 그러한 상태에 머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이 있는 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법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

부처님께서는 이 법을 나눌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법을 나눌 도반을 찾아서 이곳 사르나트까지 멀리 오신 겁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부처님처럼 일체를 깨달은 사람이면 온갖 사람들이 앞을 다퉈서 부처님을 찾아가야 할 것 같지만, 거꾸로 부처님께서 법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들을 찾고 찾아서 이곳까지 오신 겁니다.

6년 동안 함께 수행한 친구들마저도 당시에는 고행주의라는 관념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행주의에서는 몸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몸을 씻으면 안 되고, 둘째,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고, 셋째, 앉고 눕는 자리를 골라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중도를 발견하시고 강가에서 목욕을 한 다음 유미죽을 먹고 목동에게 풀을 한 아름 얻어서 깔고 앉아서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부처님이 타락했고 수행을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뜻한 물에 온갖 향료를 뿌리고 목욕을 한 것도 아니고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씻었을 뿐이고, 또 온갖 음식을 탐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오랫동안 단식을 해서 미음을 먹었을 뿐이고, 목동이 베고 있는 흔한 풀 한 아름을 얻어서 볏짚처럼 깔고 앉은 것일 뿐인데, 이 역시도 당시 고행주의자의 기준에서 볼 때는 몸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완전한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몸의 쾌락을 따라가는 것도 해탈의 길이 아니지만, 동시에 몸을 학대하는 것도 해탈의 길이 아니라고 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는 중도의 길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서 자는지가 아니라 괴로움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왜 괴로움이 생기는지, 그 원인을 탐구하고 규명해서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해탈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탈의 길에 대해서도 다시 상을 짓고 집착해서 괴로움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는 괴로움에 들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여덟 가지 바른 관점을 일상적으로 늘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팔정도입니다.

몸과 마음을 늘 편안하게 하는 가운데 들뜨거나 긴장하지 않도록 하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을 알아차려서 거기에 끄달리지 않도록 하고, 그래서 말도 함부로 하지 않고, 행동도 함부로 하지 않고, 일상생활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럴 때 바른 지혜가 열리고 바른 사유가 일어납니다. 그래야 다시는 괴로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또 설령 순간적으로 집착해서 괴로움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금방 알아차리고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순간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슬픔이 생기거나, 근심이나 걱정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금방 ‘내가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 처음으로 열린 날

중도, 사성제, 팔정도를 듣고 다섯 비구 가운데 콘단야는 단박에 어둠의 그림자가 걷혔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미묘한 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콘단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절을 했습니다. 스승의 예를 취한 거죠. 그때 부처님께서는 ‘오, 콘단냐가 깨달았다, 드디어 콘단냐가 이 법을 이해했다’라고 하며 본인이 깨달았을 때보다 더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 법을 부처님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네 사람은 친구지간에 왜 일어나서 절을 하는지 어리둥절하게 생각했지만 3일 동안 법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고, 의문이 생기면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면서 두 명이 더 깨닫게 되고, 또 3일이 지나면서 두 명이 더 깨달음을 얻어서 일주일 만에 다섯 명의 깨달은 이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탈의 길, 자유의 길,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이 세상에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전생 타령을 하든, 하늘의 신 타령을 하든, 사주팔자 타령을 하든, 내 삶의 괴로움이 어떠한 이유로든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운명론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러니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힌두교에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강가강에 가서 목욕을 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신에게 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괴로움이 어떠한 연유로 발생하는 것인지 그 원인을 밝혀내서 그 원인을 소멸시키면 괴로움은 사라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미묘한 법은 이곳 사르나트에서 시작돼서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비구는 그래도 오랫동안 수행을 많이 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야사는 젊은이였고, 요즘 말로 하면 쾌락과 오욕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부처님의 법문을 한 번 듣고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쾌락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인연으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재가수행자로서 해탈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법을 이해하는 수행자가 되는 그 길이 이곳 사르나트에서 처음 시작된 것입니다.

이곳은 부처님이 법륜의 바퀴를 굴리고 법의 나팔을 높이 부신 곳입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우리 모두가 발원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이 법을 만나서 더 이상 남을 탓하지 않고, 하늘을 탓하지 않고, 전생을 탓하지 않고, 사주팔자를 탓하지 않고, 세상을 탓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괴로움이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을 해보자.’

부처님이 법의 나팔을 분 이곳 사르나트에서 우리 또한 세계 전법을 위해서 법의 나팔을 불어봅시다. 우리도 구리가 장자와 그 부인의 예를 따라서 삼귀의 오계를 받고, 부처님께서 60명의 제자들에게 전법 선언을 하셨듯이 오늘 우리는 1250명의 대중이 모여서 당시 부처님과 제자들처럼 이 법을 널리 전할 것을 선언해 봅시다.

천이백 제대아라한이 되어 떠나는 순례

앞으로 15일 동안 비록 아침에는 추워서 덜덜 떨고, 낮에는 더위에 땀을 흘리고,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잠을 못 자서 졸리더라도, 마음은 그에 따라서 같이 놀아나지 맙시다. 마음만은 초롱초롱하게 유지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처님 당시 천이백 제대아라한이 되어 순례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관점을 이렇게 갖고 순례를 하면 이 순례가 곧 수행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자꾸 몸에 집착하면 불평을 하게 되고, 여기에 온 것이 후회스럽고, 법륜스님을 존경한다고 해놓고는 결국은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서로 원수가 되지 말고, 좋은 도반이 되도록 여러분도 저도 함께 마음자리를 잘 관리하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유튜브로 생방송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한국에서 시청하시는 분들도 순례 대중과 같은 마음을 가져주실 것을 당부하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1250명의 대중이 다 함께 전법 선언문을 낭독하고, 합창단의 선창으로 보현행원을 함께 부른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축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저희 정토행자 1250명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출발하며, 이곳 사르나트 녹야정사 다메크스투파 앞에서 발원하며 맹세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 야사와 야사 친구들, 야사의 어머니, 아버지, 부인 등을 교화하셨듯이 우리 또한 우리 가족 형제 친지들을 이 좋은 법으로 인도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60명의 아라한들에게 ‘자, 이제 전법의 길을 떠나거라’ 하고 선언하셨듯이 오늘 우리 1250 대중은 그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전 세계로 전법할 것을 발원합니다.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우리 또한 전국 방방곡곡,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로, 괴로움이 있는 곳에 저희들이 찾아가 법을 전할 것을 발원합니다.

이와 같은 발원 공덕으로 저희가 지금까지 지어온 모든 업장 녹아나고, 앞으로 수행정진하고 전법할 수 있도록, 제불 보살님께서는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룡팔부 신중님들께서는 저희의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

노란 가사를 걸친 1250명의 순례자들은 삼귀의를 빨리어로 간절한 마음으로 염송 하면서 발우를 들고 탑돌이를 했습니다.

붓당 사라낭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담망 사라낭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상강 사라낭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다메크 스투파 앞을 지나 다르마라지크 스투파를 돌고, 아쇼카 석주를 지나, 물간다꾸띠를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사르나트 전체가 노란 가사 물결로 출렁거렸습니다.






마지막으로 1250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도 부처님 같이!”

한 장의 사진 속에 1250명이 모두 담겼습니다.


스님은 B팀 참가자들을 위해 차량별로 기념사진을 찍어준 후 사르나트를 나왔습니다.

성지순례의 첫 번째 일정인 바라나시 프로그램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곧바로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수자타 아카데미로 향했습니다.

A팀 참가자들이 탄 버스는 오후 3시 30분에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강가강을 건너고, 7시간 반 동안 도로 위를 달려 11시에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인도JTS 스태프들이 순례단을 마중해 주고, 공용짐을 나르는 일을 손수 도와주었습니다. 스님도 작업복을 입고 버스에 실린 공용짐을 함께 나른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보드가야로 이동하여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한 후, 오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성지순례 참가자 환영식을 하고, 전정각산과 유영굴을 순례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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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그리고 스님이 1250명에게 가사와 발우를 전했습니다.

“가사와 발우를 드립니다.”

“잘 받았습니다.”

2023-11-12 19:00:11

선덕여왕

괴로움이 있는곳이면 달려가서 전법을 하겠습니다
우리도 부처님 같이~

2023-02-22 19:55:44

이영조

다시 시작입니다.
괴롭지 않은 길의 소중함 앞에 다시 귀의합니다. 고맙습니다.

2023-02-22 13: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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