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9.19. 영어 통역 즉문즉설, 일요명상
"새로운 일을 맡고 나서 불편함이 많아졌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갑니다. 벼는 익어서 고개를 숙이고, 들녘은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산에 밤나무에서는 매일 알밤이 떨어져서 1시간씩 밤나무 밑에 가서 밤을 줍는 게 스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가장 먼저 밤을 주우러 갔습니다.

어제는 계곡에서 내려오면서 밤을 주웠는데 오늘은 계곡을 올라가면서 밤을 주웠습니다.

“아직 숲 속은 많이 어둡네요. 밤이 잘 안 보여요.”

한참 동안 밤을 줍다 보니 날이 밝아졌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토실토실한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냥 줍기만 하면 되는 알밤도 있고, 껍질을 벗기고 꺼내야 하는 밤송이도 있었습니다. 스님이 집게로 물에 빠진 밤송이를 건져주면 향존 법사님과 김선희 법우님이 발로 문대어 밤송이의 껍질을 벗기고 알밤을 꺼냈습니다.

“자, 이제 산길로 올라갑시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밤을 주웁시다.”

산속에도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자잘한 것은 줍지 말고 큼직한 것만 주울까요?”

하지만 스님은 자잘한 것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알밤은 샅샅이 다 주웠습니다.

“자잘한 것도 아까워서 그냥 지나갈 수가 없네요.”


밤을 줍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스님, 8시부터 법회가 있는 거 아시죠?”

“알고 있어요. 알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냥 지나갈 수가 없잖아요.”

스님의 입에서는 여러 번 ‘이제 갑시다’ 하는 말이 나왔지만 스님의 손은 계속 밤을 줍고 있었습니다. 알밤이 더 보였지만 법회 시간이 다 되어 겨우 산을 내려왔습니다. 바구니에는 오늘도 알밤이 가득 담겼습니다.

“아이고, 이제는 무조건 가야 해요.” (웃음)

산을 내려오니 해가 떠서 세상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전 8시부터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300여 명의 외국인들이 유튜브로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요즘 소소한 스님의 하루를 얘기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무선 이어폰을 끼고 미국에 있는 국제국 활동가의 동시통역을 들으면서 질문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직장인 여성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맡고 나서 불편함이 많아졌어요

“So my question is, I recently changed my job but I feel a strong feeling of discomfort with my job. I’ve been trying many new things and my approach is very different with any other job that I’ve been doing before. I don’t feel comfortable doing it and I also don’t think that I could deliver my best. And I'm still not passionate about what I'm doing right now. Also I’m still not passionate at what I’m doing right now. That often makes me sad. I think I need time to take a break. I’d like to know your opinion and advice for my situation.”
(제 질문은 최근에 직업을 바꿨는데 매우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동안 많은 것을 시도했었는데 전에 했던 일들과는 접근이 매우 다릅니다. 직업을 수행하는 게 편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직 지금 하는 일에 열정이 없습니다. 그것이 종종 저를 슬프게 합니다. 휴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 상황에 대한 스님의 의견과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자전거 탈 줄 알아요?”

“No.” (모릅니다)

“만약에 지금 자전거를 배운다면 쉽겠습니까? 어렵겠습니까?”

“It will be difficult too I think.” (제 생각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아노 칠 줄 아십니까?”

“No.” (모릅니다)

“지금 만약에 피아노 치는 걸 배운다면 피아노 치는 게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It also will be difficult.” (그것 또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피아노를 잘 치는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치는 게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It will be easy.” (쉬울 것 같습니다)

“질문자는 농구할 줄 압니까?”

“Not really.” (잘 모릅니다)

“농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농구를 배운다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For a beginner it will be difficult.” (초보에게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농구 선수는 농구하는 게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For a professional basketball player it will be easier for them.” (프로농구 선수에게는 쉬울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더 편안합니까? 여러 번 만났던 사람이 더 편안합니까?”

“It will be more comfortable seeing someone that you’re more familiar with.” (익숙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편안할 것 같습니다)

“왜 처음 하는 일은 어려울까요?”

“I think because you don’t have a skill or knowledge about the job and we’re not used to doing that.” (제 생각에 그 일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이 없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여행을 갈 때 늘 갔던 곳에 가고 싶습니까? 새로운 곳에 가고 싶습니까?”

“I want to go to a new place, try new things.”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왜 늘 가던 익숙한 곳에 안 가고 새로운 곳에 가려고 합니까?”

“Because I want to experience more. I also want to go back to the place I’ve been to but I also want to try new things that I’ve never been before.” (왜냐하면 경험을 더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미 갔던 곳도 가고 싶지만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늘 같은 책을 읽고 싶습니까? 책을 바꿔가며 다른 책을 읽고 싶습니까?”

“I’d love to try a new book and also read my old book that I love. but of course I want to read a new book that might be interesting.” (새로운 책을 읽어보고 싶고 또 오래된 책도 읽고 싶지만 당연히 흥미로운 새로운 책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늘 똑같은 책을 읽으면 내용도 다 알고 아주 쉬운데 왜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합니까?”

“Because I want to know another story that will be hidden in a book, adventure I want to find in a new book that I’ll be reading.” (왜냐하면 책 속에 숨겨진 다른 이야기와 모험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방금 나눈 대화 속에서 이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늘 하던 일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일은 어색하고 어렵고 불편하지만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람 등 뭔가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로운 걸 하라고 하면 처음이라서 어렵다고 말하고, 익숙한 일을 하라고 하면 늘 하던 일이라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처음 하는 일을 시키면 어려워서 싫다고 하고, 늘 하던 일을 시키면 재미없다며 불평합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처음 하는 일은 익숙하지 못해서 약간 어렵긴 하지만 새로운 배움이 있습니다. 하던 일은 새로 배우는 건 없지만 편안하고 익숙해서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측면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단점만 바라보면 불평불만을 하게 되고, 나에게 주어진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불평불만이 없어집니다.

새로운 일이 주어지면 ‘재미있겠다’ 하면서 연구하는 자세를 취하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익숙하지 못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배움이라고 생각하고 ‘재미있다’, ‘신기하다’ 이렇게 접근하는 겁니다. 늘 하던 일을 반복하게 될 때는 ‘익숙해서 좋다’, ‘편해서 좋다’, ‘잘할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처음 하는 일이든, 익숙한 일이든, 아무런 불평이 안 생깁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새로운 곳에 여행을 왔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웃음)

“Yes. I think we can go into something new, something we haven’t tried before but in terms of job and doing something we’re comfortable and we know that we’re doing a good job so I think it’s such an insightful idea. Either way there will be complaints but I think I know that there’s good sides to two choices about going to new job or doing a job that I’m familiar.”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면 새로운 배움이 있고, 익숙한 것을 하면 잘할 수 있다는 말씀은 매우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 같습니다. 양쪽 모두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둘 다 장점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선택은 어느 선택을 해도 좋다는 게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For now I think I’ll be more comfortable doing something that I’m already good at, I already have that skill and knowledge about that job.” (지금은 잘하는 일을 하는 게 편안하고, 지식과 기술이 있기 때문에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것은 늘 구경하던 곳만 구경하고 싶다는 것과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건 지루합니다.”

“Now I know that consequences that if I do something familiar it will become more boring because I know the consequences about it. I think I’ll have more thoughtful mind and try not to complain about doing the same thing over again.” (익숙한 것을 하면 지루하다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것을 반복해도 불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잘하는 것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습니까? 익숙한 걸 좋아한다고 하니까 새로운 직장을 그만두고 원래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First I want to try new things but when I try new things at my current job, I have this concern in my mind. I kind of decided that I want to do things that I’m used to and familiar with. This idea and concept it’s an opposite result.”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근심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익숙한 것을 하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일은 나에게 안 맞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어떤 것도 처음 할 때는 익숙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을 반복해서 여러 번 한 후 많은 훈련과 지식을 갖게 되면 익숙해집니다. 제가 다시 얘기할 테니까 잘 들어보세요.

내가 익숙한 것을 원하면 익숙한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내가 새로운 것을 원하면 새로운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새로운 것을 선택했을 때는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새로움을 선택할 때 당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바로 익숙하게 되고 싶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새로운 일을 선택해서 익숙하지 못한 것 때문에 불편함이 일어날 때는 새로운 일에 대한 단점을 생각하지 말고 장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새로운 일은 조금 어렵지만 연습을 하면 익숙해진다.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배우면 나의 기술과 지식이 넓어진다. 그래서 이 일은 재미가 있다.”

이렇게 마치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합니다. 새로운 일을 하기로 선택했을 때는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넓어진다 하더라도 나에게 어려움이 너무 크다면 포기하고 익숙한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편안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왜 질문자는 새로운 일을 선택했을까요? 거기에는 미래에 더 나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 안주할 것인지, 그건 본인의 선택입니다.

지금 질문자의 태도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으면서 몇 번 넘어지니까 자전거가 나한테 안 맞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넘어질 바에야 걸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걸어가십시오. 그러나 자전거를 배우는 과정이 어렵긴 하지만 배우고 나면 훨씬 더 편리함이 있습니다. 자전거를 배울 때는 넘어지는 어려운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합니다.

젊을 때는 새로운 도전이 더 낫고, 나이가 들면 새로운 도전보다는 비교적 익숙한 것을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지금 질문자의 나이가 어중간하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것 같아요.”

“The answer is really helpful. I know the consequence of choosing a new job and choosing a familiar job and it’s really helpful for me to make a better decision and also knowing what I really want. Thank you.”
(답변이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직장을 얻는 것이나 익숙한 직장을 얻는 것이나 그 결과를 알기 때문에 더 나은 결정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고,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층 밝아진 질문자의 얼굴을 뒤로하고 다음 질문자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 친정엄마와 함께 살면서 친정엄마와 남편의 차이점과, 암 투병 중인 시어머니를 돌봐야 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 프로이트의 성격 구조 이론과 태어나서 세 살까지 엄마와의 관계가 아이의 심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매우 비슷합니다. 붓다의 가르침과 프로이트의 이론 중에서 어는 것이 더 먼저일까요?

대화를 마치고 질문자들에게 스님이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니다. 새로운 직장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 여성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I’m really thankful of this conversation. I think I know myself better and really grateful to be in this process thank you.”
(법문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이 과정을 함께 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은 불교의 가르침이 갖는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지금 내가 괴로움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이것이 목표입니다. 어제의 얘기도 아니고, 내일의 얘기도 아니고, 지금의 얘기입니다. 저기의 얘기가 아니라 여기의 얘기입니다. 너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입니다. 지금, 여기, 나에 대해 깨어있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무슨 전생 얘기를 하며 내생 얘기를 하겠습니까?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기

어릴 때 내가 어떻게 자랐다, 옛날에 어땠다, 이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때 그랬다고 하더라도 지금 나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내일 죽더라도 그건 아직 오지 않은 일입니다.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지금 여기 내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일도 모레도 항상 지금 여기 나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과거를 생각하는 이유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기 위해서 과거의 괴로운 일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괴로웠던 일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괴로워합니다. 과거가 지금의 삶에 교훈이 되는 게 아니고 지금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내가 지금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속에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이 관점을 놓치고 지식으로 빠지면 철학으로 가게 되고, 믿음으로 빠지게 되면 종교로 가게 됩니다. 불교는 믿음도 아니고, 사유도 아니고, ‘알아차림’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기’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영어 즉문즉설 시간에 더 깊이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외국인들은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모둠별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생방송이 끝나고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비닐하우스로 나갔습니다. 추석 연휴에도 농사일은 쉼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장을 하려면 갓이 필요한데 지난번에 갓을 깜빡 잊고 안 심었다고 해요. 오늘은 꼭 갓을 심읍시다.”

마침 비닐하우스 1동에 빈자리가 남아서 모두 갓을 심기로 했습니다. 비닐 멀칭이 된 두둑에는 구멍을 새로 뚫고 씨앗을 구멍마다 3개씩 넣었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흙은 얼마나 덮어주어야 해요?”

“씨앗 크기의 3배 정도의 깊이로 흙을 덮어주면 돼요. 그냥 살짝 덮어주면 됩니다.”

스님이 구멍을 뚫고 지나가면 봉사자가 구멍마다 씨앗을 넣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측면 가장자리에도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여기는 땅을 고른 다음에 호미로 두 줄을 파 주세요. 씨앗을 손으로 살살 뿌려주면 돼요.”

씨앗을 뿌리다 보니 씨앗을 얼마나 뿌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측면 공간은 길이가 길다 보니 씨앗을 한 알씩 손으로 뿌리려면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바구니 하나와 대야 하나만 좀 가져와 주세요. 제가 빨리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게요.”

스님은 곧바로 땅을 파서 흙을 바구니에 담은 후 고운 흙만 채로 걸렀습니다. 순식간에 고운 흙만 대야에 담겼습니다.

“이렇게 흙과 씨앗을 섞어서 땅에 뿌리는 겁니다. 그러면 속도가 더 빠르겠죠?”


그 모습을 본 향존 법사님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스님, 그렇게 하면 어떤 곳은 씨앗이 하나도 안 뿌려지고, 어떤 곳은 씨앗이 많이 뿌려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해보세요. 법사님과 저의 차이는 속도 차이밖에 없어요. 결과는 똑같을 겁니다.”

스님의 제안대로 흙과 씨앗을 섞어서 한 번에 뿌렸습니다. 순식간에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어 주었습니다.


중간에 참을 먹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아침에 주워 온 밤이 맛있게 삶아져 나왔습니다.

“속이 노란 밤이 정말 맛있는 밤이에요. 생밤이랑 같이 먹으면 정말 맛있는 과일이 있는데 뭘까요?”

“글쎄요.”

“홍시예요. 밤이랑 홍시랑 같이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이어서 비닐하우스 1동을 나와서 4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도 갓을 좀 심읍시다. 맨 오른쪽 한 줄에 실험 삼아 가을감자를 심었는데 도통 싹이 안 나와요. 그래서 갓을 심어 버립시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심는 방법을 알려준 후 비닐하우스 전체에 물을 주기 위해 저수지와 비닐하우스를 파이프로 연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지난번에 장치를 다 해놓았기 때문에 연결만 해주면 되었습니다.


“수압이 너무 약하네요. 어떻게 하면 수압을 더 높일 수 있을까요? 오후에 더 연구해 봅시다.”

일단 약한 수압으로 비닐하우스 전체에 물을 준 후 오전 울력을 마쳤습니다.

오후에는 수압을 높이기 위해 파이프를 새로 연결해 보았습니다. 마을 수로에 버려져 있던 파이프를 주워 와서 여기저기를 끼워 맞춰 연결하는 데 한참 동안 시간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파이프 연결 부위가 자꾸 풀어지니까 이번에는 아예 단속을 제대로 해봅시다.”


연결해 놓고 나면 또 물이 새고, 다시 연결해 놓고 나면 또 다른 부위에서 물이 새고, 비닐하우스와 아랫 논 사이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물이 나오게 연결은 되었습니다.

“아직 미진하기는 하지만 일단 이렇게 사용해 봅시다.”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나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8시 30분부터는 온라인 일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76번째로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추석 연휴 기간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적은 800여 명의 정토회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간략히 소개하며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아침에만 일하고, 낮에는 실내에서 일을 하고 오후 4시 이후에 일을 했는데, 오늘은 햇살이 좀 있어도 기온이 높지 않아서 하루 종일 일을 할 수가 있었어요. 저희 두북 공동체에 살고 있는 대중들이 전부 다 명상에 들어가서 저와 법사님 한 분이 농사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어제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를 와서 논에 피도 뽑고 고추도 수확해 주어서 큰일을 잘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영어로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한 명은 손을 어디에 두어도 코끝에 집중하기가 어렵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손을 어디에 두어도 코끝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I do not know where I need to put my hands. Wherever I put them, I feel distracted from being focused on the top of my nose."
(명상할 때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에 두어도 코끝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손을 어떻게 두는 것과 코끝에 집중하는 것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요. 코끝에 집중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손을 두면 됩니다. 그러려면 가장 편안한 상태로 손을 두면 됩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았을 때 두 손을 겹쳐서 앞에 놓는 것이 제일 편안합니다. 가장 자연스럽게 두 손을 겹쳐서 놓으면 돼요. 제일 중요한 것은 손을 두는 위치가 아니라 가장 편안한 자세입니다. 바르게 앉았을 때 손을 어떻게 놓는 것이 몸과 마음에 긴장이 가지 않고 가장 편안한가, 이것을 기준으로 손을 놓으면 됩니다.

손을 어떻게 놓으면 호흡이 더 잘 알아차려진다는 것은 없어요.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 상태에서 아무런 할 일이 없고, 어떤 의도한 바도 없으면, 호흡은 저절로 알아차려집니다. 지나간 과거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뭔가 염려가 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내가 지금 아무런 할 일이 없다면 과거에도 의미를 두지 않고, 미래에도 의미를 두지 않게 됩니다. 그런 생각이 떠올라도 의미를 두지 않으면 저절로 코끝에 호흡의 알아차림이 유지됩니다. 여러분들은 할 일이 있어서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관심이 밖으로 향하게 되고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호흡을 알아차리고 싶어도 알아차려지지 않는 겁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마음을 내면 저절로 호흡이 알아차려지기 때문에 한가한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끝에 관심을 두고 호흡을 알아차리지만 그것을 의도하거나 애쓰거나 긴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어서 스님이 명상하는 자세를 안내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갖습니다.

‘지금 나는 아무런 할 일이 없고 한가하다. 설령 지금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미련이 없고 두려움도 없다.’

이렇게 마음을 가져 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할 일을 다 마쳐서 지금 아무런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작도 멈추고 생각도 멈춥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35분 간 명상을 해 보았습니다.

“편안하게 명상을 하셨어요? 소감을 올려 주세요. 함께 나눠 보겠습니다.”

실시간 댓글창에 수십 개의 소감이 올라왔습니다.

‘다리가 너무 저려 중간에 움직였습니다.’
‘My leg aches so much that I had to move around in the middle of it.’

‘졸았습니다.’
‘I fell asleep.’

'편안했습니다.'
‘I was comfortable.'

‘망상과 호흡 알아차림이 오갔습니다.’
‘I was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distracting thoughts and focusing on the breath.’

‘졸기도 하고 호흡을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I dozed off at times and I was focusing on my breath and others.’

호흡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수많은 댓글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댓글창에 올린 얘기들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때 ‘타 보니 어땠어요?’ 물어보니까 ‘5번 넘어졌어요’, ‘3번 넘어졌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아요. 넘어졌다는 것은 잘 못한 것이 아닙니다. 연습을 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조금 있으면 넘어지지 않고 탈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꾸준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영어 통역을 해 준 국제지부 활동가들과 최근 미국의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9

0/200

고경희

장점보기

2021-09-26 17:05:38

김명진

감사합니다🙏🕯🐌

2021-09-26 10:35:25

보각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9-25 11: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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