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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울력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먼저 산밑밭으로 가서 채소를 수확했습니다.
채소를 수확하고 마을 입구로 갔습니다. 스님이 채소를 수확하는 사이 행자들이 마을 입구에서 예초기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도 풀이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매년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초를 하고 풀을 뽑는데 올해는 스님과 행자들이 하기로 했습니다.
논을 둘러보러 나온 마을 어르신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님. 오늘은 뭐 하세요?”
“아, 마을 입구를 예초하려고요.”
“아이고, 이건 마을 울력 일감인데...”
“요즘 저희 봉사자들이 많이 와서 마을 정자가 있는 느티나무 아래를 많이 사용했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마을에 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요.”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희가 마땅히 해야지요.”
스님은 낫을 들고 길가로 갔습니다. 가장자리에 난 풀은 예초기로 벨 수 있었지만 철쭉 아래와 사이사이 풀은 손으로 직접 뽑아야 했습니다. 오늘도 인도, 필리핀 JTS 파견 활동가들이 함께 울력을 했습니다.
“이 아래와 사이사이 풀을 꼼꼼히 뽑아주세요. 이왕 하는 거 아주 깨끗하게 해 놓아야지요.”
“네!”
스님과 행자님들은 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풀을 매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철쭉 뒤편으로도 가보았습니다.
“아이고, 여긴 풀이 더 많네. 행자님들은 안쪽에서 하세요. 괜히 하다 떨어져서 다치지 말고요.”(웃음)
스님은 기슭에 매달려서 풀을 뽑다가 아예 수로 아래로 내려가서 본격적으로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매년 울력을 해도 다들 나이가 많으시니까 뒤쪽까지는 하기 어려우셨을 거예요. 오늘 하는 김에 같이 해야겠어요.”
스님은 팔을 높이 들고 풀을 뽑았습니다.
팔을 높이 들고 풀을 뽑으니 어깨와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의자를 가져와 계속 풀을 뽑았습니다.
길 위로 흩어진 풀 조각은 약치는 기계를 이용해서 한쪽에 모았습니다.
아홉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쪽에 풀을 모을 테니까 트럭에 실어주세요!”
풀 조각을 모으는 동안 묘당 법사님은 철쭉나무 위쪽을 깔끔하게 다듬어놓았습니다.
“아이구, 시원하다!”
울력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이 시원해져 있었습니다.
예초 작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무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해거름에 날이 조금 선선해지자 스님은 다시 산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두 명의 행자들과 함께 오후 5시부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전에 공동체 법사단이 와서 산윗밭에 풀 뽑기를 한 차례 하고 갔지만, 다시 풀이 가득 자라 있었습니다.
“다시 풀밭이 되어 버렸네요. 모란을 심어놓은 것은 보이지도 않아요.” (웃음)
풀이 무섭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먼저 사면에 있는 칡넝쿨을 낫으로 쳐서 제거했습니다. 칡넝쿨이 계속 자라면 밭까지 밀고 들어올 기세였습니다.
행자들은 계속 아랫단의 사면에서 넝쿨을 제거하도록 하고, 스님은 도라지와 모란이 심어져 있는 윗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윗단의 사면도 온통 칡넝쿨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옛날에 배고플 때는 산에서 칡넝쿨의 뿌리를 캐서 먹었는데...”
사면에서 밭을 향해 뻗어나가는 칡넝쿨만 다 걷어낸 후 다시 아랫단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랫단에는 잡초 매트를 깔아 두었음에도 풀이 잡초 매트를 뚫고 올라왔습니다.
“여기는 예초기를 돌리거나 낫으로 베면 매트가 상하니까 손으로 뽑아야겠어요.”
잡초 매트가 상하지 않도록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았습니다.
“아이고, 더워라! 정말 무덥네요.”
스님은 땀을 흠뻑 흘렸습니다. 행자들도 사면에 있는 넝쿨을 모두 제거하고 아랫단 입구에 있는 풀을 함께 뽑았습니다.
“이제 일을 마칩시다. 너무 더워서 무리하면 안 돼요.”
향존 법사님은 남아서 깻잎을 더 뜯어서 내려오기로 하고, 스님과 행자들은 울력을 끝내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두북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트럭에 쌀과 과일을 싣는 일을 했습니다. 내일 오전에 지체부자유인 거주 시설인 애광원에 농산물을 전달해 주러 가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쌀과 수박을 트럭에 가득 싣고 나니 트럭의 바퀴가 아래로 툭 꺼졌습니다.
“수고했어요.”
해가 저물고 저녁 8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불교대학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는 5개월이 길게 느껴졌는데 어느덧 강의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불교와 평화’를 주제로 마지막 강의를 하고, 다음 주부터는 일주일 간 방학에 들어갑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수업을 잘 따라와 준 학생들을 격려한 후 오늘 주제에 대한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지난달에 ‘불교와 복지’ 특강에서 복지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존권의 보장과 더불어 행복 추구권에 대한 보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존권만 보장되면 인간의 삶이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개발도상국에 사는 사람들과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을 비교해보면 경제적 풍요는 큰 차이가 있지만, 절대빈곤 국가가 아닌 이상은 개인의 행복도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늘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갈등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이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갈등입니다. 둘째, 자기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는 데서 오는 갈등입니다. 셋째, 문화적 차별, 종교적 믿음, 정치적 이념 등 여러 주장들의 충돌로 인해 생기는 갈등입니다. 이런 갈등으로 인해서 무력 충돌이 생기면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여러 국가가 연합해서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국내에서도 세력 간의 충돌로 인한 내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표출되는 갈등 이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갈등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억압받고 다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은 우리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갈등이 해소된 상태를 평화라고 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불교에서 평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다루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출가란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는 것이지 세속을 외면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부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계급 차별을 부정하고, 성차별을 반대하고, 전쟁이 일어날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평화를 주선하였습니다. 물론 괴로워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주로 하셨지만,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일도 평생 하셨어요.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 수업의 ‘불교와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현재 국제정세를 보면 중동에서의 전쟁 위험이 가장 큽니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나토(NATO)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구소련권에서의 전쟁 위험도 매우 높아졌어요. 그다음에 세 번째로 전쟁 위험이 높은 곳이 한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남한과 북한 간의 갈등,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 한·미·일과 북·중·러 사이에 대립 구도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세계 4대 강대국이 모두 결집된 곳이기 때문에 한 번 전쟁이 났다 하면 엄청난 피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또한 한반도는 내년이면 휴전 협정을 맺은 지 70년이 됩니다. 아직도 전쟁이 일시적으로 멈춘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별도의 선전포고 없이 내일이라도 바로 전쟁을 개시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얼마 전에 한 탈북민 단체에서 북한에 풍선을 보내면서 언론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를 외쳤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 풍선에 코로나 바이러스균을 실어서 보낸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풍선을 띄우는 행위는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을 완화하기 위한 남북 기본합의에 어긋납니다. 그런데 자유라는 이름으로 남한에서 풍선을 띄웠을 때 북한에서 만약 그 풍선에 포를 쏜다면, 현재 우리 정부에서는 즉각 대응해서 사격을 하도록 지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연평도 해전과 같은 무력충돌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우리가 놓여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한미 군사훈련을 하면서 엄청난 폭격기와 세계 최신 무기, 항공모함이 한반도에 포진합니다.
북한 역시 거의 전시상태에 준할 정도로 무기와 군사력을 확보해두었어요. 이렇게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우리는 아무 감각이 없는 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해서 충돌이 일어나면 바로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조건에 있습니다.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코로나 사태와 기후 위기는 모두 뒷전이 되고 우리의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겁니다. 순식간에 주가는 폭락하고, 외국 자본은 빠져나가게 됩니다. 첨단산업 단지들이 폭격을 받게 되면 우리의 산업은 곧바로 파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나라는 농업 기반 국가가 아니라서 식량자급률이 19.3%에 머무는 수준이에요.
요즘 무역 적자가 많이 나는 이유는 에너지 가격과 식량 가격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두 가지의 적자가 전체 무역적자를 가져오는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무역이 다양하게 안정화된 상태가 아니라 한쪽에 편중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에 수출을 못 하게 되면 당장 큰 어려움이 생기게 되어 있고, 일본에서 부품 수입을 못하게 되면 당장 공장이 멈추게 되어 있고, 에너지를 못 가져오면 당장 산업단지가 멈추게 되어 있는 구조예요. 한국 경제는 활성화되어 있는 측면도 있지만, 안정성의 측면에서 굉장히 취약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가 지도자는 외국과의 갈등도, 남북 간의 갈등도, 전쟁의 위험도, 모두 잘 관리해서 이런 우리들의 안정성을 점점 높여 나가야 합니다.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안전하게 나라를 이끌어가야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교관계를 맺을 때 일본하고든 북한하고든 중국하고든 막 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모습은 지지층에게 속 시원함을 안겨줄지는 모르지만, 국가의 현 상태를 진단했을 때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외교관계에 있어서 비굴하게 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만하게 막 성질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굉장히 침착하게 살펴가면서 자기중심을 잡고 국가를 경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면서 굉장히 잘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이런 취약한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을 ‘코리아 리스크’라고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힘사’(비폭력)입니다. 어떤 문제든지 폭력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라는 것이 불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불살생’입니다. 생명 가진 것을 존중하라는 겁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중요시하지 않고 어떤 이념이나 믿음을 위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즉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요.
첫째, 종전 선언을 통해 군사적 충돌은 더 이상 없다는 합의를 이끌어내고, 남북 간에 신뢰를 지켜내는 게 매우 필요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무력 충돌 없이 서로 직통전화를 연결하여 대화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단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에요.
둘째,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해야 합니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서로가 이익을 도모해 나간다는 관점에 서야 하고, 그렇게 서로 신뢰가 구축되고 나면 완전히 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 구체적 내용이 한 국가 두 개의 정부든, 두 개의 별개의 국가든, 일단은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게 필요합니다.
셋째, 경제적인 협력을 통해서 경제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북한이 갖고 있는 노동력과 자원, 남한이 갖고 있는 기술력과 자본, 이 둘이 만나 결합할 경우, 서로만 신뢰할 수 있다면 북한은 새로운 개발 지역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럽연합처럼 하나의 연합을 만들어 나가고,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이런 신뢰 위에 점차적으로 통일 국가로 나아가는 방향을 잡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아무리 통일이 중요해도 평화를 무시하고 통일한다면 엄청난 갈등과 손실이 따르고, 아무리 평화가 중요해도 통일의 희망이 없는 평화는 결국 완전한 두 개의 분단국가로 갈라져 신라와 발해가 그랬듯이 남북국 시대를 열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됐을 때는 결국 우리가 한미일 대 북중러라고 하는 새로운 냉전구도 속에 들어가 강대국의 최일선 무력 충돌 장소로 희생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전쟁은 우리의 미래 국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이 더욱 절실한 겁니다.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쟁은 없고, 교류 협력하고, 경제적 협력을 통해서 상호 신뢰하는, 이런 사실상의 통일을 추구해가는 것이 우리가 현재에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의견 통일입니다. 한반도 평화 문제를 들여다보면 남북 간에도 갈등이 있고, 중국과 미국의 이해관계도 있고, 여러 가지가 상충돼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남한 안에 사는 사람들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볼 거냐’에 대해 크게 양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 안에서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북한은 우리를 침공한 나라이고 나쁜 놈이니까 없애버려야 한다’ 하는 관점에 서 있어요. 나머지 절반은 ‘어쨌든 북한과 협력해서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는 관점에 서 있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두 관점이 왔다 갔다 하고,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지금도 정쟁에 이용되고 있죠. 북송에 대해서도 견해 차이가 나고, 탈북자들에 대해서도 견해 차이가 나고, 인도적 지원을 한다 해도 견해 차이가 납니다. 정책을 막론하고 모든 사안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요. 이처럼 외국인의 간섭보다 국내 의견 통일이 안 되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훨씬 더 큰 걸림돌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사람은 보수 세력이 용인하는 범위 안에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어요. 보수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북관계를 풀어 가면 아무리 진척이 있었다 해도 정권이 바뀌면 다시 원위치가 되어버리니까요. 그래서 남북관계의 개선은 어떻게든 정쟁에 이용하지 않고 여야가 합의한 만큼 진척시키고, 어느 정부가 합의를 했든 그다음 정부는 그 합의 내용을 계승해야 합니다. 이런 원칙이 있다면 통일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안정되게 진행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독일의 예를 보세요. 동방정책(Ostpolitik)을 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진보 정권에 속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보수 정권이 새로 들어섰을 때 다른 건 다 바꾸었지만 대동독 정책만큼은 이전 정권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오히려 인도적 지원은 보수 정권이 훨씬 더 자신 있게 추진할 수 있었어요. 진보 정권은 길을 열긴 했지만 지원에 대한 비판 의견 때문에 충분한 교류를 못한 반면, 보수 정권은 비난받을 염려가 없으니까 훨씬 더 많은 지원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이렇게 해서 결국 독일은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독일과 달리 우리는 지금 내부의 의견 합일이 안 되고 있어요. 보수 정부는 남북 간의 갈등을 부추겨서 정쟁에 이용하려 하고, 진보 정권은 남북 관계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남북관계를 정쟁에 자꾸 이용하기 때문에 설령 한 정권에서 남북 관계에 진척이 있었다고 해도 늘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다시 바꿔 버립니다. 왜냐하면 이전 정부의 정책은 다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전 정권의 국정원장 같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이제는 직접 나서서 원칙을 굳건히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적어도 평화와 통일 문제는 진척이 더디더라도 반드시 여야가 합의해서 가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를 계승한다는 원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박정희 대통령 때 했던 7.4 남북 공동성명도 계승하고, 노태우 대통령이 서명했던 남북 기본합의도 계승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6.15 선언도 계승하고, 노무현 대통령 10.4 선언도 계승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4.27 판문점 선언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겠죠. 그럴 경우 조금 수정을 하더라도 큰 틀에서는 남북 간의 합의를 계승해 가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한반도의 긴장이 도무지 수그러들지 않는 거예요. 주변의 정세가 불안하고 특히 현재의 미중 경쟁은 우리를 굉장히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우리 내부의 정치 세력 간 갈등 때문에 남북문제가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풀려면 우리 국민들이 적어도 남북문제는 좀 더 평화적으로 풀어 나간다는 관점을 갖고 여론을 형성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비교적 여론을 따르는 편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국민 대다수가 어떤 애국적 관점을 갖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편이 갈려 있어요. 상대편이 한 건 다 잘못됐고 우리 편이 한 건 다 잘했다는 생각을 하는 한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지금 남남 갈등이 사실은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정권을 잡으면 꼭 상대에게 보복을 가하는 정치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화해를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이처럼 화해를 시키는 것이 우리의 전통에서는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입니다. 각각의 주장을 잘 듣고, 그것이 꼭 반대되는 게 아님을 알아서 한 차원 위에서 바라본다면, 거기에서 어떤 합의점을 찾을 수 있어요. 화쟁론은 쟁(諍)을 화합(和合)시키는 론(論)입니다. 이것이 곧 중도사상(中道思想)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평화적으로 통일을 한다면, 통일 코리아는 영토 면에서 약 21만 제곱킬로미터가 되고, 영국이나 이탈리아 정도의 경제 규모가 됩니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독일, 이런 나라들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은 세계 7위권 안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오늘날 한류가 세계적으로 많이 퍼져나가고 있죠? K팝만이 아니라 앞으로 한반도 평화를 통한 K민주주의, K환경, 이런 것들도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꿈을 꾼다면 미래의 백 년은 좀 더 희망찬 백 년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 이후 천 년 만에 가져올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새로운 도약이 아닐까요? 천 년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와 상생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정토회 산하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인도적 지원을 위한 여러 단체가 있습니다. 좋은벗들에서는 탈북 난민들을 돕고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고, 탈북 난민들의 한국 내 정착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평화재단에서는 남북 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다양한 연구와 교육 등의 실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국제구호단체인 JTS는 북한 내 많은 주민들이 고통을 겪을 때 인도적 지원을 통해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북한 주민들을 살리는 운동이 정토회 사업의 큰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제는 조금 열린 마음으로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뭐든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도 좀 생각해 주세요. ‘때려라! 죽여라!’ 이런 식으로는 제발 하지 마시고요. 어떤 문제든 좀 평화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북한 주민들이 정말 어려움에 처했다면 이념을 떠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도적 지원을 기꺼이 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2017년처럼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 위기가 온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길거리에 나가야 합니다. 인간 띠 잇기 등을 비롯한 구체적 실천 활동과 캠페인을 통해 ‘전쟁만은 안 된다’라는 우리의 평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필요합니다. 북한 주민을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 캠페인을, 그리고 우리의 민족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 바로 알기 운동을, 이런 것들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우리가 평화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이번 주 수행연습 과제를 내어주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채소를 수확해서 트럭에 싣고 지체부자유인들의 거주 시설인 애광원을 직접 방문하여 전달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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