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9.17 농사일, 정토대전 회의, 금요 즉문즉설 강연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표정 관리가 안 됩니다.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늘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문경 수련원과 아도 모례원에서 법사님들이 정토대전 회의를 하기 위해 새벽 6시에 도착했습니다. 법사님들은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꼭지를 따는 일을 하고, 스님은 먼저 비닐하우스 1동으로 갔습니다.

얼마 전 ‘스님의 하루’에서 스님이 곰보배추를 심는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이 곰보배추를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먹으라고 선물로 보내준 것인데, 큰 것만 우려서 차로 먹고, 작은 것은 땅에 심어서 더 키운 후에 먹어야겠어요.”

비닐하우스 측면에 빈 공간이 조금 있어서 땅을 고른 후 곰보배추를 심었습니다.

일렬로 나란히 심은 후 물뿌리개로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곰보배추를 금방 심고 나서 오이를 수확했습니다. 잎과 줄기에 가려서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오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줄기를 헤쳐 가며 굵은 오이만 바구니에 가득 찰 정도로 수확했습니다.

“오이가 잘 자랐네요. 큰 것은 다 땄으니까 앞으로 3일은 안 따도 되겠어요.”

오이를 수확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천장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아이고, 비가 많이 오네요. 밭에서 가지를 먼저 수확했어야 했는데 판단을 잘못했어요. 쯧쯧.”

스님은 비옷을 입고 낫과 집게, 가위를 들고 산 밑밭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습니다.

가지를 따서 바구니에 가득 담은 후 오이, 토마토, 호박을 수확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오늘은 이것만 수확해야겠어요. 이제 밤 주우러 갑시다.”

수확한 채소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산 아래 밤나무 숲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와서 밤이 많이 떨어져 있을 거예요.”

밤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니 정말로 하룻밤 사이에 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밤송이를 집게로 모아줄 테니까 여러분은 밤송이를 발로 밟아서 알밤을 꺼내 주세요.”

비를 맞고 땅에 떨어진 밤도 많았습니다. 순식간에 바구니가 알밤으로 가득 찼습니다.

“자, 이제 계곡으로 내려갑시다. 계곡에는 더 많이 떨어져 있을 거예요.”

스님은 물속에 빠진 밤송이를 집게로 속속 건져내었습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자잘한 알밤이 많았습니다.

“안 줍고 그냥 가자니 아깝고, 주우려고 하니 크기가 너무 작네요.” (웃음)


자잘한 알밤도 주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주워서 바구니에 담은 후 계곡을 빠져나왔습니다.

“논 옆에도 밤이 많이 떨어져요. 가 봅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스님은 밤 줍는 재미에 흠뻑 젖었습니다.

“이것 봐요. 여기도 벌써 밤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추우나 더우나 딱 이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밤이 떨어진다니까요.”

논 옆과 비닐하우스 옆에 떨어진 밤도 최대한 주운 후 아침 울력을 마쳤습니다.

“오늘도 밤을 삶아 먹읍시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9시부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스님이 아침에 주워온 알밤을 맛있게 삶아서 밥 속에 넣었습니다. 영양 가득한 밤밥입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두북 공동체 대중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한가위 명상수련 기간 동안 농사일을 어떻게 할지 대중들과 의논했습니다.

“내일부터 한가위 명상수련이 시작되는데 5일 동안 농사일은 저와 묘당법사님이 인계를 받아서 하겠습니다. 농사일은 싹 잊어버리고 명상수련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웃음)

그리고 추석을 앞두고 보시물이 들어왔는데, 공동체 안에서 보시물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동체 들어온 보시물을 어떻게 분배해야 공평하게 분배가 되고 대중의 의혹을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승가의 계율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첫째, 어제 어떤 보시물이 들어왔는지 어제 공지를 했다 하더라도 오늘 발우공양에 참석한 구성원이 바뀌면 다시 공지를 해줘야 합니다. 발우공양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궁금해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먹은 이 음식은 누가 보시한 것이라고 반드시 공지를 해줘야 합니다. 둘째, 누가 보시를 했는지만 공지할 게 아니라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함께 공지를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항상 놓쳐지는 것 같아요.

작년부터 ‘공동체는 대중의 보시를 받지 않고 살아 보자’ 하는 제안도 있었어요. 보시를 안 받고 살게 되면 딱 필요한 만큼만 구입해서 먹고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각 공동체마다 각각 따로 보시를 받다 보니 같은 공동체 구성원인데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불균형이 생겨요. 어떤 공동체에는 가족이 보시를 많이 하는 구성원이 있다든지, 어떤 공동체에는 지도법사가 있다든지, 이런 경우에 보시물의 양에 불균형이 생깁니다.

그래서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어떤 공동체에 사느냐에 따라 생활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문경 수련원에서 살면 돈이 있어도 사용할 수가 없고 투명하게 살게 되니까 생활 모습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울 정토회관에서 살면 개인 용돈이 좀 있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히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출가하기 전 자신의 경제적 여력에 따라 생활 모습에 차이가 생깁니다. 개인 주머니를 따로 차고 있게 되는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 결과 서울에 살던 사람이 문경에 오게 되면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개선을 해나가야 해요.

각 공동체마다 계율을 완전히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중도란 공동체 간의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그 차이가 계율의 근본정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겁니다.”

곧이어 회의를 시작해야 해서 보시물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

오전 10시 30분에 정토대전 성전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화엄경 전체 내용 중에서 정토대전에 실으면 좋을 내용들을 엄선해 와서 각자 발표했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십회향품, 아승기품, 보현행품, 여래출현품, 이세간품 등 화엄경 속 다양한 내용들을 함께 읽고 나서 스님이 정토대전 편집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오후 4시부터는 2차 만일준비위원회와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9월 25일 온라인정토회 정식 출범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 법제위원회에서도 참석하여 스님에게 궁금한 점에 대해 물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에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시도별 밴드를 통해 1200여 명의 시청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내일부터 5일간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데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추석을 앞두고 사회자가 시청자들에게 추석 연휴 계획에 대해 물었습니다. 실시간 댓글창에는 다양한 계획들이 올라왔습니다.

‘벌초도 하고, 가족과 함께 보내겠습니다.’

‘집콕할 예정입니다.’

‘쉬겠습니다.

‘명상수련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어서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추석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정토회 공동체에 들어와 사는 대중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두 명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에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잠깐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정부에서 가능하면 이동 자제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 공동체 대중은 정부의 방침에 맞추어서 가족을 방문하지 않고 명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족을 방문하는 분들이 있다면 코로나 예방수칙을 꼭 지키시기 바랍니다. 가족을 방문할 계획 없이 혼자서 명절을 보내시는 분들은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다가는 과식으로 체중만 불어나고 연휴가 끝나면 오히려 더 피곤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고의 휴식이 명상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온 들녘에 심었던 곡식들과 열매들도 익어가고 있고 수확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즘 산에서는 머루랑 다래도 익어가고 있어요. 집에 머무시는 분들은 독서나 명상을 하시고, 야외에 나갈 수 있는 분들은 비싼 외식보다는 자연 속을 나들이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가 자연을 등한시 해서 면역력이 떨어진 것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한 원인입니다. 자연 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통해 전염병에 적응하는 힘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며 대처법을 질문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표정 관리가 안 됩니다. 어떡하죠?

“저는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을 만나면 표정 관리가 안 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제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고 대처를 잘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표정 관리를 왜 하려고 해요? 싫으면 싫다고 티를 내면 되죠.”

“보통은 사회생활을 할 때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대할 때는 싫어도 싫다고 표현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꾹 참고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표정 관리가 안 되거든요.”

“참고 이겨내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평소에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새벽 5시에 일어나려고 하면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힘듭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심부름 가라고 하면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힘듭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기도하라고 해도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힘듭니다.”

“그런데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사무실에 오면 돈 1만 불을 준다고 하면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안 힘듭니다.”

“어떤 여자가 질문자한테 새벽 5시에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합시다. 그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게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안 힘듭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가 만약 BTS 팬이라고 합시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광장에 모이면 BTS가 사진을 같이 찍어준다고 하면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게 힘들까요?

“안 힘듭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좋은 게 당연합니다. 싫은 사람을 만났을 때 반드시 표정 관리를 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상대가 돈이 많거나, 내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거나, 직장 상사이거나, 내가 거래하는 사람일 때는 싫을 때 싫다고 감정을 표현하면 손해가 나잖아요. 물론 감정대로 표현하고 손해를 봐도 됩니다. 그러나 감정표현을 안 하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저절로 표정 관리가 되고 힘이 안 들어요.

가령 ‘새벽 5시에 기도해라. 그러면 너한테 좋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권유했다고 합시다. 이때 의식 세계에서는 받아들이더라도 무의식 세계에서는 별로 이익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일어나는 게 힘이 듭니다. 그런데 ‘새벽 5시에 기도하면 현금 1만 불을 주겠다’ 이렇게 말하면 무의식 세계에서도 이익이라고 확실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이 하나도 안 들어요. 손해와 이익이 분명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머릿속으로는 ‘사장한테 싫은 티를 내면 나한테 손해니까 잘 보여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어차피 사장한테 잘 보여봤자 나한테 이익되는 것도 없는데, 여기서 해고당하고 다른 회사에 가면 되지’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감정조절이 안 되는 거예요.

어렸을 때 시험 칠 때 상황을 연상해 보세요. 밤에 시험공부하다가 졸리면 엄마한테 ‘지금 너무 졸리니까 세 시간만 자고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공부할 테니까 깨워줘’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러면 엄마가 ‘너 깨워줘도 안 일어나잖아’ 이렇게 말하죠. 아이는 ‘아니야. 진짜 일어날게’ 하고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새벽 2시에 깨우면 아이가 일어나기는커녕 ‘내가 알아서 좀 이따 일어날게’ 이렇게 얘기해요. 결국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는 또 엄마한테 ‘왜 안 깨워줬어? 어제 부탁했잖아’ 그러면서 난리를 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시험을 잘 치면 나한테 좋으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아무리 굳게 다짐을 해도 무의식에서는 ‘시험 못 쳐도 괜찮다’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으로 아무리 결심을 해도 자는 동안은 의식이 쉬어버리니까 무의식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내일이 시험인데도 ‘일어나기 싫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반대로 내일이 소풍 가는 날이면 마음이 들뜨게 됩니다. 의식이 쉬어도 무의식에서는 딱 깨어있는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의 공연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새벽에도 벌떡 일어납니다. ‘새벽 4시에 나가야 하니까 좀 깨워줘’ 이렇게 부탁을 받고 엄마가 깨우러 가보면 아이가 벌써 일어나 있어요.

그래서 표정 관리를 억지로라도 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잠시 동안 표정 관리를 할 수는 있습니다. 연애를 할 때는 잠시 만나고 헤어지니까 표정 관리가 어느 정도 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그 사람이 가진 습성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에 표정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예요.

수행이란 무의식의 세계인 오랜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결심하고 각오해도 담배를 못 끊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독재정권이 들어서서 담배 피우는 사람은 모조리 죽인다고 발표합니다. 이때 몰래 담배 피우는 사람이 적발되어 그 자리에서 총살형을 당하는 걸 봤다면 담배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안 듭니다.”

“이렇게 손익이 확실하면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욕구는 어떤 무의식보다도 더 본질적인 무의식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에 위협이 오면 다른 습관은 다 저절로 없어져 버립니다. 확실하게 이익이 되는 걸 알거나, 확실하게 손해가 되는 걸 알면, 아무리 뿌리 깊은 습관도 바뀝니다. 그래서 손실을 정확하게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질을 버럭버럭 내는 사람이 성질을 고치고 싶다고 질문하면 ‘성질은 고치기 어렵다. 성질대로 살아라’ 하고 말해주는 겁니다. 그래도 고쳐야겠다고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성질 한 번 낼 때마다 전기충격기로 자기를 지져라.’

보통은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그 과보가 나타나는 것이 한참 뒤입니다.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거나 애들이 집을 떠나버리거나 이렇게 10년 정도가 지나서 과보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10년 후가 감지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화를 한 번 낼 때마다 전기충격기로 충격을 가하라고 하는 겁니다. 한 번 화를 낼 때마다 전기충격으로 인해 까무러칠 정도의 손실이 곧바로 나타나게 되면 아무리 무서운 습관도 고쳐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고치려고 안 하죠.

‘표정 관리를 잘하고 싶은데, 명상을 하면 될까요, 절을 하면 될까요?’ 이런 식의 접근법으로는 고치기 어렵습니다. 이미 질문자의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고치기 위해서는 굉장한 충격이 가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고치려고 하다가 안 고쳐지면 자학을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고치지 말고 그냥 생긴 대로 살아라’ 이렇게 조언하는 겁니다.

그런데 수행이란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노력은 안 하고 고치겠다고 욕심만 내면 실제로는 안 고쳐지기 때문에 자학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생긴 대로 사는 것보다 더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생긴 대로 살라는 거예요.

그런데 생긴 대로 살았을 때 손실이 큰 경우가 있습니다. 그 손실이 너무 크면 고쳐집니다. 그것 때문에 직장도 잘리고, 그것 때문에 이혼도 당하고, 그것 때문에 자식도 집을 떠나고, 이렇게 되면 저절로 고쳐져요.

질문자는 아직 젊기 때문에 표정 관리를 안 하고도 살 만한 거예요. 살 만하다면 지금 이대로 그냥 살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감정대로 표현해서 손해가 많이 생기게 되면 저절로 고쳐져요.

젊은이들이 부부가 되면 많이 싸웁니다. 그런데도 왜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부부로 지내게 될까요? 서로 좋아서 지내는 부부는 극히 드뭅니다. 헤어지려고 하니까 손실이 너무 큰 거예요.

‘애도 있지, 재산도 분할해야지, 다른 사람을 새로 만나면 그 사람에게 또 맞춰야지.’

이리저리 온갖 머리를 다 굴려 봐도 헤어지는 것보다는 맞추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직장도 마찬가집니다. 직장을 몇 번 옮겨보면 내 성질에 맞는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현실에 적응을 해나가게 되는 거죠. 그런데 질문자는 아직 그런 손실을 입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미리 신경을 안 써도 손실을 몇 번 보면 저절로 표정 관리가 됩니다.

만약 손실을 경험하지 않고도 고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한 원이 있어야 합니다. 고치겠다는 원이 아주 강하면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다느니, 억지로 참으려니까 힘이 든다느니, 이런 불만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정 관리가 안 되면 그냥 그 자리에서 팍 손해를 보는 그런 심한 제재를 가합니다.

그렇게 하기 어려우면 매일매일 꾸준히 절을 하면서 기도를 하면 도움이 됩니다. 아니면 아직은 살 만하니까 그냥 기분대로 살다가 손해를 자꾸자꾸 보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무의식의 세계에서 소리가 들려요.

‘너 지금 이러다가 손해 엄청나게 보게 된다. 바보같이 이럴 때가 아니다.’

그래서 저절로 조금씩 표정관리를 하게 됩니다. 어느 길로 가도 괜찮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묻는 요지는 손해 좀 안 보고 미리 고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거죠? 그런 수준의 자세로는 안 고쳐집니다. 이렇게 오래된 습관은 의지로는 고치기 어렵습니다.

첫째, 의지가 습관을 이기려면 의지가 아주 세야 합니다. 타협을 허용하면 안 돼요. 그런데 보통 사람은 그렇게 강한 의지로 밀고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결심해도 삼일을 못 넘긴다고 하는 겁니다.

둘째, 자기가 자기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해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하루에 절을 3000배 한다든지 자신에게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변화가 옵니다. 누가 처벌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처벌하는 거예요.

셋째, 이게 어렵다면 작은 각오라도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오늘부터 하루에 300배를 하기로 했으면 천일을 하루도 안 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절을 하는 겁니다. 몸이 아프든지 안 아프든지에 관계없이 꾸준히 절을 하는 그런 각오가 있으면 무의식의 세계에 영향을 주어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요.

그냥 절에 좀 다니고 명상 좀 흉내 내는 수준으로는 절대 안 바뀝니다. 그렇게 쉽게 바뀌면 왜 ‘성질’이라고 부르겠어요. ‘성질’이란 말이 붙었다는 건 쉽게 안 바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받았다고 해서 ‘천성’이라고 표현했고, 인도에서는 전생이 지은 업보라는 의미로 ‘까르마(karma)’라고 표현했어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변화가 어려울 뿐 모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변할 수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변화를 가져오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꾸준함이 있어야 하고, 둘째,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성질을 인정하고 손실과 손해가 나면 흔쾌히 받아들여야 해요. 이렇게 지은 인연의 과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질문자는 어떻게 할래요?”

“후자가 나을 것 같아요.”

“과보를 받겠다는 거네요. 자기가 자기를 변화시키려면 ‘전기충격기로 지지든지 하루 3000배를 하든지 한 번 도전을 해보겠습니다’ 이런 강한 의지가 있어도 바뀌는 게 쉽지 않은데 질문자는 그냥 생긴 대로 살고 과보를 받겠다는 거잖아요. 좋아요. 그러면 우선 지금은 표정 관리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표정 관리가 안 된다고 자책하는 것은 또 자기를 학대하는 거예요. 생긴 대로 살면서 손해를 보세요. 손해를 덜 보고 싶으면 자기가 자기를 변화시킬까요? 안 시킬까요?”

“변화시켜요.”

“그러니 일단 손해를 한번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했던 대부분의 행동들이 사실 저를 위한 이기심으로 했던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이타심을 낼 수는 없는 것인가요?
  • 아이가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고1이 되고 나서 새 친구를 사귀더니 엄마인 저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아이와 연락하고 지내면 좋을까요?
  •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합판에서 발암물질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비자에게 안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오전에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 입재식을 하고, 오후에는 논에 피를 뽑고 비닐하우스 고추를 딸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3

0/200

신연희

수행이란 무의식의 세계인 오랜 습관을 변화시키는것!
저에겐 전기충격기가 필요하네요....ㅠㅠ
쎈 무엇인가가~~
무의식의 세계를 완전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변화하겠습니다,변화했습니다,변화시켰습니다!
감사합니다!스님()()()

2021-09-26 09:24:47

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2021-09-25 10:07:22

도원행

계율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중도란 조금씩 있는 차이를 계율의 근본정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라는 말씀 새깁니다.
형성된 업식의 변화를 위해 꾸준하고 성실히 정진하겠습니다.

2021-09-24 12:06:08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