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9.9. 다카 ▶ 델리 ▶ 한국
“싯다르타 태자가 발견한 희망”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카 공항을 출발해 델리로 이동한 다음 한국을 향해 출국했습니다.

다카 시내에 숙소를 잡고 하룻밤을 머문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에 숙소에서 천일결사 기도 법문을 녹화했습니다. 내일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이 있지만, 그 시간에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이동 중이기 때문에 오늘 미리 법문을 녹화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카메라를 향해 앉아 어제까지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침 정진 잘하셨습니까? 저는 지금 방글라데시에 있습니다. 어제 방글라데시 남쪽 콕스 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해서 가스 스토브 10만 개를 지원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태풍 힌남노로 인한 피해가 많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 두북 수련원도 물에 잠겨서 창고에 보관하던 물품들과 열심히 농사지은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피해는 우리가 노력을 하면 복구가 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곳 로힝야 난민들은 약 94만여 명이 좁은 난민촌에 밀집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미얀마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도 없습니다. 방글라데시 정부도 임시로 보호는 하고 있지만 이들의 정착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갑갑한 상황입니다.

잘 알다시피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을 탄압해서 생명에 위협을 느낀 약 70만 명이 단기간에 방글라데시로 넘어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생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주변 산에서 땔감을 구하다 보니 순식간에 산림이 황폐화되었고, 특히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땔감을 구하러 가다 산속에서 성추행이나 인신매매를 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난민들에게 가스를 연료로 공급하면 이런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으나 UN은 식량 지원만으로도 벅찬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JTS가 가스 스토브를 지원하면 가스는 UN이 지원하겠다고 WFP(세계식량기구)로부터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JTS가 로힝야 난민촌에 가스 스토브 10만 개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JTS는 이미 2019년에 로힝야 난민들을 위해서 가스버너 10만 개를 생산 지원했습니다. 그 후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난민들이 사용법을 잘 몰라서 고장이 나기도 했고, 25만 명 이상 추가로 유입된 난민이 있어서 이번에는 UNHCR에서 가스 스토브 20만 개를 추가로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와 협력해서 반반씩 지원을 해보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JTS에서 10만개를 지원함으로 인해 절반의 수요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난민촌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주민들도 너무 고맙다고 했고, UN 담당 직원들도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감사 인사는 제가 받았지만, 모두 여러분들이 후원금을 내 주신 덕분입니다. JTS는 큰 단체는 아니지만 여러분이 아무 조건 없이 보시한 후원금의 대부분을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쓰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까지 스님의 안부를 전한 후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한 법문을 이어나갔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읽은 경전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시기 전 왕자 시절에 농경제에 참여해서 세상의 모순을 보고 큰 의문을 품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함께 사는 길은 없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세상을 경험하면서 이 모순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탐구했습니다. 늙어서 보호받지 못하고, 병 들어서 치료받지 못하고, 죽은 후에도 시신이 제대로 수습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중생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마치 낭떠러지에서 밧줄에 매달린 사람이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맛에 잠시 취해서 죽음의 위협을 잊듯이 쾌락에 빠져서 삶의 본질적인 고통을 외면하고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다가 북쪽 문으로 나가서 출가 수행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를 통해서 새로운 길의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수행자의 대열에 합류해서 중생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겠다는 원을 세웁니다. 오늘 경전은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북쪽 문으로 나가서 한 수행자를 만났는데, 아주 남루한 옷을 입고 몸은 바싹 말라있었습니다. 겉모습은 거지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그는 자세가 당당하고 두 눈의 눈빛이 맑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시자에게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시종은 태자에게 말했다.

"태자여, 저 사람은 사문이라 하며, 출가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악한 법을 떠나서 선한 법을 행하고,
욕망으로부터 모든 근(根)과 자신의 집착을 잘 조복하며,
모든 두려움을 없앴으며,
일체 모든 중생에게
평등행과 보시행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일체 모든 중생에게 큰 자비를 내어
모든 중생을 공포로부터 구제하며,
모든 중생을 살해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을 잘 보호하고자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사람을 출가 사문이라 하나이다."

당시는 계급사회여서 낮은 계급을 천대하고, 또 성차별 사회라서 여성을 천대하고,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이렇게 사람을 인종적으로나 성별로나 계급으로나 또 다른 이유로 차별했어요. 이런 사회에서 출가사문들은 일체 사람을 평등하게 봤다는 거예요. 또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해치고,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이 손해 나는 것도 외면하는 세상에서, 출가사문은 그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그들에게 베풀고, 그들과 함께하려는 생각을 갖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이 얘기를 들으니까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내가 그동안에 길을 못 찾아서 많이도 헤맸는데 여기에 해결할 길이 있구나. 나도 출가사문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발원을 했습니다. 물론 그 발원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서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어쨌든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의 마음을 처음 내는 장면입니다.

오늘 우리도 재산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출가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가정생활에 불만, 먹고 있고 자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어야 해요. 뭘 먹어도 먹고 뭘 입어도 입고 어디 자도 자는 거잖아요. 그리고 가까이에 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제 난민촌에 가서 ‘가장 어려운 게 뭐냐’ 이렇게 여성 십여 명에게 물어보니 첫 번째가 아이들 교육이라고 했습니다. 교육이 안 되고 있다는 했어요. 부모의 마음이란 이렇습니다. 자기가 먹고 입고 사는 게 힘든 것은 힘들어도 견딜 수가 있지만, 자녀들이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부모로서 참 견디기 어렵죠. 그래서 첫 번째로 꼽은 게 아이들의 교육이 문제라는 거예요. 맞는 말입니다. 불법 체류자든, 종교가 뭐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설령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자녀인 아이들은 제때 배울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이게 인류애고 인도적인 입장이 아닐까요?

두 번째로 생활의 어려움을 꼽았습니다. 난민촌에 전기가 없어서 밤길이 무섭다는 것을 비롯해 이것저것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중 제가 특히 마음이 아팠던 점은 방이 딱 하나여서 생기는 문제였어요. 방 하나, 대나무 기둥에 비닐을 씌운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생활하려니 일단 너무너무 덥습니다. 지금은 가스스토브를 쓰게 되면서 굉장히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예전에는 그 방 옆에 붙어 있는 부엌에서 불을 피웠으니 더 덥고 밥을 하니까 연기도 많이 났어요. 그런 방 한 칸짜리 집에 자녀들까지 네다섯 명인 한 가족이 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이 사춘기가 지나 어른이 될 때까지 여러 명이 한 방에서 살아야 하는데, 부모들이 부부관계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으니 아이들이 성적인 문제에 조기 노출된다는 문제가 생겨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게 난감하다고 해요. 또 가정 안에서 성추행 같은 문제도 많이 발생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크면 방을 좀 분리해서 사용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고민을 들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난민촌 상황이 설령 자녀가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방을 내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래요. ‘피난 온 난민들에게 뭐 그런 것까지 해줘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머무는 기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장기화되다 보니 이런 문제도 발생합니다. 그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그 어려움에 너무나 공감이 되지만 지금으로선 해결책도 마땅치가 않아요. 이 문제뿐만 아니라 뭐든지 해결책이 마땅치 않은 것이 난민촌의 상황입니다.

경제 활동의 제약도 문제입니다. 약간이나마 수입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도 했어요. 하지만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일단 난민들이 난민촌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있어요. 즉 외부에 나가서 노동하거나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일절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난민촌에서 생산된 물건은 일절 바깥으로 반출하거나 외부 판매를 할 수 없어요. 수공예품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난민촌 내에서 만든 것은 무조건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사고팔아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돈을 주고받는다 하더라도 그건 결국은 그 안에 있는 돈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새로운 소득을 창출해 주지는 못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나마 수입원이 될 만한 유일한 일은 영어를 좀 배워서 UN 직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용돈 수준의 돈을 조금 받는 거예요. 우리로 말하자면 공무원이 되는 한 가지 길밖에 없는 셈이죠.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데도 방법이 없다고 해요. 그 여성들에게 피난오기 전 생활을 물어봤더니 소도 몇 마리가 있었고 염소도 몇 마리가 있었고 땅도 있었다고 해요. 이렇게 평화롭게 살다가 온 사람, 즉 잘 살다 온 사람일수록 난민촌 생활을 더 견디기 어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말씀드리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출가의 마음을 갖는다면, 또 이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면 첫째, 인생에 불만이 사라집니다. 내 입장에서는 내 불만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느낄지 몰라도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보면 다 욕망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첫째, 불만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씀씀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절약한다면 이처럼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난민촌 아이들에게 제가 ‘뭐가 필요하니?’라고 물었더니 한 남자애가 ‘축구공이요!’라고 대답했어요. 공터에 있으면 아무런 놀잇감도 없으니까 공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난민촌에 캠프가 33개 있는데, 사람 수가 많으면 한 캠프당 인원이 2만 명 정도 됩니다. 그중 절반이 아이들이에요. 만 명에 공 하나면 당연히 가지고 놀기가 좀 어렵겠죠. (스님 웃음) 그래서 제가 ‘오케이’라고 말은 했는데, 이게 공 하나만 사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전 캠프에 몇 개씩 돌아가도록 축구공을 사줘야 해서 그렇게 사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축구공 하나에 비하면 많은 수지만,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내면 금방 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해요. 이처럼 우리가 조그마한 것만 해도 그들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의 경전 내용은 태자 시절 부처님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희망을 가졌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살면서 헤매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아! 이런 관점을 갖고 살아가면 되겠구나’ 하는 희망을 갖지 않습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은 깜깜한 밤에 등불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당면한 어려움이 크다 해도 희망이 있으면 극복해 낼 수 있어요. 부처님의 법은 우리 자신에게도 희망이고, 고통받는 중생에게도 우리가 그들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길이에요. 그러니 여러분께서 희망을 가지시고 또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 토요일 아침 기도도 제가 필리핀에 있어서 아예 한국에서는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음 주에는 필리핀에서 여러분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인도JTS 활동가들과 올 겨울 인도 성지순례 준비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UNHCR 직원 분들에게 이번 방문 일정을 꼼꼼하게 준비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숙소를 나왔습니다.


다카 공항에 도착한 스님 일행은 12시 10분 비행기로 방글라데시를 출발했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비행을 한 후 2시 10분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도JTS 활동가 한 분이 김밥을 준비해 놓았다고 해서 공항 밖으로 나가 김밥을 받은 후 다시 델리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오후 4시에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탑승구 근처에 자리를 잡고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될 때까지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았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과 한국에서 온 여러 가지 보고 문서를 점검했습니다.

비행기는 저녁 8시 30분에 델리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의 강행군을 마치고 비행기 안에서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 10분에 한국 인천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서초구청 코로나 선별진료소로 이동해 PCR 검사를 받은 후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하고, 저녁 7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JTS 민다나오 사업장을 향해 출국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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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스님만나서 희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9-20 17:51:03

양윤건

부처님, 법, 스님께 귀의합니다

2022-09-20 10:31:56

김은희

스님을 감사합니다. 건강도 챙기시길...

2022-09-19 12: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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