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2.1 정토불교대학 교과개편 회의, 수행법회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운동장으로 나오자 산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스님은 아침 8시부터 공동체 법사단과 몇몇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내년 봄 정토불교대학 교과과정 개편에 관해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교과개편을 주제로 세 번째 열리는 회의입니다.

공동체 법사단은 지난주에 4개의 팀으로 나누어 열띤 토론 끝에 새로운 기획안을 각자 마련해 왔습니다. 발표를 듣고 나서 서로에게 질문도 하고 더 좋은 방안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4시간 동안의 토론 끝에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발표를 듣고 나니 오늘부터는 다시 2개의 팀으로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존 안으로 대폭 수정하는 계획을 마련해 온 유수 스님을 중심으로 A팀을 하나 만들고, 완전히 교과를 혁신적으로 재구성한 무변심 법사님을 중심으로 B팀을 하나 만들게요. 다음 회의 때까지 2개의 팀에서 각각 개편안을 마련해 와서 발표하겠습니다.”

정토불교대학 교과개편을 주제로 공동체 법사단이 무척 바빠졌습니다. 모레까지 새로운 개편안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열띤 토론을 거쳐 개편안을 마련해오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점심식사 후 오후 4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일주일 동안에 올라온 여러 가지 현안들을 함께 검토하고 의논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녁반 정토회 회원 40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 이야기와 더불어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의 일상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법륜스님의 하루] 따뜻한 겨울 나눔

이어서 지난주에 이어 예불문 두 번째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예불문의 첫 부분인 ‘오분향’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었고, 오늘은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귀의불,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예불문은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한다는 내용이 주된 내용입니다. 첫째,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말은 ‘이런 진리를 깨달으신 훌륭하신 부처님께 귀의한다’ 이런 뜻입니다. 또 이 말을 현재의 나에게 적용하면 ‘나도 부처님처럼 되겠다’ 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하는 말은 첫째, 부처를 마음 밖에 두고 경배를 하는 의미도 있고, 둘째, ‘나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겠다’ 하는 의미도 있어요. 이것이 바로 ‘귀의불(歸依佛)’의 의미입니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어리석은 마음을 깨달으면 내가 부처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도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면서 거기에 이르고자 하는 원을 세우는 것, 그게 바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의미입니다.

귀의법, 항상 사실에 깨어있겠습니다

둘째,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말은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그 가르침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 지녀 실천하겠다’ 이런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리의 가르침입니다. 진리라는 건 꼭 누가 말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재 사실이라는 점이 중요해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괴로운 이유는 어떤 인식 상의 오류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알지 못하거나, 알기는 아는데 잘못 알거나, 환상에 젖어 있어서 괴로운 겁니다. 알지 못하는 건 알아야 하고, 잘못 알고 있는 건 고쳐야 하고, 환상에 젖어 있으면 깨어나야 해요. 그러면 사실을 사실대로 알게 됩니다. 항상 사실에 깨어있고 진실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진실에 깨어있으면 괴로움이 없어요. 화가 나거나 괴로움이 생기는 이유는 어떤 인식상의 오류가 생겨서 심리적인 불안 요인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평정심을 유지하고 항상 사실에 깨어있으면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귀의법(歸依法)’은 좁은 의미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라는 뜻이고, 좀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항상 사실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하겠습니다’, 즉 ‘항상 사실에 깨어있겠습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이것은 어떤 종교를 가졌든 관계없이 누구나 적용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사실에 깨어있으면 괴롭거나 두렵다고 할 일이 없어집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

두려움은 모를 때 생깁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모르는 일을 하거나, 모르는 곳에 가거나, 깜깜한 밤일 때 ‘잘 모른다’ 하고 말하게 됩니다. 모르면 우리의 정신작용에서 불안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깁니다. 반대로 환하게 알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어두울 때는 두렵다가 불을 탁 켜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 사람을 모를 때는 약간 두렵다가, 막상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눠서 상대를 잘 알게 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지면 훤히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법에, 즉 진실에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실에 깨어있으면 모든 속박, 모든 두려움, 모든 번뇌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실에 깨어있지 못하죠. 우리는 성경, 불경, 부처님, 하나님이라는 어떤 환영에 사로잡혀서 오히려 속박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귀의승,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셋째, 승에 귀의한다는 말은 어느 개인에게 귀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 혹은 집단에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내가 그 일원이라는 뜻도 되겠죠. ‘승(僧)’은 수행자라는 뜻이에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수행하는 무리를 승가(僧伽)라고 합니다. ‘상가(sangha)’를 음차한 말이 ‘승가’입니다. ‘상가’라는 말 자체가 원래 복수의 무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모여 있는 모임을 ‘상가’라고 해요. 이렇게 ‘수행자들’이라는 복수의 의미가 있다 보니 우리말로 옮길 때는 ‘스님들’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중(衆)’자를 붙여서 ‘승가야중(僧伽耶衆)’이 되었어요. 이 말은 ‘많은 상가’라는 뜻입니다. 수행자들이 모여 수행하는 모임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많이 있잖아요.

‘귀의승(歸依僧)’이라는 말은 ‘청정하게 수행하는 그 모든 모임에 귀의합니다’ 이런 뜻이에요. 요즘 식으로 좀 쉽게 번역하면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또는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님들께 귀의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승(僧)은 개인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그 모임을 지칭하는 말이에요.”

스님의 설명이 끝나고 오늘 배운 구절을 음원을 틀어서 다시 들어보았습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

이 외에도 스님은 ‘시방삼세’, ‘제망찰해’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준 후 수행법회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스님과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지인들이 두북 수련원을 방문해서 경주 남산 천룡사를 다녀오는 등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9

0/200

양승인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감사합니다

2021-12-06 11:51:57

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수행법회 들어보겠습니다 :)

2021-12-06 09:26:10

서보원

두려움은 나를 멈추게 합니다!
그러나 일단 부딪혀서 알아보는게 ^^

2021-12-06 08:42:58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