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14. 천일결사 기도, 전국 법사단 연수
“내가 맡은 역할에 부담이 생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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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전국 법사단 연수가 있는 날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한 가운데 종성,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10-8차 천일결사 독송 경전은 초기불교 경전인 5부 니까야 가운데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쿳다카니까야>의 <테리가타>입니다. <테리가타>에는 총 92명 장로니(長老尼)의 깨달음의 노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이 되면 8차 백일기도가 끝나고 제10차 천일결사 9차 백일기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9,800일부터 9,900일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여러분도 잊지 말고 모두 입재식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방법

오늘 읽은 경전은 ‘백골관’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리석음에 빠지기도 하고, 성내기도 하고, 욕심을 많이 내기도 합니다. 탐욕이 많은 사람, 즉 욕심이 많은 사람은 백골관을 해서 육신이 별 것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이 별 것 아니라는 말은 육신을 하찮게 생각하라거나 학대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동물은 육신을 학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처럼 육신을 지나치게 생각해서 좋은 것을 먹이거나, 좋은 것을 입히거나, 꾸미거나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육신은 오히려 집착하지 않을 때 건강해집니다. 탐욕이 많은 사람은 백골관을 통해 육신이라는 것이 성스럽다고 할 것도 없고 집착할 바도 없다는 걸 확연히 깨달아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화를 잘 내거나 성냄이 강한 사람은 ‘자비관’을 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음을 아는 ‘인연관’을 닦아야 합니다. 산만한 사람은 호흡을 관찰하는 ‘수식관’을 통해 집중력을 키워야 합니다. 오늘 읽은 경전은 이중 ‘백골관’을 통해 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수메다 비구니의 고백입니다.

수메다는 부잣집의 딸이었습니다. 왕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백골관을 통해 쾌락의 무의미함을 자각하여 결혼을 버리고 출가를 하여 수행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당시 비구니 스님들의 원(願)이 얼마나 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비록 왕후라고 하더라도 남자에게 얽매여 살아가는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애완용 동물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귀여움을 받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존재가 아닌 애완용 동물에 불과한 것과 같습니다. 비록 밖에서 썩은 고기를 먹고살더라도 야생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동물에게 더 낫습니다. 그저 사람이 보기에 야생의 동물보다 애완용 동물이 더 나아 보일 뿐입니다. 그런 것처럼 비구니 스님들도 비록 먹는 걸 얻어먹고, 입는 걸 주워 입고, 자는 걸 나무 밑에서 해결하더라도 자유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는 생활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노예의 삶은 거부한 것입니다. 왕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했고, 남자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했고,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특히 수메다 비구니는 왕과 결혼할 정도의 조건을 가진 여인이었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는 데 대한 유혹이 더 컸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도 백골관을 통해 몸에 대한 집착을 탁 내려놓았기 때문에 왕과의 결혼이든 그 누구와의 결혼이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상태가 된 겁니다. 이는 마치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좋은 담배와 나쁜 담배가 있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담배가 고급이든 저급이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과정이 곧 행복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무엇이 어떻게 되면 행복할 텐데’ 이렇게 조건을 내걸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결국 죽는 순간까지 껄떡거리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하는데 결국 한 번도 행복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거예요. 지금 나날이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학생들을 데리고 등산을 간 적이 있습니다.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텐트를 치려고 하는데, 여기저기 나무뿌리도 많고 해서 텐트 칠 자리가 마땅치 않았어요. 게다가 가지고 있는 도구도 별로 없어서 그나마 있는 도구를 가지고 열심히 땅도 고르고 텐트를 쳤는데, 텐트를 다 치고 보니까 시간이 새벽 2시가 되었어요. 날씨도 너무 춥고 배도 고파서 불을 쬐고 음식을 해 먹었어요. 원래는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막상 음식을 다 먹고 나니까 새벽 4시가 되었고 동이 터서 그냥 출발했습니다. 땅을 열심히 고르고 텐트를 치느라 시간을 다 보냈는데 정작 텐트 안에서는 잠을 못 자보고 떠난 거예요. (웃음)

저는 그 일을 떠올리며 늘 제가 인생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행복을 위한 텐트를 죽을 때까지 치다가 정작 행복하지는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인생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텐트 치는 것을 재미로 삼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음 사람에게 텐트 칠 자리를 마련해준다고 관점을 바꾸면 괜찮습니다.

과정이 곧 행복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결과 지향적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많은 고생을 하면 미래에 행복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파랑새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하고 결국 생을 마치게 됩니다. 우리가 매 순간 집착을 놓아버리면 바로 자유롭고 행복한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꿰뚫어 보지는 못하더라도 이치만 어느 정도 파악해도 지금 주어진 조건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삶이 고달파지는 이유

언젠가 허물어질 육신인데 젊으면 어떻고 늙으면 어때요? 그런 점에서 육신을 꿰뚫어 보라는 건 육신 자체를 말한다기보다 육신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삶이 고달파지는 이유는 육신을 지나치게 소중하게 여기는 잘못된 정신작용 때문이에요. 누구에게나 습관, 성질, 성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습관대로, 내 성질대로, 내 성격대로 하겠다는 데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동물에게도 각각의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은 자기 성질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습니다.

수메다 비구니는 출가할 때 백골관을 통해 쾌락과 욕망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왕비가 되는 유혹마저도 하찮게 여기고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먹고, 입고, 자는 것이 부족해도 자유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왕비가 되는 길은 먹고, 입고, 자는 것은 풍요로울지 모르나 그것은 결국 노예의 삶에 불과하다는 걸 꿰뚫어 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수메다 비구니의 고백은 우리에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갈아입고 농사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5월부터는 농사일을 하기 위해 하루 일과를 변경하여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날이 선선할 때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논둑을 예초하기 전에 논둑에 있는 머위를 전부 수확합시다.”

아랫논과 윗논의 사면은 수분이 어느 정도 있는 응달이기 때문에 매년 봄이 되면 머위가 아주 잘 자랍니다. 올해도 잎이 커진 머위가 논둑 사면을 가득 메웠습니다.

“머위는 잎도 먹지만 줄기도 먹을 수 있어요. 낫으로 머위를 쳐서 줄 테니까 잎과 줄기를 분리해서 따로 모아 주세요.”

잎의 경우 4월에 이미 수확을 해서 여러 번 나물무침을 해서 잘 먹었습니다. 머위가 더 커져서 5월이 되면 줄기를 수확해서 먹습니다. 스님은 머위를 낫으로 슥슥 베어서 논둑 위에 가지런하게 놓았습니다. 사면에 가득했던 머위가 스님이 한 번 지나가자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잘라진 머위를 한쪽에 가득 쌓아 놓은 후 다 같이 모여서 낫으로 줄기와 잎을 분리했습니다. 머윗대(줄기)만 컨테이너로 네 박스가 나왔습니다.




“아이고, 오늘 머위 수확을 다 못할 것 같네요. 나머지는 내일 또 와서 수확해 갑시다.”

일단 오늘 수확한 머위만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서 농막으로 옮겼습니다.

손질을 못하고 급하게 담아 온 머위를 농막 안에 펼쳐놓고 부드러운 것과 억센 것을 다시 분류했습니다.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비닐에 담아서 저온 냉장고에 보관합시다.”

대부분 저온 냉장고에 넣어 두고, 오늘 요리해서 먹을 만큼만 챙겨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9시부터는 두북 공동체 대중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원단일체악 원수일체선 원공제중생 동성무상도”

소심경을 힘차게 외우며 발우를 펴고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두북 공동체 대중에게 스님의 생활 원칙에 대해 이해를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대중들을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살고 있어요. 제가 대중들을 사적으로 만나기 시작하면 스님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대중들 사이에 스님과 가까이하려는 분위기가 생기게 되지요. 그래서 저는 일절 대중들과 사적으로 만나지 않습니다. 만약 만나더라도 여러 명을 동시에 공적인 자리에서만 만납니다. 아주 냉정하다시피 그렇게 해요. 제가 이런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겁니다.

대중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는 이유

여러분도 스님이 생활하는 이 원칙을 잘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저는 대중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아요. 권위주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생활해야 대중들에게 정토회는 공적인 모임이라는 질서가 잡히기 때문이에요.

활동가들의 경우에도 활동에 어려움이 있으면 모둠장, 지회장, 지부장에게 건의를 해야 하는데,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절차를 다 무시하고 곧바로 스님에게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경우 의문이 곧바로 해소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단점이 또 생기게 돼요. 이 점을 우려해서 저는 가능하면 대중과의 접촉을 안 하고 있습니다. 식사 초대든, 운전 봉사든,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허용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해요. 특히 모든 법회를 온라인으로 하다 보니까 스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려고 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집니다. 그러니 이런 스님의 생활 원칙을 이해하고 같이 지내면 좋겠어요.”

죽비 소리와 함께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오전 10시부터는 전국 법사단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법사단이 모두 입장한 가운데 스승의 날을 앞두고 조촐하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묘덕 법사님이 법사단을 대표해서 스님에게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법사단은 각자 배경화면을 꽃 화면으로 바꾸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스님도 합장으로 인사하며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법사단은 연수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민주적인 운영과 효율적인 운영이 상충할 수가 있는데, 이 모순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극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공식적으로 법사라는 칭호를 가지고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진행하는 전법활동가들의 여러 가지 정신적 어려움을 상담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대표 이하 지부장, 지회장, 모둠장, 지원국장, 지원팀장, 담당자들이 모여 운영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토회의 골간은 법사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의 이상에 대해 가장 동의를 많이 하고 있고, 가장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바로 법사단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적이면서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다만 정토회는 민주적으로 모임을 운영하기 위해 마음공부를 지도하는 것과 조직을 운영하는 것을 분리했을 뿐이에요. 재정과 운영은 ‘대중부’에서 담당하도록 하고, 대중들의 수행적 관점을 잡고 지도하는 역할은 ‘법사단’에서 담당하도록 하는 이원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둘은 따로 떨어져도 안 되고, 상하 관계로 설정되어도 안 됩니다. 긴밀하게 결합하면서도 각자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하고,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면서도 긴밀하게 결합되어야 합니다. 이런 운영 방식은 정토회가 미래에도 오래도록 민주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운영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이 될 것입니다.

많은 단체들이 처음에는 민주적인 운영 방식을 유지하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일인체제나 일당체제로 바뀌는 이유는 경험이 많은 사람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꼭 누군가 권력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 일에 대해 많이 알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의 효율을 생각하면 경험이 많은 사람을 당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토회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순환보직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3년마다 보직을 옮기도록 하고, 두 번 이상 중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요. 중임을 하면 담당자가 일에 대한 경험이 늘어나기 때문에 효율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독선적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순환보직제를 도입한 거예요.

여러분도 이렇게 법사단과 대중부로 나뉘어 있는 정토회의 운영체제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법사단은 마음공부를 지도하고, 대중부는 행정을 담당합니다. 법사단도 행정 기능에 참여를 하지만, 이는 직접 참여가 아니라 심의 기능을 통해 견제하는 역할입니다.

이런 체제를 잘 이해하셔서 앞으로 연수를 하거나 활동을 할 때 자신의 위치를 잘 잡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늘 모순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모순을 조화롭게 극복해 가는 과정이 곧 중도입니다.”

이어서 2차 만일결사부터는 20대, 30대, 40대를 아우르는 청년들을 향한 전법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 후 입재 법문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여러 가지 주제로 발표 및 질문, 토론을 이어나갔습니다. 온라인정토회로 전환한 이후 대중들의 현황이 어떠한지, 올봄에 정토불교대학을 새로 개강한 후 진행 상황이 어떠한지, 법사는 대중에게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 열띤 토론과 더불어 선배 법사님들의 노하우를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서 정토회의 발전 방향을 다양하게 모색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3시 10분부터는 다시 스님을 모시고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사단은 개인적인 어려움을 포함하여 법사의 역할 등 다양한 고민과 건의를 스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의문점을 모두 해소한 후 법사단은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법사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편안하게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경우에만 문제가 되지 그 외에는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으면 다 괜찮습니다. 아는 건 아는 대로 알려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됩니다. 대중이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물어보면 ‘지도법사님께 여쭤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잘 모르는 건 대표, 법사단장, 상담전문법사 등 담당자들한테 물어보고 알려준다고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맡은 역할에 부담이 생기는 이유

자꾸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척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담이 생기는 거예요. 모르는 것도 다 대답해주려고 하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물어보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을 하게 됩니다. 뭐든지 다 내가 해결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그저 기본적으로 필요한 교통정리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혹시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또 아는 대로 잘 알려주면 됩니다. 다만 그때도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이렇게 말하기보다는 ‘제 경험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이 정도로만 알려주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여러분 스스로 법사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고, 갈등의 원인도 줄여줍니다. 그렇지 않고 아는 체하거나, 대중들에게 가르치듯이 지도를 하면 당장의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요. 그중에는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 원수가 되는 사람도 생겨납니다. 굳이 사람들과 원수가 되어가면서까지 그렇게 할 이유는 없잖아요.

물론 저는 원수가 될 각오를 하고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도 그럴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남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깊이 관여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필요한 교통정리만 해주고, 필요한 사람들끼리 서로 연결시켜주는 게 법사의 역할입니다. 인생사에 대한 고민은 전문 상담 법사님들이 있으니까 그분들에게 연결시켜 주고, 운영에 대해서는 법사가 직접 관여하지 말고 지부장, 지회장, 모둠장 등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해주면 됩니다.

정토회에는 누군가 건의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한 단계 건너뛰어서 건의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임의로 건너뛰는 건 문제가 되지만, 한 번 건의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다음 상급자에게 건의를 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중들이 필요로 하면 정토회 시스템에 대한 안내를 해주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시스템을 안내해준다고 생각하면 크게 부담될 일이 없어요. 만약 시스템조차 잘 모르겠으면 다른 법사들이나 지도법사한테 물어보면 됩니다. 이런 걸 다 본인이 해결하려고 하면 부담감만 커져요.

‘나는 주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내가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내 경험에 대해 알려준다’

이렇게 생각하면 가볍게 임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안 하는 게 좋습니다. 누군가 하소연을 할 때도 ‘천도재를 지내세요’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런 경우에 재를 지내는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알려주는 역할만 하지, 지내라 말라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안 그러면 ‘정토회에서도 돈이 필요한지 재를 지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이렇게 곡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법사의 역할에 부담을 갖지 마세요. 아는 건 아는 대로 알려주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주변에 물어본 다음 알려주고, 편안하게 임하면 됩니다. 법사라고 해서 어떻게 모든 걸 다 알 수 있겠어요?

법사의 역할을 오랫동안 할 수 있으려면

혹시 부담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법사의 이름으로 잘난 체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사 수계를 받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지 않아요. 다만 회원에서 법사로 그 역할이 바뀔 뿐입니다. 스님도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쳐서 겉모습이 다를 뿐이지 여러분처럼 밥 먹을 때 밥 먹고, 똥 눌 때 똥 누고, 잠잘 때 잠을 자면서 살아갑니다. 스님이라고 해서 밥을 안 먹는 것도 아니고, 잠을 안 자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특별히 잘난 체할 게 없습니다.

‘법사가 모른다고 하면 대중들이 실망하지 않느냐?’ 이렇게 우려하는 사람도 있는데, 실망도 그 사람이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법사의 역할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성질을 내도 ‘아, 저 사람이 지금 성질이 났구나’ 이렇게 넘어갈 수 있고, 사람들이 욕을 해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 여러분이 법사의 역할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사로 지내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법사의 역할에 편안하게 임하시면 좋겠어요.”

법사단은 하루 종일 좋은 가르침을 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배를 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전국 법사단 연수를 모두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한 후 점심에는 손님과 식사를 같이 하고, 오후에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일요 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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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

두북공동체의 생활상이 곧 행복한 삶이며,현실의 극락이라고 생각 됩니다
평화롭고 생동감 넘치는 농촌생활의 풍경에서 여유 와 자연의 순리를 느낌니다
법륜스님께서 늘 건강하시길..빕니다.스님의 하루가 전해주시는 밝은 빛에
제 마음이 환해지면서.. 법륜스님께 고맙습니다 큰절 올립니다.

2022-05-20 23:21:43

스승님

스승님에서 스님이 나왔을까요?

스님의 청년과 같은 농삿일 솜씨가 멋지네요..

같아 농사를 짓는 느낌입니다. 늘 건강하시길.

2022-05-19 07:08:00

장혜숙

감사합니다

2022-05-18 17: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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