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23 정초기도 입재식, 한국 출발 ▶ 인도 델리(Delhi) 도착
“어떤 마음으로 한해를 준비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 성지순례를 가기 위해 인도로 출국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인도로 가져갈 짐을 싼 후 오전 10시부터 정초기도 입재식에 참석했습니다. 정토회는 오늘부터 3일 동안 새해를 맞이하고 준비하기 위한 정초기도를 시작합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대중들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정초기도를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설 잘 쇠셨습니까? 3일간 연휴라서 교통도 많이 막힌다고 해요. 그래도 큰 문제나 탈 없이 설 명절이 잘 지나가서 다행입니다.

정초기도를 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정초기도를 해왔습니다 한 해를 맞으면서 올 한 해도 특별한 사고 없이 잘 지나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무사하면 다행이다’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특별히 무슨 욕심을 내서 뭘 해달라는 기도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정초기도는 불교의 가르침과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지금 욕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지위를 높여주세요.’
‘성적은 안 되지만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세요.’

이렇게 욕심으로 하는 기도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개인은 욕망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정토회의 이름으로 그런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정토회의 방침입니다.

그런데 옛날 우리 조상들, 특히 일반 서민들이 했던 기도는 그런 욕망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또 나의 바람이 성취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재앙이 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타인의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는’ 기도가 아니었다는 뜻이에요. 나의 편안함이 다른 사람의 편안함과 연결되고, 다른 사람의 편안함이 나의 편안함과 함께하는 내용의 기도였습니다. 이런 기도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상 대대로 해온 이 정초기도를 불교 안에서도 수용해 왔고, 정토회에서도 정초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초기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 기복적인 것은 아니냐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만, 말씀드렸듯이 정초기도는 기복적인 내용의 기도는 아닙니다. 한 해를 준비하며 조심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전통이고,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좋은 문화입니다. 즉 미풍양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정토회에서 계승해도 담마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았어요. 이런 원칙에 따라 정토회에서는 정초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한해를 준비해야 할까요?

정초기도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나의 말과 행동, 생각에 부족한 게 있었다면 올 한 해는 그 부족한 것을 보충하겠다고 마음먹는 시간이에요.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아, 이러이러한 것은 좀 잘못됐구나’라고 하는 게 있다면 올 한 해는 그 점을 개선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겠죠. 또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이것은 그래도 비교적 잘한 일이다’라는 게 있다면 작년처럼 올 한 해도 그 점을 계승해서 계속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정초기도입니다.

원래 우리가 열(10)이라는 일을 하려면 적어도 하나(1) 이상은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려면 준비가 반이다’라는 뜻의 옛 속담이 있습니다. 이걸 두고 ‘시작이 반이다’ 이렇게 표현하죠. 절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체 일을 성사시키는 데 준비가 10% 이상의 영향력은 미치게 된다는 뜻이에요.

정초에 3일간 정성을 기울여서 기도를 하는 것에도 이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원래는 일주일이나 보름 또는 한 달을 해야 해요. 현실적으로 그렇게까지는 하기 어렵죠. 그래서 적어도 3일은 아무리 바쁘고 급한 일이 생기더라도 한 해를 잘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갖자는 거예요. 이런 자세로 정초기도에 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초기도를 하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부족한 것은 올 한 해에 보완을 해나가자. 잘못한 게 있으면 참회하고 개선을 해나가자. 또 잘한 게 있으면 계승을 해서 올해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한 해를 맞이해 보자’ 이런 원을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각종 재난과 재앙, 또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 순간에는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굉장히 큰일이지만 지나 놓고 보면 그리 큰일이 아니에요.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난 뒤에 보면 별일이 아니고, 10년이 지난 뒤에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 일도 아닌 줄을 굳이 그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알 게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난 당시에 바로 알 수 있다면, 지금처럼 우리가 많은 시간을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허비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올해는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아, 이것도 지나 놓고 보면 별일 아니다’ 이렇게 담담하게 맞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흥분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바다에는 끊임없이 파도가 칩니다. 거센 파도가 칠 때도 있고, 좀 잔잔한 파도가 칠 때도 있습니다. 거친 파도에 비해서 작은 파도는 상대적으로 잔잔해 보일 뿐이지, 파도가 아예 치지 않을 때는 없습니다. 작은 파도는 우리가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거나 고기잡이를 하는 데 그리 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친 파도는 우리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어요.

우리의 마음도 저 바다처럼 늘 경계 따라 오르락내리락 파도가 칩니다. 물론 파도가 안 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마음의 파도가 치지 않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파도가 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바다에 가서 수영을 즐길 수도 없고, 고기도 잡을 수가 없어요. 그처럼 ‘내 마음에 파도가 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에 집착하면 늘 ‘나는 아직도 수행이 부족하구나’ 이런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크든 작든 일상 속에서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지금까지 마음의 파도가 격랑을 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파도가 좀 잔잔해졌잖아요. 잔잔한 파도에서는 일상을 영위할 수 있어요. 그러니 마음에 아예 파도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둥 너무 결벽증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마음에 일어나는 울렁거림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정도면 괜찮다’ 이렇게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여러분의 현실 속에서 부처님의 법의 가피가 우선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정도에 만족하라는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그걸 바탕으로 점점 마음에 파도가 덜 일어나도록 꾸준히 수행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해요.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경계 따라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가능한 것은 그 격랑의 정도와 횟수가 줄어들고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지도록 조금씩 바꾸어가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 우리가 한 발 한 발 우리의 삶을 개선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올해는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당하든 마음의 파도가 덜 일어나도록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먼 미래나 죽은 뒤가 아니라 지금 바로 고요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준비를 하는 것이 정초기도예요. 여러분들이 간절히 이렇게 3일을 기도함으로 해서 ‘올 한 해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는 거기에 적절히 대응을 하리라’ 이런 마음가짐을 다지는 겁니다. 물론 큰일이 아예 안 일어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죠. 그러나 ‘큰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끄떡없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진정한 수행입니다. 전통적인 기도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것이라면, 수행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거기에 크게 번뇌를 느끼지 않겠다’라는 관점입니다. 이렇게 정초기도에는 전통과 수행이 절반씩 섞여 있습니다. 따라서 둘을 합치면 첫째,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적게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고, 둘째, 수행적 관점에 서서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잘 극복해 나가리라’라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다짐이 바로 정토회에서 하는 정초기도의 내용입니다.

간절하게 기도하기

이런 자세로 3일간 간절하게 기도를 해봅니다. 간절하다는 것은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간절하다’ 이 말은 꼭 무슨 욕구가 있을 때만 쓰는 표현이 아니에요. 마음을 한 곳에 오롯이 모은다는 뜻입니다. 명상을 할 때는 호흡 알아차림에 집중을 하고, 염불을 한다면 염불 소리에 집중을 하고, 바라는 원(願)이 있다면 자기의 원에 마음을 오롯이 모아서 집중을 하는 거예요. 산만하게 정신없이 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집중해서 기도하는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옛날부터 ‘간절하면 하늘이 감응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 말처럼, 간절하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해결하지 못할 일이 해결되거나 재앙이 막아지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기도의 기적은 간절함에 비례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간절함은 본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저절로 간절해지는데, 보통 편안하면 간절해지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에 집중이 잘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수행으로서의 정초기도에는 두 가지 뜻이 있어요. 하나는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번뇌나 고뇌 또는 재앙을 소멸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래의 재앙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미래의 재앙을 소멸시킨다는 말은 그러한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어나더라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재앙을 없앤다’라는 말에 담긴 참 의미예요. 미래의 재앙을 없앤다는 것은 기도를 해서 미래의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마음에 깨어있어서 ‘재앙’이라고 할 만한 일이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 없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정초기도의 중심 내용입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여 여러분이 올 한 해도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여러분이 잘 받아내시기를 기원하며 정초기도를 함께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인도로 갑니다. 내일은 인도에서 함께 기도를 하고, 모레는 정초기도 회향 법회를 인도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법문이 끝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짐을 싣고 차에 올라타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대중은 정초기도 입재 법문을 듣고 나서 무변심 법사님의 집전과 염불로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

11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12시 30분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붙인 후 출국 수속 절차를 밟고 오후 2시 20분에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신간 책 원고 교정을 쉼 없이 보았습니다. 긴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원고를 보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원고 교정을 보는 동안 비행기 창밖으로 구름 위에서 저무는 해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을 출발한 비행기는 9시간 동안 4600km를 비행하여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 30분에 델리(Delhi)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도 현지 시간으로 저녁 8시였습니다. 1400년 전 혜초 스님과 겸익 스님이 배를 타거나 걸어서 인도로 갔던 그 거리를 하루 만에 단숨에 온 것입니다.

이번 인도성지순례에는 김제동 씨도 함께 참가했습니다. 입국 수속을 밟고 수하물을 찾는데, 김제동 씨가 무거운 짐들을 많이 운반해 주었습니다.


“저는 짐 들어주는 걸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웃음)

공항 출구로 나오자 보광 법사님을 비롯하여 인도에 먼저 도착해 있던 법사님들이 스님 일행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스님!”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로 이동하는 실무자들은 곧바로 델리 기차역으로 향하고, 스님 일행은 모두 델리 공항 인근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나자 인도 현지 시간으로 밤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2시였습니다.


내일은 델리 숙소에서 밥솥으로 아침밥을 해서 먹은 후 법사님들과 하루 종일 인도 성지순례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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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3-12-05 07:34:49

드림하이

‘아, 이것도 지나 놓고 보면 별일 아니다’ 이렇게 담담하게 맞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흥분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2023-11-12 06:42:08

민명수

정초기도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02-08 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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