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2.7 천전리 각석, 반구대 암각화 산책
“몸이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늘은 하루 종일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국제 정세에 대해 세미나를 한 후 스님의 안내로 두북 수련원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먼저 재활용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로 갔습니다.

“이 창고는 원래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토회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법당을 철거하게 되면서 거기서 나온 물품들이 창고에 가득 쌓이게 되었어요. 전부 다 재활용을 할 계획입니다.”

“스님, 저도 요즘 혼자 사는데 가구를 좀 가져가도 되나요?” (웃음)

“그럼요. 전부 재활용을 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거든요. 방송실도 전부 이런 물건들을 재활용해서 만들었어요.”

재활용 창고를 나와 화상회의를 하기 위해 마련한 컨테이너를 둘러보고 목공소를 지나 방송실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저는 요즘 여기 앉아서 전 세계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대화하고 있어요. 방송이 끝나면 농사일하러 가고요.” (웃음)

복도를 지나 두북 공동체 대중이 생활하고 있는 숙소와 사무실, 법당, 공양간, 세면장, 화장실을 보여준 후 학교를 나왔습니다.

“스님,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네요. 복도에 마루 바닥을 닦는다고 엎드려서 걸레를 주욱 밀고 가고 그랬거든요.”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천전리 각석으로 향했습니다.

“인근에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어요. 한번 구경시켜 드릴게요.”

태화강 물줄기인 대곡천 중류의 기슭에 차를 세우고 안내 표지판을 따라 내려가니 평평한 암석 위에 각종 도형과 글, 그림이 서로 다른 기법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다양한 그림과 문양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어요. 자세히 보세요.”

중앙부에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원을 중심으로, 양 옆에 네 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 등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상징성을 갖고 있는 듯한 그림들이 바위 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글자도 새겨져 있어요. 신라의 왕자가 어머니와 같이 이곳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이라고 해요. 아마도 당시에 신라의 수도가 서라벌(경주)이었으니까 왕족들이 여기까지 소풍을 나왔을 겁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이 이루어 놓은 작품으로,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의 생활, 사상 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유적이었습니다.

계곡 건너편으로 가니 평평한 바위 위에 공룡 발자국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습니다

“1억 년 전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공룡의 흔적입니다. 이 일대가 공룡의 생활공간이었나 봐요.”

연구위원들은 공룡 발자국을 보며 감탄을 했습니다.

“이 발자국은 초식 공룡이 아니라 육식 공룡 같아요. 발톱 세 개가 찍혀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이게 공룡 발자국 인지도 모르고 여기서 뛰어놀았어요.” (웃음)

공룡 발자국을 뒤로하고 다음은 반구대 암각화를 보기 위해 산길을 올랐습니다.

“제가 어릴 때 외갓집 가는 길이 이 길이었어요.”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반구대 암각화 앞에 도착했습니다.

암각화는 계곡 건너편에 있어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망원경에 눈을 대자 암각화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저기 절벽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암각화입니다. 육지동물, 해양동물, 사람, 배, 그물, 작살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에 고래 그림이 가장 많습니다. 고래의 세부 종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그림이 구체적이에요.”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자세히 들여다본 후 다시 평평한 길을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탔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구경을 참 잘했습니다.”

연구위원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차담을 나눈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더 많은 연구 작업을 해줄 것을 당부하며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헤어졌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금요 즉문즉설에서 있었던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몸이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중증 아토피와 원인을 알 수 없는 면역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 열심히 일을 하지만, 다시 아토피가 심해지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돈을 벌어도 치료비로 계속 나가니 부모님께 다시 손을 벌리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상처와 진물이 심해 벌어지지 않는 입에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먹어가며 살지만, 고통이 심할 때는 ‘이렇게 살아 무엇 하나, 죽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학창 시절 너무 몸이 아파서 차라리 죽을병에 걸리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유방암에 걸리셨고, 몇 년 전에는 제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고 후유증까지 더해져 이제 그만 죽고 싶다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즈음 오빠에게 심장마비가 찾아와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아빠가 폐암 4기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육체적 고통이 너무 심할 때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그 시간들을 견디면 좋을지, 그리고 마음이 약해져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일 때 그 생각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 부정적인 기도가 저희 가족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육체의 통증은 의사가 해결할 일입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니까 육체의 병을 고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의 문제는 함께 살펴봅시다.

질문자의 사정이 굉장히 안타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갑자기 교통사고로 오늘 저녁에 죽은 사람보다는 낫잖아요. 질문자보다 훨씬 건강하던 사람이 사고로 오늘 저녁에 죽기도 하고, 백신 주사를 맞고 갑자기 죽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질문자는 병의 원인도 규명 못하고 치료 방법도 모르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잖아요. 질문자는 ‘안 아프고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는데, 이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안 아프고 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오늘 저녁에 죽는 사람이나 백신 맞고 3일 만에 죽는 사람에 비하면 질문자는 조건이 좋은 사람에 속합니다.

아까 부모님을 원망한다고 질문했던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내 바람이 있는데, 부모님이 그 바람을 안 들어줘서 원망이 생기는 거예요. 부모님과 길 가는 사람을 비교해보면 부모님이 훨씬 더 나에게 이익을 준 사람입니다. 부부가 싸우면서도 나를 낳아주고 밥 먹여주고 키워주고 학교에 보내줬잖아요. 내가 원하는 만큼의 부모가 아닐 뿐이지, 부모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처럼 질문자의 몸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몸이 아닌 건 맞아요.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벌이거나 전생의 과보거나 사주팔자로 정해진 운명은 아니에요. 큰 불행이 아니라는 거예요. 육체적 고통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안 아팠으면 좋겠다’라는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질문자가 ‘내 몸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토피는 며칠 못 살고 죽는 사람의 몸에 비해서는 굉장히 좋은 몸입니다. 저는 심장에 혈관이 하나 막혀서 계단을 올라가면 숨이 차고 산에 올라가기 힘들어요. 저도 ‘숨이 차고 힘들지 않으면 좋겠다’ 하는 내 바람에서 보면 나쁜 몸이지만, 이렇게 대화도 하고 농사도 짓고 일상을 사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으니까 현재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심장에 문제가 없도록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숨이 차면 계단을 올라갈 때는 천천히 가면 되고, 높은 산은 안 올라가면 됩니다. 그래도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천천히 가면 되죠. 이런 조건의 몸을 가진 것이 벌 받은 것도 아니고 죽을 일도 아니에요.

질문자가 몸이 가렵고 아플 때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질문자가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돼서 생긴 문제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질문자보다 훨씬 더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질문자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제가 볼 때 큰 문제는 아니에요. 여러 가지 고통이 있는 몸을 가졌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종교가 없다면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몸은 아프지만 심리적인 고통은 없어집니다.

저도 질문자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 아토피가 있는 체질입니다. 인스턴트식품이나 기름진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민감합니다. 사람들은 제 체질을 모르니까 맛있다고 그런 음식을 권하는데 저는 그걸 먹으면 온 몸이 가렵습니다. 겨울에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도 몸이 벌게지고 가렵고, 나도 모르게 긁으면 피가 난단 말이에요. ‘안 가려우면 좋겠다’라는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맞지만 몸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요? 피부가 민감하니까 김치를 담을 때도 조미료를 안 넣어야 된단 말이에요. 질문자도 산에 가서 양념을 일절 안 한 음식만 먹고 자연 속에 살면 지금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은 거죠.

질문자가 인생이 원하는 대로 안 돼서 힘든 상황이고, 제가 보기에도 안타까운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 바에 죽는 것이 낫겠는가, 아니면 좀 가렵고 진물이 나지만 살 건가 결국은 두 길 밖에 없어요. 그럼 또 어차피 살 바에야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살겠는가, 살아있는 걸 감사하고 괴롭지 않게 사는 게 낫겠는가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길이 없어요.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었으면 벌써 병원에서 고쳤을 테고, 다른 방도가 있었으면 벌써 했겠죠. 그런데 몸은 아프고, 돈은 없고, 부모도 늙어 가는데 달리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오늘 살았잖아요. 일부러 목숨을 끊지 않으면 내일도 살 거잖아요. 그러니까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았네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내보세요. 때가 돼서 죽으면 감사하게 죽으면 되고, 눈 떠 보니 살아있으면 하루를 감사히 살면 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딱 가지면, 질문자가 진 무거운 짐이 내려놔질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완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질문자는 아직도 어떻게 하면 치료해서 완전히 나을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하고, 그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는데 안 되니까 괴로운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돈도 많이 쓰지 말라는 거예요. 어차피 써봐야 안 됐잖아요. 딱 포기해버리고, 가려우면 좀 긁고 진물 나면 약 바르고요. 해봐야 안 되니까 더 이상 돈 쓰지 말자 이렇게 마음을 먹는 거예요. 고치고 싶은 마음을 딱 내려놓고 살아보는 거예요. 아침에 눈 떴는데 안 죽었으면 하루 살고, 또 하루 눈 떠 보니 안 죽었으면 하루 살고요.

질문자는 건강한 사람들만큼 몸을 회복하려니까 큰 좌절에 빠진 거예요. 안 되는걸 자꾸 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치료를 딱 포기해 버려요. 딱 포기했는데 죽었으면 근심 걱정 없잖아요. 눈 떠보고 살았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치료 안 해도 사네!’ 이렇게 하루하루 가볍게 살면 되죠. 왜 현대 의학으로 방법이 없다는데 그렇게 힘들어하고 그래요. 물론 몇 번 치료를 시도해볼 수는 있죠.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몇 번 해 보고 안 되면 ‘아 안 되는구나!’ 하고 딱 놔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안타까워해주고 안 됐다고 위로해주기를 바랄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남한테 위로받으려고 하지 말고 저 같으면 ‘더 이상 치료해봐야 효과가 안 나는구나. 치료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 두고 통증이 심하면 진통제 먹고 가려우면 약 바르고 이렇게 한 번 살아보자’ 이럴 거예요. 일부러 목숨을 끊을게 뭐 있어요. 치료를 안 하고 방치했다가 한 달 뒤에 죽는다면 그때 자연스럽게 죽으면 되고, 1년 후에 죽는다면 그때 자연스럽게 죽으면 되고, 안 죽으면 긁어가면서 살면 되잖아요. 이렇게 마음의 집착을 탁 놔버리면 아픈 몸을 가지고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금 듣는 사람들도 다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마음이 아파도 어떻게 해요. 현대 의학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못하는 걸 자꾸 하려니까 괴로운 거예요. 안 되는 건 안 되는대로 놓아버려야 그나마 내 인생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의사가 말기 암이라서 한 달 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그걸 고치려고 하면 한 달 내내 괴로워하다가 숨 넘어갑니다. 고치려는 생각을 탁 내려놓고 ‘남은 한 달이라도 즐겁게 살아야겠다’ 관점을 이렇게 딱 바꿔야죠. 한 달 밖에 못 살 바에야 자살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거나 한 달 내내 괴롭게 살다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10년 더 살 건데 나는 한 달 밖에 더 못 산다면, ‘다른 사람이 10년 동안 즐거울 일을 나는 한 달 동안은 느끼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다 죽어야겠다. 나는 한 달 밖에 못 사니까 괴로워하며 보낼 시간이 없다’ 이렇게 관점을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1년밖에 못 살기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라, 1년 내내 1년밖에 못 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 1년을 괴로워하다가 죽는 것이 불행입니다. 내일 죽는 것이 불행이 아니에요. ‘언제 죽느냐’는 별로 중요한 거 아니에요. ‘어떤 인생을 살 거냐’가 중요합니다.”

“역시 답은 제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아토피 같은 것도 체질적이고 일종의 알레르기인데, 약간의 유전성도 있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심해져요. 그러니까 우리가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으로 바꿔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이 공감해주시고 마음 아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힘들면 죽고 싶겠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 싶으면 사는 거죠. 중요한 것은 ‘몸이 건강하냐, 돈이 많으냐’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느냐, 어떻게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느냐 예요. 그러니 일단 살아있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제가 바꿀 수 없는 조건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생각하라는 말씀이신 거죠?”

“네. 말귀 알아 들었네요.”

“감사합니다.”

“몸이 저렇게 아프면 말귀를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내가 부자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몸 가려운 것만 좀 없으면 좋겠다는 건데 이것도 욕심인가’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그것도 결국 내가 원하는대로 안 돼서 괴로운 거예요. 안 되는 것은 안 되는대로 받아들이고, ‘이런 몸이라도 살아있어서 감사하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쓸데없는데 더 이상 시간낭비를 안 하게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교과과정 개편 회의를 한 후 오후에는 필리핀정토회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두북 수련원을 방문해 천룡사를 방문하고 내려와 밤늦게까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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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거의 매일 몸살이라 마음이 괴로웠는데 이런 몸이라도 살아서 감사합니다

2021-12-19 16:18:24

이상헌

고맙습니다

2021-12-14 07:02:24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1-12-13 09: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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