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6 마당 디딤돌 깔기
“폭언을 일삼았던 아버지, 어릴 때 생각이 나면 불안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추위가 누그러졌는지 겨울 들판에는 차갑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내내 스님은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시골 마을 어르신들은 요즘 농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농사팀 행자님들은 일 년 농사 계획을 세웠고, 스님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소일거리들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부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상하수도 공사를 하면서 마당을 파헤친 후 복구를 하긴 했지만 깔끔하게 마무리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마당에 디딤돌을 깔고, 잔돌을 골라내는 작업을 좀 합시다.”

먼저 디딤돌을 깔려고 삽으로 땅을 팠습니다. 겉흙을 걷어내자 땅속이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괭이로 땅을 힘껏 내리쳐도 땅이 잘 파이지 않았습니다. 망치로 때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서 땅이 잘 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땅 파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게 생겼어요.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여기는 봄에 땅이 녹으면 그때 작업을 합시다.”

일단 마당 곳곳에 굴러다니는 잔돌을 골라내는 일을 했습니다. 잔돌을 싹 걷어 삼태기에 담은 후 빗물받이 통을 두는 자리에 잔돌을 깔았습니다.




다음은 장소를 옮겨 디딤돌 놓는 일을 이어갔습니다.

“공사 후에 이 마당에도 흙만 덮어 놓았는데, 디딤돌을 주욱 깝시다.”

우선 출입문 앞에 디딤돌이 수평이 맞지 않았습니다. 돌을 빼내고 흙을 넣어 높이를 맞춘 후 반듯하게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땅을 파고 디딤돌을 나란히 놓으면 돼요.”

디딤돌은 얼마 전 논두렁에서 주워온 넓적 돌을 재활용했습니다. 논두렁에 있을 때는 ‘어디에 버리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쓸모없는 돌이었는데, 마당에 가져오니 훌륭한 디딤돌으로 쓰였습니다. 만물에는 다 제자리가 있었습니다.

“자, 수평을 맞춰 봅시다.”

울룩불룩 튀어나온 돌의 모양에 맞게 바닥 흙의 높이를 조절하여 수평을 맞추는 과정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스님이 직접 발로 밟아보며 튼튼한지 확인이 끝나면 다음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수고했어요. 이 정도면 돈 주고 업자들에게 부탁한 것보다 훨씬 낫죠?” (웃음)


나란히 잘 박힌 돌들을 보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텃밭에는 얼마 전 상추 씨앗을 심은 후 비닐을 덮어 놓았습니다. 비닐 속에서 싹이 틔웠는지 궁금했습니다. 비닐 속을 유심히 보던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벌써 싹이 텄어요. 비닐 속에 새파란 잎들이 보여요.” (웃음)

한겨울에도 자연은 벌써 봄을 기다리는 새 생명을 품고 있었습니다. 작업한 도구들을 깨끗이 씻고 정리한 후 두 시간 동안의 울력을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밤하늘에는 초승달이 떠올랐습니다.

스님은 여러 업무들을 처리하고, 내일 있을 회의 준비를 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수요일에 열린 수행법회에서 있었던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술만 드시면 폭언을 일삼았던 아버지, 어릴 때 생각이 나면 불안해요

“저는 어렸을 때 술만 드시면 어머니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디선가 아버지의 술 드신 목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불안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고 남겨진 어머니와 저희 자매들은 생활고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 저는 가족밖에 모르는 착실한 남편과 흠잡을 데 없이 바르고 착한 두 남매의 엄마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상황인데도 저는 어떤 일이 생기거나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 문제의 원인이 저 자신에 있음을 알고, 내 안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4시 30분에 일어나 아침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행을 하면서 괴로움을 없애겠다는 저의 마음이 집착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저의 상황에서 어떤 관점으로 수행을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 스님께서 따끔하게 한 말씀해주시면 감사히 따르겠습니다.”

“질문자가 지금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옛날에 본 공포영화를 꿈에서 혼자 다시 돌려보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은 증상입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고 공포영화를 본 것과 같은 거예요. 이미 지나가버린 30년 전에 겪었던 일이 뇌리 속에 남아있어서 그것이 늘 재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치 현실에 그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거예요. 이것을 현대 의학에서는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수행정진을 통해서 치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신경정신과에 가서 의사의 치료를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심해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될 정도라면 병원에 가서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통해 응급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약물치료란 신경이 흥분되는 것을 막아주는 안정제를 섭취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이에요. 트라우마가 심하면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비디오가 자동으로 돌아가듯이 머리에서 계속 과거에 충격받은 일이 떠오릅니다. 이때 약을 먹으면 이런 정신작용을 안정시켜줍니다. 어쨌든 정신의 현상도 다 신체 작용이니까요.

상담치료란 대화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서 내가 겪었던 일을 더 세세하게 꺼내서 그 일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방법입니다. 어른이라면 놀랄 만한 일이 아닌데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놀란 일이었거든요. 그때는 놀라서 상처가 되었지만 지금 관점에서 하나하나 살펴보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도 지금 내 나이 정도밖에 안 되었던 거잖아요. 어쩌면 더 나이가 적었거나요. 세상이 뜻대로 안 풀리고 힘드니까 술을 먹고 한탄을 하셨던 거예요. 아내가 등을 두드려주고 받아주면 좋았겠지만, 그때 어머니도 나이가 어렸고 자식도 있었으니까 남편에게 실망해서 잔소리를 하게 된 거예요. 아버지는 말로 안 되니까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고요. 이 일은 어린애 입장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안 되는 힘든 일이지만 커서 가만히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사람이 그렇게밖에 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이상 더 잘 살 수 있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신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세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입니다.

내가 어른이 돼서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어야 내 상처가 치유됩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아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여겨질까요? 질문자의 엄마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집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에게 실망을 하니까 악을 쓴 거예요. 아버지는 아내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데 아내가 악을 쓰니까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요. 이렇게 각자의 입장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지든 어머니든 다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예요.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셨잖아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간 거고, 아버지 역시 자기 인생이 힘들어서 아웅다웅했지만 그래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즉 아이가 생각하는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볼 때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닙니다. 당시에 내가 어린애였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거예요. 어른의 마음으로 보게 되면 아버지는 원망하거나 비난해야 할 사람이라기보다 오히려 치료해줘야 할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보살피고 치료해줘야 할 불쌍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면 질문자 속에 아버지로 인한 상처는 치유된 거예요.

질문자의 증상이 심하면 먼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아서 트라우마를 조금 완화시키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트라우마가 그렇게 심하지 않고 일상에 큰 지장은 없지만 내게 여전히 상처가 있는 정도라면 자가치료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은 내가 나를 치료하는 거예요.

자가치료를 할 때는 두 가지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괴로움을 완전히 없앤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하고 자각하는 겁니다. 과거의 비디오에 빠지지 말고 지금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절을 하면서 지금 상황에 깨어있기 위해 이렇게 되내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과거의 비디오를 끄는 기도를 꾸준히 해야 해요. ‘괴로움을 없애주세요’라는 말은 지금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지금 아무 문제가 없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여기의 상태로 늘 돌아오는 연습을 할 수 있어요.

다른 한쪽으로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도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어릴 때는 어린 나의 입장에서 힘들었지만 이제 어른이 되고 보니까 아버지도 참 힘드셔서 그러셨군요. 제가 만약에 그때 어른스러웠다면 힘들어하시는 아버지의 등도 두드려주고 위로도 해줬을 텐데, 아버지를 그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내 속에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요. 내일부터는 현재에 깨어있는 기도를 해서 제 자신이 행복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일은 정토불교대학 교과개편 회의를 하고,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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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고맙습니다.

2022-12-30 20:36:05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가 참 힘드네요. 자신이 힘들어서 화풀이로 사랑하던 사람을 해칠 마음까지 든다는게 … 그 분에겐 그게 가능했다는게. 세상의 어떤 난제보다도 어렵습니다.

2022-03-16 19:59:05

보리수

수행은 내가 나를 치료하는 것!!
아버지도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렇게 하셨겠습니까~고맙습니다

2022-01-11 18: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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