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2 ebs 클래스e 제작팀 미팅, 수행법회, 두북수련원으로 이동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법”

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부터 정말로 봄이 왔음을 느낄 정도로 날이 풀렸습니다. 스님은 오늘 오전에는 서울에서 수행법회를 하고, 저녁에는 두북 수련원으로 내려와서 수행법회를 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한 후 6시 30분에 1층 법당에 모여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대중들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어제 기자회견을 준비하느라 수고한 평화재단 활동가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준비해 온 국민통합을 위한 연합정부 추진위원회 구성이 어제 3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생겨서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축소된 결과가 되었습니다. 실무 준비하시느라 다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평화재단에서는 어제 기자회견 내용을 더욱더 확산시키는 일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전 수행법회가 끝나면 오후에 두북 수련원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열흘 동안 서울에서 잘 머물다가 갑니다.”

해탈주 삼독을 하고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9시부터 EBS 클래스e 제작팀과 미팅을 했습니다. 클래스e 제작팀은 지식 교양 강의를 제작하고 방송하는 팀인데 스님에게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15회 분량의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서울 정토회관을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강의 전체의 목차에 대해 이야기한 후 강의 내용의 큰 줄기를 어떻게 잡아나갈지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목차를 잘 잡아오셨네요. 제 의견은 종교적이고 신비한 부처님이 아니라 인간 붓다, 즉 역사상의 인물인 고타마 싯다르타의 삶과 사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스님은 왜 역사적 인물인 고타마 싯다르타의 삶과 사상에 대해 강의할 필요가 있는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제작팀 책임자 분이 제안했습니다.

혁명가 붓다를 주제로 강의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스님, 차라리 제목을 인간 붓다가 아니라 혁명가 붓다라고 붙입시다.” (웃음)

그러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네, 맞아요. ‘혁명가 붓다’라는 제목이 강의 내용과 일치하는 게 맞아요. 부처님은 진짜 혁명가였기 때문입니다. 2600년 전 당시에 벌써 계급 타파와 성차별 폐지를 주장했으니 그보다 더한 혁명가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혁명가 붓다’라고 제목을 붙인다면 과연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희 제작팀이 보기에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방금 저희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방송에서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부처님이 원래 이런 분이었다고 얘기하면 기독교 신자가 저를 욕하는 게 아니라 불교 신자가 저를 욕할 거예요. 안 그래도 저는 불교계에서 늘 왕따를 당해왔는데, 이 강의를 하고 나서 또 저를 왕따 당하게 하려고 그런 요구를 하는 거예요? (웃음)

가령 ‘예수님은 본래 이런 분이었다’라고 하면 교회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난리가 나지 불교 신자가 항의 시위를 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원래 이런 분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불교 신자들이 항의시위할 수 있어요. 워낙 왜곡된 믿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믿음은 자유이니까요. 그렇게 믿는 건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실제로 부처님이 어떤 인물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믿고 있는 부처님이 실제로 나에게 존재하는 부처님이니까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믿는 부처님이 진짜 부처님입니다.”

1강부터 15강까지 어떤 순서로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하는 게 좋을지 하나씩 조율을 한 후 미팅을 마쳤습니다. 곧이어 법회 시간이 되어 스님은 서둘러 1층 법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주간반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접속하자 오늘은 특별히 정토회 김은숙 대표님이 신규 회원들을 환영하는 인사를 했습니다. 얼마 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신규 회원이 된 분들이 처음으로 수행법회에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관악지회에서 신규 회원들을 환영하는 축하 영상을 만들어서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오늘 수행법회에 처음 참여하신 분들께 다시 한번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수행법회에 꾸준히 참여하셔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에서 배운 수행의 길을 놓치지 않고 계속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수행이란 안으로는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밖으로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보시와 봉사를 해야 합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행하는 사람이 바로 정토회의 ‘회원’입니다. 더 나아가 이 좋은 가르침을 주위에 전하는 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사람이 ‘전법 회원’이고요. 회원이든 전법 회원이든 수행자는 모두 수행, 보시, 봉사를 지향합니다.”

1월에는 부동산, 주식, 일자리, 가족관계 등 우리 생활과 관계되는 사회적 주제를 수행자는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를 주제로 수행법회를 진행했습니다. 2월부터 3월 중순까지는 즉문즉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순간순간 올라와서 괴롭다며 스님에게 기도문을 달라고 질문했습니다.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요, 어떡하죠?

“기도를 하기 전에는 남편이 너무 밉고 싫었습니다. 밉고 싫은 마음은 이제 많이 없어졌고, 고마운 마음도 가끔 듭니다. 그러나 남편과 막상 같이 있으면 또 순간순간 밉고 싫은 마음이 막 올라와서 괴롭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다 그래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싫고, 안 보면 그리운 게 늘 반복됩니다. 마음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음식을 먹을 때는 좋았는데 나중에 배가 너무 부르거나 체하면 ‘괜히 먹었다’ 하고 후회를 하게 되고, 술을 먹을 때는 좋았는데 나중에 토할 때는 ‘괜히 먹었다’ 하고 후회를 하게 되고, 이런 게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가 지금 느끼는 괴로움은 달리 방법이 없어요. 오히려 그럴 때 ‘남편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돼요. 미워하지 않겠다고 결심해서 안 미워지면 벌써 해결됐겠죠. 각오하고 결심한다고 미움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내 기준으로 남편을 보기 때문에 남편이 미운 겁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데 남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니까 미워지는 거예요. 남편한테 물어보면 남편도 아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안 해준다고 기분 나빠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미움을 없애는 방법은 나와 다른 남편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옷을 벗어서 아무 데나 둔다고 합시다. 그럴 때 한두 번 얘기해 보고 개선이 안 되면 그냥 두면 돼요. 어릴 때부터 생긴 버릇이기 때문에 고치기가 쉽지 않아요. 본인이 어느 순간에 깨달아서 고치면 고쳐질까, 남이 고치라고 해서는 안 고쳐집니다. 어린아이도 잘 안 고쳐지는데 다 큰 어른은 오죽하겠어요?

식사할 때 늘 밥을 차려놓으면 늦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죠? 이런 습관을 고치는 것도 아주 쉬울 것 같지만 잘 안 고쳐집니다. 사회 인사들과 약속을 해보면 늘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는 사람이 있고, 늘 지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지각하는 사람은 항상 지각하는 건 아니지만 10번 중 7번은 늦게 옵니다. 일찍 오는 사람도 늦게 오는 경우가 가끔 있긴 하지만 10번 중 7번은 일찍 와요. 그런데 말을 한다고 해서 이런 습관이 고쳐지지 않아요. 몇 번만 만나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늦게 오는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일찍 오는 사람이구나.’

어느 정도 관계를 맺어보면 이렇게 알게 되기 때문에 저도 거기에 맞춰야 해요. 어떤 사람은 늘 항상 30분 먼저 오니까, 약속을 12시에 했더라도 저는 11시 30분부터 시간을 비워놓아야 해요. 그 사람은 늘 먼저 오니까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약속 시간보다 늘 늦게 와요. 그러면 저는 약속한 시간이 될 때까지 일정을 꽉 채워 시간을 씁니다. 그 사람은 먼저 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이렇게 상대에 따라 맞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옷을 아무 데나 벗어 놓는다면, 알아서 내가 치우든지, 안 그러면 그냥 두든지 하면 됩니다. 그냥 두면 되지, 그걸 가지고 짜증 낼 필요는 없어요.

관점을 이렇게 잡으면 그래도 남편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관점을 바꿔야지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서 남편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노력해서 고쳐지면 이 세상에 못 고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남편을 바꾸려고도 하지 말고, 나를 바꾸려고도 하지 마세요. 제일 쉬운 방법은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제일 쉽잖아요. 나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너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세요.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기만 해도 미움은 사라집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있는 그대로 인정이 되면 조금 더 나아가 보세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상대를 이해해 보는 겁니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게 아니에요.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이 이해입니다. 이해가 되면 그게 곧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해입니다.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이에요. ‘내가 널 좋아한다!’ 하는 것은 욕망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우선 남편이 질문자와 다르다는 것을 그냥 인정해 주세요. 그것만 해도 돼요. 그런데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이렇게 남편을 이해해 보세요.

‘그래, 당신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 직장 다니는 당신 입장에서는 늦게 들어올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남편을 이해하게 되면 가장 좋고, 그게 안 되어도 할 수 없어요. 우선 늦게 들어오면 늦게 들어오는 대로, 어떤 버릇이 있으면 버릇이 있는 대로, 상대를 인정하는 것부터 먼저 해보세요.

내가 보기에는 틀렸다 싶더라도 상대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남편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늘 자기가 옳다고 할 거예요. 기도문이 굳이 필요하다면 이렇게 기도를 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그것이 옳습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그게 옳은 겁니다. 다른 말로는 이렇게 기도해도 됩니다.

‘남편이 부처님입니다’

이 말은 ‘남편이 아주 훌륭하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다 부처님처럼 옳다는 뜻이에요. 자기 입장에서는 다 옳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부터 해 보세요. 남편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만 해도 미움은 사라집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해하기까지 하게 되면 마음에서 애틋함이 일어나요. 굳이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부터 해보세요.

‘그는 나와 다릅니다.’

이렇게 기도하셔도 돼요. ‘그는 나와 다릅니다’, ‘남편은 부처님입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그것이 옳습니다’ 이 세 가지 기도문이 다 같은 뜻이에요. 어떤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든 결과는 똑같습니다.

남편을 볼 때마다 미움이 일어난다면, 우선 세상 사람이 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아주 못 살겠다는 정도가 아니라면 별일 아니라는 겁니다. 마음이란 늘 변덕이 죽 끓듯 하니까 미웠다 좋았다 오락가락하는 거예요. 조금 잘해주면 좋고, 조금 못 해주면 미운 겁니다. 그러니 미움이 일어나면 ‘지금 미움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사실대로 알아차리고 넘어갈 뿐이에요. 이게 제일 쉬운 방법입니다.

질문자가 여기에서 조금 더 뭘 해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 해보세요. ‘남편 입장에서는 옳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주는 거예요. 어떤 것이든 남편의 입장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옳은 겁니다. 이렇게 인정하기를 하면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좀 사라지거나 줄어들어요. 미움이 안 줄어들어도 별일 없습니다. 미움을 조금 더 줄어들게 하고 싶으면 이렇게 해보시라는 거예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남편을 보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도 너무 미운 감정이 확 올라오길래 ‘내가 미워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렸습니다. 스님께서 한 번 더 일깨워 주시니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남편 입장에서는 자기가 부처예요. 자기가 하는 일은 다 바르고 옳은 거예요. 그리고 아내인 나는 내 입장에서 내가 바르고 옳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해요. 진짜와 가짜를 나누어 시비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상대의 자유이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해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나를 비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어떤 경우에도 내가 나 자신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법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불교대학을 다녀보니 정말 나한테 도움이 되더라’ 이런 생각이 든다면 남이 뭐라고 하든 전법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법을 하되 강요는 하지 마세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 오해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 여러분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 외에도 현장에서 즉석 질문도 받았습니다. 다양한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12시에 수행법회를 마치고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4시간 동안 달려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따뜻한 봄 날씨를 느끼며 스님이 말했습니다.

“겨울에 갔다가 봄에 왔네요”

서울에서 열흘을 머무는 동안 두북 수련원의 화단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금방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서 저녁반을 위한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녁반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남쪽에 내려오니까 더 봄날 같이 따뜻하네요. 봄이라는 계절처럼, 여러분도 긴장과 스트레스가 좀 풀려서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의 봄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심리를 자꾸 억압을 하게 된다며 불안 장애를 치료하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자꾸 심리를 억압하게 돼요, 어떡하죠?

“33살 미혼 직장인입니다. 억압으로 가지 않는 수행법이 궁금합니다. 저는 1년 전에 불안 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직장 상사의 폭언이 있었기 때문에 감기를 앓듯 마음이 잠시 아픈 것이라고 여겼는데, 상담을 통해서 어린 시절 제가 아버지의 주폭과 어머니의 통제 속에서 늘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감을 모두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어머니에 대한 100일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할 때마다 순간순간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화가 올라왔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런 감정도 모두 억압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수행이 분명히 도움이 되는 것 같기는 한데, 어떤 마음으로 수행을 해야 할까요?”

“첫째, 정신 자체가 건강하지만 윤리나 도덕 때문에 심리를 억압하고 있는 사람은 그 억압된 심리를 본인이 수행을 통해 풀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어릴 때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불안증이 있잖아요. 꼭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니지만 불안증이 아예 자기화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다 억압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억압적 분위기에서 할 수 없이 억압된 게 아니라 질문자 본인이 어떤 문제든 자꾸 억압으로 느낀다는 겁니다.

어떤 분위기 때문에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하고 심리가 억눌려서 억압이 된 경우라면, 스스로 풀면 돼요. 그런데 질문자는 어떤 것도 본인이 억압으로 느끼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쉽게 풀 수가 없어요. 억압이 아닌 것까지도 내가 억압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째,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정도의 증상이라면 ‘수행을 하면 다 해결된다’ 이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돼요. 건강한 사람에게는 운동이 도움이 되지만, 환자에게는 운동을 시키면 안 되잖아요. 환자는 좀 쉬어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런 뒤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해요. 다시는 아프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겁니다.

수행도 그와 같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치료할 만한 정신력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이 수행을 해야지, 어떤 질병 상태에 있는 사람이 수행을 하기 위해 너무 애를 쓰면 오히려 마음을 더 다치게 됩니다.

첫째, 질문자는 수행으로 문제를 풀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치료를 받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질문자의 병은 실제로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되고 있다고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피해의식처럼 ‘나는 심리가 억압되어 있다’ 하는 의식을 늘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본인이 뭘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끼는 대로 알아차려 보세요. 심리가 불안하면 ‘불안하구나’ 이렇게 그냥 알아차리는 것만 해가는 게 필요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없애야겠다!’ 이러지 마세요.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결과적으로 마음을 억압하게 됩니다. 그러니 의지나 의도로 접근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만 알아차리세요. 불안하면 ‘불안하구나’, 화가 나면 ‘화가 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 됩니다. ‘화를 안 내야지!’ 이러지 마세요.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났을 때 ‘화를 내야지’ 이렇게 하지도 마세요. 어느 쪽이든 의도는 모두 마음을 억압하게 됩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네’, 화를 내버렸으면 ‘화를 냈네’, 불안하면 ‘불안하네’, 억압으로 느껴지면 ‘억압으로 느껴지네’, 이렇게 그냥 알아차려 보세요. 화를 푸는 게 좋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기만 하는 겁니다. 이렇게 자꾸 연습하면 심리를 더 이상 억압하지 않게 돼요. 억압을 풀어야 한다는 의도를 자꾸 갖게 되면 심리가 도리어 억압됩니다.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다만 알아차리는 것만 해보세요. 아프면 ‘아프다’, 넘어지면 ‘넘어졌구나’ 이렇게요. 넘어졌다고 해서 ‘일어나야지’ 이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럼 또 억압이 되니까요. 넘어졌으면 ‘넘어졌구나’, 아프면 ‘아프구나’ 이렇게만 알아차립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의도를 가능하면 하지 않도록 합니다.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좋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야 의도가 들어가지 않아요. 호흡하거나 명상할 때 다만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려야지’라고 하지 말고 그냥 다만 알아차리는 거예요. ‘알아차려야지’ 하면 또 애를 쓰게 되거든요. 애를 쓰면 또 긴장을 하게 되고, 그러면 상기가 됩니다. 그러니 편안한 상태에서 알아차려 보세요. 놓치면 놓치는 것이고, 다시 알아차리면 돼요. 그걸 두고 잘했다, 잘못했다 평가하지 않습니다. 질문자는 이렇게 연습을 해보는 게 필요해요.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는 겁니다.”

“네, 앞으로는 애쓰지 않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정토회에서는 수련 프로그램 참가 자격에 나이 제한이 있더군요. 고령화 시대인데 나이 제한을 조정할 의중은 없으신가요?
  • 불교대학 돕는이는 어떤 마음으로 진행자와 학생들을 도와야 할까요?
  • 두 아들을 놔두고 집을 나왔습니다. 남편과의 잦은 다툼으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제가 고집이 세고, 어리석은 부분이 많았던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스님의 따끔한 일침을 듣고 싶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떤 조건에 처했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잘 사는 것만 해도 이 세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인생을 못 살아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찾아 ‘이거 도와주세요’, ‘저거 도와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기 인생을 혼자서 잘 사는 것만 해도 큰일이에요. 그러니 그것부터 먼저 하세요.

그게 되거든 그다음은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러니 우선 자기 인생을 잘 사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어요. 절대로 죄의식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남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면서 혼자만 죄의식을 갖고 살아갈 위험이 있어요. 그러니 ‘우선 나부터 잘 살고, 때가 돼서 정말 도움이 될 때 내가 기꺼이 돕겠다’ 이런 관점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아기를 낳은 사람이든, 결혼한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옛날에 어떻게 살았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권리를 함부로 포기하지 마세요. 어떤 조건에 처했든 여러분 모두는 일단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내일은 오랜만에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뒤로 하고 스님에게도 평온한 일상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전체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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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홤맘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이 와 닿네요. 봄날의 매화꽃을 보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2022-03-09 08:01:52

ㅎㅎ

억압된 상황이 아닌데 억압을 느끼고 있구나.. 감사합니다

2022-03-08 09:31:13

선주행

감사합니다.다만 알아차림 하겠습니다.()()()

2022-03-08 0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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